손과 발이 닳아 묵음默音이 되어야 했던 사람들은 커다란 코끼리 귀를 가지고 태어났다 밤이면 식당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손과 발이 없었으므로 그대로 방바닥에 엎질러지곤 했다 낮은 베개를 베고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으면 몸만 남은 어머니의 몸이 커다란 귀처럼 보였다 이따금, 어머니는 눈썹을 씰룩거리며 없는 손과 발을 나의 배 위에 툭 얹혀 놓곤 했지만 나는 애써 무거운 소리(들)을 걷어내곤 했다
귀는 돌아누워도 귀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내가 속으로 한숨을 푹푹 쉴 때, 어머니의 귀도 등 뒤에서 흐느적거렸다 웅크리고 있던 소리가 잠시 없던 손과 발을 환상통으로 느낄 때, 동그란 자갈들이 방안으로 굴러들곤 했다 어머니의 귀를 끌어안고 잠든 밤, 아침이면 어머니의 귀는 이미 공중을 떠돌았고 나는 없는 소리(들)을 불러모아 남은 밤을 있는 힘껏 기다리곤 했다
밤, 무서운 밤, 즐거운 밤, 1985년 시월의 어느 밤
아버지는 어두움에 기대어 귓속에 소주를 들이붓고 어머니는 없는 손을 가까스로 꺼내어 내 두 볼을 쓸어내렸다 손등 위로 흐느끼는 소리가 뚝뚝 떨어지곤 했다 전날, 빚쟁이들이 어머니의 귀때기를 잡고 연무대 시장통을 질질 끄는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나는 없는 손과 발로 공중에서 악을 쓰며 허우적거리는 어머니의 귀를 생각했다
뭉툭한 내 손과 발은 어머니의 유일한 지문이다
나를 거쳐간 애인들은 내가 잠든 사이 나의 손과 발을 보고 모두 달아났다 나에게 뭉툭하다는 것은 닳아 없어지기 전의 비장한 결사와 같은 것 그들은 모두 뾰족한 손과 발 위에 뾰족한 장갑과 뾰족한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때, 자갈들은 마구마구 내 귓속으로 내통하는 것이었다 동그랗게 부서지며 몸뿐인 몸으로 내 지문을 조금씩 지우는 것, 비로소 나는 먹먹한 귀를 갖게 되었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별들은 묵묵한 귀 하나로 한 생을 부유했다
哭
내가 건넜을 어느 별이 사그라져 어떤 내력도 남지 않았다고 발음하는 밤은 외롭다 그리하여, 무중력의 잿빛 점퍼를 걸치고 귀신처럼 공중을 떠돌았다고 발음하는 밤은 외롭다 발설하지 않았기에 발음만으로 외로울 수 있다는 것은 내가 당신의 이름을 협소한 내 안에 가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발음은 발설의 유약한 前兆라고 기록하기로 한다
대부분의 고향은 머언 곳에서 發光한다 가까이서 본 고향이란 弔燈처럼 환하지만 그 내부는 울음 소리로 그득하다 哭이란 그런 것이다 하나의 별을 사이에 두고 들으면 평온함을 주지만 건넛방에서 들려오는 것들은 대부분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한다 뜬눈으로 퀭한 새벽이 오길 두 손 모으고 기다리며 나는 홀로 당신을 건넜다고 기록하기로 한다
무릎을 괴고 마루에 앉아 당신의 이름을 발음하곤 했던 밤을 생각한다 서로의 꼬리를 물고 자결하듯 뒷산의 저수지로 몸을 은닉하는 별 사이로 문득 당신의 모습이 스치곤 했다 몸은 현생을 버렸으나 내생을 꿈꾸는 별은 소리내어 울지 않는다 나는 분명 큰 공명통을 가진 아이였으나, 아무도 나의 호명에 답해주지 않았다 오래 전의 밤이었다고 기록하기로 한다
필라멘트
이제 그리고 밖은 어두웁다. 비로소, 내부는 빛의 파장으로 극명하다. 사물과 사물의 경계로 시침과 시침은 아슬한 간극을 유지한다. 어두움이 탱탱하다는 것은 한 세계의 복수腹水가 차올랐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태아의 잠*처럼 불편한 것은 없다. 둘 중 하나는 제 몸을 이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흐, 섬뜩하다. 섬뜩하다는 것은 맞잡은 손을 놓아버린다는 것이다. 내가 너를 놓았는지 네가 나를 놓았는지 모르지만 우리의 팔은 이제 그리고 좌표를 잃었다. 공중은 한 점 발열점을 찾지 못하고 파르르, 일 초에 일 억 번씩 나부낀다. 너와 나의 간극이다.
불의 진동. 그러므로, 나는 감지한다. 모스 부호처럼 누군가 수없이 눈꺼풀을 깜박이며 이 밤을 향해 달려가는 힘찬 발굽 소리를. 나는 어머니의 배꼽을 찢고 세상에 나왔다. 그래서 나는 자주 어머니가 잘 때 배꼽 안을 손으로 후벼팠다. 열려라 배꼽! 제발 좀, 열리라고 배꼽! 나중에 배꼽이 아니라 그 밑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았다. 화끈거렸지만 나는 잠든 어머니의 팬티 속으로 손을 집어 넣곤 했다. 내가 저런 음지에서 태어났다니 오! 불의 자식. 그러므로, 나는 감지한다. 왜 그곳을 불두덩이라고 발음하는지.
이제 그리고 밖은 화안하다. 비로소, 외부는 빛의 염殮으로 장엄하다 소란스러움이 너와 나의 간극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무마시킨다. 그래, 우린 분명 아무것도 아니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태어났었고 책상과 책상 위의 유리는 여전히 진공이다. 그 작은 틈으로 수만 마리 바퀴벌레 알들이 태어났고 그들은 또 한 세계의 자식으로 배회한다. 나와 어머니와 바퀴벌레는 스위치를 켠다. 이제 그리고 너도 그 불 속에서 진공이 된다. 톡, 틱, 탁, 툭, 수만 마리 나비들이 방 안을 날아다닌다.
가을이 산을 내려오고 있다. 대청봉이나 내장산처럼 자지러지는 단풍이 아니지만 산정에만 드문드문 보이던 황갈색이 어느 틈에 중턱까지 퍼졌다. 봄은 기를 쓰고 올라가더니 가을은 이렇게 신속하게 내려오고 있다. 왜 그렇게 빨리 내려오는지 내리막길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고 싶다. 산은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 더 조심해야 된다는 걸 늙어가면서 알겠다. 조금만 딴 생각을 해도 발을 헛디디게 된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난다. 어려서 넘어지길 잘해서 어머니한테 걸을 때는 걷는 생각만 하라는 주의를 여러 번 들었다. 넘어지는 것 말고도 어릴 적의 내 실수는 거의가 다 딴 생각을 하다가 저지른 거였다.
등산로 초입에 커다란 사시나무가 서 있다. 보통 때는 그 나무가 거기 있다는 것도 모르고 지나다녔다. 특별히 눈에 띄는 나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나무가 눈에 띈 것은 그 애처로운 떨림 때문이었다. 청명한 아침이었고 기분 좋을 정도의 산들바람이 불고 있었다. 나무들의 이파리를 흔들 정도의 미풍이었는데 사시나무 혼자서 온몸으로 떨고 있었다. 나무들은 잎이나 열매, 크기, 줄기 등으로 자기가 무슨 나무라는 걸 알린다. 소나무나 아카시아처럼 한눈에 알 수 있는 나무도 있지만 자세히 살펴봐야 구별할 수 있는 나무도 있고, 이름을 모르는 나무가 더 많다. 어떻게 바람에 반응하느냐로 존재를 알리는 나무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이건 나부끼는 것도 흔들리는 것도 아닌 떨림 그 자체였다. 신경이 떠는 것처럼 민감한, 전 존재가 공구(恐懼)하는 것처럼 깊고 걷잡을 수 없는 떨림.
나는 그때 문득 “쯧쯧, 왜 그렇게 사시나무처럼 떠냐?” 하는 어머니의 음성이 생각났다. 어려서 시골집에 살 때 겨울에는 부엌에서 목욕을 했다. 어머니는 자주 씻기는 편이었지만 기껏해야 한달에 한번 정도가 아니었을까. 가마솥에 데운 물을 나무로 깎아 만든 큰 함지박에 붓고 그 안에 들어앉아 때를 불렸다. 그러고 나면 어머니가 일으켜 세우고 거친 베수건으로 박박 문지르면서 물을 끼얹었다. 함지박의 물이 미지근해지면서 떨림이 시작된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멈출 수 없는 떨림은 내 알몸을 함지박 바깥으로 번쩍 들어내 부엌바닥에 세워났을 때 절정에 달한다. 아래윗니가 딱딱 부딪치게 떨렸다. 그런 나를 어머니는 사시나무 떨 듯 한다고 했다. 베수건으로 물기를 다 닦아내도 떨림이 멈추지 않으면 어머니는 나를 당신 팔로 꽉 조이듯이 껴안았다. 따뜻한 포옹이 아니라 기둥처럼 완강한 제동이었다. 어머니는 살가운 분이 아니었는데도 나이 들어가면서 더 자주 어머니 생각이 나곤 한다. 내 안에는 아직도 내 힘으로는 다스려지지 않는 떨림이 남아 있다. 살면 얼마나 더 살겠다고 모진 세상, 미지의 운명 앞에 이리도 알몸인 듯 시린가.
가을이 빠른 속도로 산을 내려오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지금 한창 만개한 철모르는 꽃이 있다. 아니 철을 모르는 게 아니라 가장 철에 민감한 꽃, 찬바람이 나야만 피는 꽃이란 어떤 꽃이겠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코스모스다. 아치울 마을 동구 밖은 43번 국도이고 국도를 건너면 한강 둔치로 내려가게 되어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그곳은 버려진 땅이었다. 둔치 중에도 좀 지대가 높은 데는 비닐하우스가 있지만 강을 낀 10만평도 넘을 것 같은 저지대는 늪 같기도 하고, 우범지대 같기도 하고, 쓰레기를 몰래 버려도 묵인해주겠다는 약속의 땅 같기도 했다.
거기에 누군가가(아마 구리시청일 것이다. 개인이 하기엔 너무 광활한 땅이다) 꽃을 심기 시작한 것이다. 워낙 광활한 땅이라 몇백 몇천평씩 구획을 해서 사이로 산책로를 내고 철마다 꽃을 볼 수 있도록 유채꽃으로부터 장미, 홍초, 해바라기, 백일홍, 금잔화, 코스모스까지. 유채는 금년 봄가뭄이 심해 기대한 만큼의 꽃을 피워주지 않았다. 그밖에 장미나 홍초도 오랫동안 계속해서 피기 때문에 도리어 주의를 끌지 못하고 해바라기가 한창일 때는 정말로 굉장했다. 어떻게 그렇게 알고들 찾아오는지 많은 사람들이 활짝 웃으며 꽃밭에서 사진을 찍는 게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영화배우처럼 웃었다. 아마도 <해바라기>라는 영화 속에 들어간 듯 착각했을 테니까. 영화 <해바라기>말고도 이 땅에서 그렇게 넓은 해바라기밭은 누구에게나 아마도 처음일 것이다.
해바라기밭처럼 확 눈에 띄지는 않지만 백일홍이 한창일 때도 볼 만했다. 키가 큰 재래종 백일홍이 어쩌면 그렇게 다양하고 은은하고 세련된 색상으로 피는지. 녹의홍상이란 말도 있고, 어려서는 덮어놓고 명절날이면 샛노란 저고리에 새빨간 치마를 입었던 경험으로 우리 민족은 녹음과 진달래와 개나리를 사랑하는 것처럼 색에 대한 상상력도 거기 고정된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원색의 유행은 외국에서 화학염료가 들어오고 우리네 살림이 정체성을 잃을 정도로 척박해진 후부터가 아니었을까. 요새 뜻있는 이들이 재현하고 있는, 우리 조상들이 즐겨입던 천연물감 들인 옷감을 보면 그렇게 다양하고 고상하고 세련됐을 수가 없다. 그런 색상들의 총집합이 바로 그 백일홍 꽃밭에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이제 그 백일홍 꽃밭은 지체높은 귀인의 말년처럼 기품있게 사위어가고 코스모스가 한창이다. 우리 시골에선 코스모스를 키다리라고 했다. 키다리보다는 코스모스가 더 예쁘고 정겹게 들린다. 요새 코스모스가 해바라기보다 더 사랑을 받고 있다. 통일로나 양평 가는 길 등 코스모스로 유명한 길도 많고 그래서 코스모스는 길가에만 피는 꽃으로 알지만 평원에 펼쳐진 코스모스밭은 더욱 볼 만하다. 물론 이 넓은 땅에 다 코스모스를 심은 건 아니다.
꽃에 따라 제 영역이 있고 제 차례가 되어야만 피건만 이상하게도 해바라기 전성기일 때는 온통 해바라기밭 같고, 백일홍이 전성기일 때 또한 그러하였다. 지금은 코스모스만 보인다. 사라져가는 것들은 안 보인다. 요새 이곳 구리 둔치의 코스모스는 워커힐서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한강이 양평 쪽으로 완만하게 휘는 지점을 보면 그 일대가 분홍빛 아지랑이처럼 앙기앙기 피어오르는 게 보인다. 이 계절에 웬 분홍빛? 그리하여 환각 같기도 하지만 그게 바로 코스모스밭이다.
나는 해 저물녘의 그곳이 제일 좋다. 해바라기가 만개했을 때도 백일홍이 만개했을 때도 그곳에서 하염없이 아차산으로 해가 지는 걸 바라보는 게, 실은 그곳 산책의 하이라이트였다. 아차산에 안긴 우리 동네서 바라보면 한강 쪽에서 해가 뜨지만 한강 쪽에서 바라보면 아차산으로 해가 진다. 그냥 은은한 잔광만 남기고 꼴딱 질 적도 있지만 산정에 구름이라도 몇 점 머물러 있으면 기가 막힌 노을을 보여줄 적도 있다. 구름은 부드러운 솜털구름보다는 터치가 힘찬 약간 성난 구름이면 더욱 장관을 보여준다. 노을이 너무도 핏빛으로 선열하여 영웅호걸의 낭자한 출혈처럼 비장할 적이 있는가 하면, 가인의 추파처럼 요요할 적도 있다. 어느 쪽이든 우리를 숨막히게 한다. 온몸을 나사처럼 죄어오다가 순식간에 풀어 준다. 그러고 나면 속은 것처럼, 내동댕이쳐진 것처럼, 서럽고 막막해진다. 아침에도 노을이 지지만 그건 곧 눈부신 햇살을 거느리기 때문에 사라지는 게 아니라 잊혀진다. 그러나 저녁노을은 언제 그랬더냐 싶게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 끝이 어둠이기에 순간의 영광이 더욱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까닭은 그 집착 없음 때문이다. 인간사의 덧없음과, 사람이 죽을 때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알 것 같다. 아아, 그러나 너무도 지엄한 분부, 그리하여 알아듣고 싶어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가끔 자기 스스로를 차분히 안으로 정리할 필요를 느낀다. 나는 어디까지 와 있으며, 어느 곳에 어떠한 자세로 서 있는가? 나는 유언무언(有言無言)중에 나 자신 또는 남에게 약속한 바를 어느 정도까지 충실하게 실천해 왔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이러한 물음에 대답함으로써 스스로를 안으로 정돈할 필요를 느끼는 것이다.
안으로 자기를 정리하는 방법 가운데에서 가장 좋은 것은 반성의 자세로 글을 쓰는 일일 것이다. 마음의 바닥을 흐르는 갖가지 상념을 어떤 형식으로 거짓 없이 종이 위에 옮겨 놓은 글은, 자기자신을 비추어 주는 자화상(自畵像)이다. 이 자화상은 우리가 자기의 현재를 살피고 앞으로의 자세를 가다듬는 거울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것은 자기의 과거와 현재를 기록하고 장래를 위하여 인생의 이정표(里程標)를 세우는 알뜰한 작업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자신의 엉클어지고 흐트러진 감정을 가라앉힘으로써 다시 고요한 자신으로 돌아오는 묘방(妙方)이기도 하다. 분노와 슬픔과 괴로움은 하나의 객관적인 사실로 떠오르고, 나는 거기서 한 발 떨어진 자리에서 그것들을 바라보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될 것이다.
안으로 자기를 정돈하기 위하여 쓰는 글은, 쓰고 싶을 때에 쓰고 싶은 말을 쓴다. 아무도 나의 붓대의 길을 가로막거나 간섭하지 않는다. 스스로 하고 싶은 바를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할 수 있는 일, 따라서 그것은 즐거운 작업이다.
스스로 좋아서 쓰는 글은 본래 상품이나 매명(賣名)을 위한 수단도 아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읽기 위한 것이요, 간혹 자기와 절친한 가까운 벗을 독자로 예상할 경우도 없지 않으나, 본래 저속한 이해(利害)와는 관계가 없는 풍류가(風流家)들의 예술이다. 따라서 그것은 고상한 취미의 하나로 헤아려진다.
모든 진실에는 아름다움이 있다. 스스로의 내면을 속임 없이 솔직하게 그린 글에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감동이 있다. 이런 글을 혼자 고요히 간직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복된 일일까. 그러나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누구에겐가 읽히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가까운 벗에게 보인다. 벗도 칭찬을 한다. "이만하면 어디다 발표해도 손색이 없겠다." 하고 격려하기도 한다.
세상에 욕심이 없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칭찬과 격려를 듣고 자기의 글을 '발표'하고 싶은 생각이 일지 않을 만큼 욕심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노트 한구석에 적었던 글을 원고 용지에 옮기고, 그것을 어느 잡지사에 보내기로 용기를 낸다. 그것이 바로 그릇된 길로의 첫걸음이라는 것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면서, 활자의 매력에 휘감기고 마는 것이다.
잡지나 신문은 항상 필자를 구하기에 바쁘다. 한두 번 글을 발표한 사람들의 이름은 곧 기자들의 수첩에 등록된다. 조만간 청탁서가 날아오고, 기자의 방문을 받는다. 자진투고자(自進投稿者)로부터 청탁을 받는 신분으로의 변화는 결코 불쾌한 체험이 아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청탁을 수락하고, 정성을 다하여 원고를 만들어 보낸다. 청탁을 받는 일이 점차로 잦아진다.
이젠 글을 씀으로써 자아(自我)가 안으로 정돈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밖으로 흐트러짐을 깨닫는다. 안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생각을 정열에 못 이겨 종이 위에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괴지 않은 생각을 밖으로부터의 압력에 눌려 짜낸다. 자연히 글의 질(質)이 떨어진다.
이젠 그만 써야 되겠다고 결심하지만,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먼길을 내 집까지 찾아온 사람에 대한 인사를 생각하고, 내가 과거에 진 신세를 생각하며, 또는 청탁을 전문으로 삼는 기자의 말솜씨에 넘어가다 보면,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
쓰겠다고 한번 말만 떨어뜨리고 나면 곧 채무자(債務者)의 위치에 서게 된다. 돈 빚에 몰려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글 빚에 몰리는 사람의 괴로운 심정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젠 글을 쓴다는 것이 즐거운 작업이나 취미가 아니라, 하나의 고역(苦役)으로 전락한다.
글이란, 체험과 사색의 기록이어야 한다. 그리고 체험과 사색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만약 글은 읽을 만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면, 체험하고 사색할 시간의 여유를 가지도록 하라. 암탉의 배를 가르고, 생기다 만 알을 꺼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따라서 한동안 붓두껍을 덮어두는 것이 때로는 극히 필요하다. 하고 싶은 말이 안으로부터 넘쳐흐를 때, 그 때에 비로소 붓을 들어야 한다.
일단 붓을 들면 심혈을 기울여 써야 할 것이다. 거짓없이 성실하게, 그리고 사실에 어긋남이 없도록 써야 한다. 잔재주를 부려서는 안 될 것이고, 조금 아는 것을 많이 아는 것처럼 속여서도 안 될 것이며, 일부의 사실을 전체의 사실처럼 과장해서도 안 될 것이다.
글이 가장 저속한 구렁으로 떨어지는 예는, 인기를 노리고 붓대를 놀리는 경우에서 흔히 발견된다. 자극을 갈망하는 독자나 신기한 것을 환영하는 독자의 심리에 영합하는 것은 하나의 타락임을 지나서 이미 죄악이다.
글쓰는 이가 저지르기 쉬운 또 하나의 잘못은, 현학(衒學)의 허세로써 자신을 과시하는 일이다. 현학적 표현은 사상의 유치함을 입증할 뿐 아니라, 사람됨의 허영스러움을 증명하는 것이다. 글은 반드시 여러 사람의 칭찬을 받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되도록이면 여러 사람이 읽고 알 수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즐거운 작업이어야 하며, 진실의 표명(表明)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우선 필요한 것은 나의 자아(自我)를 안으로 깊고 크게 성장시키는 일이다.
그냥 잠들어 있는 사람은 인기척을 내거나 가볍게 흔들어도 놀라 깨어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일부러 자는 척 하는 사람은 웬만큼 큰 소리로 불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몇 번 흔들면 ‘끙’ 하고 돌아 누어 코까지 고는 시늉을 하지요. 이쯤 되면 깨우려던 사람이 도리어 민망해져서 그만 두게 됩니다. 지금의 세상에서는 꼭 밝혀져야 할 어떤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또 위에서 시키는 일이 양심에 어긋나는 짓이라는 것을 뻔히 간파했으면서도 제게 손해가 돌아 올까 봐 자는 척 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어떤 조직 내에서 이루어지는 음모를 밝히려 해도 ‘의리’란 얼토당토않은 무기를 내세워 은근히 압력을 가하기도 하지요. 집단이기주의가 정상적인 사람들을 억지로 잠자게 만들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이익이 생길 것 같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면서, 불리하거나 아무 소득이 없을 것이라 여겨지면 깨어있다가도 자는 척, 연기를 잘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득세를 하는 현실을 봅니다. 우리 사회가 오직 성장만을 목표로 숨가쁘게 달려온 결과 지나치게 성공제일주의에 젖어있는 분위기를 곳곳에서 감지하게 됩니다. 그런 까닭인지, 우리는 말끝마다 성공과 출세를 들먹입니다. 마치 성공한 사람만이 인간 대접을 받을 것 같은 흐름이 젊은 이들을 더욱 초조하고 불안하게 만들지요. ‘성공적인 유형’만을 삶의 목표로 삼도록 독려하는 일은, 이기적인 경쟁관계가 판을 치게 하는 사회를 만들어 갈 게 분명합니다. 당연히 앞장 서서 이런 일을 멈추도록 노력해야 할 사람들도 뒷짐만 지고 서 있습니다. 섣불리 나섰다가는 어떤 구설수에 말려들지 모르니 차라리 모른 척 졸고 있는 게, 제 보신에는 상책이라는 판단을 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니 어느 누가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겠습니까?
원래 경쟁관계에서는 지는 사람이 있어야 이기는 사람도 있는 것이지요. 운동경기를 보아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당당하게 패한 사람이 억지로 우승한 사람보다는 더 귀한 법이지요. 부정한 방법으로 경쟁에서 이기는 것 보다는 정직하게 지는 사람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갈 게 분명하건만, 세상은 그렇지를 못합니다. 학교나 사회에서도 경쟁에서 깨끗하게 지는 방법을 일러주지 않습니다. 정작 경쟁에서 졌을 때도 그것을 의연하게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지금의 제 처지나 실력은 뒷전으로 미루어 두고, 무조건 이길 방법을 배우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 더 높고, 더 크고, 더 많고, 더 힘센 것만 올려다 보며, 개인적인 성공만을 골똘히 생각하는 사람들을 양산해 내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이 하나같이 갖고 싶어 하는 돈과 명예나 권력 중에 어느 한 가지 변변하게 갖추지 못했으면서도, 가진 자보다 더 가치 있게 또 행복하게 한 생애를 살고 있는 사람들을 직, 간접으로 만나게 됩니다. 가난하지만 더 가난한 사람들에게 물질적으로 베풀고 사는 사람들이나, 자기의 고통도 만만치 않은 데 남의 것을 제 일처럼 도맡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얘기가 감동을 줍니다. 심지어는 자기가 가진 모든 것, 장기(臟器)나 목숨까지도 생면부지의 사람을 위해 내놓기도 합니다.
이치로 따지자면 많이 가진 사람이 그의 몫에서 조금 떼내어 이웃에 나누어 주기가 쉬울 것 같은 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물론 부자가 수 많은 사람들을 도운 사례가 왜 없겠습니까 만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지면 가질수록 그 가짐 자체에 얽매여 도리어 남에게 베풀 마음이 사라지기 십상이라니 삶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흔히 말하는 출세나 성공이라는 것들이 사람 사는 데 있어서 최상의 덕목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이나 겸손과 같은 감정들이 삶을 더 가치 있고 보람되게 끌어 줄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게 합니다.
나는 이제라도 ‘자는 척’ 하지 말고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특히 내 영혼 앞에서는 게으름피지 말고 얼른 일어나 옷 깃을 여미고 바로 앉아야 하겠습니다. 자는 척, 열심인 척, 착한 척, 명 연기를 하며 살아왔던 지난 날을, 내게 남아 있는 석양에라도 열심히 말려야겠습니다. 특히 ‘내 직업과 양심 앞에서 늘 깨어 있으려고 애써왔고, 자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는 나의 오만한 마음에서 깨어나야 하겠습니다. 내가 수필을 쓰는 일도 ‘깨어 있도록 하는 노력의 한 방편’이라고 남들에게 토로했던 일까지도 황급히 거두어 들여야겠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도 계속되는 바람은 있습니다. 내 비록 한낱 스쳐가는 바람 끝 같은 찰나를 붙들고 살고 있지만, 내 삶의 흔적일랑 찰나를 따라 허망하게 사라지지 말고,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닌 체, 영원한 시간 속의 한 부분으로 이어질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길을 찾게 해 달라는 바람입니다. 나의 이런 반성과 소망은, 내가 노을을 자주 바라보는 나이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만, 지금 내게 남아있는 가장 소중한 기도이기도 합니다.
안개가 자욱하다. 젓가락으로 휘저으면 금방이라도 솜사탕을 만들 수 있겠다. 요사이는 계절에 관계없이 안개가 나타난다. 안개처럼 희미한 기억속의 시간은 세월이 지나더라도 잠시 그리움으로 다시 핀다. 지난 그리움들이 가슴을 흔들고 지나간다. 때로는 아픔으로, 눈물로 텅빈 마음 속 곳곳에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반긴다.
며칠 전, 아이의 손에 커다란 스케치북이 들려 있었다. 평소 미술수업이 재미있다는 말을 자주 했었기에 어떤 그림을 그릴까 궁금하였다. 천천히 스케치북을 하나씩 넘겼다. 딸아이가 그렸다고는 믿기지 않았다.
어릴 적 나는 미술에 소질이 없었다. 그림 그리기 숙제가 있으면 책에 있는 그림을 그대로 베끼기 일쑤였다. 아이의 그림은 무채색에 가까웠다. 그림은 흐린 안개처럼 희미한 추억을 생각나게 했다. 침묵했던 추억들이 내게 안녕이라 인사를 건네며 마음을 똑똑 두드렸다. 중학시절 내 앞자리에 앉아 있던 친구의 얼굴이 생각난다.
두 종류의 기억이 있다. 좋은 기억과 나쁜. 사람의 머릿속에 저장된 수많은 기억 중에 자신에게 가장 가슴에 와 닿는 기억들, 또는 지난 일을 돌이켜 생각함을 추억이라 말한다. 추억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꺼내어 본다. 잊고 있었던 기억 속에는 아직도 영원을 향해 달리고 있는 절름발이 우리들의 우정이 꿈틀거린다.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는 나쁜 기억으로 주인공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치유될 수 없는 상처로 인해 가슴 아파한다. 부잣집의 딸로 태어났지만 사춘기시절, 사촌오빠에게 강간을 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런 사실을 엄마에게 말하지만 도리어 “다 큰 기집애가 어떻게 꼬리를 쳤으면.” 하고 아픈 딸아이의 상처에 작두를 내리치듯 비수를 꽂는다.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연고나 바르라고 말이다. 자신의 상처를 보듬어 주지 못하는 엄마에게 보란 듯이 자살 시도를 반복했다.
시간이 지나 사회인으로 생활하지만 쉽게 남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한다. 수녀인 고모의 권유로 사형수 남자의 상담을 지켜보면서 서서히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것일까. 올해가 마지막 봄이 될지도 모르는 사형수에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자신만의 비밀을 털어 놓는다.
이미 지나버린 상처로 괴로워하는 주인공의 모습과 친구의 얼굴이 함께 떠올랐다. 친구는 정상적으로 사랑을 할 수 없었다. 남자에 대해 적대감을 가졌다. 과거 때문에 괴로워하며 벗어나지 못했다. 영화와는 달리 친구는 살아있는 동안 그 악몽을 떨치지 못했다. 세상과 스스로 담을 쌓고 우울이라는 울타리 속에 갇혀 살다가 결국에는 우리의 시선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때만 해도 주위의 차가운 시선은 여자로서 세상을 살기에는 너무나 따가웠다. 공범자인 세상은 그녀를 잊고 관심이 없었지만, 그녀는 스스로를 피해자가 아니라 죄인으로 옥죄는 삶을 살다가 쓸쓸히 짧은 생애를 마감하였다.
친구는 가슴으로 울었다. 말 못하는 일을 가슴 속에 간직한 채 소리 없이 울고 또 울었을 것이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미어질 듯 아픈 상처를 손으로 움켜쥐며 남에게 들켜 버릴까 속울음을 울었을 것이다. 남을 용서하기는 그래도 쉬운 일인지도 모른다. 오히려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더 몸부림을 쳤을 것이다.
친구처럼 세상에는 상처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남에게 쉽게 얘기하지 못하고 스스로 아픔을 견디며 생활한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 훨씬 많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쉽게 범죄의 대상이 되고 있는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혼자 다니기가 무서운 세상이다. 그런 악몽을 겪은 사람들이 잊기 위해 간혹 자기의 기억을 조작하여 과거의 시간을 고친다고 한다. 기억하기 싫은 과거의 일부분을 조각조각 내어 스스로 삭제를 시켜 버린다.
하지만 과거는 모두 지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뇌리에 기억으로 저장될 뿐이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가슴 아픈 사연들이 둥둥 떠다닐 것이다. 그저 종류만 다를 뿐 아픔의 무게는 똑같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 평생 남에게 말하지 못한 비밀을 간직하는 것도 괜찮을 거다. 만약 신이 있다면 용서해 줄 것이다.
친구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온다. 아픈 마음을 오래 견디고 나면 희망의 꽃으로 다시 피어날 수 있을까.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친구의 명복을 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