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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5/11/23
 


     


                                                
 

     
 즐거운 인생

내가 그짝이다. 간다 간다 하면서 애 셋 낳는다는 속담대로 말이다. 곧 철수할 것처럼 매양 엉거주춤한 채로 이민생활을 한 지 어언 석삼년 세월. 야전부대 임시막사같은 아파트살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 뜨내기 살림이라 가구 역시 변변찮다. 그 형색에 어울리지 않게 꽤 그럴듯한 호두나무 책장 하나가 내게 있다. 친구가 콜로라도로 이사를 떠나며 주고 간 것으로 중간 뚜껑을 열면 책상이 되는 다용도 기능장이다.

귀퉁이가 약간 이지러지고 더러는 긁혔지만 흐르는 물결무늬 선연한 목리가 우선 아름답다. 암갈색 중후한 분위기에서는 앤틱 느낌이 들기도 한다. 묵직한 색깔도 맘에 들지만 단순하면서도 점잖은 외관이 기호와도 맞아떨어진다. 별로 크지 않은 규모라 있는듯 없는듯 무덤덤하니 튀지 않아서 또한 좋다. 호두나무 목재는 내구성이 뛰어난 단단한 재질에다 광택 나는 색조가 훌륭해 예전부터 고급가구, 장식용재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 책장과 인연이 닿은 지도 그럭저럭 제법 됐다. 낯익어 스스럼이 없어지자 더러 책장에게 말을 걸기도 했다. 호두나무가 있는 내 유년의 추억들이 화제의 주대상이었다. 매방리 할아버지 댁에 있던 두 그루의 우람스런 호두나무, 집앞 우물가와 바깥마당 잿간 옆에서 짙푸른 잎새 너르게 드리운 채 한여름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던 그 나무. 가을이 깊어지면 알이 실한 호두를 섬으로 거두기도 하였으니 가용에 적잖이 보탬이 되주었으리라. 창천에 그려진 추상화, 돌배같이 야문 점점의 열매를 장대로 따내린 뒤 수북히 쌓아두고 썩힌 다음 육질의 겉살을 제거하고 나면 그제서야 호두가 제 모습을 드러냈다. 호두알을 섬돌에 올려놓고 돌멩이로 깨뜨려 먹던 보얀 속살의 고소한 맛까지 이끌어내주던 호두나무 책장.

요새는 마음이 울적하니 침체된 날이라도 책장을 마주하다보면 입귀가 살푼 위로 향해지곤 한다. 지난 겨울의 유쾌한 시간들로 인해 저절로 미소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휴가차 잠시 들른 엄마를 위해 딸은 발레 티켓을 예매해 놓았었다. 겨울이면 으레 등장하는 시즌 문화상품이자 성탄 단골 레파토리의 하나인 <호두까기 인형>을 그렇게 보게 되었다. 장소는 클라멘토에 있는 아담한 칼리지 내의 공연장이었다. LA 시내에서 한시간 반 정도 걸린다기에 초행길이기도 하여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인디언 캐년이란 안내팻말을 지날 무렵 이미 날이 어두어지기 시작했다.

높다란 산과 산 사이 분지로 이루어진 마을은 아늑한 게 숲이 깊고 의외로 가로수가 푸르렀다. 대학가는 고풍스럽기도 하지만 차분하니 학구적인 환경이라  절로 공부에 전념하게 될 것 같은 동네였다. 다들 면학에 힘쓰느라 나돌아다니지도 않는지 타운 전체가 한적하기도 하거니와 어둑침침한데다 길가엔 그 흔한 햄버거집 하나 없었다. 깜깜 밤중 어둠속 미로같은 길을 한참 헤매다 공연장 앞에 서니 근 일곱시, 겨울철이라 밤이 금세 덮쳤다. 서둘러 지정석을 찾아 자리잡은 다음 안경을 찾아 끼고는 카다록을 펼쳐들었다.

헌데 이 무슨 변고인고? 응당 날아갈듯 우아하니 눈부신 발레리나를 염두에 두었더랬는데. 세련되지 못한 안목이라 민망스런 타이즈 차림의 발레리노에 촌티 내지않을 훈련도 나름 하고왔는데. 어렵쇼? 안내장 표지에 목각 병정이나 생쥐 인형은커녕 엉뚱스레 웬 새빨간 가죽옷의 요상한 가이 하나가 춤을 추고 있질 않은가. 호두까기 인형이란 글씨 위엔 nutty란 낯선 단어가 건들건들 춤을 추고도 있질 않은가. 요게 뭔 말이고? 번역을 청하니 미국식 속어로 좋게는 '멋진' 그러나 대체로는 '미친' 내지 '희한한' 뜻으로 이해하란다. 그렇게 만난 불량스럽고도 사랑스런 호두까기 인형에 홀딱 빠져 공연 내내 얼마나 박장대소를 해댔는지. 그처럼 작품에 완전몰입되기도 흔치 않은 일인데 무대와 혼연일체되어 얼마나 신나고 흥겹게 즐겼던지. 시쳇말로 뿅~간 채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즐거운 거라고 줄창 손뼉을 쳐댔으니까.
 
요즘은 오페라도 뮤지컬도 발레도 퓨전 버젼이 대세다. 기본 내용을 주축으로하여 연극적 요소도 가미하고 거기에 재즈 살사 탭 힙합댄스 뿐인가. 비보이의 브레이크댄스에다 아크로바틱 쿵후까지 격정적이고도 열정적인 춤과 기예로 꽉 찬 무대는 또 어찌나 배경이 자주 바뀌는지. 동양 소녀들이 추는 차 요정의 춤, 생쥐들의 춤도 재롱스러웠고 표정으로 말하는 왕자님은 근사한 미남이었다. 재미있기로는 여장남자 발레리노인 클라라, 큰 덩치임에도 잠옷바람의 그는 퍽 귀여웠다. 호두까기 인형의 풀버젼인 고전 발레도 멋지겠지만 이처럼 계층에 따라 부담없이 즐길수있게 어린이 뮤지컬 혹은 코믹 발레로의 변화 시도, 연출가의 상상력에 따라 다양한 영역으로의 확대가 가능할 터이다.  

가장 소중한 '금'은 지금이라고 했다. 그래, 지금 이 순간  미소지을 수 있다는 게 가장 중요하다. 행복한 기억의 힘을 철썩같이 믿는 나. 내게 허락된 행복한 순간들이 모여 나의 오늘은 지탱되는 것. 고마워, 날나리 호두까기 인형아! 덕분에 실컨 웃을 수 있었고 그 생각만으로도 지금 기분이 좋단다. 왕자님도 꼬마 생쥐도 요정도 다들 고마웠어. 무대를 준비한 모든 분, 볼거리 즐길거리를 충분히 제공하여 관객을 만족시키는 최선의 봉사를 아끼지 않았더랬지. 역시 감사한 일이고 그 자리를 마련해준 딸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아직도 유효한 행복감을 더불어 나눌 수 있는 호두나무 책장에게도 감사!

     
 

 
   
    

 
   

하얀나비 2009.07.04  21:17

우리에게는 호두라는 말보다 추자라는 말이 더 친근감이 갑니다.
어릴 때, 추자 열매를 깔라치면, 손에 진한 갈색물이 묻어 지지도 않았던 기억이 나네요.
늘 호두라는 말은 낯설고 표준어처럼 들렸지요.
이제는 뺀또보다는 도시락이 자연스럽듯이 호두라는 말도 낯설지 않네요.
글의 표현에도 낯설게 하기라는 것이 있죠.
문득 생각나서 몇 자 적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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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소리 2009.07.05  00:24

낯설게 하기, 그런거 애시당초 알지도 못하는 사람
글쓰기에 관한한 참 무식하지요, 그래서 용감한건지도
헌데 호두가 간지러운 서울말 표준어같다고라
(집 아제가 늘 그럽디다, 갱상도 놈이 서울말 쓰는 것만큼 간지러운 거 없다고..
또박또박 표준어를 쓰면 아예 오질없는 놈이라고까지 매도)
충청도에서 우린 줄창 호두 아니면 호도라 불렀지
추자란 말은 갱상도 가서 살며 첨 들었는디..
한나라에서도 지방에따라 이처럼 다른 이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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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소리 2009.07.05  00:29

요 코너에 문제 발생
잠시 장산도사님께 도움 청합니다
우짜다보니 글이 이처럼 좌악 늘어나 정신 수란습네다
다른 곳처럼 올린 글이 조붓하게 모이도록 만들려면???????
컴 공부 머리 아파 왕초보 탈출 시도는 애시당초 포기한 사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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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초 2009.07.05  11:14

호두나무, 할아버지, 책장,
그리고 호두까기 인형.
그것도 퓨전식으로.
엥???
했겠지만 막장대소함시롱 즐거웠다니
그것으로 족한 거 아임까?
춘향이가 쇼킹한 미니스커트를 입고
나풀나풀 그네를 탄들
거북스럽지 않고 한바탕 웃을 수 있다믄
고것도 명약 아임까?

매방리 할아버지 댁에 얽힌 이야기가
참으로 정겨워서
억수러 부럽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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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초 2009.07.05  11:15

오래 전에 이 방에 들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고개만 쓰~~~윽 디밀고 갔습죠.
와야지 함시롱도....
이레 한걸음 디뎠으니
자주 오겄슴다.
말리지 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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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나비 2009.07.05  19:44

종소리님. 사랑초님.
모처럼 한자리에 만났네요. 인사하세요.
사랑초님 이분은요. 초등학교 교사고 시인으로 등단했습니다.
서울에서 시상식도 하고 왔지요.
부산문협에는 아직 가입 안한 걸로 알고 있는데 잘 모르겠어요.
사이버에서만 교류가 있으니까요.
사랑초님.
종소리님은요 수필가이시고 저의 훨씬 선배죠.
5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갔어요.
거기에 따님이 계시죠.
두 분 다 공통점이 있네요.
여자라는 거. ㅎ ㅎ.

저도 글을 읽으면서 길어서 불편했는데 와이리 길어졌을꼬.
지는 잘 모르겠는데 사랑초님이 설명해주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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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소리 2009.07.08  23:23

맞아요, 춘향이가 비키니 입고 광한루에 나타난다는 설정도 즐겁지요
거북스럽지 않은 비틀기 보태기 변형 주기...재밌더라고요
건 그렇고...이제사 물꼬를 트게 된 강가의 사랑초님, 반갑슴다
응축과 은유의 시인께서 긴글 읽느라 무진 수고하셨음다
앞으론 짜른 글로 자주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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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yoon24 2009.10.15  17:12

풀 피리의 춤 듣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는거죠?
카페에 올려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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