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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5/11/23
 

                                   

끝을 누르는 꽃/김광영

‘후미진 곳이어도 좋고, 버려진 땅이어도 개의치 않는다. 잡초들 틈에라도 심어만주면 꿈을 이루리다. 내가 피우는 꽃은 사랑을 위함은 결코 아니며, 오늘보다는 내일을, 당대보다는 후대의 번영을 위해 피어나는 모성의 꽃이외다. 눈으로 사랑받기보다는 소신공양이 되길 원하고, 푸른 날의 인기보다는 끝이 무겁길 갈망한다. 꽃으로 인정해 주지 않아도 슬프지 않사오니 제발 측은한 눈길일랑 거두어 주소서.

야트막한 산비탈이나 밭둑에서 수더분하게 피어나는 호박꽃을 보면 그렇게 말할 것 같은 암시를 받는다. 사래 긴 밭이랑 한 평 차지 못해도 탐스러운 열매만 덩실덩실 맺는 걸 보면 궁핍 속에서도 많은 자식을 길러내시던 우리들의 자상한 핏줄을 연상케 한다. 매혹적인 향기대신 정결한 어머니의 살 냄새를 풍기는 호박꽃은 자신을 가꾸지 않는다. 폭염 속에서도 열매를 위한 염원만 가득해서 넙죽한 잎들에게 자양분을 잣아 올리라고 다그치는 듯하다. 그러나 잎들의 광합성작용은 열매보다는 꽃을 위하는 듯, 짙푸른 엽록소를 만들어 외모에 자신 없는 꽃송이를 받들어 올리기에 여념이 없다. 잎은 꽃을 위하고 꽃은 열매를 위하는 삼각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조용히 피어나는 유순한 꽃이다. 아침이슬에 촉촉이 젖은 호박꽃을 보면 황록이 대비되어 머릿기름을 바르고 친정걸음하시는 어머니의 자태가 늘 떠오른다. 때로는 수건을 쓰고 밭이랑에 엎드린 할머니처럼 보인다 해도 요동이 없어 대범한 여장부의 꽃이라 불러야 어울리는가 싶다.

꽃과 여자에게 공히 통용되는 말은 아름다움이고 그것은 만고불변의 법칙이리라. 그래서 색스럽지 못해 눈길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는 호박꽃을 보면 더욱 측은해진다. 모름지기 꽃이라면 예뻐야 한다는 가치 기준이 바뀌지 않고는 못난 꽃이란 별명은 면할 수 없지만 그렇게 생긴 것을 후회하기는커녕 운명은 만들어가며 사는 것이라고 자위하며 피워내는 기색이다. 그러나 제 아무리 못난 꽃도 한 가지 매력은 있는 법, 편안하면서도 은근한 호박꽃에 벌들이 날아들면 꿀을 몽땅 털어주어도 아까워하지 않을 것 같다. 그들로 인해 열매를 맺을 수 있으니까.

프로메테우스가 하늘에서 훔쳐온 불씨의 색깔, 황색을 선호하는 그는 꽃이기 보다 는 주변을 밝히는 한 촉의 촛불인가 싶다. 철부지적 기억 속에 잠긴 호박꽃을 건져 올려도 아련한 초롱불로 살아난다. 벌이 앉은 호박꽃을 오므려 쥐고 초롱불 밝히라고 노래했던 유년의 기억 속에도 꽃불로 새겨졌으니 화신火神이 화신花神으로 착각하며 피는 꽃인가 싶다. 그래서 꽃 중에 선각화로 보인다. 신이 꽃과 열매를 두고 한 가지만 택하라고 했을 때 열매를 택한 지혜로운 꽃이다. 인간의 눈에 들기보다는 차라리 먹히어 우주를 조종하려는 야망을 품은 꽃이다.

호박꽃은 이 땅이 원산지가 아니다. 머나 먼 남미의 하늘아래에서 이주해온 이민가의 후손이다. 비록 토종은 아니지만 슬기롭게도 성공하는 조건 운. 둔. 근. 세 박자를 모두 가춘 꽃인가 싶다. 기름진 이 땅에 이주한 것이 ‘운’이고 매혹적이지 못해 관심 밖이지만 그로 인해 꺾이는 화를 면할 수 있는 것도 ‘운’이다. 그깟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초연하게 피어나는 꽃이다. ‘둔’하게도 넝쿨이 휘어지게 무거운 열매를 맺어 고생을 하지만 아둔했으므로 구성원을 늘릴 수 있었다. 무리수가 곧 힘이란 걸 예지한 현명한 꽃이다. 제 아무리 고운 꽃도 이울면 썩어야 하는 순리를 알기에 찬서리 내릴 때까지 끝열매를 맺는 부지런함이 ‘근’에 속한다. 갈바람에 넝쿨을 배틀하게 말리면서도 끝끝내 꽃을 피워 꿩알만한 호박이라도 맺어보려는 애착 때문에 성공하는 것이다.

제 한 몸 가꾸기에 안달인 꽃들은 소슬바람이 불면 허무에 빠진다. 바싹 마른 꼬투리에 고추잠자리 앉혀놓고 서글픈 대리만족으로 위안을 삼는다. 건너편 밭둑에서 달덩이같이 덩실덩실 떠오르는 건 젊은 날 못생겼다고 설움 받던 호박꽃의 열매들이다. 꽃 축에도 못 들던 꽃이 우러러 칭송을 받지만 결코 자만하지 않는다. ‘못난 꽃’이란 소리도, 두루뭉술한 여자의 대명사도 달게 받아 넘기는 치마폭 넓은 꽃이다. 그만하면 눈부시게 거드름 한번 피워보련만 호박꽃은 언제나 점잖을 뿐, 맥이 없어 보인다.

머나 먼 마추픽추의 하늘빛이 그리운 걸까? 안데스산자락의 소달구지 덜컹거리던 석양 길이 그리운 걸까? 그러나 이제 호박꽃은 제2의 고향인 폭신한 이 땅에 뿌리내리며 습을 길들여야 한다. 이민자의 후손으로 이곳에서 피고지기를 되풀이하며 묵직한 열매로 끝을 누르는데 인고마저 터득해야한다. 헛방에서 촌로들과 함께 대처로 빠져나간 자식들의 빈자리를 매우면서 또 다시 내년을 꿈꾸어야 한다. 만년설이 녹아내리는 안데스 계곡의 물소리를 그리워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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