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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방/류창희

아버지의 방이 없다. 방이 있었는지 조차 모른다. 열 수 있는 문고리와 외풍을 막는 문풍지가 있었는지 아랫목은 따뜻했었는지 알 수가 없다.

어느 수필가는 아버지의 서재에 꽂혀있는 책을 보며 자랐다는 표현을 했다. Y선생은 딸과 사위가 우산을 받들고 나란히 집으로 오는 모습을 마음의 벽에 걸었고, J씨는 대학시험에 떨어지던 날 ‘어이구 가서나야’ 하며 돼지고기 반 근을 사온 아버지의 사랑을 온전한 한 근으로 마무리했다. 시를 쓰는 J선생은 화가라는 호칭으로 전시회도 여는데, 미술을 하고싶어 방황하던 여고시절 완고한 아버지가 자신을 방에다 가둬놓고 감시를 했었다고 한다.

이렇게 가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혹은 아버지 사랑에 대한 글을 읽을 때, 나는 참으로 생소하다. 아버지의 이름을 알고 아버지의 얼굴도 아는데 아버지의 마음은 모른다.

아버지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지적이고 푸근하고 근사한 아버지라면 더욱 좋겠지만, 소리내 야단치고 때리고 가둬놓는 아버지라도 느껴보고 싶다.

얼마 전, 아들의 하숙방을 잡아주고 전문회사가 설치하는 인터넷 선을 연결해준다는 핑계로 컴퓨터를 들었다놨다 시간을 벌더니, 다 큰 자식 어깨를 끌어안고 눈시울을 적시던 남편의 모습이 혹 아비의 마음인가 부정(父情)을 가늠해본다.

그 마음을 짐작하기에는 막연하다. 내가 “아버지!” 소리내 부른 적도 아버지가 내 이름을 부르던 기억도 별로 없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호적 등본에도 생활환경 조사서에도 이름이 있었고, 심지어는 내 결혼식 사진에도 언제나 있을 곳엔 아버지가 다 있었다.

아버지를 처음 봤던 기억은 하늘색 코로나택시에서 내리는 모습이었다. 대절택시가 마을에 들어오면 아버지가 온 것이고 택시가 안 보이면 떠나신 것이다. 바람처럼 왔다가 구름처럼 사라졌다. 늘 그런 식이었다. 함 받던 날도, 결혼식 날도, 객지에서 아버지가 저 세상으로 가시던 날도, 이미 없어지고 나서야 가신걸 알았다.

오며가며 뵌 날을 손가락으로 꼽아보라면 제법 있었으나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은 적은 없다. 이야기는 고사하고 눈을 마주친 적도 그다지 기억에 없다. 아버지는 나와 눈이 마주칠 것 같으면 언제나 다른 곳을 바라보셨다. 무엇이 딸의 눈을 바로 쳐다볼 수 없게 했었는지, 늘 눈길을 피하던 아버지모습이 마음에 걸린다.

나의 눈은 쌍 커플이 지고 속눈썹이 길다. 개구리소년 왕눈이처럼 부리부리 큰 눈은 아니며, 초롱초롱 바비 인형처럼 반짝이는 깜직한 눈도 아니다. 눈 꼬리가 축 쳐지고 눈동자는 갈색으로 그냥 오래도록 쳐다보고 있으면 괜히 눈물이 고이는 측은한 눈이다.

내 눈은 아버지를 닮았다. 어렸을 때, 동네 언니들은 내 속눈썹 위에 성냥개비를 일곱 개까지 얹고는 박수를 치곤했다. 난 그때마다 눈을 깜빡거리지 못해 눈물을 흘리곤 했었는데, 그 놀이가 제일 싫었다. 그리고 너희아버지 눈을 닮았다고 말하는 어른들 앞에서 흉이려니 하고 늘 울었다.

국민배우라고 불리는 안성기나 장동건처럼 쌍커플이 진 눈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눈은 남한테는 부드럽게 보일지 모르나, 어쩐지 처자식을 놔두고 바람처럼 사라질 것만 같다. 눈길이 선한 남자보다 차갑고 예리한 눈매의 남자가 좋다. 다행이 남편과 두 아들은 가늘고 긴 눈을 가졌다.

난 불혹의 나이를 넘으면서 미인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물론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이 미용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인걸 봐서는 상술인줄 뻔히 알지만, 몇 번을 들어도 참 듣기 좋은 소리다. 그러나 얼굴전체를 보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눈 매무새가 예쁘다는 말이다. 아버지 때문에 빚어진 속 그늘을 그들은 칭찬한다.

길게 늘어진 속눈썹 주렴 속에는 물안개 피어오르는 호수가 있다. 그 호수에는 혼자 평생을 수절하며 우리들을 반듯하게 키워준 가련한 친정엄마와, 어려웠던 생활 속에서도 군자와 같이 꿋꿋하게 성장한 남동생이 연꽃처럼 피어있다. 우리가 ‘아버지부재 중’에 울타리 없이 살아온 세월을 생각하면 어느새 마음에 물결이 인다. 까닭 없이 잘 우는 버릇도 그 호수가 깊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방랑시인 김삿갓도 눈이 크고 속눈썹이 길지 않았을까. 아버지는 김삿갓의 행운유수(行雲流水)와도 같은 방랑벽을 닮았었다. 가정에 정착하지 못했던 아버지는 술 한잔에 시 한 수를 읊는 작품집을 남겨놓지 못했을 뿐이다. 혹, 나와 동생이 아버지가 남겨놓은 시 한 수는 아닐는지…, 우리 오누이는 누가 뭐래도 그윽한 눈매로 세상을 바라보며 동생은 그림을 그리고 나는 글을 쓰며 살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아버지가 그립다. 온화한 마음으로 눈자위의 그늘을 걷어내고 ‘아버지의 방’을 마련해드리고 싶다. 아직 마음을 활짝 열어 따뜻한 방을 꾸밀 수야 없겠지만, 그 방을 데울 장작개비를 모아보자. 속 좁은 소견머리로 여력이 없다면 생솔가지면 어떤가. 잘 타지 않아 매캐한 연기로 눈물이야 나겠지만, 자꾸 자꾸 군불을 때다보면 아버지의 온기를 느낄 날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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