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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켈러처럼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예술가가 되고 싶어요”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건 마치 오래된 일기장을 공개하는 것만큼이나 망설여지는 일일 게다. 책을 낸다는 건 그런 마음이 아닐까? 내 안의 모든 것을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것. 김혜자가 마음의 언어로 써 내려간 책을 발간했다. 아프리카 등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을 만나며 마르지 않는 눈물을 흘리던 그녀의 가슴이 책 속에 담겨 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독자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오직 네 손가락만으로 기적과도 같은 선율을 뽑아내는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 절망과 고통을 희망과 기쁨으로 승화시킨 그녀의 연주는 아름답고 향기롭다. 천형과도 같았던 장애를 극복하기까지, 손가락 성할 날 없이 연습을 거듭한 희아의 의지와, 끊임없이 독려하며 딸의 잠재력을 끌어낸 어머니의 강인함은 그 자체로 강렬한 희망의 메시지다.
# 언제나 행복한 희아는 ‘미소 천사’ 뽀얀 얼굴에 발그레한 홍조가 귀여운 피아니스트 이희아. 올해로 스무 살이 됐으니 이제 희아도 어엿한 숙녀다. 하지만 햇살처럼 밝은 미소와 자그마한 체구만 보자면 아직도 앳된 꼬마 아가씨만 같다. 사람 좋아하고 수다 좋아하는 희아는 낯선 사람과의 첫 대면에서도 예의 환한 미소에 인색하지 않았다. 그녀가 소중하게 품고 있는 인형의 이름은 조이(joy). 이름만큼이나 즐거운 조이의 표정은 희아의 사랑스런 미소와 꼭 닮았다.
양손에 두 개씩밖에 없는 손가락, 무릎까지밖에 자라지 않은 두 다리. 태어나면서부터 희아는 그런 모습이었다. 선천성 사지기형 1급 장애인. 어쩐지 무시무시해 보이는 판정이지만 지금 희아는 그 한계를 극복한 ‘작은 거인’이 되었다. 비장애인 연주자 못지않게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주는 피아니스트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녀를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라고 부른다.
"저는 손과 다리가 모두 불편하지만 남아 있는 힘으로 최선을 다해 이 자리까지 설 수 있었어요. 여러분도 누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이뤄낼 수 있습니다.” 지난 7월 11일 경기도 용인시 풍덕고등학교 강당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그녀는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완벽하게 연주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연주하다 흥에 겨우면 춤을 추기도 하고, 분위기가 고조되면 도올 김용옥 선생의 성대모사를 기막히게 선보이기도 한다. 해외 공연을 나갈 때면 항상 먼저 영어로 인사를 건넨다. 유창한 영어는 아니지만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고 구김살 없는 성격 탓에 물러섬이 없단다. 우울함을 모르고 언제나 행복하다는 희아에게 붙여주고픈 별명은 두 가지다. ‘미소 천사’ 혹은 ‘명랑 소녀’.
# 과거… 여섯 살 때 맺은 피아노와의 혹독한 인연 희아가 태어나자 가족들은 한목소리로 ‘입양’을 이야기했다. 희아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복지시설이 발달한 외국에서 자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엄마 생각은 달랐다. 희아의 생긴 모습이 이렇다고 해서 부모와 떨어져 외국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가족과의 갈등과 괴로움 속에 기도에 의지하던 엄마는 ‘생긴 모습이 다르다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을 얻고 희아를 보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지금은 돌아가신 희아의 아버지는 육군 포병 장교로 있던 당시 간첩 체포 작전에 투입돼 전투를 치르다 부상을 얻었다.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를 입고 입원했을 때, 당시 간호사던 희아 엄마를 만났다. 결혼한 지 10년 만에 얻은 귀한 딸 희아건만 남과 같지 않은 신체 조건을 안고 태어나 부모와 생이별할 뻔했던 것이다. 희아와 같은 장애의 경우 아직 확실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희아를 가진 줄 모르고 엄마가 먹었던 감기약과 아빠가 평소 복용하던 진통제의 탓이 아닐까 막연히 추측해볼 뿐이다.
"처음에 낳았을 때는 우리 희아 손이 정말로 작았어요. 손가락도 그저 손에 붙은 자그마한 살덩이에 불과했죠. 팔도 아주 짧았어요. 손이 그래서는 아무것도 못 하겠다 싶어 피아노를 가르쳤습니다. 손가락의 힘을 길러주려구요. 네 손가락 중에 그나마 관절이 있는 손가락은 하나뿐이에요. 피아노를 칠 때 나머지 손가락들은 건반을 내려치는 힘으로 연주하는 거죠. 지금 희아 손을 보세요. 손가락도, 팔도 길쭉길쭉하지요?”
희아 나이 여섯 살. 싫다는 희아를 피아노 앞에 올려 앉히며 엄마는 모진 맘을 먹었다. 연습하느라 지친 손가락에는 피가 마를 날이 없었다. 건반 소리를 내기까지 무려 6개월이 걸렸다. 어린 희아에게는 가혹하기까지 한 시련이었다. 피아노 연습을 시작한 지 1년 반. 전국학생연주평가회 유치부에 출전한 희아는 최우수상을 거머쥐었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희아가 장애아인 것을 몰랐다고 한다. 그런데도 유치부 최고 점수를 받았던 것이다. 이후 각종 대회에서 상을 받았고, 유명 연주자들과 협연할 기회도 생겼다. 장애 극복 대통령상, 신지식인 청소년상, 문화예술인상 등 세상은 희아에게 따뜻한 박수를 보내주었다.
오늘의 희아가 있기까지 엄마의 역할은 거의 절대적이다. 연습하기 싫다는 희아를 매로 다스려가며 강하게 훈련시킨 것이 바로 엄마다. 어린 희아는 엄마가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기 위해 참고 연습할 만큼 어려서부터 속 깊은 아이였다. 물론 위기는 있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희아의 반항이 늘었던 것. 엄마는 여기까지가 희아의 한계인가 싶어 피아노를 그만두게 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당시 희아를 진찰해주신 신경정신과 의사의 말에 엄마도, 희아도 힘을 얻었다. 희아는 역시 음악에 적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번은 엄마와 둘이서 영화 ‘타이타닉’을 보고 왔는데 희아가 집에서 영화의 주제곡을 그대로 치더란다. 그만큼 청음이 발달했다. 피아노를 가르친 엄마의 노력은 역시 선견지명이었다.
하지만 살아생전 희아 아버지는 엄마의 교육법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안 그래도 불쌍한 아이를 들들 볶는다는 이유에서다. 안쓰러운 마음에 엄마와 다툼도 잦았다. 하지만 돌아가시기 한 해 전, 그제야 엄마의 선견지명과 노력을 인정하고 딸의 성과를 진심으로 기뻐했다고 한다. "장애인으로서 가졌던 상처와 한을 희아 덕에 다 풀었다, 행복하다”면서.
"희아는 감성지수는 뛰어나요. 하지만 선천적으로 뇌에도 문제가 있기 때문에 수리 영역에 있어서는 7세 정도 지능에 머물러 있죠. 그래서 산수를 거의 하지 못해요. 암기력도 크게 떨어지구요. 처음으로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던 때, 5분 이상 외워서 연주하면 머리에 큰 혼란이 올 거라고 신경정신과 의사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희아는 해냈어요. 자기가 흥미 있는 건 의지를 가지고 다 외우는 거예요. 아무리 복잡하고 길어도 다 외웁니다. 그것은 물론 엄청난 연습의 결과죠. 악보가 누더기가 될 때까지 연습하는 아이니까요.” 지난 5년간 희아는 ‘즉흥환상곡’을 매일 10시간씩 연습했다고 한다. 손가락이 얼얼할 정도로 아프고 페달을 밟는 무릎에 생채기도 났지만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5분 이상 되는 곡을 외우면 두통에 시달리는 희아가 무려 30분 분량의 곡을 외워서 연주했다는 것은 그런 희아의 집념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모차르트 협주곡 21번에 이어 요즘은 17번에 도전중이다.
#현재_꾸밈없는 순수한 연주 담은 생애 최초의 음반 요즘 희아는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자신의 첫번째 연주집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흑백 사진의 수수한 이미지로 재킷을 만든 희아의 음반은 꾸미지 않은 순수함으로 가득하다. 세상 속으로 맑은 선율을 들려준 희아의 가슴 따뜻한 연주가 앨범 안에 가감 없이 담겼다.
 "저는 원래 의도적으로 뭔가를 꾸미고 만들고 하는 걸 못 해요. 그냥 평소 하던 대로 연주했을 뿐이에요. 음이 틀리면 틀리는 대로 있는 그대로 제 모습을 담으려고 했거든요. 원래는 그냥 제 소장품 차원에서 만든 거지 팔려던 건 아니었어요. 요즘 클래식 음반 사서 듣는 사람도 많지 않잖아요. 그저 제 음악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도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시고 좋아해주시니까 저도 기뻐요.” 쇼팽의 ‘즉흥 환상곡’,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슈베르트의 ‘세레나데’ 등 평소 좋아하던 클래식 곡을 비롯해 희아가 직접 노래한 ‘어메이징 그레이스’ 등이 수록됐다. 몇 곡을 제외하고는 2002년 무렵 녹음한 곡들이라 지금보다 테크닉 면에서는 다소 떨어진다. 미스 터치도 적지 않고 원곡보다 느린 연주도 눈에 띈다. 한꺼번에 여러 건반을 눌러야 할 때는 중요음 두 개만 뽑아서 눌렀다. 화음이 겹치면 손가락을 펼쳐서 굴려 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희아다운 모습이라는 생각에 재녹음하지 않고 그대로 수록했다고 한다. 그 자체로 희아의 연주 인생에 역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머니 우갑선씨(50)는 희아의 CD를 처음 듣던 날 음 하나 하나에서 빛이 나는 걸 느꼈다고 한다. 그 음 하나 하나가 피눈물의 결과임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것이 또한 희아의 연주가 주는 감동이기도 하다.
"제가 원래 사진발이 좀 안 받아요. 처음엔 재킷 사진이 나 같지 않았는데 보시는 분들이 순수하고 담백한 것이 느낌이 좋대요. 그 다음부터는 저도 볼수록 좋더라구요. 제가 원래 좀 단순해요. 틀어서 생각할 줄도 모르고 그냥 좋으면 좋은 거거든요. 그래서 저는 우울함도 몰라요. 항상 웃을 수 있는 것도 제 자신이 항상 행복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무대에 설 때도 마찬가지죠. 공연 전에 전혀 긴장하는 법이 없어요. 오히려 공연 시간이 기다려지는 걸요. 제가 원래 좀 무대 체질이거든요.(웃음)” 일본, 호주, 미국, 캐나다, 영국 등 해외 공연도 많이 다녀봤지만 금강산 공연이 인상 깊게 남아 있다. 희아의 명랑한 성격 덕에 딱딱한 북한 관계자들도 함께 웃을 수 있었다. 북한 직원이 희아에게 "손이 와 이래요?” "다리가 와 이래요?” 묻자 희아가 이북 사투리를 그대로 흉내 내며 "날 때부터 그렇습네다”라고 대답했던 것. 명랑 소녀 희아의 사랑스런 면모가 그대로 드러난 에피소드다. 어려서도 ‘꽃게 손’이니 ‘귀신’이니 놀리던 또래 친구들과 이내 친구가 되곤 했을 만큼 낙천적인 성격이다.
# 미래_팝페라 가수를 꿈꾸는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희아는 서슴없이 노래를 불렀다. 고음의 부드럽고 고운 음색이다. 노래 부르는 것을 너무나 좋아한단다. 안드레아 보첼리의 팬이라는 희아는 알고 보니 어릴 때 꿈이 가수였다. 즐겨 듣는 장르는 팝페라. 자신의 창법 역시 팝페라에 가깝다. 성악가에게 테스트를 받은 적도 있다. 고음 처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좋다는 평을 받았다고 한다. 엘튼 존처럼 피아노 치며 노래하는 예술인이 되는 것이 그녀의 꿈이다.
"저는 입만 벌리면 노래를 하고 싶어하고 엄마는 눈만 뜨면 피아노를 더 잘 치면 좋겠다고 말씀하세요. 노래는 제가 타고 난 재능이지만 피아노는 순전히 연습과 노력의 결정체라는 거죠. 전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어요. 노래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주고 싶거든요. 제가 국제아동돕기연합회 홍보대사인데, 피아노 연주와 노래로 어려움에 처한 많은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나눠주고 싶어요. 엄마는 나이팅게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아픈 사람이랑 결혼했대요. 그러니까 엄마는 꿈을 이룬 거죠. 덤으로 희아까지 얻었다고 말씀하세요. 누군가는 부자가 되는 게 꿈이라던데, 이제 부자가 됐는데도 늘 걱정만 많고 마음이 편치 않대요. 저는 헬렌 켈러처럼 희망을 주는 존재가 될래요. 저도 반드시 꿈을 이루고 싶어요.” 희아와 엄마, 두 사람은 요즘 새삼스레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만하다. 피아노를 통해 희아가 행복해지기를 바랐고, 실제로 희아는 피아노를 치며 많은 행복을 얻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희아뿐 아니라 희아의 연주를 듣는 다른 이들마저 행복해하는 것이다. 희아에게 악수를 청하는 사람도, 희아에게 사인을 받으려는 사람도 모두 희아처럼 무릎을 끓고 낮은 자세를 잡는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더 낮은 자세로 세상을 바라볼 때 희아가 바라는 사랑과 희망의 세상이 좀더 빨리 이뤄지지 않을까. 희아의 작은 두 어깨에는 이제 전보다 커진 책임감이 얹어졌다. 그것이 바로 자그마한 그 체구가 더욱 의젓해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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