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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6/11/25
 

제3화 역경을 이긴 사람들 (지난번 1,2화는 부모, 자식간 이야기.)

2009.11.28 08:17 | 13고운님 향기로 채워진 음악,글방( 손님방)*^^* | 화석

http://kr.blog.yahoo.com/ksw678/10390 주소복사

하나... 빨간내복 입어보는 게 소원이었다.이해득 KT광화문지사 (작년12/24)


     수원에 살던 우리 집은 굉장히 가난했다. 남편 없이 꾸려나가는 살림으로 딸을 중학교
     보낼
여력이 없던 엄마는 "공장에나 들어가서 엄마 좀 도와 달라"고 했다. 침울해하는
     나를 두고 고민하던 엄마는 며칠 뒤 단추 3개가 다 짝짝이인 낡은 교복을 얻어 왔다.

     어떻게 해서라도 중학교까지는 보내야겠다고
결심하신 것이다.

     겨울방학 동안 나는 시장 골목 한 처마 밑에 사과궤짝을 갖다 놓고 '뽑기' 장사를 했다.
     너무 추웠다. 빨간 내복 하나 입어보는 게 소원이었다.
     그렇게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에 합격했다. 어렵게 마련한 등록금으로 공부를 했고,
     방학이면 또 일을 했다.

     1학년 겨울방학 때는
서울로 올라와 오빠가 근무하는 직장에서 식모살이를 했다.
     옥상 물탱크 한구석에 석유풍로를 놓고 밥을 했다.
     컴컴한 새벽도, 30와트짜리 백열등도, 물탱크를 통해 울리는 내 목소리도 무서웠다.

     새벽밥 하기가 끔찍이 싫었지만 등록금이 나온다는 희망으로 버텼다.
     설날 같은 명절에는 방앗간 앞에 후추기계를 놓고 가래떡 손님들에게 후추를 갈아 팔았다.
     다른 데보다 한번 더 곱게 갈아놓으니 손님이 많아 그 돈으로 엄마와 동생들 내복,
     운동화를 사기도 했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난 다른 애들보다 왠지 어른스러웠고 침착하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 말하자면 애늙은이였던 것이다.

                         

     대학교까지 갈 돈은 없었다. 대신 나는 속기학원에 등록해 죽기살기로 공부했다.
     1년 뒤 나는 '1급 속기사 전국 1등'이라는 영광을 안고 서울시 공무원이 되었다. 
     4년 뒤엔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에 특채가 됐고 나를 죽도록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해서 아들 둘도 낳아 재미나게 살았다.

     올림픽이 끝난 후
KT
로 직장을 옮겼는데, 10년 뒤 IMF가 터지면서 남편 사업이 망했다.
     집은 경매를 당했고 내 월급도 차압당했다. 순식간에 인생 밑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늘 그러했듯, 나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어떻게 살아온 인생인데.

     조금씩 빚을 갚아가며 작심을 하고 영업사원을 지원했다. 어려움이 자랑은 아니지만,
     굳이 숨길 일도 아니기에 구질구질한 내 인생을 재미나게 풀어놓으면 너나 없이
     모두 귀를 기울였다. 영업 현장에서도 내 인생 이야기가 먹혀들었다.
     내 손을 잡고 함께 슬퍼하고 기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결과 1999년과 2000년 2년 연속 판매왕에 뽑혔고, 2000년에는 통화 선불카드를
     자그마치 428억원어치나 판매했다. 사내 연수원에서도 영업 성공 사례 강의를 하게 됐다.
     서글픈 내 이야기가 남들에겐 희망을 주는 스토리로 변신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마흔 일곱 해 내 인생은 가난과 한숨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나는 그 가난과 한숨을 언제나 희망으로 덮고 일어섰다.
     지겹도록 나를 따라다녔던 가난과 불행이 지금 나에겐 인생의 밑천이요 희망이다.

     지금도 나는 쉼 없이 달린다. 
     법정스님 말씀처럼, 내 영혼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가끔씩 뒤를 돌아보면서….



두나...  파도가 가르쳐준 교훈 "견뎌내라"... (작년 12/20)
            IMF때 자살하려다 이겨낸 이야기 유강호 극작가, 미 서니베일 거주

  
     두 아들과 함께 미국 LA에 살 때, 남편이 한국에서 주식투자를 했다가 쫄딱 망했다.
     1원도 남지 않고 폭삭 망했다. IMF로 세상이 지옥처럼 변해버린 1998년이었다.
     그 충격을 도저히 이겨낼 방법이 없던 나는 무작정 하와이행 비행기를 탔다.
    "물에 빠져 죽어야겠다."

     오아후섬 북쪽에 터틀베이라는 해변이 있었다. 파도가 거칠기로 유명한 바다다.
     밤이 이슥할 무렵 정신을 놓아버리고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죽는다, 나는.
     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가슴 울컥한 일이 벌어졌다.

     한 걸음을 바다로 들어가면 파도가 나를 뒤로 되돌려놓는 것이다.
     그 힘이 얼마나 센지, 온몸이 멍이 들 정도였다.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다니, 화가 났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나는 백사장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때, 문득 그 바다가 나더러 살라고 격려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마치 나를 세상으로 떠밀어주며 살라고 고함을 지르는 것 같았다.
     나는 완전히 기력이 빠진 몸과 황홀한 부활의 의지를 안고 터틀베이를 떠났다.

     며칠 뒤 푸나후스쿨이라는 학교를 찾았다.
     한 해 수업료가 1만달러가 넘는 좋은 사립학교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가 다닌 학교다.
     해마다 봄이면 푸나후스쿨에서는 축제가 벌어진다. 

            

     축제 마지막 날 벼룩시장이 열리는데,
     1달러를 주고 큰 대봉투를 사면 시장에 나온 모든 것을 욕심껏 봉투에 담아갈 수 있다.
     숟가락, 신발, 옷, 냄비, 밥솥, 프라이팬에 아보카도와 파인애플까지.

     지역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부자들이 아무 조건 없이 내놓은 것들이다.
     가난한 나는 거기에서 내게 필요한 것들을 살 수 있었다.
     그 속에는 희망도 들어 있었다. 이제 다시 사는 거다.

     그리고 무작정 하와이의 한 방송국을 찾아갔다.
     한국에서 20년 동안 방송작가로 일한 경력을 보고 일자리를 줬다.
     마침 한류 열풍이 하와이에 상륙한 때라, 하와이대학에서 드라마 강의도 맡았다.

     그때 한 교수가 하와이에 온 이유를 물었다.
    "너무 절망해서 죽으려고 왔다"고 했더니 그 교수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인생의 밑바닥까지 가보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생각하라"고.

    "절망의 밑바닥, 그거 언제 가보겠는가. 게다가 당신은 작가가 아닌가.
     인생의 밑창을 경험해야 좋은 글도 나오는 것이다"라고.
     한마디 한마디가 내 가슴을 찔렀다.

     죽으러 갔던 섬에서 나는 5년을 더 살게 되었다.
     아들들은 LA에서 공부를 마치고 성인이 되었고,
     나는 제2의 생을 하와이에서 창조하며 살았다. 

     지금은 실리콘밸리 IT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큰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혹독한 비바람 지나고 나면 절망도 추억이 된다.
     살아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축복이고, 한없이 고맙다.




세나... 역경이 오면 역전을 노려라 (김성근 감독의 애절한...  작년12/19)

   
   
나는 일본에서 18년을, 한국에서 48년을 살았다.
     섭섭하게도 '반(半) 쪽발이', '일본식', '재일교포'라는 꼬리표가 지금까지 붙어 다닌다.

     일본에 살 때는 가난했다. 우유와 신문 배달을 하면서 학비를 보탰다.
     고3 때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처음 새 옷이란 걸 입어봤다.
 
     그 가난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홀로 조국 땅을 찾았지만,
     선수생활 3년 만에 어깨와 팔꿈치 부상으로 투수 생명이 끝나버렸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앞이 보이지 않았다. 

     모국 생활 48년은 그야말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전쟁 같은 나날이었다.

     세월이 흘러 올해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했다. 지난해에 이어 2연패다.
     구단에서도 3년간 감독 계약을 연장해 줬다.
     어느 틈에 나는 "이만하면 김성근이라는 사람이 세상에서 인정받았구나" 하는 
     자기 만족에 빠져 살게 되었다.

     며칠 전 팔꿈치 인대 수술을 받은 이재원 선수 병문안을 위해 일본
도쿄
에 갔다.
     전철을 타고 가고 있는데, 창밖에 어린 야구선수들이 연습하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까맣게 잊어버렸던 단어가 스쳐갔다. 바로 '초심(初心)'이다.

     나는 나의 원점이 어디였는지,
     어떻게 야구를 하면서 굶주림을 견뎌왔는지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차창에 자만심 가득한 내 얼굴이 비쳤다. 그래, 처음으로 돌아가자!

     내 직업은 감독이다. 감독의 임무는 이기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의무와 책임이요, 사명감이다.
     감독을 하지 않았다면, 일본에 남아 있었다면, 나는 벌써 죽었을지도 모른다. 

     

     감독이라는 신분 때문에 모든 싸움을 받아들이고 도전을 거듭해온 것이
     삶을 지탱해주는 에너지가 되었던 것이 아닌가.

     10년 전 쌍방울 감독 시절, 나는 신장암 선고를 받았다.
    '선고'를 받던 날 나는 군산 구장에 가서 경기를 치렀다.
     한 달 동안 아무 내색 없이 벤치를 지키다가 휴가를 내고 콩팥 제거 수술을 받았다.

     마취 직전 간호사가 말했다. "어서 나아서 경기장에 돌아가셔야죠."

     수술이 끝나고 나는 의사들 만류에도 불구하고 병실에서 일어나 걸어다녔다.
     수술 부위에서 피가 흘러내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여기에서 패배하면 야구 못하고 죽는다"는 생각으로 후유증을 이겨내고 구단으로 
     복귀했다.

     지난 9월 프로야구 통산 1000승을 달성하던 날 이 사실이 알려질 때까지
     10년 동안 사람들은 내가 결석 제거 수술을 받은 줄 알고 있었다.

     39년 감독 생활 동안 나는 패배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야구인생 동안 10번이나 맡은 감독이지만, 그 중 7번은 불명예 퇴진이었다.
     2002년엔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고도 구단과 불화를 빚어 옷을 벗었다.

     하지만 좌절하지는 않았다. 패전과 실패는 감독의 좋은 친구가 아닌가.
     그 친구들이 토대가 되어 더 발전하는 법이다. 
     실패 원인을 찾아내 대책을 강구하고 새로운 지식과 지혜를 갖고 도전해 나가는 것이다. 
     
     그게 내가 살아온 방식이었고, 내가 잊고 있던 초심이었다.

     역경과 고난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자세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어려움은 어려움이 아니다. 나에게 그것은 역전을 위한 좋은 찬스다.
     세상이 힘든 때다.

     나 또한 초심으로 돌아가 어떤 고난이 와도 다시 기회를 기다리겠다고 다짐한다. 


                 

다음 제4화는 12/4 장애인의 날을 생각하여...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
작년에 올린 글... 다시 올려 드리겠습니다. (12/3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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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 2009.11.28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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