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그를 만나러 기자는 파리에서 열차(유로스타)와 택시를 번갈아 가며 6시간 만에 찾아갔다.
"자, 다 왔습니다. 건너편에 보이는 집이 4번지입니다." 하지만 택시 기사의 말에 눈이 의심스러웠다.
"런던에 ○○거리는 하나밖에 없는 게 확실하죠?" 거듭 확인한 뒤 택시에서 내린 기자는 한동안 서성거렸다.
1825년에 건축됐다고 써 있는 2층 집은 너무 낡았고, 화단을 둘러싼 나무 담장은 거의 쓰러질 지경이고 도어벨조차도 없었다.
'제대로 찾아온 게 맞나?' 걱정하며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옆집과의 사이에 난 초록색 쪽문을 열고 헌칠한 키의 30대 청년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의 집은 옆집 뒤쪽에 있었던 것. 핑크색 반팔 티셔츠 차림의 그는 동네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귀티가 났다.
<후투티... >
강화님이 찍으신 후투티... 처음으로 공부해 봅니다. 후투티 유명한 새이군요... '후투티가 오지 않는 섬' 이라는 노향림 시인의 詩도 있군요.
[은반지를 낀 후투티]는 생태 동화로는 드물게도 실화를 바탕으로 새롭게 각색한 이야 기. 분단 현실의 아픔을 다룬 이 일화는 조류 학자 원병오 박사(73)의 체험으로 애조가(愛鳥家) 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익히 알려졌다. 원병오 박사의 선친은 김일성 대학 교수와 북한 최고 인민회의 대의원을 지냈던 세계적 조류학자 원홍구 박사.
남북의 이데올로기가 첨예하게 대립하여 소식을 주고받는 일조차 꿈처럼 여겨지던 1965년 여름, 원병오 박사는 일본 국제조류보호협회 아시아지역 본부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는 다. 연구용 북방 쇠찌르레기를 발견했는데 혹시 남한 학자들이 철새 이동경로를 추적하기 위해서 보낸 것인지 묻는 내용이었다.
새의 다리에는‘시7655’라는 일련번호가 매겨진 알루미늄 가락지가 끼워져 있었다. 가락지는 원병오 박사가 철새의 이동경로를 추적하기 위해 서울에서 새를 날리면서 끼워준 것이었고 그 새를 북한의 대표적 조류학자인 그의 아버지 원홍구 박사가 발견한 것이다.
이들은 무려 5년간이나 새를 통해 소식을 주고받았지만 끝내 만나지는 못했다. 원홍구 박사 가 70 년에 세상을 등졌기 때문이다. 훗날 이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일본과 북한은 합작으로 〈새〉라는 영 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원병오 박사가 주로 이용한 새는 후투티가 아니라 북방 쇠찌르레기였지만 이 동화에서는 희귀한 새로 알려진 후투티를 주인공으로 동화 형식으로 꾸였다. <火石>
후투트라는 새에 대해 알았네요.
저는 사실 처음 봅니다.
머리에 난 깃털이 멋진 새군요. 부자지간이 5년동안 서신만 주고 받았지 정작
만나지를 못했네요. 분단의 슬픔이지요.
처음 서독과 동독이 통일이 되었을땐 ~ 희망을 보았어요.
우리도 저렇게 하면 통일이 무력이 아닌 교류로도 가능하겠다는 ~
.
저 서신으로 왕래한 이야기 몇년전에 TV로 본적도 있습니다.
지금 말씀처럼 동서독통일때 희망을 걸었지요.
근데 지금의 현실을 보면 김정일이 67세... 6.25때 우리로 치면
초등 1학년... 별 기억이 없을 겁니다. 우려할 일은 김정일이 몸이 안좋으니
6.25때 힘쓰던 노장들이 다시 득세를 하니 그게 걱정입니다.
실상 우리들의 애들은 교육을 못 받아 6.25를 모르는 현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