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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의 역사 1. 고대 보이차 ‘보이(普洱)’라는 명칭은 역사적 지명에서 얻어진 이름이다. 그 유래는 토착민인 하니족의어원에서 비롯되었다. ‘보(普)’는 성채의 뜻인 채(寨), ‘이(洱)’는 물굽이의 뜻을 지닌 수만(水灣)이다. 이러한 토착민의 어원에서 비추어 볼 때 ‘보이’라는 의미는 곧 물굽이가 있는 성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보이차’의 명,청시대 당시의 전남(滇南), 곧 지금의 서쌍판납과 사모지구, 특히 소위 6개 차산에서 생산된 찻잎으로 당시의 행정소재지였던 보이부(지금의 보이현)에서 가공 판매하여 얻어진 이름이다. 보이차의 산지는 란창상유역 사보구, 곧 오늘날 서쌍판납 경내에 분포되어 있다. 청나라 옹정7년(1729), 연차적으로 보이부, 보이진을 설립하여 오늘날까지 약 200년 역사를 가지고 있다. 2. 근대 보이차 청나라부터 자연발효시킨 방법으로 만들어졌던 보이차, 곧 소위 골동보이차, 중차보이차 등 청병보이차는 홍콩으로 수출해 왔으나 즐기는 사람이 많지 않아 대부분 창고에 쌓아 버려진 상태에서 1980년대 말 보이차의 열풍이 해외 화교들 사이에서 불기 시작했다. 홍콩의 상인들은 타이완의 경제력을 보아 충분한 구매력이 있는 곳으로 보고 홍콩 전 지역의 좋은 보이차를 수거하여 대부분 타이완 사람들에게 판매하였고 자연발효로 만든 보이차의 유통경로는 대부분 홍콩 및 타이완에서 비롯되어 세계시장으로 나간다. 한편 중국에서는 1973년 운남성 곤명 차공장에서 보이차를 쾌속 발효시키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 방법은 정통 보이차의 자연발효와는 달리 일차 가공한 찻앞을 퇴적이란 공정을 거쳐 미생물을 통해 인위적으로 발효시켜 쾌속 진화하게 한다. 이러한 미생물발효는 단시일 내 보이차를 대량으로 만들 수 있어 공산체제의 이념과 부합되어 중국 국내에서의 모든 보이차는 이 제다법을 택하게 됐고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오는날 학술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흑차나 후발효차는 모두 악퇴라는 공법을 거쳐 만든 미생물발효차를 말한다. 그러나 1980년대 말 소위 골동보이차, 중차보이차 등 청병보이차들이 해외에서 보이차열풍이 불자 최근에 중국 내의 일부 상인들이 다시 전통적인 보이차 제다법인 녹차긴압차를 만들어 해외시장의 수요에 충족시키고 있는 것에 대해 무척 고무적이다. 특히 야생교목에서 딴 찻잎을 최고로 삼자 옛 명성을 날렸던 6대차산과 맹해지역의 야생교목들이 다시 각광을 받아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맹해대엽종은 교목형으로서 싹이 튼실하며 황녹색을 띠고 백호가 가득한 것이 특징이다. 잎은 긴 탁원형으로서 길이는 보통16센티미터, 넓이는 9.5센티미터 정도이고 녹색을 띤다. 춘차의 일창일기의 내용물을 분석하면 아미노산 2.30%, 풀리페놀 32.80%, 카테킨의 총 함량이 18.20%, 카페인이 4.10% 함유되어 있다. ‘사진으로 보는 중국의 茶’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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