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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티펫마녀 (kmssun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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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9/13
 


점점 이런일들이 생겨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웃고 살자구요.



전화해요 .. 아무 때나 괜찮은 거 , 알죠 ?

 

술 마시고 싶을때 영화 보고 싶을때 다 좋구요.

그럴때 아니라도 .. 괜찮아요..

 

만약에 계속 그 사람이 좋으면

그래서 그 사람한테 질투 작전같은 거 써야하면

그럴 때도 나 불러요.

내가 가짜 애인역할 , 잘해줄께요.

 

그리고 혹시 그 사람 선물 고를때

 남자 옷 혼자 사기 그러면 , 나 데리고 가요..

나하고 체격 비슷하다고 그랬죠 ?

내가 대신 입어 봐 줄께요.

 

밤에 그 사람이 안 바래다 주면

혼자 택시 타거나 그러지 말고

나 불러요.

내가 같이 걸어 줄께요.

 

우리 , 그렇게라도 자주 만나요.

자주 만나다 보면 , 내가 편해질 거에요.

 

지금처럼 ,

부담스럽거나 미안하거나

그렇지만은 않을 거에요.

 

그럼 , 그 때 날 자세하게 봐 줘요.

 

나 ,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인데 ..

 

 

그땐 , 내가 좋아질지도 모르잖아요




-센티펫 한마디 :.아픔이 느껴지는 글이라서 퍼왔습니다. -

하늘에서 소중한건 별이구,

땅에서 소중한건 꽃이구 ,

나에게 소중한건 이글을 읽고있는당신입니다


세상에는 눈물과 웃음의 양이같데

너가 웃을때 누군가 울어야한다면...

내가 울께 넌 웃기만해. ^^

집안이 부유하여 넓은 방이 수십 개 있다 하더라도

잠 잘 때에는 여덟 자 길이면 충분하고

논밭을 바다보다 넓게 소유한다 하더라도

하루에 두되 쌀이면 배불리 먹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늘 남과 비교하여

욕심내는 것보다 더 불행한 건 없습니다.

삶은 누구에게나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다소 모자라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넉넉한 마음으로

안아 준다면그것이야말로 만족한 삶입니다.

만족을 깨닫는 순간 가난한 사람은 부자가 될 것이고

부자라 할지라도 만족하지 못하다면

분명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으로 살 것입니다. 



<<행복을 전하는 우체통에서....>>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내가 지각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도 남보다 늦었고 사회진출도, 결혼도,
남들보다 짧게는 1년, 길게는 3∼4년 정도 늦은 편이었다.
능력이 부족했거나 다른 여건이 여의치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이렇게 늦다 보니 내게는 조바심보다,,
차라리 여유가 생긴 편인데, 그래서인지 시기에 맞지 않거나
형편에 맞지 않는 일을 가끔 벌이기도 한다.
내가 벌인 일 중 가장 뒤늦고도 내 사정에 어울리지 않았던 일은,
나이 마흔을 훨씬 넘겨서..
남의 나라에서 학교를 다니겠다고 결정한 일일 것이다.

1997년 봄 서울을 떠나 미국으로 가면서 나는,
정식으로 학교를 다니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남들처럼 어느 재단으로부터 연수비를 받고 가는 것도 아니었고,
직장생활 십수년하면서 마련해 두었던 알량한 집 한채 전세 주고
그 돈으로 떠나는 막무가내식 자비 연수였다.
그 와중에 공부는 무슨 공부.
학교에 적은 걸어 놓되 그저 몸 성히 잘 빈둥거리다 오는 것이
내 목표였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졸지에 현지에서 토플 공부를 하고 나이 마흔 셋에
학교로 다시 돌아가게 된 까닭은 뒤늦게 한 국제 민간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얻어낸 탓이 컸지만, 기왕에 늦은 인생,
지금에라도 한번 저질러 보자는 심보도 작용한 셈이었다.

미네소타 대학의 퀴퀴하고 어두컴컴한 연구실 구석에 처박혀
낮에는 식은 도시락 까먹고,
저녁에는 근처에서 사온 햄버거를 꾸역거리며 먹을 때마다
나는 서울에 있는 내 연배들을 생각하면서
다 늦게 무엇하는 짓인가 하는 후회도 했다.
20대의 팔팔한 미국 아이들과 경쟁하기에는
나는 너무 연로(?)해 있었고 그 덕에 주말도 없이
매일 새벽 한두시까지 그 연구실에서 버틴 끝에 졸업이란 것을 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무모했다.
하지만 그때 내린 결정이 내게 남겨준 것은 있다.
그 잘난 석사 학위? 그것은 종이 한장으로 남았을 뿐,
그보다 더 큰 것은 따로 있다.
첫 학기 첫 시험때 시간이 모자라 답안을 완성하지 못한 뒤
연구실 구석으로 돌아와 억울함에겨워 찔끔 흘렸던 눈물이 그것이다.
중학생이나 흘릴 법한 눈물을 나이 마흔 셋에 흘렸던 것은
내가 비록 뒤늦게 선택한 길이었지만
그만큼 절실하게 매달려 있었다는 방증이었기에
내게는 소중하게 남아있는 기억이다.

혹 앞으로도!
여전히 지각인생을 살더라도...
그런 절실함이 있는 한, 후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By 손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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