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특전사 요원들의 증언(한국논단) 3 교도소 습격은 4~~5차례 #사회; 광주사태를 지금 시민항쟁 또는 민주항쟁으로 용어가 정착이 된 듯한 느낌인데요,우리 정부에 대해서, 이런 부분들은 그때 당시에 장교분들의 대답을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그게 절대로 그렇지 않다 하는,물론 법의 심판을 받고 있기 때문에 법정에서 진술하시는 경우도 있지만 신문이나 잡지 등 언론을 통해서 절대로 그렇지 않다. 지금 심지어 법정에서 변호사가 폭도라고 썼다고 해서 그것이 문제가 될 정도로 지금 상당히 흉흉한 분위기이지만 여러분들은 거기서 그야말로 폭도들을 상대로 해서 진압군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제가 묻습니다만 정부에 대해서 이 문제는 1988년 입니까, 노태우 정부에서 민화위를 만들어 가지고 민주항쟁이라고 해서 그 사람들한테 보상을 해주고 이런 것이 잘못됐다. 그러니까 시정을 해달라 하는 시정요구를 할 용의는 있읍니까? 있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시정 요구를 하시겠읍니까? 예를 들면 우리는 군인으로서 명예회복을 받고 싶다든가, 보상을 받고 싶다든가,여태까지 노태우 정부 이래 역대 정부가 광주 피해자들에게 취한 조치는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온당치가 않다. 그런 주장을 하실 수 있는 건지,또는 그렇게까지는 우리는 주장할 용의는 없는가 어떻습니까 거기에 대해서? 김대중과 유언비어가 사태 확대 요인 ** 양대인:글쎄요 답변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질문입니다. 마음 속으로는 #사회: 마음을 털어 놓으라 이거지요, 용기있게. **양대인:실질적으로 시민군이 그 당시에 보면 정부에 대한 반대파라고 이렇게 봐야 할 것입니다. 말하자면 "전두환 물러가라, 김대중 석방하라"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 였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사실 광주라는 지역이 지역적으로 봤을 때 어떻게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다른 어떤 데모를 진압하러 갔을 때보다 사실 시민들아 더 과격한 면도 있었어요. #사회: 진압을 몇 번 해 보셨어요? ** 양대인; 저는 6.3 데모 때부터 시작해서 70년도 박정희 대통령 시절 초반 위수령 당시부터 시작해서 계속 저는 출동을 했었읍니다.그 당시 그렇게 저희 군인들이 출동하면 서울지역에는 그렇게 부딪히는 게 별로 없었어요. 사실은 #사회;일단 풀이 죽어버리지요 **양대인; 예, 그래서 우리가 직접 부딪히는 경우가 그렇게 없었는데 광주는 유달리 그런 경우가 있었고, # 사회; 그건 ㅙ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양대인; 그것은 그 당시에 저희가 봤을 때에 정치적인 문제는 모르겠읍니다만도, 가장 큰 문제가 김대중씨라고 하면 김대중 선생이라고 해서 광주지역에서 상당히 독보적인 존재가 아니었읍니까? 그런 문제 때문에 그렇고,그리고 유언비어가 그때 많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문제에 대해서도 그렇고, 또 시내에서 데모하다가 잡혀오는 사람을 제가 조선대학에 있으면서 인수를 해가지고 제가 경찰에 넘겨줬는데 쭉 물어보니까 심지어는 열 몇 살 먹은 애들도 와요 너는 어떻게 왔냐고 하니까, 누가 돈을 얼마주면서 리어카를 끌어라 해서 돌을 싣고, 앞에서 끌으라면서 뒤에서 미니까 조그마한 애가 앞으로 갈 수박에 없지 않읍니까.이렇게 했다 그러는데.. 돈 받고 돌 실은 리어카 끈 소년 #사회; 그러면 불순세력이 배후에 있었다는 얘기 아닙니까 **양대인; 그런 식이지만 그것은 우리가 단서가 없으니까 사실은 말을 못하지 않읍니까? 못하고, 만약에 그 사람들이 현 정권에 도전한다면 약탈행위라든가 도난행위는 없어야 될 것 아니냐,쉽게 말해서 민간인 약탈행위 그런 문제는 우리가 언급할 필요 없고요 저희들이 조선대학에서 철수를 하면서 저희들이 철수할 때 갔다가 다시 돌아오겠지 이렇게 생각을 했읍니다. 그래서 무거운 보급품이라든가 극히 필요없는 보급품은 조선대학 체육관에다 저희들이 보관을 해놓고 갔어요 갔다와 보니까 상당한 물건들이 없어졌읍니다 중화기류부터 시작해서 없어졌는데, 그럻다면 민주화를 부르짖는 일부 인원과 거기 합세해서 여러가지 복합적으로 상당히 문제점이 이었지 않느냐,이렇게 저희들은 생각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광주민주화항쟁, 노태우 대통령 계실 때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그문제가 저희들이 봤을 때는 상당히 석연치 않은 점이 있읍니다.저도 군에서 출세를 못하고나왔읍니다만도 군인으로서 생각할 때 사실 군인이 완전히 명예를 회복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지 않읍니까 지금 현재에.그러다 보니까 구체적인 안을 제가 제시를 못하겠지만 그런 문제에 대해서 그 말 자체에 저는 상당히 거부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회: 저희 설문 가운데 이런 것이 있어요 "계엄군으로 출동 했던 귀하에 대해 정부는 지금까지 무엇을 했으며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4가지 응답이 있는데요 ,"(가) 계엄군을 내란주동 집단으로 규정한 처사를 철회하고 군인으로서 본 분을 다한 나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기 바란다.그 다음에는 미미합니다. "명예 회복과 함게 그 동안 정신적 고통에 대하여 응분의 보상이 있어야 한다" 는 8% 밖에 안되고(가) (나)가 충족되지 않을 경우 법적 대응을 하겠다 하는 분이 14%나 됐어요. 그렇다면 거기에 계엄군으로 참여 했던 군인들은 첫째 억울하다,그리고 명예가 실추된 것을 회복해주기 바란다는 일반적인 심정이 여기에 나타나 있는 걸로 해석이 되는데 , 여러분도 지금 말씀하신 게 아마 그런 맥락에서 파악이 되는 거죠? **양대인; 예. 반정부시위 중화기도 훔치나 #사회; 그렇다면 이제 백보 양보해 가지고 공수부대가 과잉진압을 했다, 거기에 대한 과잉반응이 있었다.그렇다면 어째서 진압한 합법적인 쪽에 그 책임자들이 법의 심판을 받아야 되는지 거기에 대한 설명은 가능합니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 1조부터 시작해서 대한민국이 유지 발전돼야 우리가 편안하게 살 수 있다고 믿는 개인과 세력을 보수세력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대한민국 체제를 지키자는 그런 입장에서 광주문제를 재조명 하자는 겁니다. 그런데 재조명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그 현장에서 어떤 것이 진상인가,광주진상을 캐라, 진상을 밝혀라 밝혀아 해서 지금 진상을 밝히는 재판이 진행이되고 있읍니다만 그럼 과연,법절차를 저는 잘 모르겠읍니다만 그 한쪽이 언론에 인민재판식으로 단죄를 받고 있다면 과잉반응을 한 촉도들 쪽의 책임자도 있을 것이고 그것도 진상을 캐내야 공평하게 진상이 밝혀지는 것 아니냐,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다는 아니지만 대표적인 몇 분이 모이신 이상에는 정말 우리가 진상을 알고 싶읍니다. 과연 광주시민들이 순수하게 민주항쟁을 하다가 그렇게 된 것인지,여기 그런 설문이 있습니다., 귀하는 1980년 5월의 광주사태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가) 숭고한 민주항쟁이다. 여기는 한사람도 숭고한 민주항쟁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없어요. (나) 배후가 있는 폭동이다. 이것은 10%입니다. 그 다음에 (다) 순수한 데모를 불순한 배후세력이 조종, 폭동화됐다. 이것이 88%입니다.이게 말하자면 대다수이거든요,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원래 동기는 순수한 민주회복을 위한 데모였다.그런데 불순세력이 거기에 가담해 가지고 폭동화 시켰다. 그렇게 보십니까? 현장에 있던 분들은 어떻게 보세요? 안그러면 처음부터 배후가 있는 폭동이었다 이게 10%나 나와 있는데, 또는 김대중씨가 조종한 폭동이다 이것은 2% 밖에 안됩니다다만 어느 쪽의 의견을 가지고 계시는지.. 화해하고 돌아가는데 돌팔매질 ** 김종수; 저희가 처음에 18일 데모진압을 나갔을 때는 데모대하고 저희하고 맞서가지고 가다가 아까 말씀하신 대로 공격앞으로 해가지고 앞에서 돌 던진 이를 붙잡으려고 간 상황인데 다 뿔뿔이 흩어졌죠. 흩어져서 건물위에 올라가고 도망가고 그 상황에 시민들은 옆으로 다녔어요 그러면 저희는 복장이 군인 복장으로 통일되었지만 시민들이야 누가 데모를 했는지 모르지 않읍니까 그러니까 젊은 사람들 위주로 체포를 하든가 아니면 건물에서 무슨 뭐 화분이고 역기고 던지니까 건물에 올라가서 붙잡아 내려오고, 처음 과정에서는 저희들이 볼 때 관련이 없는 사람은 건드리지 않았거든요 저희가 볼 때는 젊은 대학생들을 위주로 붙잡아다가 차에다가 실었지요 싣는 과정에서 붙잡아도 절대로 오지를 않아요 그러면 아까도 말씀하셨지만 진압봉으로 목 이하를 때릴때는 절대 끌려나오지를 않아요 힘이 얼마나 졿은지, 우리는 착용한 게 많지 않읍니까? 방독면도 차고,총도 거꾸로 메고, 철모도 쓰고,x밴드도 하고 그래 갖디고 참 불편해요. 그런데 붙잡아서 끌고 오면 목 이하를 맞아가지고는 전혀 꼼작을 안해요 ,힘이 황소 같아 가지고 머리를 때려야만 끌려와요 차차 하다보면 올라가는 거에요 .그렇게 해서 그렇게 된 거고 그다음에 2,3일후에 광주시민 전체가 한날 동시에 일어났다고 저는 봐요. 동시에 꽹가리 치고 일어나가지고 경상도 군인이 와서 전라도 씨를 말리는데 어떻게 된거냐 그래가지고 우리 대대장도 전라도 사람이고 또 부관도 전라도 사람이다 확인을 시켰더니 맞다, 그게 아니다,유언비어였다. 막걸리 마시고 가라, 그래서 거기에서 저녁 때 철수를 하는데 그 다음 동네에서 사람들이 나와 가지고 육교에서 찝차에 돌멩이 던지고 우리 위에다 돌멩이 던지고 이래가지고선 다치고 그랬거든요 그라런데 하여튼 동시에, 그날이 며칠이죠? 배후세력이 군과 시민 충돌유발 *이길영; 19일 **김종수: 19일부터 폭동화 됐구만요. **김종수; 그렇죠, 광주시민이 첫날인가 두번째 날인가 까지는 안그랬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광주시민 전체가 막일 어나가지고 저희한테 대항을 하기 시작했죠. #사회; 제일 처음에 윤흥정 장군이 거기 계엄사령관이었죠?" 지역 계엄사령관, **양대인; 예 #사회; 그 분이 소준열 장군으로 바?귄 게 며칠이었읍니까? 기억이 잘 안나십니까? **안부웅; 23일입니다 #사회; 바뀐 배경을.. **안부웅; 그건 모르죠 **양대인; 그런건 모르죠 역사적 울분 누적에 유언비어 가미 **안부웅;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모르죠.먼저 질문 하신 것 중에서 순수한 시위를 했느냐, 그렇지 않으면 배후세력이 있느냐라는 건 정책적인 큰 의미는 모르겠고, 단편적인 것으로 배후세력이 있다라고 제가 생각한 이유는 제가 18일 저녁에 내려가서 19일, 20일 아침까지는 그렇게 큰 충돌이 없었읍니다. 20일 여단으로부터 작전지시를 받아가지고 금남로 하고 도청거리 , 이쪽 상업은행 일대에 병력을 배치하고 났데 나중에 지역대장들 보고를 들으니까 병사들이 쭉 서있으면 한사람 두사람 모여듭니다. 모여들어 가지고 자꾸 대화를 하려고 그러는데 사실 임무를 수행하니까 민간인들 하고 자꾸 대화를 하다보면 정신적인 해이가 있기 대문에 대화를 하지말도록 했읍니다. 자꾸 사람들이 모여 가지고 대화를 하려고 하면 답을 안하는데, 모인 사람 중에서 나이가 한 4,50대 되는 사람이 와가지고 자꾸 대화를 겁니다. 그러다가보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자꾸 모여요 자꾸 모이다가 보면 그 사람은 뒤로 슬슬 빠지면서 대답 안한다고 우우우 해가지고 사람들을 격분시켜가지고 자기는 뒤로 빠져버리고 그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돌을 들어 가지고 덤비고 하는 이러한 보고를 받았는데 그런 것을 생각했을 적에 뭔가 뒤에 어떤 배후세력이 있어 가지고 고의적으로 군과 시민과의 충돌을 유발하지 않았느냐, 그렇게도 생각이 듭니다. #사회; 그것은 1946년 10월 1일 대구폭동 때도 양상이 똑 같았어요.그래서 저는 배후세력이 있다고 보는 건데 현장에서는 그정도 바밖에 파악이 안되는 거죠. **안부웅;그렇지요 그 이상은 저희가 알 수 없지요 **양대인; 한번은 이런게 있었어요 제가 조선대학에 쭉 있다가 그때 상황이 별로 그렇게 시끄럽지 않을 때 그냥 서로 투석전이 벌어지고 그 단계인데 제가 현장인 도청 앞에 나가 봤읍니다. 나가봤는데 도청 앞에서 1백미터 쯤 지나 건축물을 하나 짓고 있읍디다. 나이가 한 4,50대 된 분이 벽돌을 자꾸 던져주더라고요,내가 가서 아저씨 집을 지으려고 싸놓은 벽돌을 던져주면 그 벽돌이 다신 군인들한테 가고 하니까 사고나 나지 않읍니까 하니까 그분이 술을 좀 먹었더라고요 여보 당신, 난 경상도 말을 했죠. 그러니가 여보 내 벽돌 내가 던지는데 당신이 무슨 상관이야, 그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건 대화가 아닙니다.주변에 보니까 인도에 서 있는 사람들이 술먹은 사람들이 상당히 많더라고요 전부 구경하다가 우우 합세하고 하는그런 상태를 제가 한 번 목격을 했읍니다. 그러니까 아까 안대령이 말한 대로 주변의 시민들이 그당시에 어떤 격분보다도 역사적으로 내려오면서, 거기에 대해 상당히 격분하고 있는 상태에서 유언비어가 가미됨으로써 감정이 더 커졌지 않았느냐, 이렇게 생각이 들었읍니다. #사회; 그러니까 호님지방 특유의 누적된 피해의식 같은 데다가 유언비어가 경상도 사람등ㄹ이 와서 호남사람들을 폭력으로 어떻게 한다고 하는 유언비어를 믿어가지고 그것이 폭력화 돼서.. **양대인; 그렇지 않은가 생각할 수 있읍니다. #사회; 그 후에 불순세력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잘 모르시고... **양대인; 그 상황은 잘 모르겠읍니다. #사회; 황선생님은 한 말씀도 안하셨는데 의견이 있으시다면...] **황병철: 저ㄴ는 그 당시 졸병 하사였어요 졸병 하사여 가지고 뭐.. #사회; 그 나름대로 보고 느낀 점을 말씀해 주시죠. 각본대로 증언하라는 청문회 **황병철: 처음서부터 광주 송정리에서 올라올 때까지 다 있었습니다. 선배님들이 말씀하셨는데 더 이상 광주사태에 대해서 할 얘기가 없는 것 같아요 제나름대로는. #사회; 저희가 어던 목적을 가지고 거기에 부합시키려는 게 아니라 지금 광주사태 진상이 세상에 알려진 거로는 모래시계라는 드라마도 있었고 여러가지 있었지만, 코리아 게이트다 그런 거 보시면서 어떨게 느꼈엉어요? 사실이다 느낍니까? ** 김종수; 다르죠. #사회; 어떤 면에서 구체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이기회를 통해서 한번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김종수; 아니, 그 말씀이 아니고요. 제 동기들 중에서 아직 군대 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 청문회 때요 그 친구가,그 때는 평민당이라고 그랬지요, 평민당에 청문회 때 증인으로 나가기 위해서 열 번을 올라갔다가 결국 증언을 못하고 내려왔어요 그 친구가 얘기를 하는 거에요, 그 친구가 고향이 전라도 임실이고, #사회; 열 번 올랐다는 건 청문회에 열번 나갔다가, ** 김종수;아니,청문회에 나가기 위해서 열 번을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한 거애요. 처음에 올라와서 증언을 해라 그랬는데 내 임의대로 증언을 하는게 아니고 이렇게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하라는 항목이 쭉 있어요 #사회; 아, 사전에 각본이 있다. ~~~~~~~~~~~~~계 속~~~~~~~~~~~~ 실린곳:시국진단 12월 호 펴낸 곳:국민의 함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