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좌파본색 ①] 좌파가 만든 ‘광우병 매트릭스’ | | ‘민주화 운동의 새 지평’이라던 촛불시위, 실체는 좌파단체의 선전선동이 만든 ‘매트릭스’ | | | 전경웅 기자 2008-12-23 오전 9:25:15 | |
| 글 싣는 순서 | ① 좌파가 만든 ‘광우병 매트릭스’ ② ‘민주평화개혁양심세력’의 실체 ③ 본모습 드러낸 ‘통일세력’ ④ 햇볕을 두려워하는 ‘전교조’ | 우파정부가 출범했지만 ‘잃어버린 10년’ 간 우리 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등 전 분야에 걸쳐 극도로 좌경화됐고, 이를 원상태로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프리존뉴스>는 좌파세력들이 어떤 방법으로 우리 사회를 좌경화 시켜왔고, 그 폐해는 무엇인지 점검하는 기획시리즈 ‘2008년 좌파본색’을 4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좌파세력들의 노림수는 무엇인지, 또 여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편집자 주>
| 일부 좌파들이 ‘민주화 운동의 새 지평’이라던 촛불시위. 하지만 그 실체는 좌파세력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괴담을 만들어, 나중에는 정부전복까지 꾀했다. 현행법을 무시하면서 민주화로 포장한 채 무법천지를 만들었던 광우병 촛불시위의 실체를 되짚어본다.
촛불시위의 시작
2008년 4월 하순. 중국인들이 북경 올림픽을 앞두고 성화 봉송을 지킨다는 명목 하에 호주, 일본에 이어 서울로 몰려와 집단폭력난동을 부린 일 때문에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중국 정부에 대한 성토가 끊이지 않았다. 이 성토는 곧 중국에 대한 반발과 저주로 이어졌다.
이즈음, 포털 ‘다음’의 토론 게시판인 ‘아고라’에 광우병 이야기가 나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박상표 사무국장이 2007년 9월 월간지 <신동아>에 기고한 내용 중 일부를 인용했다. 박 국장 글의 전체적 맥락은 광우병의 원인인 ‘변형 프리온 단백질(이하 변형 프리온)’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한편, 미국산 쇠고기는 물론 한우도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고라’ 등에 퍼진 이야기에는 ‘한우’ 이야기가 빠져 있었다.
이후에 인터넷에는 ‘변형 프리온’은 0.01그램의 소량이라도 인체에 전염되며, 섭씨 600도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머쉬멜로우, 젤, 쇠고기 분말 등 소의 부산물로 만들어진 모든 제품을 통해 전염, 100% 사망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심지어 공기로 전염된다는 소문도 있었다.
MBC ‘PD수첩’은 이 소문의 진실을 밝힌다며 취재를 시작했다. 그리고 4월 30일 방송에서 미국의 다우너 소 등을 보여주며, ‘미국산 쇠고기=광우병’이라는 식의 보도를 했다.
여기에 가장 처음 반응한 것은 중고교 학생들. 이 아이들은 그동안에도 인터넷에 떠도는 소문을 이유로 이명박 대통령을 싫어했다. 광우병 소문을 들은 아이들은 ‘학교급식에 값싼 미국산 쇠고기가 나올 게 뻔하다. 우리는 죽기 싫다’며 반발했다. 일부 연예인 팬클럽 등에는 ‘우리의 ○○○가 미국산 쇠고기로 죽을 수도 있다. ○○만 회원 뭉쳐 막아내자’ 등과 같은 격문이 공지사항으로 떴다.
| | | ▲ 촛불시위가 확산될 무렵, 많은 중고교생들이 사진과 같이 발신자를 알 수 없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좌파들은 학생들이 친구에게 보낸 것이라 주장했다. 친구라면 왜 발신번호를 숨겨야만 했을까.
| | 5월 2일 교복을 입은 여중고생들을 중심으로 청계천 등에 시민 수천 명이 모여 촛불시위를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시위대 대부분은 광우병 루머에 겁을 먹은 상태였을 뿐 정치적 색채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쾌재를 부르는 집단들이 있었다.
여고생 뒤의 그림자
여중고생들의 집단행동은 사회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중고교생의 부모뻘인 소위 ‘386세대’도 거리로 뛰쳐나와 촛불을 들었다. 5일에는 유모차를 앞세운 주부들이 나타났다. 예비군복을 입고 질서유지를 맡겠다고 자처하는 젊은이들도 있었다. 시위대는 점차 늘어갔다.
한편, 이런 상황을 놓치지 않고 등장한 단체들이 있었다. 5월 6일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등 정당들과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한국진보연대, 통일연대, 함께하는 시민행동, 이명박 탄핵카페, 미친소닷넷, 광우병국민감시단 등 자칭 ‘시민단체’ 1천500여개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 모여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이하 대책회의)’를 결성한다. 이들은 ‘국민의 99%, 100만 네티즌이 반대한다’는 구호를 내걸고 ▲쇠고기 재협상 ▲광우병 특별법 제정 ▲협상 책임자 파면 등을 요구하면서, 촛불시위의 지도부를 자처했다.
한편, 이들과는 별개로 좌파 진영의 주도권을 두고 다툼하던 거대단체 ‘다함께’도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MB OUT’ 등의 구호가 적힌 휴대용 피켓을 시위 군중들에게 나눠줬다.
하지만 시위 군중들은 이들 단체에 거부감을 나타냈다. 그러자 ‘단체들’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지원 역할만 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대책회의가 출범한지 보름쯤 지난 5월 26일부터 시위 군중 속에서는 눈에 익은 깃발들이 나부끼기 시작했다. 확성기를 단 차량이 시위대를 인도하는 모습도 보였다.
6월 1일 이후 ‘촛불폭력’
5월 31일, 광화문에 모인 군중들은 그저 촛불을 켜고 여기저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였다. 그러다 오후 8시 경 종로구 청운동에서 100여 명의 대학생이 경찰에 연행되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군중들은 청와대로 몰려가 오후 10시 경부터 청와대 진입을 시도한다.
경찰에게 청와대는 1급 경호시설이다. 경찰은 우선 버스로 저지선을 설치, 막으려고 했으나 숫적 열세로 계속 밀렸다. 나중에는 청와대 주변의 출입통제선 부근까지 밀렸다. 결국 살수차가 동원되고, 6월 1일 새벽 경찰특공대까지 출동한다. 시위대는 1일 오전 모두 해산했다.
| | | ▲ 촛불시위는 5월 하순 좌파단체들이 슬며시 끼어들면서 점차 폭력적인 양상으로 변했다. 6월 1일 청와대 진입시도 중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면서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후 시위대에는 자정만 넘으면 나타나 폭력시위를 이끄는 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 | 이날의 시위 후 인터넷에는 경찰의 여대생 윤간 살해설과 여고생 실명설 같은 괴담이 나돌기 시작했다. 이 루머는 삽시간에 인터넷 곳곳에 퍼졌고 사람들을 흥분시켰다.
<프리존뉴스>또한 이 루머를 들은 뒤 당시 부상자들을 진료한 병원, 서울소방본부 상황실, 일선 소방서 등에 사실여부를 확인했으나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 살해당했다는 여대생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경찰에 맞아 실명했다는 여고생은 시위에서의 충돌 중 눈에 부상을 입은 30대 남성 이야기가 와전된 것이었다. 이 남성은 병원에 진료를 받은 뒤 당일 퇴원했다.
하지만 이 루머는 광우병 이야기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했다. 흥분한 사람들에게 사실 확인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간혹 사실을 말하는 사람은 ‘수구꼴통’으로 매도당하기 일쑤였다. 이후 시위대 숫자가 급격히 불어나면서 시위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정치구호와 함께 동원된 인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기존의 예비군과는 다른, 마스크를 한 채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예비군과 일명 ‘시민기자’라는 완장을 찬 사람들이 나타났다.
한편, 전문적인 ‘폭력꾼’으로 보이는 자들도 나타났다. 이들은 일반 군중이 모이는 저녁 시간에는 조용히 있다 사람들이 귀가하는 자정 무렵부터 폭력시위를 선동했다. 이들의 선동은 매우 교묘했다. 경찰을 도발할 때는 맨 앞에서 욕설을 하며 무기를 휘두르다 경찰이 대응할 조짐을 보이면 뒤에 있는 사람에게 무기를 건네거나 그 자리에 무기를 내려놓고 군중 속으로 소리 없이 사라졌다. 이들 때문에 경찰과 시위대 간의 충돌은 날로 격화됐다.
저항과 ‘매트릭스’의 몰락
이후 폭력은 보름이상 계속됐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은 이런 시위행태를 보면서 누군가 계속 폭력을 조장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여기다 복면을 한 자들이 소화기, 쇠파이프, 심지어는 사냥용으로 사용하는 슬링샷(쇠구슬 등을 사용해 새를 잡는 무기. 새총과 비슷)과 손도끼까지 써가며 경찰을 공격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후 6월 초 한 대학생이 촛불시위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했다. 이때 그와 취재진을 폭행하는 자들이 나타나면서, 그동안 조용하던 우파 진영이 들고 일어났다. 이후 우파 진영은 1인 시위를 보호하는 한편, 6월 초부터 대규모 집회를 열어, 대책회의 측을 긴장케 했다. 이와 함께 촛불시위에 반대하는 목소리들도 서서히 인터넷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파의 대규모 등장이 시작되자 시위대는 이를 언론 탓으로 돌리며 조선, 동아일보를 공격했다. 6월 하순에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기자에 대한 폭행과 취재용 카메라 등을 빼앗은데 이어 이들 신문사 앞에 쓰레기를 투척하고 이를 말리는 경비원들을 폭행하는 일도 벌어졌다. 일부 시위자들은 다음 카페를 통해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에 광고를 게재한 회사들에 조직적으로 협박전화를 걸어 업무를 마비시키고, 큰 손해를 입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8월, 소위 ‘열사’들이 등장하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특히 ‘안마열사’ ‘계모열사’ ‘야동열사’ 사건은 촛불시위대에 큰 타격을 줬다. ‘안마열사’란 광주 조선대 학생회장 출신의 한 젊은이가 아고라 등에서 신문광고를 명목으로 모금, 이 돈으로 나이트클럽, 안마시술소 등에 출입한 것이 발각되면서 붙은 별명이고, ‘계모열사’란 한 때 경찰을 당황케 했던 유모차 부대의 이야기로 일부 여성들이 본인의 친딸은 학원에 보낸 뒤 입양한 갓난아기 또는 전 부인의 아이를 데리고 나온 것이 알려지면서 붙은 별명이다.
| | | ▲ '안마열사'로 유명한 조선대 학생회장 출신 이 모씨가 다음 아고라에 올린 글. 폭력적으로 변질된 '촛불시위'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시작한 이세진 씨와 그를 보호하기 위해 모인 우파 진영 사람들로 인해 촛불은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어 각종 '열사'들의 등장으로 인한 촛불세력의 자폭은 많은 사람들이 손에서 촛불을 내리는 계기가 됐다.
| | ‘야동열사’는 폭력시위로 변질된 촛불에 반대해 1인 시위를 벌인 이세진 씨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만든 커뮤니티 ‘노노데모’에 회원으로 가입, 온갖 난리를 피워 아고라에서 영웅대접을 받던 사람이 사실은 포르노 동영상 공유카페를 중심으로 활동했다는 게 알려지면서 붙은 별명이다. 이 외에도 촛불시위를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했던 한 여성전문 사이트에서는 모금한 돈을 횡령했다며 서로 고소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우파 진영은 이 같은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광우병의 실체에 대한 보도도 계속 됐다. 시위 규모 또한 우파 단체들이 서로 연합하면서 촛불 이상으로 규모가 커졌다. 각 지역에서의 시위는 점차 백 명 단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8월이 지난 뒤 이제는 촛불시위에 반대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시위에 계속 참석했던 사람들조차 촛불시위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은 한동안 시위에 계속 참석했다. ‘촛불시위에 배후가 있다’는 정부와 우파진영의 주장에 자존심이 상해서였다. 그런데 이들의 자존심을 폭발하게 만든 일이 생겼다. 대책회의, 다함께 등이 마치 시위대의 대표인양 여기저기 나섰기 때문이다.
그 후의 이야기는 알려진 대로 촛불시위대의 감소, 불법폭력시위자 검거, 조중동 등 일간지 광고주 협박한 이들에 대한 사법처리, 시위대에 대한 벌금, 촛불시위 소멸, 체포 당시 화투를 치다 붙잡혀 ‘타짜 열사’로 전락한 대책회의 집행부 등이다.
| | | ▲ '안마열사'와 함께 촛불 유명인사인, 다음 아고라 유모차 카페의 여성이 한 신문과 인터뷰한 기사. 네티즌들은 입양아를 데리고 시위현장에 나선 그녀에게 '계모열사'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 |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
이 같은 촛불시위 진행과정을 보면 사실왜곡-루머 확산, 재생산-시위-지원 단체 출현-반정부 시위-폭력시위의 양상으로 발전했다. 처음에는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던 시위대가 한미 정부 간에 거의 재협상 수준의 약속이 이뤄진 뒤에도 정부 퇴진을 요구했다는 점은 의문이다. 이를 정리하면, 첫째 누가 광우병에 대한 루머를 퍼뜨렸는가, 둘째 시위대는 왜 청와대로 기를 쓰고 진입하려 했는가, 셋째 시위의 최종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점을 봐야한다.
우선 광우병에 대한 정보를 퍼뜨린 단체로 여러 곳이 지목되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초대형 좌파진영 연합체인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가 있다.
범국본은 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6년 3월 28일 출범했다. 이 단체에는 전국민중연대 이하 각 단체, 범민련 남측본부,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전공노, 전교조, 참교육학부모회, 참여연대, 투기자본감시센터,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전농, 한국카톨릭농민회, 민노총 이하 각급 단체, 민변, 민언련, 언개련, 언론노조, 한국기자협회, 통일연대,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다함께, 민족문제연구소, 민예총 이하 위원회, 민주노동당 이하 각 위원회, 민주노총 이하 각 위원회, 전국YMCA연맹, 인터넷언론네트워크,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 등 300여 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범국본은 ‘대미경제종속 및 사회양극화를 심화시키고 한국경제를 파탄 낼 한미FTA를 저지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대외적 명분을 내세우고 있으나, 이들이 출범하기 전인 2005년 하반기 좌파단체들의 연석회의 회의록을 보면, 조금 다른 결론이 나온다.
2005년 8월 자주통일연구소는 ‘큰 덩어리의 단일전선조직’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이 제안에서 중요한 축을 맡게 되는 세력은 전국민중연대, 전국통일연대, 민주노동당으로 민중연대는 지역, 산업 별 사회단체들을 포괄하고, 통일연대는 친북단체들을 포괄함으로써 이를 통해 민주노동당의 정치력을 확대, 2012년 예정인 연방제 통일을 앞당기자는 것이었다.
이 같은 제안이 하부 조직들로 전달되는 증거가 연이어 포착된다. 2005년 말 한총련은 각급 대의원회에 보낸 문서에서 ‘진보진영의 단일연대연합체 건설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총학생회 선거의 승리와 함께 2006년을 투쟁의 해로 가르치라고 명령하고 있다. 이 내용대로 2006년 3월 범국본이 출범한다.
| | | ▲ 광우병 괴담은 한미FTA반대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로부터 나왔다. 2007년 초 광우병으로 선전선동을 시작했지만 대선에 묻혀 별 관심을 끌지 못하다 2008년 4월, 뒤늦게 관심을 끌게 되자 범국본 참여단체들은 주도권을 잡기 위해 급히 '광우병 대책회의'로 옮겨갔다.
| | 좌파 진영은 그러나 盧정권의 권력의 핵심과 비슷한 색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인지 과격한 행동은 그렇게 많이 하지 않았다. 이들이 대신 찾은 ‘투쟁주제’는 바로 한미FTA였다. 투쟁 방식은 과거와 달랐다.
우선 연예계 관련 단체들을 내세운 뒤 언론 단체를 통해 이들의 시위를 집중보도해 공론화하고, 학술단체로 포장된 좌파단체들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권위를 확보한 뒤 각급 학교와 각 지역의 서민계층을 선동, ‘투쟁’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우선 나온 것이 바로 ‘스크린쿼터사수’이고 다음이 ‘먹거리 지키기’다.
이 ‘스크린쿼터 지키기’는 한국영화계 생존이라는 명분 속에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이후의 한미 FTA 저지 시위는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미국과의 FTA에서 우리가 잃는 것보다 얻을 것이 더 많다는 게 사회적 분위기였다. 이에 2007년 초부터는 방향을 바꿔 광우병을 주제로 선전활동을 펼쳤으나 별 소득이 없었다. 하지만 기다린 끝에 기회가 왔다. 좌파 진영이 대선에서 패배한 것이다.
2007년 대선도 흑색선전이 들끓었다. 이명박 후보 진영에 대한 부정적인 루머와 주장들이 언론을 통해 반복적으로 보도되면서 국민들도 그에 대해 거부감을 느꼈다. 하지만 이미 좌파 진영의 무능력과 부패에 한계를 느끼던 국민들은 이명박 후보를 선택했다.
이에 좌파들은 자신들에 비교적 우호적인 매체들이 다수인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광우병 관련 정보와 흑색선전을 퍼뜨리기 시작한다. 이 내용들은 범국본 참여 단체인 전교조의 교사들을 통해 다시 학생들에게 전파된다. 한편 이명박 정부는 시작과 동시에 여러 가지 일들로 구설수에 시달린다. 공기업 개혁, 공무원 조직 구조조정 등의 정책은 명령만 있을 뿐 실행이 없었다. 범국본에 참여한 언론단체들은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무능력으로 포장했다. 결국 악성 루머들은 진실처럼 되어 버렸고 국민들은 촛불로 정부에 분노를 표출했다.
두 번째, 시위대가 청와대로 진입하려 했다는 점은 광우병 시위의 실체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다. 지난 20년 동안 좌파 단체를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어떤 시위대도 청와대 진입을 위해 물리력을 동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광우병 시위대의 다수는 청와대 경호선이 뚫리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인지하지 못했다. 청와대는 국가 1급 시설로 군과 경찰, 청와대 경호처가 공동으로 경비하는 구역이다. 경찰의 경비가 뚫릴 경우에는 무장한 군부대(수방사 제1경비단 소속)가 출동하게 된다. 흥분한 시위대와 군부대가 대치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우리는 이미 역사 속에서 겪은 바 있다. 그렇다면 이런 유혈사태를 원하는 자들의 목적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좌파 ‘매트릭스’와 빨간 약
세 번째, 시위의 목적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폭력시위에 대해 봐야 한다. 폭력시위선동자들의 정체는 아쉽게도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지금까지 경찰에 체포돼 처벌을 받은 사람들을 보면 무직, 일용직 노동자 등으로 나타난다. 때문에 사람들은 이들이 우리 사회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부상을 입은 경찰들의 주장은 다르다.
촛불시위가 사그라지던 8월, <프리존뉴스>는 부상을 입고 입원한 전의경들과 인터뷰했다. 이때 전의경들은 ‘40~50대 정도로 보이는 특정 집단이 있다’는 공통된 증언을 했다.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고 있으면 이들이 맨 앞으로 나와 경찰들에게 욕설을 퍼붓거나 폭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쇠파이프, 사다리, 쇠갈고리가 달린 밧줄 등도 인근 공사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이들은 두 달 넘게 날마다 나타났지만 경찰이 대응하려고 하면 이미 군중 속으로 사라져, 이들 중에서 잡힌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했다.
이런 폭력선동자들과 좌파 단체들이 전면에 나서면서 등장한 정부퇴진 구호, 반미 구호가 의미하는 시위의 최종목적은 단 하나, ‘혁명’이다. 다만 이들은 과거처럼 자신들이 직접 전면에 나설 경우 국민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리라고 생각, 인터넷과 언론을 괴담과 루머로 채운 ‘광우병 매트릭스’를 만들어, 보통 시민들을 세뇌, 보이지 않게 선동했던 것이다.
| | | ▲ 광우병 괴담이 청소년과 젊은 층들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었던 것 중 하나는 바로 공중파 방송과 연예인들의 광우병 이야기. 범국본에는 유명 연예인들이 지지하는 스크린쿼터문화연대를 비롯, 연예, 영화, 방송계 대형 단체들이 참여해 활동하고 있다.
| | 그렇다면, 범국본에 참여한 단체들은 어떻게 이런 ‘매트릭스’ 속에 국민들을 빠뜨렸을까? 우리가 보통 어떤 일이나 사물에 대한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기초정보가 필요하다. 국민의 대다수는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는다. 좌파는 이 점을 철저히 활용했다.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잘못된 정보를 대거 유통시켜 국민들이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왜곡했다.
우선 민언련, 언개련, 한국기자협회, 언론노조, 각 대학교 학보사 기자들의 모임인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민중의 소리 등 포털 사이트와 뉴스제휴를 맺고 있는 인터넷언론네트워크, KBS 노조, 방송프로듀서연합회 등의 언론 단체들은 광우병에 대한 왜곡된 정보를 방송과 인터넷에 지속적으로 전파했다.
또한 고양어린이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부산영상위원회, 부천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한국영화감독협회, 한국영화교육협회, 한국영화배우협회, 한국영화투자조합협회,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시나리오조합, 영화인복지재단, 영화진흥위노조, 한국에니메이션예술가협회, 한국에니메이션제작가협회 등 범국본에 참여한 예능 단체들은 한미 FTA 저지와 광우병 문제 등을 간접적으로 노출시켰다.
민변,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전국교수노조, 학술단체협의회, 녹색연합, 환경운동연합, 한국산업노동학회, 한국사회경제학회, 한국여성단체연합, 여성민우회,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정치연구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등은 이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이런 언론-학계-연예계가 연계한 대대적인 선전 선동이 공중파와 인터넷을 채우고, YMCA, 환경 단체, 참여연대 등에다 전국사회보험노조, 전공노, 전교조 등 정부기관 관련 단체들까지 범국본에 참여하면서 우리 사회를 ‘광우병’이라는 ‘매트릭스’ 속에 빠뜨린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국민들이 이런 ‘매트릭스’에 대해 저항능력이 있었다는 점이다. 다수의 국민들은 방송과 포털, 인터넷뉴스가 연일 보도하는 루머와 좌파적 사고를 가진 정치인, 지식인들의 이중적인 태도에 의문을 표시했다. ‘정말 그렇게 미국산 쇠고기가 위험하다면, 왜 정치인과 그 자식들은 허구한 날 미국, 영국에 가냐’는 질문이 대표적이다.
‘광우병 대책회의가 얻으려는 게 대체 뭐냐’는 질문도 넘쳐났다. 나중에는 촛불시위의 대미를 장식한 ‘열사’들의 출현과 불법폭력시위를 선동하는 행태,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질질 끄는 시위로 인한 불편은 이런 의문을 확산시켰다. 결국 좌파들에게는 제대로 된 ‘혁명의 기회’였던 던 촛불시위가 오히려 좌파 특유의 투쟁습관으로 인해 무너진 것이다.
좌파 진영은 끝까지 자신들에게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선동해 엉망이 된 폭력난동을 ‘집단지성’이라고 우기기까지 했다. 좌파 세력의 이중성을 간파한 정부와 지자체에서 부과한 과태료 앞에서 이들은 비겁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실패했음에도 ‘혁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좌파 진영은 10월 25일 ‘민생민주국민회의’라는 새로운 거대 단체를 만들고는 ‘촛불 시즌2’를 외쳤다. 하지만, ‘광우병 매트릭스’에서 빠져나온 시민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이후 좌파들은 ‘미네르바’라는 한 인터넷 논객의 주장을 활용, 다시 한 번 ‘촛불의 영광’을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경제위기가 외생변수로 인한 것인데다 좌파들이 민생경제 문제에 있어서는 얼마나 무능했었나를 국민 모두가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좌파들이 만든 ‘광우병 매트릭스’는 몇 사람의 영웅이 결판 짓는 영화와는 달리, 좌파 스스로의 문제와 그들보다 더 합리적이고 똑똑한 국민들에 의해 산산조각 나버린 것이다.
프리존뉴스 전경웅 기자(enoch@freezonenew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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