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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8/12/01
 

3,이것은 대한민국 교과서가 아니다 !

2008.12.31 08:44 | 기본폴더 | kmj5103

http://kr.blog.yahoo.com/kmj5103/285 주소복사

 

3 이것 대한민국 교과서 아니다 !

 

 

한국이 비동맹 체제로 가야 했다는 암시

 

금성출판사刊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는 대한민국이 갔어야 할 체제적 志向지향을 '비동맹체제'로 인식시키기 위하여 '광복과 대한민국의 수립'이라는 章에서 비동맹 운동을 중점적으로 기술한다. 중국을 비동맹국가로 설정하고 비동맹과 관련된 사항을 사진 3장 그림 1개,도표 1개를 할애하여 설명하고 있다.

 

'북한의 변화와 평화통일의 과제'라는

장에서는 김일성이 참여한 비동맹( 쁠락 불가담)운동을 반복하여 강조하였다. 이 교과서의 비동맹에 대한 반복된 강조는 북한 헌법 前文 (1998년)<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세계정치의 원로로서..쁠락 불가담 운동의 강화 발전을 위하여> 와 북한 역사서에 반복되어 나오는 ,쁠락 불가담 운동을 이끈 김일성에 대한 찬양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반둥..회의에 참가한 나라들은..냉전체제 아래에서 미국과 소련이 주도하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블록 어디에도 가담하지 않는다는 비동맹 노선을 택하고 평화 10원칙을 채택하였다>( 금성교과서 251쪽)

 

<북한은 종전 소련과 중국에 편향되었던 외교관계에서 벗어난 제 3세계 비동맹 세력에 적그적으로 접근하였다...(사진설명) 김일성이 티토 대통령과 얼싸안고있다. 티토는 비동맹 세력의 중심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303쪽)

 

<수령님께서는 쁠럭 불가담운동을 강화발전시키는 데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쁠럭 불가담 운동은 그 어떤 쁠럭에도 들지 않고 온갖 지배와 예속을 반대하고 자주성을 지향하는 진보적 운동이며 제국주의 반동세력에 대처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위력한 반제혁명 력량이다>(북한 고등중학교 5년,위대한 수령 김일성 원수님 혁명사.66쪽)

 

비동맹 운동을 했던

인도네시아, 이집트,유고슬라비아, 북한  등은 뒤가 좋지 않았다. 한국은 韓美동맹으로 성공했다. 이미 역사적 심판이 내려진 비동맹 운동을 '광복과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장에서 집중적으로 서술한 것은 필자들의 反美성향을 드러낸 것이다.

 

미국을 제국주의로 인식하고 저항하도록 선동

 

筆陳필진의

이런 반미성향은 금성교과서의 반미적 서술로 확인된다.미국에 대한 표현은 집중적으로 反美감정을 부추기는 방향이다.미국(美군정)을 서술하는 167회의 표현 중 몇몇 문장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 부정적 서술로 일관하고 있다. 전 세계예에서도 몇 안 되는 희귀한 교과서로 기록될 만 하다.

 

<미군정의 방침은 도리어 농민들의 반발을 크게 하였다..미군정에 대한 여론은 갈수록 나빠졌다.. 미군정의 사회경제정책에 반발하는 철도노동자의 총파업이 일어났다...민중봉기로 이어졌다..수십만 명의 민중들은..미군정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로 돌입하였다>(260쪽)

 

<한국 경제는 점점 더 미국의 영향아래 놓였으며..한국의 경제는 점점 더 미국에 종속되어 갔다> (324~325 쪽)

 

북한역사서의 아래 기술과 비교해보자

 

<미군은 남조선에 들어가자마자 자기의 식민지 예속화 정책을 실시하는 데 착수하였으며 경제적으로는..미국 경제에 예속시키는 정책을 실시하였습니다.>(현대조선력사 217쪽)

 

<남조선 인민들은..미제의 식민지 예속화 정책과 민족분열정책을 반대하며..과감한 투쟁을 일으켰다. .총파업을 단행하였다(219쪽).. 미제의 야수적 탄압에 대항하여 노동자들은 대중적인 시위투쟁으로 넘어갔으며.. 각종 형태의 반미구국투쟁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현대조선력사 220쪽)

 

금성교과서는

전국교직원 노동조합(전교조)이 만든 역사 참고 교재인 '살아 있는 한국교과서'내용을 그대로 옮긴 듯한 서술을 했다.

 

<일장기 대신 올라간 것은 태극기가 아니었다.일장기가 걸려 있던 그 자리에 펄럭이는 것은 이제 성조기였다.. 자주독립을 위한 시련의 출발점이기도 했다>는 금성교과서의 기술은 전교조 교재의 <미군이 서울에 들어와 맨 처음 한 일은 총독부 건물에 걸려 있는 일장기를 내리고 미국기를 올리는 것이었다>와 비슷하다.

 

대한민국의 건국과 정당성을 부정

 

금성교과서는

대한민국의 건국이 국민적 열망과 정치세력의 반대 속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하도록 유도한다,. 어디에도 대한민국 건국의 意義와 민족사 최초의 민주공화제의 출범의미를 나타내는 내용은 없다.친일파 청산 문제를 과도한 비중을 두고 다루면서 결국 대한민국은 민족정신에 토대를 둔 나라로서 실패했고 '새로운 나라(사회)건설'이 좌절되었다고 수도 없이 반복 교육토록 했다.

 

<국민적 열망과 여러 정치세력들의 반대 속에 1948년 5월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세우기 위한 총선거가 실시되였다.>(264쪽)

 

<친일파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였으며 민족정신에  토대를 둔 새로운 나라의 건설은 수포로 돌아갔다>(266쪽)

 

<친일파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과오는 우리 현대사를 옥죄는 굴레가 되었다>(266쪽)

 

북한의

'현대조선력사'는 <전체 조선인민은 망국단독선거를 반대하는 투쟁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남조선 인민들은 그 어떤 가혹한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매국적인 단독선거를 반대하여 결사적으로 싸웠다(226~227쪽)>고 쓰고 있다.

 

6.25 전쟁을 충돌확대 과정으로 호도

 

금성교과서는

김일성-스탈린-모택동 간의 계속된 전뱅협의와 준비 그리고 T-34 탱크와 야크 전투기 도입 등 군사력 강화 등을 가볍게 다루고 북한이 주장하는 '작은 전쟁론'에 입각하여 6.25 이전부터 수많은 충돌이 있었고,그 충돌의 확대가 6.25 전쟁이라는 인식을 유도하는 기술을 하고 있다.

 

<남북 사이의 무력충돌도 적지 않았다..38도 선 고곳에서 국군과 북한군 간에 크고 작은 충돌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6.25 전쟁이전의 군사적 충돌 38도선 근처에서는 국군과 북한군 사이에 크고 작은 충돌이 그치지 않았다... 충돌이 빈번하게 일어났다..>(268쪽)

 

<미제와 이승만 정권은... 1949년 한 해동안만도 38도선에서 무려 2617 차례의 무장침습을 강행하였다..사실상의 도발행위였다..그렇기에 서방출판물들은 후에 그것을 38도선에서의 '작은 전쟁'이라고 불렀다.. '작은 전쟁'에는.. 4만 9000여 명의 병력이 동원되었다..미제에 의하여 공화국 북반부를 공격하는 '작은전쟁'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현대조선력사 251~253쪽)

 

이런

작은 충돌과 6.25 전쟁 사이에 아무런 관련이 없다.6.25 전쟁은 김일성이 同族동족을 쳐서 한반도를 전체주의화하려고 스탈린과 모택동의 보증을 받아 외세를 끌어들인 민족반역의 전쟁이었다.

 

 

현대사를 저항과 투쟁사로만 기술

 

금성교과서는

대한민국 현대사를 각종 제도의 도입과 발전, 산업과 문화의 발전과 세계무대로의 진출,삶의 질의 개선과 풍요화,도시화와 국제화 등 긍정적 사회변화를 중심으로 기술하지 않고 북한 역사서가 대한민국을 서술하는 방힉과 동일하게 한국 현대사를 철저히 시련과 저항,독재와 反독재 투쟁의역사로 교육시킨다.한국 현대사에 대한교과서의 제목과 북한역사서의 제목과 내용 전개 자체가 유사하다.

 

금성교과서;

<민주주의시련과 발전> <이승만 정부의 독재화> <타오르는 민주주의의 불꽃, 4.19 혁명> <독재와 부패정부를 우리 손으로 무너뜨린다>< 미완의 혁명> <헌법위에 존재하는대통령> <유신체제,종말을 고하다>(276~289쪽)

 

북한;

<남조선인민들의 구국투쟁> <4월 인민봉기> < 전인민적 항쟁,이승만 정권의 붕괴> < 군사파쇼 독재의 수립;사회의 민주화를 위한 인민들의 투쟁> <군사파쇼 통치를 반대하는 투쟁> < 6.3 봉기와 8월 투쟁> <반제반파쇼 투쟁의 강화>(현대조선력사 452~472쪽)

 

대한민국 지도자를 폭압적 독재자로 규정

 

금성교과서는

李承晩 대통령이 독림운동을 이끌었고 민주공화제의 발전과 공산제국주의에 맞서 자유민주적 나라를 지킨 것 등에 대한 일체의 언급 없이 독재의 화신으로 그려내고,朴正熙 대통령은 국민을 탄압하고 국민적 저항만을 받은 대통령으로 기술했다.

 

반면,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해서는 사회주의 변화를 이끌고 국제변화에 대응했고,'우리민족 제이주의'를 내건 '주체적 민족주의자'로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금성교과서;

<이승만 정부는 장기집권을 모색하였다. 이로 인해 독재정치와 부정부패를 불러 일으켰고 결국4.19 혁명으로 물러나게 되었다.부패척결이나 친일파 청산 등의 민중 요구에는 소극적으로 대처하면서 권력을 강화하는 데 힘을 쏟았다. 이로 인해 민심은 점차 등을 돌렸다.>

 

<박정희는 유신개헌과 10월 유신을 통해서 장기집권과 권력의 강화를 꾀하였으나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의 거센반발을 받았다..궁지에 몰린 박정희 정부는 민주화 운동과 야당에 대한 탄압을 강화함으로써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276~289쪽)

 

북한; <이승만 정권은 이처럼 파쇼테러 독재를 강화하고 저반적 사회정치생활에 대한 야만적 폭압을 강화함으로써 남조선을 테러와 학살이 판치는 무법천지로,인간생지옥으로 전환시켰다>(현대조선력사 453쪽)

 

<군사 파쇼 무리들은 새 제도와 새 생활을 갈망하는 남조선 인민들의 혁명적 진출을 말살하고 심각한 위기에 저들의 식민통치 체제를 수습해보려고 전례없는 야수적  탄압과 파쇼테러 통치를 강화하였다>(현대ㅔ조선 력사 463쪽)

 

김일성,김정일의 통치와 세습에 대한 합리화

 

금성교과서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개인 숭배와 전체주의 통치를 비판하지 않고 미화시키고 있으며 북한이 내건 명분과 구호를 그대로 사실로 간주하고 있다. 김정일의 후계자 계승과 폐쇄적 폭압정치를 '주체','우리민족 제일주의' 등으로 합리화 함으로써 북한교과서와 거의 차이가 없다.

 

<북한은 본격적인 사회주의적 개혁을 추진하였다..북한은 우리식 사회주의와 조선민족 제일주의를 내세워 세계변화에 대응하는 한 편,부분적 개방정책으로..>(298쪽)

 

<대내적으로는 주체사상에 토대를 둔 '우리식 사회주의'를 강조하였다.당면한 문제를 스스로 책임지고 자체의 힘으로 해결하자는 것이었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근본적인 힘으로 '조선민족 제일주의'를 내세우고 있다>(306쪽)

 

<김정일은..1960년대 중반이후 조선노동당에서 조직,문화예술,홍보관계의 중요한 직책을 맡아 수행하였다...단순히 김일성을 보좌하는데서 벗어나 경제나 군사부분에서도 독자적인 지도를 하는데 이르렀다>(304쪽)

 

북한;

<사상에서 주체를 세우는 것은 자주성을 위한 인민대중의 혁명투쟁에서 나서는 선차적인 요구입니다..사상에서 주체를 세워야 정치,경제,국방 등 모든 분야에서 주체를 세울 수 있읍니다.>(361쪽)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다그치기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이 힘차게 벌어지고 있던 1970년대에 김일성과 당중앙에서는 사회를 주체사상화하는데 대한 새로운 전투적 강령을 제시하였다>(현대조선력사 412~413쪽)

 

북한의 전체주의 우상화 체게예 입각한 개념과 서술의 반복

 

금성교과서는

대한민국에 대해서는'헌법위에 군림한 대통령','유신체제, 종말을 고하다'.전두환 정부의 강압정치와 저항',등의 부정적 제목과 내용으로 설명한다. 반면 북한 현대사를 기술하는 방식은 북한 역사기술방식과 비슷하게 각 제목부터 '변화를 모색하는 북한'이나 '주체사상과 김일성 후계체제' 등의 제목 외에도 대부분 '건설','복구','체제정비' 등 우호적으로 기술했다.

 

금성교과서;

<사회주의 경제건설과 김일성 체제의 확립> <전후 복구사업과 사회주의 경제건설> <사회주의 국가체제의 정비> <북한 방문자들이 말하는 주체사상>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우리식사주의 제창>(298~307쪽)

 

북한;

 <사회주의의 전면적 건설> <전후 인민경제의 복구 건설> <사회주의 대건설 투쟁> <온 사회의 정치사상적 통일의 강화> < 국가사회제도의 공고화> <주체확립을 위한 투쟁> (현대조선력사 375~451쪽)

 

북한의 문제를 외부요인으로 돌리고 평화의 주도자로 설명

 

금성교과서는

개인소유를 부정하는 폐쇄적 공산주의 경제체제에 따른 북한의 실패를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북한 경제의 어려움을 '계획경제와 지나친 자립정책'으로 보고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이 군사적 대치 때문이라는 인식을 유도한다.북한이 선전적 차원에서 진행한 평화구호를 근거로 평화의 주도자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

 

금성교과서;

<철저한 계획경제와 지나친 자립정책은 경제발전을 더디게 하였다... 북한은 이러한 경제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군대를 건설현장에 투입하고 남한에 대해 지속적으로 군비축소를 제의하였다>(305쪽)

 

<막대한 군사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의혹이 국제사회에 제기되었다..북한은 미국에게 휴전 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꿀 것을 거듭 제안하였다. 평화협정으로 국제사회로부터 군사적 안전장치를 보장받으려는 것이다>( 314쪽)

 

북한;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할 것을 제의 하는 쳔지를... 미국 국회에 보냈다..미국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현대조선력사 516~517쪽)

 

<(김일성이) 외국군대 철거문제..남조선 군대축소 문제 등 원칙적 요구들을 명시하였다>(현대조선력사 497쪽)

 

결  론

 

1,금성교과서는 그 史觀,視覺,내용전개,사실 인용 등 모든 면에서 지금까지 축적되어온 한국 여가에 대한 연구결과의 반영으로 볼 수 없고 북한 전체주의 체제의 역사서들을 한국 교과서로 變容변용시킨 느낌이 들 정도다

 

2,한국근.현대사는 6種거의가 천편일률적으로 작성된 것으로 비춰볼 때 하나의 교육 준거안과 편수지침에 따른 결과이며 결코 집필진이 자율적으로 기존 역사 연구를 반영시킨 것으로 볼 수 없다.

 

3,금성교과서는 다음과 같은 교육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작성된 것으로 판단되며 그것은 북한이 북한 역사서나 교과서를 통해 교육시키고자 했던 목적과 거의 동일하다

 

(1),대한민국은 비동맹 체제로 가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2),대한민국은 미국의 지배하에 종속,예속되었다

(3),대한민국의 建國은 새로운 나라의 건설에 실패한 경우다

(4), 대한민국의 지도자는 부패했고 권력강화에만 전념했다.

(5). 북한은 가야할 길을 갔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6),북한은 사회주의적 개혁과 세계변화에 데응하고자 노력했다

(7), 김일성과 김정일은 북한을 통치할 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

(*),북한은 군비축소,평화협정 등 평화조치를 계속 추진해왔다.

 

글쓴이; 金光東(나라정책 연구원 원장)

실린곳;'금성출판사刊 고등학교 한국근.현대사'의 거짓 왜곡

펴낸곳;조갑제 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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