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옆집 문이 벌컥 열리며 밖으로 물건 같은 것들을 연거푸 집어던지는 소리가 났다. 그러고는 그 집 부인의 “나갓!” 하는 새된 목소리가 닫혀진 문밖에서 커다랗게 울려왔다. 누가 쫓겨난 것일까?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자니, 사내아이의 훌쩍이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렸다. 올봄에 중학에 들어간 그 집 외아들인 것 같았다.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그 애는 엄마에게 저렇듯 쫓겨났을까? 잠시 후 또 문이 벌컥 열리며 “이것도 필요할 거다.”라는 말과 함께 또다시 물건들을 격하게 내던지는 소리가 들렸다. 일부러 더 크게 문을 닫고 들어가는 기세로 보아, 그 애의 어머니는 무엇인가에 단단히 화가 나 있는 모양이었다.
아이는 지금 아마 층계참에 서서 울고 있을 것이다. 춥지는 않지만, 밖에 나가 그 아이를 데리고 들어올까 하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그 애를 밖으로 쫓아낸 어머니의 교육적인 의미를 희석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신문을 들고 앉아 눈으로는 활자를 더듬으면서도, 내 의식은 그 아이에게로 향해 있다. 집에서 쫓겨난 아이, 그 아이의 막막한 심정이 내 가슴에 전이돼 와 나를 답답하게 만든다. 어린 그 애에게는 집이 전부다. 아버지가 계시고 어머니와 동생이 있는 집, 그 집을 떠나 아이가 갈 수 있는 곳이란 아마 세상 천지에 없을 것이다. 훗날 그 아이가 크면, 붙들어도 떠나야만 하는 집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가라는 엄마의 호령이 무서워, 또 어리지만 사내아이의 조그마한 자존심이 작용하여 정말로 그 애가 가출을 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세상에 저 하나밖에 없는 것 같은 고독감을 안고 그 애는 세파의 충격 속에서 멍들어갈지 모른다.
다행히 그 애의 엄마는 현명한 사람이었다. 아들을 오래 밖에 세워두지 않고 곧 문이 열리며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그 아이는 그대로 서서 훌쩍거리고 있는 것 같다. 여동생이 엄마를 대신하여 제 오빠에게 들어오라고 성화를 부린다. 소년은 조금 망설이는 듯싶었지만, 그에게는 아무 대안이 없지 않은가. 계단을 딛는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그 아이가 마지못해 올라오는 기색이다. 현관에까지 오자, 어머니의 아무렇지도 않은 음성이 들린다. 조금 전까지의 격노(激怒)는 사라지고, 평소의 음색을 되찾은 그 애의 어머니가 아들을 학교에나 갔다 온 양 맞이하는 모양이다. 문이 닫혔다.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분명 그 애의 어머니는 아들을 따뜻하게 대해 주었을 것이다. 그것으로써 어머니의 교육적인 효과는 충분하지 않았겠는가.
옆집은 이제 아무 일 없었던 듯 조용하다. 조그만 안경을 똑같이 콧잔등에 걸친 그들 모자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린다. 아이들은 그렇게 어머니에게 야단을 맞으며 어린 시절을 통과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고향에서 국민학교에 다닐 때, 어머니에게 처음으로 흠씬 매를 맞은 적이 있었다. 포도알이 아기 젖꼭지처럼 작게 매달려 있을 즈음, 학교에서 남자 친구를 데리고 우리 과수원엘 왔다. 그러고는 선심이나 쓰듯, 그 먹지도 못하는 포도 송아리를 따서 그 애에게 안겨 주었다. 어린 마음에도 인심을 쓴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얼마쯤 그랬을까, 갑자기 뒤에서 어머니의 노기 띤 음성이 들리는가 싶었는데, 나는 뭔가에 떼밀려 그만 밭고랑에 엎어지고 말았다. 어머니의 큰 손이 내 작은 등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그때 나는 우리 어머니에게도 그렇게 무서운 데가 있는 줄 처음으로 알았다. 엎어진 채로 울면서 고개를 조금 쳐들어 보니, 친구가 멀리 둑 쪽으로 도망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이 그렇게도 비겁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 날 저녁, 쫓겨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차마 집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어린 소견으로 미루어 보아도, 엄청나게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땅거미가 졌는데도 아무도 부르러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바깥마당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초저녁 별이 내 눈물같이 반짝였다. 갑자기 내겐 집도 엄마도 없는 것처럼 여겨져 설움이 북받쳐 올랐다. 지척에 두고도 들어갈 수 없는 집, 거기에는 어머니가 계셨다. 그리고 사랑이 있고 웃음이 있었다.
지금 내 집 마루에는 단원(檀園)의 <기우도(騎牛圖)>가 한 점 걸려 있다. 등이 구부정한 남자가 소를 타고 산에서 내려오는데, 여백이 많아서일까 퍽 쓸쓸한 시정(詩情)을 자아낸다. “해는 지고 황혼이 깃든 산야에 소를 타고 귀가길을 재촉하네.”(斜陽騎犢入黃昏)라는 시구(詩句)가 들어 있는 그 그림을 바라볼 적마다, 내 가슴은 소슬해진다. 내게는 돌아갈 집이 없다. 기다려 줄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 집은 더 이상 집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