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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이야기 / 법정스님 상공에서 지상을 내려다볼 때 우리들의 현실은 지나간 과거처럼 보인다. 이삭이 여문 논밭은 황홀한 모자이크 젖줄같은 강물이 유연한 가락처럼 굽이굽이 흐른다. 구름이 헐벗은 산자락을 안쓰러운 듯 쓰다듬고 있다. 시골마다 도시마다 크고 작은 길로 이어져 있다.
아득한 태고적 우리 조상들이 첫걸음을 내디디던 바로 그 길을 후손들이 휘적휘적 걸어간다. 그 길을 거쳐 낯선 고장의 소식을 알아오고, 그 길목에서 이웃 마을 처녀와 총각은 눈이 맞는다. 꽃을 한아름 안고 정다운 벗을 찾아가는 것도 그 길이다.
길은 이렇듯 사람과 사람을 맺어준 탯줄이다. 그 길이 물고 뜯는 싸움의 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사람끼리 흘기고 미워하는 증오의 길이라고도 생각할 수 없다. 뜻이 나와 같지 않대서 짐승처럼 주리를 트는 그런 길이라고는 차마 상상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미워하고 싸우기 위해 마주친 원수가 아니라, 서로 의지해 사랑하려고 아득한 옛적부터 찾아서 만난 이웃들인 것이다. 사람이 산다는 게 뭘까? 잡힐 듯 하면서도 막막한 물음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일은, 태어난 것은 언젠가 한 번은 죽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 생자필멸, 회자정리, 그런 것인 줄은 뻔히 알면서도 노상 아쉽고 서운하게 들리는 말이다. 내 차례는 언제 어디서일까 하고 생각하면 순간순간을 아무렇게나 허투루 살고 싶지 않다.
만나는 사람마다 따뜻한 눈길을 보내주고 싶다. 한 사람 한 사람 그 얼굴을 익혀두고 싶다. 이 다음에 어느 길목에선가 우연히 서로 마주칠 때, 오 아무개 아닌가 하고 정답게 손을 마주 잡을 수 있도록 지금 이 자리에서 익혀두고 싶다. 이 가을에 나는 모든 이웃들을 사랑해주고 싶다. 단 한 사람이라도 서운하게 해서는 안될 것 같다. 가을은 정말 이상한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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