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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12/23
 

조선수군을 만나면 도망치라...

2009.10.29 06:29 | 역사 자료 모음 | 고락산성

http://kr.blog.yahoo.com/kj87042003/64288 주소복사

                                           조선수군을 만나면 도망치라...
                                                                                        | 역사.인물 | ok77

 

흔히 이순신 장군의 대단함을 뜻하는 말로 흔히 인용하는 말이 있다.

"조선 수군을 만나면 도망치라!"

한산도에서 이순신의 수군에 참하게 깨지고 나서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휘하 장수들에게 내린 명령이다. 실제 나도 이것이 당시 토요토미 히데요시와 일본군의 굴욕이라 여기고 있었는데...

문득 생각했다. 과연 당시 일본군에게 있어 가장 좋은 선택이란 무엇이었을까? 조선수군을 격멸하는 것?

사실 하자고 하면 어떻게든 해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천 여 척의 전선에, 10만의 병력에, 아무리 이순신과 그의 수군이 날고긴다고 해도 그런 압도적인 전력차에서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다만 과연 그럴 절실한 이유가 - 당위가 있을까?

당시 일본 육군은 지상에서 꽤 선전하고 있었다. 너무 선전한 탓에 전선이 너무 길어져 보급에 애를 먹고 있던 터였다. 그나마 진격로상에 있던 조선의 관아에서 입수한 환곡이 아니었다면 아예 버티는 자체가 무리였을 것이다. 여기에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이며 호남과 경상좌도의 관군이며, 보급로를 위협해 오고 있었다. 그런 때 조선수군을 치고자 전력을 기울인다?

전혀 실효성이 떨어졌다. 자칫 조선수군을 공격하느라 무리하게 전력을 동원했다가 후방이 비어 버리면 전방의 일본군은 고립되어 버린다. 조선수군을 잡을 수 있으면 좋지만 만일 실패하기라도 하면 그대로 평양과 경흥까지 진격해 들어간 일본군의 주력이 고립되어 전멸하는 최악의 상황마저 초래할 수 있다. 그렇다고 조선수군을 괴멸시키면 뭐가 크게 좋아지는 게 있느냐면 그건 또 전혀 아니었으니. 이래저래 리스크는 큰 대신 돌아오는 것은 적은 말 그대로 먹기도 그렇고 버리기도 그런 계륵이었다.

어찌할까? 생기는 것은 없는데 또 위험부담까지 크다면? 결국 가장 좋은 것은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따고배짱이라는 말이 있다. 노름하면서 일단 따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내 마음이다. 잃은 놈들이야 본전생각 때문에라도 어떻게든 판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겠지만, 일단 따고 난 다음에는 언제 툭툭 자리를 털고 일어나더라도 기왕에 딴 돈은 남게 되니까. 물론 그런 짓 하다가 괜히 어디 가서 칼침 맞고 할 수 있기에 웬만하면 그런 짓 잘 하지 않는다.

싸움도 마찬가지다. 이미 일본군은 많이 땄다. 호남을 제외한 거의 전 국토를 손아귀에 넣었고, 왕도인 한양과 북방의 요충인 평양까지 차지한 뒤였다. 왕은 만주와 마주하고 있는 의주까지 도망가 압록강을 건널 궁리만 하고 있었고. 급한 건 조선군이지 일본군이 아닌 것이다. 보급로만 제대로 유지하고, 전선의 주력이 이제까지처럼만 계속해 선전하면 이순신의 조선수군이야 어찌하든 결국 최후의 승자는 일본군이 될 터였다. 그런데 과연 조선수군과 일부러 위험을 감수해가며 싸울 필요가 있을까?

이른바 현존함대전략이라는 것이다. 이순신도 한산도에 통제영을 두고 이 전략으로써 소수의 조선수군으로 다수의 일본수군을 억누르고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일본수군 역시 조선수군에 비해 압도적인 숫적 우위를 이용해 조선수군의 행동을 억압하고 나아가 조선수군의 방해로부터 자유를 획득하여 현재의 전황을 유지하는 목적에서 그러한 선택을 한 것이었다.

"조선수군을 만나면 도망치라!"

즉 이 말은 흔히 아는 것처럼 이순신과 조선수군에 놀란 일본군이 두려움에 싸움을 회피한다거나 하는 그런 뜻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보다 고도의 전략 - 이미 전략적으로 크게 우위에 있던 일본군의 입장에서 굳이 무리하거나 할 것 없이 지금의 상황을 계속 유지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승리를 쟁취한다는 무시무시한 책약에서 나온 한 마디였던 것이다. 가히 일본의 전국을 통일한 패자 토요토미 히데요시다운 한 수였달까?

실제 이순신은 당해 8월 일본 수군의 근거지이던 부산포를 공격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기도 했었다. 도저히 함대가 진입할 수 없는 불리한 환경이었음에도, 일본 수군에게 일대 타격을 가하기 위해 답지 않게 무리해서 부산포로 진입하느라 녹도만호 정운이 전사하는 등 적잖이 피해를 입고 있었다. 물론 수많은 적선을 불태우고 전과가 작지는 않았지만 가장 핵심이 되는 일본 본토로부터 부산포로 이어지는 해상보급로가 여전히 건재함으로써 전략적으로는 실패한 싸움이었다. 더구나 여전히 숫적으로 열세에 있던 조선 수군으로서는 다시 시도할만한 모험이 아니었다. 일단 여기까지는 히데요시의 승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배야 몇 척 부서지고, 병사야 얼마간 죽어나가도, 육전에서는 연전연승중이었고, 가장 중요한 해상보급로도 유지되고 있었으니.

다만 히데요시의 계산이 결정적으로 틀어지게 되었던 것이, 조선의 구원요청에 응한 명군의 개입과, 이듬해인 계사년 이래 부쩍 조선의 관군과 의병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더욱 후방을 압박해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임진년 말이 되면 초유사 김성일의 활약으로 경상좌도는 거의 회복하고 있었고,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들이 크게 일본군에게 승리를 거두거나 하지는 못했지만 그렇지 않아도 길어진 보급로에 상당한 압박을 주고 있었으니. 여기에 명군의 개입으로 평양성까지 다시 잃게 되면서 육전에서의 주도권도 거의 조명연합군에게 넘어가게 되면서 도리어 일본군이 더 급한 처지로 내몰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때는 이순신 역시 한산도에 자리를 틀고 앉아 거꾸로 현존함대의 협수로 통제의 전략으로 일본수군의 행동의 자유를 빼앗고 있던 터였고.

이것은 참으로 히데요시로서는 참으로 뼈아픈 일이었다.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조선수군을 괴멸시켰다면 한양으로 물러난 일본군 주력에 해상을 통해 물자를 보급함으로써 뒤집히려는 전황을 바꾸어 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때는 이미 때가 늦어 도리어 목에 들이민 칼이 되어 있던 참이었으니. 덕분에 한양에서도 일본군은 철수하여 남쪽의 해안지대에 틀어박히게 되었고, 히데요시의 그러한 판단은 겁장이의 그것이 되어 지금까지도 조롱의 대상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우리로서는 무척 다행스런 일이겠지만 히데요시의 입장에서 꽤나 억울했으리라.

하여튼 그래서 항상 느끼는 것이 싸움이라는 게 반드시 싸워서만 이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싸우지 않고서도 이기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다만 그러한 때라도 결정적인 승리란 싸워서 쟁취하는 것이겠지만. 과연 당시 명군의 개입이 늦고, 경상좌도의 수복이 늦어 일본군이 처음 기세 그대로 쾌속진군하여 의주까지 들어가 조선의 왕을 사로잡거나 대신들을 포로로 잡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렇더라도 과연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수군은 일본군에 대해 위협이 될 수 있었을까? 왕이 도망치거나 사로잡히고, 조선의 대신들마저 그 모양이 되고, 조선의 전토가 일본의 손 아래 들어간 상황에서? 그렇더라도 얼마나 버틸 수 있었을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명군의 신속한 개입이 다행스러운 이유고, 선조가 한양에서 미적거리지 않고 재빨리 튀어 평양으로, 의주로 잘도 도망친 것이 다행스러운 이유다. 진주성을 끝까지 지켜낸 김시민이며, 의병장 곽재우, 김천일, 고경명 등이며, 경상도 초유사로 경상도에서의 관군과 의병의 활동을 뒷받침한 김성일이며 그 모두가 고마운 이유이고.

우리나라에서야 참 우습게 취급당하는 토요토미 히데요시지만 일본의 역사를 보더라도 이만한 인물이 또 없다. 그 지략도 지략이거니와 사람들을 아우르는 카리스마라는 것이... 신분상의 한계만 아니었다면 오다 노부나가나 도쿠가와 이에야스보다도 윗줄에 놓을만한 인물이 토요토미 히데요시다. 다만 그 신분상의 한계를 끝내 뛰어남지 못하고 말년에 스스로 무너진 것이... 우리나라에도 불행하고, 또 일본의 역사에도... 아, 이건 좀 우리에게는 다행일까?

이순신은 바보들을 상대로 싸움을 한 것이 아니었다. 권율이며 류성룡이며 정기룡이며 곽재우며 어디 덜떨어진 떨거지들을 상대로 그리 힘들게 싸우고 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랬다면 그들이 병신이겠지. 그러나 그런가? 토요토미 히데요시, 가토 기요마사, 구로다 나가마사, 시마즈 요시히로, 구키 유키타카, 후쿠시마 마사노리 기타등등등등등... 개인적으로 토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해서는 임진왜란과는 별개로 상당한 호감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만한 매력이 있는 인물들이었다. 인정하기 죽도록 싫겠지만 말이다.

이순신도 뛰어났고 토요토미 히데요시도 뛰어났다. 권율도 뛰어났고 가토 기요마사도 뛰어났다. 그래서 힘들었고,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이겼다. 어느 한 개인 때문이 아닌 모두의 힘으로. 시대가. 사회가. 그 모든 것이. 그것이 역사라는 것이다.

화석 2009.10.29  10:44

네 그렇지요.
세계 역사상 최고의 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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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수 2009.10.29  17:10

지혜로운(?) 토요토미 히데요시 같으니라구 ㅋ

우리나라에서야 참 우습게 취급당하는 토요토미 히데요시지만
일본의 역사를 보더라도 이만한 인물이 또 없다.
그 지략도 지략이거니와 사람들을 아우르는 카리스마라는 것이... ..**

산성님 담아가서 다시 읽어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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