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 거란·금 견제 위해 고려 필요 양국 간 문물교류, 문종 때 '봇물' 金 습격 위해 "길 열어달라" 요청도
고려는 개국 초만 해도 거란의 압도적 위력과 맞서 싸워야 했기에 송(宋)과의 관계가 그리 활발 하지 않았다. 조선과 명(明)의 관계와 달리 고려와 송은 육로(陸路)가 차단돼 있었다. 그러나 거란과의 관계가 안정된 현종 이후 고려는 본격적으로 송과의 접촉을 시도했다.
<요나라와의 전투신... 곰 >
실은 송나라 쪽에서 고려에 구애(求愛)하는 입장이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고려는 거란의 눈치도 봐야 했지만 당시 송의 국력이 당이나 명과 비교하면 미미했기에 접근할 이유가 별로 없었다. 반면 송은 고려와 연합해 거란과 맞서야 할 필요가 컸다.
문종 22년(1068) 송나라에서 상인 황신(黃愼)을 고려에 보낸 것은 상업적 이유보다 국방 전략 차원이었다. 황신은 2년 후에도 고려를 찾았다. 송나라의 구애에 고려도 문종 26년 봄 김제 (金悌)를 송나라에 보내 국교(國交)를 정상화한다.
원래 고려와 송나라는 고려 광종 13년(962) 때 국교를 맺기는 했지만 이후 거란의 방해로 사신 의 교류는 거의 없었다. 결국 문종 때부터 고려와 송의 문물교류는 가히 봇물 터진 듯 이뤄진다.
<금나라 전성기>
'고려사'에 실린 송상(宋商)의 내항(來航)기록을 전수 조사한 김상기(金庠基)에 따르면 고려 현종 3년(1012)부터 충렬왕 4년(1278)까지 260년간 120여차례 5000명의 송상이 고려를 찾았 다고 한다.
그중 문종 때만 40여차례 송상이 고려를 찾았다. 3분의 1이 문종 때 집중된 셈이다. 그러나 고려와 송나라의 관계가 순탄치만은 않았다. 송나라의 속셈은 교역보다는 대외전략에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1125년 거란(요나라)이 망하고 대신 금(金)나라가 들어섰고 송나라는 문약(文弱)으로 흐르다가 2년 후인 1127년 수도 북경을 버리고 남경으로 천도함으로써 남송시대가 개막된다.
<송, 거란, 고려>
남송은 금나라의 압박을 타개하기 위해 연려제금책(聯麗制金策)을 구사한다. 한 마디로 고려 와 연대해 금나라를 제압해보겠다는 구상이었다. 이때 고려는 인종 시대였다.
이 무렵 송나라는 황제 고종(高宗)의 아버지, 어머니, 형 등이 금나라의 인질로 잡혀 있었는데 이들을 구출하기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 고려에 길을 청하였다.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 (豊臣秀吉)가 가도입명(假道入明)을 내세운 것처럼 송나라는 고려가 금나라를 습격하는 길을 열어줄 것(假道)을 청한 것이다. 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었다.
그러나 고려는 송나라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무리 문물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바다 건너 송나라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국경을 맞대고 있는 강력한 신흥국가 금나라와 맞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무렵 고려는 송나라와 금나라에 대해 철저한 중립(中立)으로 일관했다. 이런 가운데도 고려와 송나라의 교역은 확대일로를 달렸다.
<거란과의 싸움이 주된 줄거리... 천추태후>
교역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고려의 중립정책은 결국 송나라의 실망으로 이어졌고 나아가 송나라 조정의 일부에서는 고려를 의심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다. 점차 송나라 조정에서는 고려의 사신을 금나라의 간첩으로 간주하려는 시각까지 생겨났고 이는 고려와 송나라의 민간무역에 까지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김상기의 분석이다. "의종의 다음 명종 27년 동안에 송상(宋商)의 출입이 3회에 불과하였으며 신종 7년간에는 전혀 없었고 희종 7년간에 겨우 1회에 지나지 못하였으며 고종 46년 동안에 2회였다."
그나마도 얼마 후 몽골의 세계제국이 건설되면서 중국 강남의 한구석으로 몰렸던 남송은 망하 고 말았다. 자연스럽게 송나라 상인의 내항도 결국 충렬왕 4년(1278) 송나라 상인 마엽(馬曄) 이 건너온 것을 끝으로 완전히 종결을 맺게 된다. < 거란의 소태후역 >
한편 고려와 송나라의 교역이 가장 활발했던 현종 시대에 대식(大食·아라비아)상인의 내항도 몇 차례 있었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고려와 아라비아의 직접 교역은 적어도 '고려사'를 토대 로 할 때 3차례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중 어떤 대식상인이 고려라는 이름을 'Korea'라고 알려 지금도 우리는 대외적으로 코리아로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