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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대전의 왜곡된 역사 루시타니아호의 침몰
1차대전 초반이었던 1915년 5월7일 14시20분 뉴욕에서 출발하여 리버플에 도착예정이었던 4만4,060톤급 루스타니호가 독일의 잠수정에 의해 아일랜드 해안으로부터 8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서 격침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영국은 루시타니아호가 여객선이었다고 주장하며 독일을 맹비난하였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역시 독일이 비무장상선에 대해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부었다고 믿었다. 심지어 루시타니아호의 침몰이 1차 세계대전당시 미국이 연합국측에 가담한 결정적 이유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것은 루시타이호의 침몰로 인해 희생당한 1200여명 중에 미국인이 128명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건이 벌어진 후 2년여가 지나서야 미국은 1차대전의 참전을 결정하였기 때문에, 과연 미국의 참전과 루시타니아호의 격침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을지는 논란의 여지가 대단히 많다.

루시타니아이호의 항해목적
1차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은 독일에 대해 해안봉쇄작전을 실시하였고, 독일은 이에 맞서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실시하였다. 특히 독일은 무장함선은 물론 군수물자를 수송하는 선박에 대해서도 격침시키겠다는 경고를 분명하게 하였다. 실제 독일은 순수 민항선이나 하물선에 대한 공격은 자제하였으며, 오히려 민항선에 대한 공격은 연합군측의 공격이 더욱 심하였다.
그렇다면 루시타니아호는 어떤 선박인가? 우선 이 배는 중무장 군함은 아니다. 다만 북대서양을 횡단하는 정기여객선중에는 가장 빠른 선박이었다. 특히 이 배에 타고있던 희생자 중에는 2세이하의 유아가 100여명이나 되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미국인들의 독일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켰다.

그러나 조금더 생각하면 이상하다. 독일이 군함 또는 군수물자 운반선에 대한 공격의사를 밝혔음에도 가장 위험한 항로를 선택하였는가? 또 윈스턴 처칠은 전쟁중임에도 불구하고 중립국과의 화물선 입출항을 적극 추진하였다. 전쟁상황임을 고려할때 화물선박은 적국에 의해 군수물자 운송선박으로 충분히 간주될 수 있음을 예상하였음에도, 민간선박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항로를 개방하였다.
새롭게 밝혀진 사실, 루시타니아(Lusitania)호에 실린 군수물자
루시타니아호가 침몰과 함께, 그안에 있던 모든 비밀역시 영원히 바다속으로 사라지리라 믿었던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대한 선체에 비해 단 한발의 어뢰명중으로 인해 완전침몰까지 18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또 700여 명이 넘는 생존자들 역시 독일 잠수정에 의해 어뢰공격을 받은 후 2차 폭발이 일어났다는 증언을 하였다. 그렇다면 루시타니아호안에, 선박을 20분도 안돼 침몰시킬만한 파괴적인 폭발물이 실려 있을 가능성도 있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독일정부는 처음부터 불을 끄고 운항하는 선박은 전부 적성물자를 싣는 배로 간주, 통보없이 격침시키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다. 그러나 영국은 루시타니아를 비롯하여 민간선박에게 안전상의 이유로 등화관제를 하게 했다. 루시타니아호가 침몰되기 몇시간전에도 영국 군함이 루시타니아호에 등화관제를 지시했다고 한다. 물론 등화관재를 실시한 것 자체를 잘못 이라고 할 수 없고, 불을 켜고 항해한다고 해서 독일잠수정의 공격에서 안전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문제는 이미 그 이전에도 몇차례 격침사건이 있었음에도 항해를 강행하였다는 것에 있다.
참사가 일어나기 전날인 5월5일과 6일 이틀 동안에도, 인근 해역에서 독일 잠수정 U-20호에 의해 영국 선박 3척을 격침되어 경계령이 발령된 상황이었다. 더구나 사건당시 루시타니아호는 속도를 떨어뜨렸으며, 호위를 위해 합류할 예정이었던 영국 구축함 2척도 따라붙지 않는등 2천여명이 탑승한 대형여객선에 대해 너무 안일한 대처로 일관하였다.

그리고 이 문제는 1차대전과 2차 대전이 벌어지고, 또 탐사장비의 미비로 인해 한동안 해결되지 못하였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백만장자인 Gregg Bemis는, 최근의 발달한 탐사장비를 이용, 90m 이하 깊이에 잠들어 있던 루시타니아호의 일부를 탐사하는데 성공하였다. 그 결과 4000상자에 걸쳐 400만 발에 이르는 탄약과 1250상자 내외의 폭약이 실려있었을 것으로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이 수치가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단순히 일부 개인에 의한 은닉이 아니라, 조직적이고도 계획적으로 전쟁군수물자를 수송하고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루시타니호의 민간인들은 군수물자를 수송하기위한 방패막이에 불과하였던 것일까? 아니면 미국내 참전여론을 높이기 위해 의도적인 무리수를 둔 것일까? 연합국측의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루시타니아호의 항해를 강행하였다고 하더라도, 승선인원의 절대다수가 민간이었던 만큼 독일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선박에 대한 독일측의 해저공격이 이루어지고 상황에서도, 2000명의 민간인을 태운 선박의 항해를 강행한 선장및 이를 허락한 미영측의 태도는 분명한 문제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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