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뒤 푸나후스쿨이라는 학교를 찾았다. 한 해 수업료가 1만달러가 넘는 좋은 사립학교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가 다닌 학교다. 해마다 봄이면 푸나후스쿨에서는 축제가 벌어진다. 축제 마지막 날 벼룩시장이 열리는데, 1달러를 주고 커다란 대봉투를 사면 시장에 나온 모든 것을 욕심껏 봉투에 담아갈 수 있다. 숟가락, 신발, 옷, 냄비, 밥솥, 프라이팬에 아보카도와 파인애플까지. 지역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부자들이 아무 조건 없이 내놓은 것들이다. 가난한 나는 거기에서 내게 필요한 것들을 살 수 있었다. 그 속에는 희망도 들어 있었다. 이제 다시 사는 거다.
그리고 무작정 하와이의 한 방송국을 찾아갔다. 한국에서 20년 동안 방송작가로 일한 경력을 보고 일자리를 줬다. 마침 한류 열풍이 하와이에 상륙한 때라, 하와이대학에서 드라마 강의도 맡았다. 그때 한 교수가 하와이에 온 이유를 물었다. "너무 절망해서 죽으려고 왔다"고 했더니 그 교수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인생의 밑바닥까지 가보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생각하라"고. "절망의 밑바닥, 그거 언제 가보겠는가. 게다가 당신은 작가가 아닌가. 인생의 밑창을 경험해야 좋은 글도 나오는 것이다"라고. 한마디 한마디가 내 가슴을 찔렀다.
죽으러 갔던 섬에서 나는 5년을 더 살게 되었다. 아들들은 LA에서 공부를 마치고 성인이 되었고, 나는 제2의 생을 하와이에서 창조하며 살았다. 지금은 실리콘밸리 IT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큰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혹독한 비바람 지나고 나면 절망도 추억이 된다. 살아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축복이고, 한없이 고맙다.
유강호 극작가, 미 서니베일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