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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rnando (khy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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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8/09/08
 



Knife Pistol


이전에도 잠깐 소개한 적 있는 나이프 피스톨입니다. 적이 방심한 순간을 노리겠다는 아주 비열한(...) 무기이군요.


이와같은 구조로 생겼습니다.

몇가지 추가로 재미있는(...) 암살 무기들을 보자면,




장갑 형태의 권총입니다. 중국 쪽에서 만들어진 것인데, 사용법은 일반적은 권총과는 다르게 아마 상태를 치는 순간 총알이 발사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돌출된 부분이 안으로 들어가며 격발하는 방식일 것으로...



호신 무기라고 판매되는 플래쉬 형태의 샷건입니다. 일반인이 근거리에서 상대를 정확하게 맞추는 것은 불가능에 가가운데 이와같은 샷건이라면 정조준이 아니더라도 가능하리라 보입니다.



자물쇠 형태로 생긴 총입니다. 이건 그냥 도둑을 죽여보겠다는 뜻인듯.


reference
http://www.guillaumemorel.com/en-hoplology.htm
http://media.techeblog.com/images/unusualguns_1.jpg

[스크랩] 북한에도 공휴일이 있을까?

2009.11.08 18:48 | Military | Fernando

http://kr.blog.yahoo.com/khy001/2007 주소복사

달력을 들여다보면 그달그달에 있으면 하는 공휴일...북한에도 공휴일이 있다고 합니다.

1월 1일 설날


 
새해 첫 날 아침이 되면 북한의 모든 가정에서는 특별배급으로 공급받은 물품으로 제사상 차림도 준비하고 가족들이

함께 먹을 흰쌀밥도 마련하며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남편을 극진히 모시는 것을 미덕으로 아는 북한의 아내들은

아침상에 애써 구해 놓은 술 한 병을 남편을 위해 내놓기도 한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은 각 지역에 있는

김일성 주석의 동상 이나 평양의 금수산 기념궁전을 찾아 꽃바구니를 바치고 인사를 드린다는 점.

1월 15일 훈민정음 창제 기념일



 
남한은 한글날이 10월 9일인데 북한에서는 1960년대 중반까지 훈민정음을 완성한 날을 기념한다는 뜻에서 1월 15일을

훈민 정음 창제 기념일로 지켜 왔는데 그 이후에는 얼마 전까지 1월 15일이 어떤 날인지 전혀 언급도 하지 않다가.

2001년에는 북한의 텔레비전 방송에서 1월 15일이 훈민정음 창제 기념일이라고 밝혔지만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음력설(음력 1월 1일)



우리는 양력설보다 음력설을 더 큰 명절로 생각하만 북한주민 중에서는 음력설을 진짜 설로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음력설을 명절로 지키는 것을 금지했다가 지난 89년에서야 휴식일로 지정했기 때문~


2월 16일 김정일 생일


북한에서 말하는 민족최대의 명절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일성 주석의 생일~

2월 16일은 그 중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이지만 북한이 처음부터 이 날을 크게 기념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북한당국이 이날 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던 것은 1975년이었고 그 이듬해인 1976년에 북한당국은 법정공휴일로 정했습니다.

2월 16일을 민족최대의 명절 로 지정한 것은 1992년 그가 50회 생일을 맞았을 때의 일~

북한에서 법정 공휴일은 아니지만 김위원장과 관련해 중요하게 취급되는 기념일이 있는데

그가 국방위원장 자리에 오른 4월 9일과 북한군 최고사령관에 추대를 받은12월 24일이 바로 그 날이라고..  

3월 1일 3.1인민봉기기념일




북한에서는 3.1절을 그다지 중요한 날로 소개하지 않습니다. 공휴일도 아니고 특별한 기념행사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북한의 신문에서 3.1운동을 소개한 내용을 읽어보면 한결같이 김일성 주석의 아버지 김형직이 주도해서 일어났다고 설명.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류관순 열사와 민족대표 33인 등 수많은 순국선열에 대해서는 전혀 소개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3월 2일 식수절


3월 2일은 북한의 식수절입. 우리의 식목일에 해당하는 날이라고 합니다. 북한의 식수절은 원래 4월 6일이는데

1999년부터 3월 2일로 날짜를 바꾸어 기념하고 있다고.... 3월 2일로 식수절을 바꾼 이유는 1946년에 김일성 주석이

부인 김정숙, 아들 김정일과 함께 모란봉에 올라 나무를 심은 것을 기념하는 뜻이라고...

우리는 식목일이 공휴일이지만 북한의 식수절은 공휴일이 아니며 식수절에는 북한 전역의 군부대와 직장, 학교별로

미리 할당해 놓은 식수지역에 나무심기 행사를 진행한다고 합니다.


3월 8일 3.8 국제부녀절


북한에서는 3월 8일을 국제부녀절이라고 부르며 크게 기념. 이 날이 오면 북한의 유일한 여성단체인

조선민주여성동맹(여맹) 주관하에 기념집회 등 각종행사를 개최하며 또한 텔레비전과 신문에서는 집집마다

남편이 아내에게 꽃을 갖다 주거나 밥상을 차려 주는 등 특별대우를 할 것을 권장하기도 합니다


4월15일 태양절, 김일성생일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4월 15일 역시 북한정권이 초창기부터 크게 기념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 날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 것은

1962년의 일이라고 합니다. 1968년에는 이 날을 법정공휴일로 정했고 그 이후 김일성 주석의 60회 생일인 1972년에

이 날을 민족최대의 명절로 정했다고 합니다.


4월25일 조선인민군 창건 기념일



우리 국군의 날에 해당하는 날을 북한에서는 조선인민군 창건 기념일이라고 부릅니다.

북한에서 4월 25일을 군대의 창건일로 기념한 것은 1978년 이후의 일이고 그 전 해인 1977년까지만 해도 2월 8일이

기념일었다고..그런데 1978년 2월 8일 즈음에 갑자기 북한당국은 1932년 4월 25일에 항일유격대가 조직됐다고 주장하면서

그 날을 기념한다는 이유로 기념일을 4월 25일로 변경.

이날이 국가적 명절로서 공휴일로 지정된 것은 비교적 최근인 1996년입니다.


5월 1일 5.1절, 국제노동절




북한에서는 5월 1일을 국제노동절이나 노동절이라고 합니다. 이 날은 국가적 명절로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 날이 되면 북한 전역의 경기장과 유원지에서 체육경기와 예술공연을 진행하여 명절 분위기가 난다고 합니다.

2001년 5월 1일에는 북한의 조선직업총동맹(직맹)에서 우리의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관계자를 대규모로 초청하여

금강산에서 남북한 주민이 함께 노동절 기념행사를 벌이기도...


6월 1일 국제아동절




북한에도 우리의 어린이날에 해당하는 날이 있고 우리와 달리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북한 전역에서

각종 기념행사가 열린다고 합니다. 6월 1일 국제아동절과 6월 6일 조선소년단 창립기념일이 바로 그런 날에 해당~

국제아동절은 탁아소와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이를 위한 명절이라고 할 수 있고 이 날 북한 전역의 유치원과 탁아소는

학부모를 초청하여 운동회와 학예회를 연다고 하는군요~

비록 공휴일은 아니지만 대다수 학부모는 휴가나 조퇴를 받아 자녀들의 행사를 지켜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고 합니다.


6월 6일 소년단 창립일




조선소년단 창립기념일인 6월 6일은 우리의 초등학교 연령에 해당하는 북한 어린이를 위한 명절날.

북한에서는 누구나 소학교 2학년 무렵 소년단에 가입하여 중학교 3학년까지 이 단체의 구성원으로서 단체생활을 해야 합니다.

6월 6일은 소년단원 전체를 위한 명절입니다.

  이 날 소학교에서는 새로 소년단에 가입하는 어린 학생들을 위해 입단행사를 하고 행사가 끝나면 학교 대항 체육대회를

가지기도 합니다. 한편 이 날을 전후하여 모범소년단원들을 별도로 뽑아 소년단 야영소에 가서 야영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7월 27일 전승 기념일




이 날은 6.25전쟁을 사실상 마무리하는 휴전협정을 조인한 날. 북한에서는 이 날을 전승기념일로 지정하여 기념.

북한당국은 1973년 7월 27일, 휴전협정 20주년을 기념하는 날에 이 날의 명칭을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일로 정했고

그 이후 해마다 중앙보고대회와 경축야회를 열면서 기념하다가 1996년, 43주년을 맞을 때부터 이 날을 국가적 명절로 정하고

공휴일로 지정~


8월 15일 조국광복의 날


우리는 8월 15일을 광복절로 기념하고 있는데 북한에서도 이 날을 조국광복의 날이라고 하여 공휴일로 지정하여 기념.

8월 15일은 설날이나 추석과 같은 전통적 명절을 제외하면 오늘날 남북한이 동시에 법정 공휴일로 기념하는 유일한 날~

그렇지만 북한에서는 우리나라의 해방이 김일성 주석의 개인적인 업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8월 28일 청년절




북한에는 성년의 날이 없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비슷한 의미를 지닌 날로 8월 28일 청년절이 있는데 

이 날은 북한의 젊은이를 위한 명절~  북한의 노동신문은 1927년 이 날, 김일성 주석이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이라는

단체를 결성했기 때문에 그 일을 기념하는 뜻이 있다고 설명~


9월 9일 북한정권 창건 기념일



이 날은 1948년 9월 9일, 북한정권을 창건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흔히 9 · 9절이라고 하는 이 날은 조선노동당 창건

기념일인 10월 10일과 함께 북한의 사회주의 5대 명절 중의 하나로 꼽힌다고 합니다.

특히 1997년 9월 9일은 북한당국이 김일성 주석이 출생한 해인 1912년을 원년으로 하는 주체연호를 모든 공식문서에

표기하기 시작한 날로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추석(음력 8월15일)


음력설과 마찬가지로 추석도 북한에서는 한동안 금지된 명절이는데 그러다가 1972년 남북대화를 계기로 조상의 묘소를 찾아

성묘하는 것을 허용하기 시작했고 1988년에 이르자 추석을 휴식일로 지정. 

북한주민들은 하루를 쉬는 추석날, 제수를 마련해서 조상의 묘소를 찾고 묘소에 도착하 면 낫으로 벌초를 한 다음

제수를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는데 제사를 지낼 때 큰 절을 하는 대신 선 채를 고개를 숙여 목례를 한다고 합니다.


10월 10일 조선노동당 창건 기념일

10월 10일은 1945년 10월 10일 북한에서 조선노동당을 창당한 것을 기념하는 날.


12월27일 헌법절




12월 27일은 우리의 제헌절에 해당하는 북한의 헌법절. 우리의 제헌절은 헌법을 최초로 공포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지만

북한의 헌법절은 헌법을 처음으로 제정하거나 공포한 날이 아니라 기존 헌법을 소위 사회주의 헌법으로 고친 날을 기념.


북한과 남한 다른점이 많네요~

[스크랩] '죽음의 급조폭발물(IED)' - 아프간 '비상사태' (영상)

2009.11.06 18:50 | Military | Fernando

http://kr.blog.yahoo.com/khy001/1978 주소복사

'죽음의 급조폭발물(IED)' -  아프간 '비상사태'



미군들이 험비(HMMWV)를 타고 순찰을 하던 중
갑자기 도로에서 폭발이 일어나는 장면...

주변은 연기로 가득차고 부상자는 소리를 질러댄다.
차량 안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되버리는 모습...

영화에서 나오는 장면이 아닌, 지금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라고 하는데요.



도로 위에서 폭발한 것은 ‘급조폭발물’(IED)로
수많은 연합군의 목숨을 앗아간 무기라고 합니다.
특히 작년과 올해 아프간에서 전사한 미군 중 절반은
IED에 공격당했다고 하는데요. 끔찍하네요....'''

IED는 일종의 부비트랩으로 탈레반 같은 민간인들이 제작하다보니
종류와 형식도 가지각색이다. 때문에 연합군도 미리 대비하지 못하고
당하고 나서야 조심하는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가장 흔한 IED는 땅 속에 묻어놓고 폭발시키는 것으로,
지뢰와 비슷하지만 폭발력은 더욱 강력하다고 !!!
또 밟아야 터지는 지뢰와 달리 주변에서 지켜보다
원격조종으로 터뜨리는 방법이 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하는데요.

뿐만 아니라 길 가에 주차된 차량이나 버려진 타이어,
심지어 동물의 사체 등에도 IED가 숨겨져 있다고..
또 장갑을 관통할 수 있는 형태의 파편(폭발형성관통자, EFP)을 만들어내는
IED도 사용돼 연합군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다고 하네요..



가장 많은 피해를 입고 있는 미국은
‘MRAP’(Mine Resistant Ambush Protected)란 차량을
급히 개발해 일선에 보급했다고 합니다.

 MRAP는 방탄유리와 두꺼운 장갑을 설치하고,
폭발력을 분산시킬 수 있도록 차바닥을 V자로 만들어
탑승자를 보호할 수 있고, 휴대전화의 주파수를 방해할 수 있는
전파발생기를 장착하는 등 다양한 대응법이 사용되고 있다.

출처 - 유튜브

[스크랩] 서울 에어쇼, 아이들에게 보여줄 만한 공중쇼!

2009.11.06 18:32 | Military | Fernando

http://kr.blog.yahoo.com/khy001/1977 주소복사

서울 에어쇼에 다녀온 포스팅을 이제야 올립니다.
서울 에어쇼는 공식명칭은 '서울 국제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로 2년마다 한번 씩 열리고 있고, 각종 첨단 무기들이 전시됩니다.
저도 처음으로 가족들을 데리고 에어쇼를 보고자 성남 서울공항에 다녀왔습니다.



미리 계획했던 것은 아니고 주말에밖에나가서가족과 점심을 먹다가 비행기 소리가 하도 많이 들려서 서울 에어쇼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바로 오즈를 통해 검색을 해서 몇가지 확인하고 바로 달려갔습니다.
오즈로 검색해서 조회해보니 입장료는 9천원/성인기준 이더군요. 미취학아동은 요금을 받지 않습니다.
오즈 풀브라우징 서비스는 이럴때 참 요긴합니다.


서울공항은 공항이니 오죽 마당이 넓겠습니까~~
입장하니 실내전시관도 있고 실외에서 비행기와 무기들이 전시해 있었습니다.

실내전시관에 입장하니 맨처음 순수국산 제트기인 T-50이 있었습니다.

비행기 말고도 국산 헬기인 수리온, 국산탱크인 K2도 있었구요.


실내 전시관을 다 구경하고 나서 외부전시관으로 나갔습니다.
주말이라 사람들이 벌떼처럼많더군요. 비행장에는 여객기,전투기,수송기,헬기 등 모든 비행기가 총 망라되어 전시되어 있었고육상 무기들까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 규모는 엄청나더군요.
이곳에서 사람들은 각종 무기를 구경하면서 매시간마다 있는 공중에어쇼를 관람하기도 하였습니다.

지금은 F-22 랩터가 나와서 최고의 자리를 물려주었지만, 최근까지 최고의 전투기 였던 F-15 이글입니다.
이 전투기의 가격은 1천억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좌측부터 F-16, F-4가 있습니다.
과거 어릴때가 프로모델로 많이 만들었던 기종이죠.. F-16의 경우 과거 경전투기로 수입했었는데 논란이 있었던 모델입니다. 그러나 F-16의 선회반경능력은 최고 였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런 미사일류도 많이 전시되어있는데요. 유명한 공대함 유도탄인 하푼미사일입니다.
이게 16억이군요.. 한발에..

역시 서울 에어쇼의 백미는 공중비행이죠
T-50의 경우 편대를 이루어서 아주 멋있는 비행을 선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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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에는 역시 우리나라 공군의 최고가의 전투기인 F-15가 이륙해서 공중곡예를 선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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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전시에서는 차기 우리나라의 전투기가 될 F-35 이전시되어있었는데 캐노피를 열지는 않았지만 계단을 통해 조종석을 볼 수 있게 해주어 인기를 끌었습니다.


2년마다 한번 씩 있는 '서울 국제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는 가 볼만한 꺼리를 제공합니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창공을 나는 비행기를 보는 기분은 괜찮더군요.
아. TIP을 드리죠. 다음에 가실분은 꼭 선글라스를 가지고 가시기 바랍니다. 하늘을 계속 바라봐야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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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 병기 비사 ]《 조·일전쟁 당시 일본군의 주력무기는 칼이 아니었다! 》

2009.11.05 02:21 | Military | Fernando

http://kr.blog.yahoo.com/khy001/1966 주소복사

센고쿠지다이 당시 기마대
스야리
  일본군이 보유한 가장 기본적인 창인 스야리( 素槍 )
 
찌르는 것이 목적인 창의 특징상 적과의 거리가 확보되는 이점을 살려 보다 신속하게 적을 제압하는 무기다.
뎃포 아시가루
  "우리가 있다고 해서 창의 비중이 줄어드는 것은 절대로 아니죠!"
  뎃포 아시가루를 재현한 리인액터들의 모습으로 다네가시마를 통해 뎃포가 도입되어 화약무기의 위력이 빛을 발한 이후에도 창은 여전히 중요한 무기였다.

센고쿠지다이
  센고쿠지다이( 戦国時代 ) 당시의 그림으로 주력이 엄연히 야리(  )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야리 아시가루는 개개로는 사무라이나 상급 무사들의 상대가 될 수 없었지만 집단으로 달려들 경우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웹상에 워낙 흔하게 퍼진 조·일전쟁 관련 포스팅들 중 일부는 일본군이 마치 닛뽄도를 휘두르고 다니는 무뢰배 집단으로 오인하시는 분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인식을 가지게한 원인이 바로 KBS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만 )이 계시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조·일전쟁 당시 조선군과 명군이 칼싸움을 못해서 밀린 것은 아니었다( 물론 실전경험의 차이가 워낙 컸기에 조선군이나 명군이 일본군에게 열세였던 점은 부정할 수는 없지만 결코 검 때문만은 아니다 )
  센고쿠지다이를 통해 백병전과 육상전의 달인이 되어버린 일본군!
  야전에서는 그야말로 말단 아시가루까지 맹호가 되어버린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德川家康 )군을 제외하더라도 당장 도요토미 히데요시 직속부대 등을 포함한 각 다이묘( 大名 )들은 나가야리( 長槍 ) 부대를 양성해 보유하고 있었다.
  창이 일본군의 주력이 되었던 원인은 우선 징집한 농민 출신 아시가루들이 약간의 훈련만 받으면 어렵지 않게 다룰 수 있는데다 자루의 가공만이 약간 어려웠을 뿐 전체적으로 닛뽄도에 비하면 가격이 싸게 먹히는데다 대량 생산에도 유리했기 때문이다.
  특히 나가야리의 경우 전체 길이만 무려 455~640cm에 달해 닛뽄도를 들고 달려들었다가는 그대로 인간 꼬치가 되기 십상이었다.
  특히 "야리부스마"라는 창병술로 인해 이러한 현상이 자주 일어났는데 이는 야리 아시가루들이 대열을 이룬 후 창날을 한데 모아 그대로 적을 향해 돌격하기 때문이다.
  뎃포가 도입된 이후에도 창의 비중은 무시못할 수준이었는데 이는 활이나 뎃포로 공격을 가한 후 바로 창병들이 돌진해 적의 대오를 붕괴시키면 바로 기병들이 들이닥쳐 전투를 마무리지었기 때문이다.
  전투에서 창은 그야말로 군신, 그 자체였던 것이다!
  여하튼 이처럼 창의 발전 덕분에 120년에 걸친 센고쿠지다이 이후 일본군은 30만명이 넘는 정예병을 보유하게 되었고 이들의 첫 희생양이 바로 조선이 되고 말았다.
  200년에 걸친 태평성대 덕분에 국방력이 일본에 비할 수가 없었던 조선군이지만 국내의 조·일전쟁 관련 영상물처럼 칼날에 추풍낙엽으로 무너지는 것은 아니었다.
  조선군 역시 나름대로 용맹하게 대항한 편이지만 그들은 창으로 무장한 야리 아시가루들의 밀집대형에 무너진

나가야리
  오다 노부나가군이 최초로 사용하면서 유행으로 퍼져나간 나가야리
  길이만 평균 4.5~6.4m에 이르는 창으로 중량은 3~5.5kg에 달해 쉽사리 휘두르기는 어려웠지만 집단으로 운용해 공격할 경우 상대에게 무시못할 위력을 발휘했다.

셈이다.
  엄정한 군기로 훈련된 야리 아시가루들이 일정한 대형으로 몰려드는데다 창의 길이만 해도 당장 길어야 3m를 넘기는 편이 드물었던( 조선 전기의 창은 날 길이가 31.5cm, 자루의 길이가 210cm였다 ) 조선군이 평균 4.4m 이상의 길이를 가진 일본군에게 이긴다는 것은 그야말로 바위에 계란치기였던 것이다.
  문자 그대로 막기 위해 달려들었다가 되려 인간 꼬치가 되어버리니 점차적으로 뒤로 밀리고 밀리다가 결국 완전 포위되어 몰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조·일전쟁 기간 동안 일본군의 창 공격에 호되게 당했던 조선군이지만 종전 이후 막대한 양의 스야리, 나가야리를 노획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군은 이를 전훈에 반영하지 못한 채 일부만 변방에 지급했을 뿐 나머지는 전부 무기고에 짱박거나( 청송군지에 따르면 진보의 군기고에 12자루의 일본창이 짱박혀 있었다 한다 ) 청나라 사신에게 예물로 바치센고쿠지다이 리인액트고 말았다.
  만약 조선이 조·일전쟁의 전훈을 받아들여 나가야리와 뎃포, 화포의 비중을 높여 철저하게 국방력 강화에 힘을 썼다면 제1, 2차 조·청전쟁에서 그토록 참혹하게 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쌍령 전투는 이루 말할 것도 없지만 )
  여담이지만 영조 18년, 당시 일본군에게 도굴당한 선릉과 정릉에 거동할 당시 위사들이 일본창으로 무장한 것을 보고 당장 치우라 명했다 한다.
  그대로 무장시켰다면 최소한 도굴범들이 침투했을 시 원거리에서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겠지만 일본에 대한 거부감만으로 저러는 것은 좀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고 낭선( 명국이 워낙 왜구들에게 시달리다보니 등장한 대책인데 닛뽄도에 대한 공포가 어느 정도였는지 보여준다. 만약 정규군이 침공했다면 낭선만으로는 좀 무리였겠지만 말이다 ) 등의 대책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센고쿠지다이( 戦国時代 ) 리인액트 장면으로 야리가 엄연히 아시가루들의 주력 병기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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