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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rnando (khy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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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8/09/08
 

[스크랩] 가장 아름다운 베트남 여성 9인

2009.11.10 20:10 | 방송/연예 | Fernando

http://kr.blog.yahoo.com/khy001/2033 주소복사

일전에 블로거 끄루또이님이 "러시아 인터넷을 달구고 있는 베트남 얼짱소녀"를 소개한 적이 있다. '가슴미인'으로 알려진 이 베트남 여성이 중국에서 '셀카짱'으로 등극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최근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가장 아름다운 베트남 여성 10인을 만났다.
(사진출처: http://www.yeeta.com/_9_Sexiest_Vietnamese_Girls)

1. Nhu Lo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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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Mai Ph??ng Thu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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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Rebecca Cam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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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Bebe P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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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Tila Tequi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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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Maggie 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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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Nguy?n Thuy L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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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Minh Tuy?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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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Hoang Thuy Lin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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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글:세계 男心 잡은 리투아니아 슈퍼모델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멕시코 여성 10인

* 최근글: 가장 많이 외국어를 구사하는 유럽 국가는?
               은행강도 잡고보니 가톨릭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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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최(빅떠르 로베르또비치 쪼이-Виктор Робертович Цой, 1961.6.21 - 1990. 8. 15)는 음악가였으며, 록그룹 '끼노(Кино)'의 리더였고 우리에긴 다소 생소할 수 있겠지만 성공한 영화배우였다.

빅토르 최는 카자흐스탄 공화국의 끄질-오르다(кзыл-орда) 시(市)에서 태어나 레닌그라드(현 쌍뜨 뻬쩨르부르그)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 '로베르트 막시모비치 쪼이(Роберт Максимович Цой)'는 엔지니어였고 어머니 '발렌찌나 바실리예브나(Валентина Васильевна )'는 체조과목 강사였다. 빅토르 최는 쉬꼴라(러시아 초중고 과정)를 다니면서 3번이나 학교를 옮겨다니게 된다. 예술전문학교(우리식으로 따지면 예술 중/고교)에 다니던 빅토르는 그의 인생에서 첫번째 그룹 '빨라따 № 6(제 6 병동 - Палата № 6)'를 결성하게 되는데, 이것이 문제되어 쉬꼴라 8학년 과정을 마치자 마자 학교에서 강제 퇴교를 당하게 된다. 이후 빅토르는 1978년 공장에 들어가 낮에는 일을하며 밤에는 야간학교에 다니며 학업을 이어가게 된다. 이후에 제 61 기술 전문학교('СГПТУ-61')에서 목공일을 배우게 된다.

1981년 여름 빅토르 최는 알렉세이 릐빈(Алексей Рыбин), 알롁 발린스키(Олег Валинский)등과 함께 그룹 '가린과 기하쌍곡면(Гарин и гиперболоиды)'을 결성한다. 유명한 록클럽 '레닌그라드 록클럽(Ленинградский рок-клуб)'에서 음악활동을 하던 이들은 1982년 가을 그룹명을 '끼노('영화'라는 의미 - Кино)'로 바꾸고 첫번째 앨범 '45'를 발표하게된다. 이때 빅토르는 평생의 반려자인 마리안나(Марианна)와 만나게 된다. 이후 '레닌그라드 록클럽'에서 첫번째로 콘서트를 열게되는데 이 신참내기 록그룹의 첫번째 콘서트는 당대 최고의 그룹 아크바리움('수족관', '어항'이란 의미 - Аквариум)과 조인트 콘서트로 진행되었다. 아크바리움의 리더였던 '바리스 그레벤쉬꼬프'가 빅토르 최의 프로듀서 역할을 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후 '끼노'는 1982년 가을  모스크바에서 첫번째 공연을 하게된다. 하지만 대중의 주목을 받는데는 실패하게된다. 이에 그룹 멤버들간의 이견차이등이 불거지게 되고 초기 멤버와 결별을 하게되는 계기가 된다. 1983년 2월 '끼노'는 두번째 콘서트를 '록클럽'에서 갖게되지만 봄에 멤버였던 안드레이 릐빈이 끼노에서 탈퇴한다. 그리고 나머지 멤버인 알롁 발린스키도 떠나게 된다. 이해에 빅토르 최는 군대 영장(징병제)을 받았으나 질병으로 면제를 받는다.

1984년 빅토르 최는 '끼노'를 자신을 포함해 4인조 그룹(빅토르 최, 카스빠랸(Каспарян), 찌또프(Титов), 구랴노프(Гурьянов))으로 재결성하게 된다. 재 탄생한 '끼노'는 84년 봄 레닌그라드 록클럽의 두번째 음악 페스티발에서 수상자로 선정된다. 같은해 빅토르 최는 아끄바리움의 멤버들과 공동으로 캄차트카의 관리인(Начальник Камчатки) 앨범을 발표한다. 1985년 2월에는 그동안 동거해오던 마리안나와 결혼하고, 같은해 8월에는 자신의 분신인 '싸샤'가 태어난다. 더불어 그룹 끼노는 레닌그라드 록클럽의 세번째 음악 페스티벌의 수상자가 된다.

1985년 여름과 가을에 '끼노'는 두개의 앨범을 발표하게 된다. '밤(Ночь)'과 '이것은 사랑이 아니예요(Это не любовь)'가 그것이다. 1986년에도 레닌그라드 록클럽의 페스티발에 참여한 '끼노'는 최고의 가사상을 받는다. 이해 여름 빅토르 최는 끼예프에서 영화 '휴가의 끝(Конец каникул)'이란 영화에 출연한다. 그리고 'Red Wave' 앨범을 발표한다. 그리고 유명 영화감독인 알렉세이 우치쩰의 영화 '록'에 출연하고 가을과 겨울엔 '긴급구조대(Ассы)'에 출연하면서 자신의 영역을 넓혀간다.

1987년 봄에도 레닌그라드 록클럽 페스티발에 참여한 '끼노'는 역시나 수상자로 선정된다. 같은해 불후의 앨범인 '혈액형(Группа крови)'를 발표한다. 1987년 가을에는 자신의 마지막 출연작이자 최대 흥행작(1,000만 관객)인 영화 이글라(바늘이라는 의미, Игла)에 출연하게 된다. 이어서 태양이라는 이름의 별(Звезда по имени Солнце)을 선보인다. 그리고 전국적인 순회공연에 돌입한다. 같은해 11월에는 루쥐닉 시(市)에서 알렉산드르 바쉴라체브의 추모공연을 한다.

1989년은 빅토르 최와 '끼노'의 가장 바쁜 한해로 기억된다. 끼노는 여름에는 미국에 건너가 콘서트를 벌이고 빅토르 최는 오데사에서 열린 황금쥬크 영화 페스티벌에서 '이글라'로 최고배우상을 수상한다. 그리고 전년에 이어 전국으로 콘서트 투어를 벌인다. 그리고 끼노는 프랑스로 건너가 '마지막 영웅(Последний герой)'을 녹음한다.  1990년 절정의 인기를 달리던 끼노는 일본으로 건너가 공연을 하기까지 한다. 1990년 모스크바와 루쥐닉 시에서 순회공연의 마지막 콘서트를 벌인다. 여름 전국투어를 마친 빅토르 최는 다음 앨범을 준비를 시작한다. 이 앨범은 빅토르 최 사후 발매가 된다.

그의 삶에 마지막 해 빅토르는 라트비아에 자신의 다차(별장)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고 있었다. 1990년 8월 15일 레스느이 호수에서 새벽 6시까지 낚시를 하던 빅토르 최는 자신의 승용차 <마스크비치(모스크바시민이란 의미)-2141>를 130km이상의 속도로 몰고 숙소로 출발했다. 12시 28분  빅토르가 몰던 <마스크비치-2141>가 슬로까따우시 도로 35km지점을 통과하고 있을 때  맞은편에서 60~70km의 속도로 <이카루스-280>이라 불리우는 대형 버스가 접근하고 있었다. 불행히도 빅토르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곧이어 두 차량은 정면충돌했다. 빅토르의 <마스크비치>는 충돌 후 18미터나 밀려나 처참하게 찌그러져버렸다 . 빅토르 최는 핸들에 가슴을 찍힌 채,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그러나 빅토르의 <마스크비치>와 충돌한 <이카루스>의 버스운전기사는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빅토르가 사망한지 4일 뒤인 1990년 8월 19일 오전에 빅토르의 장례식은 레닌그라드의 보거슬라브스끼 묘지(Богословский кладбище)에서 거행됐다. 그의 장례식 바로 다음날부터 뻬쩨르부르그에서는 자살률이 30%이상 늘어났다. 대부분 21세 이하의 젊은이들이 자살을 시도했으며, 실제로 5명의 젊은이들이 빅토르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자살을 했다.

빅토르 최는 단순히 인기만 있었던 가수는 아니었다. 그와 그의 그룹 ‘끼노’는 그 시대의 전설이었으며, 80년대 후반 러시아 젊은이의 상징이었다. 그의 생의 마지막 두해에 빅토르의 삶은 성공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는 당시 전 러시아의 젊은이들에게 절대적인 지지와 인기를 얻고 있었다. 빅토르는 수많은 러시아 순회공연과,  영화에 출연해서 인기와 명예, 금전적인 성공 그리고 사랑까지 얻게 되었다. 심지어 당시에는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일본 순회공연(1990년 봄)까지 진행했었다. 빅토르가 사망한 후 그룹 끼노는 생전 빅토르의 목소리를 담은 새로운 앨범을 발표했다. 행운이었다. 빅토르의 차 트렁크에서 빅토르 최의 목소리가 담긴 레코더가 발견된 것이다. 이 앨범은 '검은 앨범(Черный альбом)이란 제목으로 발표되었다.

현재 러시아에서 그룹 <끼노>의 곡들은 다시 리메이크 되고 있으며, 다양하게 재해석되고 있다. 더불어 예전 <끼노>의 전성기때와 마찬가지로 현재 러시아 인기곡 차트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도 러시아의 라디오에서 빅토르의 음악은 자주 들을 수가 있다. 그의 노래 <혈액형(그루빠 끄로비 Группа Крови)>은 러시아 내에서 20세기 최고의 곡으로 인정받고 있다!

                                
                     *빅토르 최의 혈액형(그루빠 끄로비 Группа Крови)>듣기

[스크랩] 러시아 국민예술가와 미모의 33세 연하 아내

2009.11.10 20:05 | 방송/연예 | Fernando

http://kr.blog.yahoo.com/khy001/2027 주소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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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든 재력가와 젊은 미녀간 결혼소식은 이제는 그리 신기한 일도 아니게 되었다.

지난 10월 멜 깁슨의 8번째 아이를 낳았으며 그 대가로 1,800만 달러의 양육비를 약속받은 옥사나 그리고리에바와 멜깁슨의 나이차는 14년이다. 이 정도는 후발주자들에 비해서는 약과에 불과하다. 롤링스톤즈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로니 우드(61)는 까쨔 이바노바(20)와 결혼이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이 두사람의 나이차는 무려 41년에 이른다.

이 '연상 재력가-연하 미녀 클럽'에 러시아의 유명가수이자 작곡가인 알렉산드르 그라드스키(60)가 최근에 이름을 올리게 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라드스키는 러시아 국민 예술가 호칭을 듣고 있는 러시아 음악계의 스타이자 재력가이다. 대중의 관심은 국민 예술가인 그라드스키보다는 그라드스키의 4번째 아내인 우크라이나 출신 마리나 카타쉔코에게 쏠려있다. 그녀는 1982년생으로써 우리나이로 금년 27세이다. 그라드스키와의 나이차는 무려 33년이다. 로니우드의 41년에는 비할 수 없지만 역시나 일반적인 부부간 결혼 나이차는 아닌셈이다.

하지만 알렉산드르 그라드스키는 이미 3번의 결혼과 3번의 이혼을 한 전력이 있는지라 연하의 연인이나 아내가 있는것이 그다지 신기한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커플이 러시아 대중의 관심을 받고있는 이유는 33년이라는 나이차보다는 마리나 카타쉔코의 미모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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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를 제외하고는 그야말로 '듣보'수준이었던 마리나 카타쉔코는 그라드스키와의 결혼을 통해 언론과 대중의 주목을 받기시작하여 현재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모델로 지명도를 확보하는 중이다.

러시아 네티즌은 카타쉔코가 두마리 토끼(돈+명예)를 잡았다는 냉소적인 반응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일부 네트즌들은 나이차나 미모와는 상관없이 두 사람이 사랑으로 맺어졌으니 질시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영화 <데이지>

 

그 해 가을, 암스테르담...
화약 냄새 자욱한 차가운 영혼과
겨울햇살처럼 따뜻한 영혼이
한 여자 앞에서 마주쳤다

개인전시회를 준비하며 광장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혜영(전지현).

낯선 도시 암스테르담에서 그녀를 지탱해주는 것은 첫사랑의 추억뿐이다. 얼굴도 보지 못한, 그러나 가장 아름다운 설레임을 주었던 그에게 혜영은 데이지 꽃 그림을 선사했었고, 마치 그 답장처럼 데이지 화분이

매일 배달된다. 어느 날 초상화를 그려달라며 그녀에게 다가온 남자.

그의 손엔 데이지화분이 들려 있다.

범죄조직을 추적하던 국제경찰 정우(이성재)다.

그는 범인을 감시하기 위해 광장 복판의 혜영에게 초상화를 부탁하지만 혜영은 그가 자신이 기다리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녀의 미소를 본 순간,

정우 역시 처음 느끼는 떨림과 마주친다.

킬러이기에 차마 혜영에게 다가서지 못하고

고백대신 매일 데이지 화분을 전해온 박의(정우성).

다른 이를 향하는 그녀의 미소를 고통스럽게 지켜보며 가슴 아파한다.

그런 박의에게 암살타겟으로 정우의 사진이 배달되는데...

 

2006도 한국에나가서 봤던 영화.

좋아하는 배우들이 출현해서 봤는데,,,

 

내용은 뭐 그다지 좋을건 없고

그냥 편하게 볼수있는 영화.

그리고 영화내용에 충실한 OST <데이지>가사,,,

 

OST가 좋아서 기억에 남습니다.

음 감상이나  해보세요,,,,,

 

 

 

 

 



 
~앤(N)님의 글

[스크랩] 뭐든지 소화 가능한 환상의 아카펠라...

2009.11.06 19:25 | 방송/연예 | Fernando

http://kr.blog.yahoo.com/khy001/1993 주소복사


뭐든지 소화 가능한 환상의 아카펠라...

와우!!! 대단한 실력 ....악기가 필요없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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