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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부터 어제 하루 종일, 일기예보는 저녁 여섯 시부터 시작해서 폭설이 내릴 거라고 겁을 주었다. 아닌게 아니라 어제 낮 열 두 시 쯤 메릴랜드에 있는 아들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보았더니 눈이 막 내리기 시작한다고 전해주었다. 남쪽에서 시작해서 북으로 올라오는 눈의 이동 소식과 함께 눈 때문에 받아야 하는 고통의 무게를 생각해내고는 근심을 미리 당겨서 시작했다. 어제 저녁 식사약속도 취소하고 서두러 귀가를 했다. 이제나 저제나 눈이 오려나 기대 아닌 기대를 하다 잠 속에 빠져들었다. 오늘 새벽에 일어나 커튼을 제치니 눈이 쌓여 있을 거라는 나의 기대를 사그리 무너뜨리고 어제 그 풍경 그대로가 나를 맞는 게 아닌가? 원하지는 않았지만 생각했던 일과 현실이 어그러졌을 때도 실망하게되는 것이 참 요상했다. 일기예보 하는 사람들의 무능을 탓해서라도 실망감을 풀어야지 별 도리가 없었다. 25년 전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이 곳의 일기예보는 과학의 경지를 넘어 예술의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미국이 한국과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고 사대주의적 사고방식이 묻어있는 감탄을 하곤 했었다. 아니게 아니라 그 당시 일기예보는 의심할 여지 없이 정확했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는 일기예보는 그저 참고하는 수준이 되고 말았다. 그다지 신경 안쓰고 내 계획대로 움직인다. 그런데 일기예보라는 것을 토정비결 보듯해야지 거기에 모든 걸 걸고 있다간 자주 낭패를 보게 된다. 이래저래 일기예보 하는 사람들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맞으면 당연한 거고, 틀리면 비난과 욕을 셀 수 없을 정도로 들어야하니 말이다. 마음씨 좋고 넓은 그대들만이라도 그분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을 속으로라도 해주었으면 한다. 그렇게 온다고 겁을 주던 눈은 오기로 예정되었던 어제 오후 여섯 시를 훌쩍 지나 열 두 시간이 지난 오늘 아침 내가 맨하탄을 지나는 아침 여섯 시부터 희끗희끗 그 자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도로 곳곳엔 토잉 트럭 (한국에선 래카라고 하든가?)이 잠복하고 있었다. 눈에 핏발을 세우고 지나가는 차들을 살피는 것이 마치도 범인을 쫓는 형사들 같았다. 아니면 수면 및으로 몸을 숨기고 먹잇감을 노리는 악어들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언제나 사고가 터지나 하고 남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이라고 속으로 되풀이해서 되뇌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또 한 편으로는 같은 상황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혹시라도 불행하게 내 자신이 눈에 미끄러져 차사고를 당했을 때 신속하게 다가와 도움의 손길을 주기 위해서 미리부터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고 말이다. 나의 아내같으면 아마도 이런 쪽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마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천사와도 같은 존재로 여길 것이다. 여기에서 천사의 눈에는 천사가 보이고 악마의 눈에는 악마가 보인다는 논리를 이야기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사람마다 다른 방식으로 사고할 수 있음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어떻게 그 상황을 바라보는 건가는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윤리의 문제가 아니고 실존의 문제라는 것이다. 서로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고 인정해줄 때 세상이 조화로와질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대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 어떻든 그대들의 생각도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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