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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 봉황대의 비련 황세장군과 여의낭자 전설]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라 했던가 음양오행상으로 가을은 음(陰)에 속하며 금(金)의 기운을 나타낸다. 한여름의 열기가 한껏 부풀어 오른 양의 기운을 주체할 길이 없어지자 더 이상 두었다간 자연의 질서가 허물어질세라 자연은 금(金)의 기운을 만들어 양(陽)의 기운을 억제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가을인 금의 기운은 숙살(肅殺)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 곧 이어 닥쳐올 겨울에 대비하여 천지 만물을 땅 속에 저장하기 위해 가을은 칼을 빼고 천하로 나선다. 이토록 강력한 금의 기운을 거역할 자연은 아무것도 없다. 모두가 서슬 퍼런 가을의 기운 앞에 항복을 하고 펼쳤던 보따리들을 마무리하여 땅 속으로 들어갈 준비를 한다.
벼는 익어 추수를 기다리고 온갖 과일들도 모두 익어 떨어지기만을 기다린다. 여름내 푸르던 나뭇잎은 붉게 물들어 낙엽을 떨구어 낼 준비를 한다. 그 뿐만 아니다. 벌레며 새들이며 뭇짐승들이 기나긴 겨울잠을 준비하기 위해 양식을 준비하기에 바쁘다. 이처럼 가을의 기운은 모든 것을 잠재우기 위해 거두는 기운이다.
해가 지고 노을이 물드는 석양처럼 노년기의 인생은 원숙해지고 숙연해진다. 그래서 가을에는 생각이 많은가 보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서러움에 울컥 치밀어 오르는 가슴을 추스러기 힘들어 무작정 집을 나선다. 어디 이 서러움을 토해낼 구실 하나를 찾아본다.
차를 몰고 다가선 곳은 김해시 봉황동에 자리한 작으마한 구릉하나 이름 하여 ‘봉황대(鳳凰臺)’라는 곳이다. 서럽도록 고독해지는 이 가을에 함께할 수 있는 딱 좋은 곳이다.
벌써 나뭇잎들은 노랗게 변하여 떨어지는 것이 천하에 가을이 왔음을 말해준다. 봉황대 공원에 깔린 잔디의 색깔도 노랗게 변해있다. 이렇게 황량하고 아름다운 공원이 지금 이 분위기에 좋은 이유가 있다. 바로 꽃다운 나이의 처녀 하나를 상사병에 들어 죽게 한 전설이 스며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안겨준 슬픈 사랑이기에 쓸쓸한 이가을과 어울림이 좋다는 말이다.
천년을 넘기는 세월을 두고 사람들의 가슴에 새겨져 잊혀지지 않고 전해오는 슬픈 사랑의 이야기는 바로 이 봉황대에서 시작된다.
수로왕이 김해에 건국한 가락국 제 9대 임금인 겸지왕 시절,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1500년 전쯤이 된다. 이 곳 봉황대 아래 남대정동에 사는 출정승이라는 사람과 북대정동에 사는 황정승이라는 사람이 절친한 친구 사이로 만나 지내던 중 두 사람은 자식이 태어나면 혼인을 시키기로 굳은 약속을 한다. 그 후 출정승은 딸을 낳아 이름을 ‘여의(如意)’라 지었고, 황정승은 아들을 낳아 ‘세(洗)’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러나 인간의 언약은 세월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인지라 마음이 변한 출정승은 황정승에게 아들을 낳았다고 거짓말을 하여 혼약을 깨려 하였다.
그로 인하여 출정승의 딸 출여의(出如意)는 자라면서 사내옷을 입고 놀며 서당에 다녔고, 황세(黃洗)와는 막연한 친구사이가 되어 봉황대를 무대로 함께 어울려 놀았다. 그러나 아무래도 수상하다고 여긴 황정승의 아들 황세가 하루는 여의를 부추겨 봉황대 정상에 있는 ‘개라암’에 올라가서 ‘오줌멀리가기 시합’을 하자고 제의 했다. 난처해진 여의낭자는 궁리 끝에 기지를 발휘하여 재빨리 바위 뒤에 있는 삼대를 꺾어 오줌을 눔으로써 위기를 넘겼다. 그 후 사람들은 이 바위를 오줌바위 또는 황세바위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런 일이 있은 뒤에도 황세는 계속하여 여의를 여자라고 의심하였고, 마침내 어느 여름 날 황세는 여의에게 봉황대 옆으로 흐르는 거북내(龜川)에서 목욕을 같이 하자고 제의하였다. 더 이상 여자란 사실을 숨길 수가 없게 되어버린 여의낭자는 편지를 써서 물에 띄워 보내 황세에게 사실을 고백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황세와 여의의 깊은 사랑은 시작되었고, 결국 출정승도 황세가 장차 훌륭한 인물이 될 것으로 믿고 사랑하는 두 청춘 남녀의 혼약을 맺어주고 말았다.
이처럼 애틋하던 사랑은 얼마 지나지 않아 비극을 맞게 된다. 신라군이 가락국을 침범해온 것이다. 그러자 용감한 황세는 전쟁터에 나가게 되었고 신라군을 무찔러 나라에 큰 공을 세우고 개선하게 된다. 이에 겸지왕은 황세에게 ‘하늘장수’라는 장군 칭호를 제수하고 외동딸인 유민(流民)공주와 혼례하여 부마가 될 것을 명령한다.
이에 황세장군은 이미 혼약한 여의낭자를 두고 고민을 하다가 왕의 명령을 거역할 수가 없게 되어 결국 유민공주와 혼인을 하고 만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여의는 혼자서 외로이 살며 다른 곳에 혼인하라는 아버지 출정승의 말도 마다하고 날마다 황세와 놀던 봉황대에 올라 그리워하다 24세의 꽃다운 나이에 하늘문 바위에서 그만 사랑의 열병을 이기지 못해 죽고 말았다.
여의의 죽음을 알게 된 황세 또한 여의에 대한 그리움과 괴로움에 마음의 병을 얻어 뒤따라 죽고 말았는데 그런 황세를 사랑했던 유민공주 역시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는 출가하여 산으로 들어가 평생을 두고 두 사람의 명복을 빌었다고 전해진다.
봉황대 맞은편 호랑이 입으로 전해지는 임호산(林虎山)이 바로 그 산인데 공주의 이름을 따서 ‘유민산(流民山)’이라고도 불리우는 것은 이 때 이후부터이다.
성안 사람들은 황세와 여의낭자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 그들이 매일같이 놀던 개라암에 작은 바위를 얹고 서남쪽의 것은 ‘황세돌’이라 하고, 동남쪽의 것을 ‘여의돌’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참으로 재미있으면서도 애틋한 사랑의 전설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렇게 애달픈 사랑의 전설을 간직한 봉황대는 옛날 금관가야의 왕궁터였으며 그 밑에는 가야시대 해상교역상들이 북적대던 해상포구이기도 하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산천도 변하고 인물도 변하여 그 곳에 진영으로 향하는 자동차도로가 뚫려 있는데 그 옛날 가야시대에는 검푸른 바다가 출렁이고 배들이 드나드는 포구였던 것이다.
봉황대(鳳凰臺)는 옛날부터 가라대(伽羅臺), 망해대(望海臺), 여의현(如意峴), 독현(獨峴), 회현(會峴) 등으로 불리어 왔다고 전해지며 봉황대라는 이름이 사용된 것은 조선 고종 초의 부사 정현석(鄭顯奭)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봉황대 주변에는 패총과 고대 삼한 시대의 주거지 등 선사시대부터 청동기, 철기시대를 상징하는 유물들이 차례로 발견되어 사적 제2호로 지정, 옛날 모습 그대로 복원되어 있으며, 1975년에는 출여의낭자(出如意娘子)의 정절을 기리기 위한 여의각(如意閣)이 세워졌는데 이곳에서는 매년 여의제(如意祭)가 열리고 있다.
한잎 두잎 떨어져 내리는 나뭇잎을 바라보며 잔디밭 밴치에 앉아 여의낭자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조금 있으니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마치 그 옛날 황세와 여의가 여기서 정겹게 뛰놀던 소리로 들린다.
알 수 없는 뭉클함을 가슴에 누르고 공원길을 따라 내려오니 봉황대 유적지를 재현해 놓은 고상가옥이 옛 모습 그대로 반겨준다. 1500년 전에 사람이 살던 마을에 들어선 느낌이다. 누군가 금방이라도 뛰어나와 손 붙잡을 것 같은 마음이다. 뉘엿뉘엿 저녁 해가 지는 무렵이라 그런지 움집에선 굴뚝 위로 저녁밥 짓는 연기라도 피어오를 것만 같다.
어릴 적 고향에서 먹던 저녁밥상을 그리며 공원길을 따라 벚나무 몇 그루를 더 지나가자 앞에 자그마한 인공연못을 조성하여 물 위에 배를 한 채 띄워놓은 것이 보인다. '가야시대의 배'다. 천오백년의 세월을 넘어 그 때 그 배가 여기 나그네를 태우기 위해 이채로운 모습으로 떠 있다.
수로왕의 비 허황옥 공주가 인도에서 올 때도 이런 배를 타고 왔을까? 그러나 그토록 멀고 험난한 바다를 건너기에 이 배는 너무 작아 보인다. 아마도 그랬다면 고생 꽤나 했으리라 혼자 재미있어하며 안내판을 보니 이 배를 재현하기 위해 본을 딴 것이 호림박물관에 소장된 배 모양 토기라고 한다. 아마도 제작자의 상상이 많이 가미되었으리라 여기며 배를 탔던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그 옛날 가야인들은 왜와 한사군에 철을 수출하기 위해 험난한 바다와 수로를 이 배를 타고 항해했을 것이다. 그래서 김해를 '쇠(金)의 바다(海)'라고 불렀을까?
그냥 떠나와 버리기에 가을의 고독이 여운처럼 남아 있어 회현리 패총기념관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봉황대 황세바위에 다시 올랐다. 넓은 김해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이 근처 어디엔가 있었을 황세와 여의낭자의 집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황세바위 위에 앉아 여의낭자의 사랑과 슬픔을 느껴보다 천오백년의 시공을 넘어 간 가을날의 사색은 밀려오는 땅거미 속으로 그렇게 누그러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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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한 꼬리말
호랑이 황세와 출여의에 애절한 사랑, 유민공주의 명복으로 풀어질까요? 07.01.13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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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alwls 2009.10.18 18:49 [58.148.114.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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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2009.10.18 18:50 [58.148.114.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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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ㅏ 많은대에 도움이 되엇어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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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 2009.10.18 18:50 [58.148.114.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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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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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2009.10.18 18:50 [58.148.114.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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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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