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즐겨찾기 | 블로그홈 | 바로가기 바로가기 | 로그인
.
블로그  |  사진갤러리  |  동영상갤러리 방명록  |   즐겨찾기 추가
산내들바람 (kamore9)
프로필     
 인기도 :
 이 블로그 점수주기
전체 글보기(19)
기본폴더
설문
백만가지 주제
오늘 전체
방문자 12 6437
구독자 0 1
댓글 0 10
참조글 0 1
HanRSS 로 구독하기Fish 로 구독하기
2010 02월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최근 댓글 전체보기
요즘은 마천골 곶감 유..
은산해운 양재생친구 화..
정말이지좋은곳에살으셨습..
저도 우리아범님이 빨지..
오른족 사진이 않보인곳..
다녀간 블로거 더보기
- 반딧불철학시리즈
- 벌침이야기2
- 블로그관리자
- 장애인사랑나눔회
- UCC조아
 즐겨찾기
 즐겨찾기 글모음
개설일 : 2007/04/01
 

등구재는 옛날에 누구보다친한 내친구였다 !

2008.08.30 05:29 | 기본폴더 | 산내들바람

http://kr.blog.yahoo.com/kamore9/28 주소복사

-= IMAGE 1 =-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지금부터 약 40년전의 일이다 .

어느 따뜻한 봄날 나는 아버지를 따라 마천 창원리뒷산 큰 재 (경상도와 전라도경계) 올라가는

아랫바락재, (조그만 모래산) 지나 웃바락재 (위에있는 조그만 모래산 )길을 걸어

올라가는데 당시에 아랫바락재 모래밭길은 올라가기가 너무힘들었고 웃바락재는

낭떠러지 길이라 무서울 정도 였으니 내 어릴적 당시 큰재 까지 가는길은 고난의 길이었다.



우리 논은 창원리에서 제일 높은곳 청정지역 큰재 에 있다.

큰재는 전라북도와 경상남도의 도계에 위치한 개마고원 같은 산등성이다 .

동네에서 높은 논이지만 한해가 겹칠때면 다른집은 모내기를 못하더라도

우리논은 모를 심을수 있었다. 그논을 지나 봄에 산을 오르다보면

금낭화 ,수리치, 도라지, 지우초(색깔나는 뿌리) 아름다운 꽃들을 보며 산을 오른다.

우리 부친께서 딱주(도라지 비슷함)는 맵지않아 겁데기를 벗겨 내입에 넣어줄땐

어찌나 맛있던지 .....나무가지 사이로 막줄기를 뻐치는 더덕을 캐면서 뻐꾸기소리와

아지랑이속에 뭉게뭉게 타오르는 산길을 따라 올라다녔다 .

당시에는 6.25사변후 산불로 큰재부터- 금대절 산등성이 언저리까지 불탄 나무가 있었다 .

쉽게 말하면 불탄 썩어있는 관솔 ! 고주배기들로 소나무는 정말 보기 힘들었다 .

지금은 새마을 사업으로 낙엽송과 잡목으로 채워져 있지만

당시엔 억새풀뿐이고 드문드문 산불로인해 살아있는 소나무 한그루 보기가 정말 어려웠다 .



그 당시는 농사가 최우선이라 동네령 (풀베는날 )이 내리면 큰재너머 산의 국유림은

어느덧 골짜기와 나무사이로 경계를 짚으로 표시하여 억새풀과 떡갈나무 등의 풀을 베어

논에 풀을 깔아 농사를 지었다. 당시에는 비료도 많이 없었고 퇴비로 모든것을 해결했다.

그런 시절 ! 학교도 결석하는 학생이 많았지만 나는 절대 결석을 안했다 .

왜냐하면 우리부친의 교육열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손에 손잡고 돼지구시 (돼지밥그릇 나무통)를 만들려고

큰재 높은산에서 전라도와 경상도 경계를 따라 남쪽산 언덕을 올라

금대산 쪽 제일높은 정상(산박골산 으로칭함)에 올랐다. 이윽고 점심을 먹으려니

숟가락을 가지고 오지못해 어쩌나 했는데 마침 아버지께서 나무가지를 꺾어

낫으로 숟가락과 젓가락을 만들어 주셔서 항구밥(군용)으로 맛있게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정상에서 앉아 지금의 전라북도 산내면 쪽의 지리산 뱀사골 가는길은

당시에는 비포장도로라 도로가 모래길이 빛나듯 하얗게 길이 고속도로와 같이 멋져 보였다 .

그 길을 보며 내가 질문했다 .



" 저 하얗게 쭉 보이는것이 뭐지요 ? "

" 아.. 그게 도로라는 것이란다 "

" 도로가 뭐지요 ?"

" 도로는 자동차라가 다니는길이란다 ."

" 자동차가 뭐지요 ?"

"조금기다려봐 ! 저 위에 지나가는것이 자동차란다.

자동차는 아무나 못탄단다 . 돈이 많아야 하고 공부도 많이해야 탈수 있단다."



그 이후 나는 자동차, 공부, 돈을 알게 되었다 .

그런 도전정신으로 !

자동차를 탈 수있는 꿈을 갖고 살아오게 만든것이 고향이니

내 어찌 고향을 잊을수 있겠는가 ?



당시의 그말이 나의 인생을 바꾼 한가지 동기가 되었다 .

그때의 말이 항상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중학교도 마천으로 가야했음에도 불구하고 울며 떼쓰고 고생속에서도 함양으로 갔다.

중학교 졸업하고 거창이나, 진주쯤 갈 형편인데 또 무작정 졸라서 부산에서

마치고 그때 이후로 부산에 정착하게 되었다 .

이제는 부산이 제2의 고향이다.

그 옛날의 추억이 있기에 오늘도 고향이 그리워진다 .



시간이 나면 오두재에서 삼봉산을 거처 웃산비 아랫산비, 머구밥골 뒷산을 거처 큰재

금대암까지 등산하는날을 기대해본다 .

그날이 오면 마천 똥돼지를 한마리잡아 친구들과 먹고 놀고 싶다 .

그 이후 한번도 가지못한 그곳을 항상 동경하며 살고 있다.

따뜻한 봄날 금낭화가 피어날 그 시점 종주하고 싶은 그날을 생각한다.

전라북도쪽 옹달샘옆 금낭화가 생각난다 !

옛날 그 옹달샘에서 물 한모금 먹고 싶구나 .

따스한 봄볕속에 피어난옹달샘옆 금낭화 ! 지금도 있을련지 !

그리고 ....닭 오줌보(개부알꽃 ) 꽃도 보고 싶구나 .......!


세상은 온통 산으로만 되어있는 것으로 알았던 산촌 출신의 나 !

오두재 너머 함양 한들을 보며 아! 세상은 넓구나 하며 깜짝 놀랐던 나 !

스위스 에서 프랑스 떼제배 전철를 타고 평야를 달려보았지만

그래도 내겐그옜날 함양 한들이 한없이 넓어보였다. 초등5학년쯤 방학때 함양읍에 있는 고모집

방문때 버스주차장에 내리니 보이는 것은시멘트건물과 눈부신 도시의 전깃불에 핑돈다 .

억쌔풀지붕 (쌔지붕) 집으로된 초가집 , 귀와집만 보다가 시멘트건물(빌딩으로보였음)

과 상점들은 서울에 처음갈때도 이렇게 눈이 부시어보이지 않았는데 어찌나 눈이부셨는지.....

1970대함양시장앞 읍민관 극장에서 '저하늘의 슬픔이' 이란 영화를 보고 어찌나 어린마음에 부모없는

고아의 슬픈생활에 눈물을 흘리며 부모님이 게신것에 감동을 받았는지 ......영화보고 울먹였다 !

불쌍한 껌팔이 소년을 생각하며 ....!

역시 나는순진한 마천 촌놈이었다 ....

오늘도 내마음은 고향의 등구재에서 천왕봉을 바라보며

아련히 또오르는 추억의 뭉게구름속에서 꿈을 꾸어 본다 .

아름답던 그날들 !

내친구였던 등구재 !



산내들바람 2008.08.30  05:44

오른족 사진이 않보인곳이 등구재임 . 왼쪽 구름에 덮힌산이 금대산입니다 .

답글쓰기

댓글쓰기

댓글쓰기 입력폼

포스트 목록 닫기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