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31.산죽속의 빨치산 마네킹>점필재 김종직선생이 지리산을 찿았던 1473년경은 숭유억불정책의 시대라절이 깊은 산으로 들어가 산중에 암자들이 많았던 시기이다.지리 주봉의 동북부에 해당하는 엄천 운암마을 주변에도 많은 암자터가 숨어있다.언제 생겨 언제 소멸되었는지는 알수가 없으나 발길닿는 암자터마다 수행자의 흔적들이곳곳에 남아있어 후답자를 반긴다.그 옛날 여기까지 와서 수행을 하며 구도자의 길을 간 사람들은 지금의 나보다 더 삶에 지쳐 있었을테지....<산행트랙. 슬이님제공><산행경로>운암마을-박쥐굴-지장사-금낭굴-선열암-유슬이굴-선녀굴-의론대-고열암-신열암-함양독바위-통락문-환희대-양민마을터-운암마을4년 전 여기를 찾아왔을 때보다 너무 많이 변한 적조선원에 놀라다.한글 이름처럼 적조해서 소박하게 보였던 적조선원이 이름까지 적조암으로 변해있고암자가 아니라 큰 사찰을 창건 할 태세다.이미 위쪽엔 올라가보기가 겁날 정도로 위압스런 모습의 대웅전같은 건물이 들어 서 있다. 불심이 깊은 재력가가 적조암 불사에 적극 나섰는지는 알수는 없으나 최근의 사찰들은영리를 목적으로 자본가와 합심하는 사례가 많다.절을 크게 새로 지어주고 그 대가로 위패,납골당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대다수는 실패를 하지만....과연 종교의 천국인 대한민국이다.<100131. 적조암의 넓은 주차장. 사진 하로동선>어찌되었던 수 백 대를 파킹 하고도 남을 공터인 임시주차장에 파킹을 하고는 적조암위에있는 독립가옥을 지나 계곡 우측으로 잘 나있는 길을 따르면 산죽비트의 표지판과빨치산의 마네킹이 반긴다.<100131.분노의 총구. 지리산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아픈 민족의 상처다><100131. 빨치산이 된 용운아우님>여기서 바로 잘 나있는 길을 따라 20분쯤 오르면 노장동 마을터가 나온다.오늘은 마네킹이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흐린길을 따라 계곡을 건너 박쥐굴로 바로 간다.너덜을 지나 작은 지능선을 넘어 500m쯤 오르니 박쥐굴이다.<100131. 박쥐굴에서...>한국전쟁시 빨치산이 숨어 살았다 한다. 입구는 좁아 보여도 수십 명이 한꺼번에 들어가도 될만큼 안쪽은 넓다.<100131. 박쥐굴내부><100131. 박쥐굴>지장사터는 박쥐굴에서 170도 방향에 고도 80m 위에 있다.처음 찾았을 때는 진달래가 만발하던 봄날이어서 지장사터 주변에 머구와 금낭화가지천에 피었던 기억이 난다.<060514.4년 전 지장사터에 핀 금낭화>다시 찾은 지장사터는 겨울인데도 아늑하고 따뜻하다.주산의 동북쪽인데도 전혀 음습함이 없이 양지바르다.잠시 다리 쉼을 하고는 본당 터인 듯한 위쪽 뒤로 작은 지능을 잠시오르면 상대날등의폐헬기장을 만난다.다시 조금 올라 두 번 째 폐헬기장을 지나 상대날등을 타고 오르면 고도970m쯤에서우측사면에 나 있는 흐린길을 따라 너덜을 건너 작은 지능같은 산죽이 많은 언덕을 하나 넘어가면 금낭굴이 반긴다.(고도980m)<100131. 금낭굴>처음 여기를 찾았을 때 금낭굴 암벽에 피어있던 금낭화가 인상적이었다.바라보이는 북방향에 삼봉산이 보였는데 오늘은 시계가 흐려 안 보인다.<100131.심마니형님. 금낭굴 앞 바위위에서...>금낭굴 앞에 있는 경사진 바위에 올라 보아도 오늘은 삼봉산이 보이지 않는다.서쪽으로 독바위와 선열암터는 보인다.숲이 우거져 있을 때는 엄두가 안날것 같았는데 오늘은 선열암으로 바로 길을 열어보고픈마음이 발동한다.동선아우님이 두어 번 시도를 해볼려고 하다 험해서 포기했다 한다.<100131.금낭굴에서...><100131.금낭굴에서.....>금낭굴에서 고도를 낮춰 아래쪽으로 길을 열어가 보니 의외로 길 흔적의 느낌이 강하다.오래전엔 노장동 마을에서 금낭굴로 바로 올라 온 옛길 흔적인 듯하다.고도를 낮춰 100m쯤 진행해서 계곡을 만나고 다시 계곡으로 오르다 우측사면을 넘어가니멀리서 보이던 선열암위 암봉이 나타난다.초이아우님은 어느새 선열암 위 암봉에 올라가 있다.동선아우님과 슬이님은 벌써 선열암에 도착해서 에코를 보낸다.역시 대단한 슬이님의 위치추적이다.슬이님의 감각과 PDA가 위력을 발휘한다.덕분에 한 곳도 크게 알바 없이 정확하게 암자터를 짧은 시간에 다 둘러본다.<100131. 선열암 터에서....>4년전 급히 둘러보고 하산할 때는 못느낀 멋진 선열암 터다.동북부 암자 터 뿐만아니라 지리 어느 암자터에도 뒤지지 않을 명당터다 선열암에서 등넝쿨을 잡고 오르내리며 가까이 있는 지장사와 묘정암을 왕래했다고묘사되어 있는걸로 봐서 금낭굴 주변에 묘정암이 있지 않았나 추측을 해본다.금낭굴에도 기와조각이 많이 발견되고 금낭굴에서 선열암으로 바로 연결해보고자가는 도중 기와조각도 발견된다.<100131. 선열암에서....>다시 서쪽방향으로 고도변화 없이 너덜사면길로 나와 독바위로 가는 능선길을 만나고능선 네거리에서 서쪽방향으로 300m쯤거리의 사면길로 유슬이굴로 간다.오래전 부터 왕래가 많아서인지 길은 뚜렸하다.지난번에는 반대쪽에서 찾아서인지 유슬이굴 찾는데 시간을 많이 소비했었다.<100131.유슬이굴>다시 서쪽 방향 너덜 사면길로 나와 솔봉능선길을 넘어 선녀굴에 들른다.선녀굴은 잘 알려진 것처럼 한국전쟁 최후의 빨치산인 정순덕 일행이 숨어 있었던 곳이다.<100131. 선녀굴에서...><100131.선녀굴의 근대 역사><100131. 선녀굴의 근대 역사> <100131. 선녀굴에서...>선녀굴에서 의론대가 있는 곳으로 바로 직등해서 의론대를 거쳐 고열암에 도착하니정오다.<100131. 의론대에서...>배낭을 내리고 오찬을 하다.겨울인지 봄인지 구분 안 될 만큼 따뜻하다.<100131. 고열암>540년 전 점필재선생이 지리산을 유람할 때 하룻밤을 유숙했던 곳이다. 암자는 간 곳이 없고 흩어진 기와 조각이 540여년전과의 인연을 연결하는 끈이 되었다.<100131. 고열암에서....><100131. 신열암에서....>오찬 후 신열암을 거쳐 독바위에 올라 버거운 삶의 상념들을 털어내다.<100131. 독바위에서...>조망이 흐려 아쉬웠으나 독바위에서의 고도감과 치워버린 사다리 대신세미릿지의 짜릿함은 다른 즐거움이다.<100131.사다리는 사라지고 없으나 고정볼트가 있어 오르기가 수월하다><101031. 독바위에서 솔봉능선을 바라보며...><100131.통락문방향에서 바라 본 독바위><100131.안락문><100131. 환희대에서...><100131. 환희대에서....><100131.하산길 돌배나무가 있는 노장동 마을터에서....>통락문(안락문)을 잠시 들러 본 후 환희대가 있는 능선길로 하산 돌배나무가있는 노장동 마을터를 거쳐 내려오니 독립가옥 주인장이 이르기를1분전에 공단직원이 단속마치고 떠났다 한다.여기서 만나면 "기쁜인연" 아니라서...ㅎ<100131.칠암자 순례산행길에서....>540여년 전 점필재선생이 경유했던 지장사-선열암-신열암-고열암을 다시 둘러보며 함양관아를 출발한 점필재선생이 천왕봉까지의 오름길로 선택한 코스가 지리산을 알면 알수록 유순한 능선과 편한 길이면서 지름길이라는 것에 새삼 놀랍다.교통은 지금보다 발달 안되었지만 산에 기대어 살았던 선인들의 산길은 지금보다훨씬 밝았다는 사실을 깨닳게 해준 산행이었다.<100131. 환희대를 지키는 소나무>언제나,그리운 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