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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6/06/27
 
나눠 주고싶은 생각 ,볼거리 보여 주세요~녜!


가. 사돈관계의 정의

사돈(査頓)이란 서로 혼인한 남자와 여자측의 가족간을 말한다. 피와 살이 섞이지 않았기 때문에 분명히 남이지만 아들과 딸을 주고받은 특수한 관계에 있다. 그래서 사돈끼리도 혈친관계와 같이 세대(世代)의 위계가 분명해야 하고, 그 위계를 사행(査行)이라고 한다. 딸을 시집보낸 부모의 위치에서 보면 딸의 시부모는 같은 항렬(세대)이지만 딸의 시조부모는 아버지와 같은 항렬이 된다. 이와 같이 사돈간의 호칭에는 사행이 중시되고 같은 사행에서는 사회적 사귐과 같이 나이로 따지면 된다.

나. 양쪽 부모끼리의 호칭
가) 바깥사돈간
완전한 사회적 사귐이면서도 자녀를 주고받았기 때문에 친밀한 관계이다. 원칙적으로 나이 차이가 10년 이내이면 벗을 터서 친구같이 하고, 15년까지는 '노형' '소제'라 하며, 15년이 넘으면 '존장'과 '시생'이다.

사돈 : 남에게 말할 때
이름ㆍ호ㆍ자네 : 10년 이내의 사돈을 직접 부를 때
노형ㆍ형 : 10년이 넘는 사돈을 직접 부를 때
사돈어른 : 15년이 넘는 사돈을 직접 부를 때
자네 사돈 : 남의 사돈을 말할 때

나) 안사돈끼리
양쪽의 어머니끼리는 서로가 극진히 대접한다.

사돈 : 남에게 말할 때와 친숙해진 사돈끼리 부를 때 또는 연하의 사돈을 직접 부를 때
사돈어른 : 일반적으로 안사돈끼리는 이렇게 부른다.
댁의 사돈 : 남의 사돈을 말할 때

다) 이성 사돈간의 호칭
무척 조심스러운 관계로서 서로가 극진히 존대한다.

사돈어른 : 남녀가 모두 상대를 '사돈어른'이라고 부른다
사부인 마님 : 안사돈이 나이가 많을 때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

라) 사행이 높은 사돈의 호칭
딸이나 며느리의 조부모는 또는 형수나 누이의 윗대 어른 등 사행이 위인 사돈은 '사장어른'이라고 부른다.
사장어른 : 동성 이성을 막론하고 사행이 위인 사돈을 직접 부를 때
사장 : 사장어른을 남에게 말할 때

라. 사행이 낮은 사돈의 호칭

딸이나 며느리의 형제자매는 자녀와 같은 처지이므로 낮춰서 부른다.
여보게ㆍ자네ㆍ군ㆍ양 : 며느리나 딸의 형제자매나 그 아래 사람으로서 성년인 경우에 직접 부르는 호칭이다.
상대가 미성년이면 이름을 부르지만 이성인 경우는 깍듯이 대한다.
사돈 아가씨 : 사돈인 처녀
사돈 도령 : 사돈인 총각

마. 직계존비속ㆍ형제자매가 아닌 사돈
딸이나 아들, 며느리나 사위의 직계존비속이나 형제자매가 아닌 사람은 남에게 말할 때는 '사돈'이라고도 하지만 직접 대화나 부를 때는 사회적 사귐으로 한다.
▶제례
1. 제례(祭禮)의 의의

2. 제례의 유래와 변천

3. 제사의 종류

4. 제기와 제구

5. 제복(祭服)

6. 제수(祭羞)의 진설 7. 제수(祭羞)의 종류

8. 제수(祭羞) 만드는 법

9. 전통 제례 순서

10. 전통식 지방(紙榜)쓰는 법

11. 전통식 축문 쓰는 법

12. 차례
5일 후면 민속명절인 설이다. 설이 되면 부모와 친지, 스승을 찾아 인사를 드린다. 이 때 드리는 새해의 첫 인사법이 바로 ‘세배’다. 일년에 한 번 하는 ‘세배’를 제대로 알고 하면 어떨까? 지난 13일 홍보대행사 ‘프레인’에 근무하는 유재준(31)씨와 김정애(29)씨가 서울 성균관 유림회관 혼인의 집에서 성균관 전례연구위원회 황의욱 부위원장에게서 세배하는 법을 배웠다.
우리 민족이 언제부터 세배를 했는지 남아 있는 기록은 없다. 다만, 약 400년 전 사계 김장생의 ‘사계전서’에 제시된 배례법을 전통으로 따르고 있다. 세배는 아침 차례를 지낸 후 하는 게 정석이다. 절을 받는 어른이 앉는 자리를 북쪽으로 보고 동서남북 네 방위를 정한다. 실제 북쪽이 어디냐는 중요치 않다. 아버지와 어머니 등 남녀 어른이 자리를 같이할 때는 동쪽에 남자 어른, 서쪽에 여자 어른이 앉는다. 절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남자가 동쪽, 여자가 서쪽에 선다. 이는 음양의 이치를 따른 것으로, 동쪽은 양을, 서쪽은 음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황 부위원장은 “먼저 내외가 절하는 것”이라고 설명해 준다. 가족이 모여 세배할 경우 첫째아들 부부부터 어른 앞에서 부부간 절을 하고 어른에게 세배를 드린다. 부모에게 인사를 다 한 후에는 형제자매 간에 평절로 인사하고, 부모 옆에 앉아 아들딸의 세배를 받는다.


◇유재준(가운데)씨와 김정애(오른쪽)씨가 황의욱 성균관 전례연구위원에게 세배법을 배우고 있다.
평소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어른이라도 제대로 격식을 갖춰 세배할 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유씨가 선 자세에서 무릎을 꿇으며 손을 내밀어 절하려다 황 부위원장의 지적을 받았다. 절은 시작부터 끝까지 정해진 동작이 있다. 먼저 양 손을 포개 양 팔꿈치와 손이 배 부근에서 수평이 되게 한다. 이때 남자는 왼손이 오른손 위로 올라간다. 좋은 일에는 왼손이 위로 올라가고, 상과 같은 불행한 일을 당했을 때는 오른손이 위로 올라간다. 이 상태에서 허리를 굽혀 손으로 땅을 짚고 왼발을 먼저 구부린 후, 오른발을 구부려 오른발바닥이 왼발바닥 위에 올라가도록 앉는다. 엉덩이를 발에 붙이고 손을 구부려 양 팔꿈치가 땅에 닿은 상태에서 얼굴이 손에 닿을 듯 말 듯 할 정도로 머리를 숙여 절한다. 절을 하고 일어날 때는 오른발을 세우고 손을 바닥에서 뗀 후, 손으로 오른 무릎을 짚으면서 한 번에 일어선다.

◇남 세배법 = 왼쪽부터 ①양손을 포개 양 팔꿈치와 손이 배 부근에서 수평이 되게 한다. ②허리를 굽혀 손으로 땅을 짚고 왼발을 먼저 구부린다. ③오른발을 구부려 왼발 바닥위에 오른발을 포개 앉는다. ④얼굴이 손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굽혀 절한다.

“TV를 보면 양손을 옆으로 내리면서 절을 하던데 알고 보니 큰절을 하는 게 맞네요.” 전통무용을 배워 우리 문화에 비교적 익숙하다는 김정애씨도 이날에서야 세배하는 법을 제대로 알았다. 여자는 남자와 반대로 오른손등이 왼손등 위로 해 어깨 높이까지 오게 든다. 이때 손과 팔꿈치의 높이를 나란히 하고 고개를 숙여 바닥을 바라본다. 이 상태에서 먼저 왼발을 구부린 뒤 오른발을 구부려 앉은 후 허리를 반쯤 굽혀 절한다. 절을 마친 후에는 오른발을 올리고 그다음 왼발을 올려 일어난다. 남자의 경우 평절은 큰절과 같은 요령으로 하되 절 동작을 하자마자 바로 일어나고, 여자는 왼발만 구부린 무릎앉기 상태에서 팔을 양쪽으로 펴는 점이 다르다.



◇여 세배법 = 왼쪽부터 ①손과 팔꿈치가 수평이 되도록 어깨 높이로 들고 고개를 숙인다. ②포갠 양 손 사이로 시선은 바닥을 향한다. ③왼발과 오른발을 차례로 구부려 앉는다. ④허리를 반쯤 구부려 절한다.


세배를 마친 후 덕담을 들을 때는 남자는 무릎을 꿇은 자세에서 손을 모아 허벅지 중앙에, 여자는 무릎을 꿇은 자세에서 두 손을 모아 오른쪽 허벅지 위에 얹는다.

유재준씨는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제대로 절하는 법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며 “이번 설에는 격식을 갖춰 부모님께 세배를 드려야겠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한복을 입고 예를 갖춘다고 생각하니까 마음까지 경건해지는 기분”이라는 김정애씨는 “빨리 결혼해서 남편과 함께 부모님께 인사하러 가야겠다”며 웃음을 지었다.



◇⑤덕담을 들을 때는 무릎을 꿇은 자세에서 남자는 허벅지 중앙에, 여자는 오른쪽 허벅지 위에 손을 얹는다.


가평(加平)
가흥(嘉興)
간성(杆城)
감천(甘泉)
강릉(江陵)

강서(江西)
강양(江陽)
강진(康津)
강화(江華)
강흥(江興)

개령(開寧)
개성(開城)
거제(巨濟)
거창(居昌)
견주(見州)

결성(結城)
경산(京山)
경산(慶山)
경성(鏡城)
경원(慶源)

경주(慶州)
고령(高靈)
고부(古阜)
고성(固城)
고창(高敞)

고흥(高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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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부(曲阜)
곡산(谷山)
곤산(昆山)

공산(公山)
공암(孔巖)
공주(公州)
관산(冠山)
광동(廣東)

광령(廣寧)
광산(光山)
광양(光陽)
광주(廣州)
광천(廣川)

괴산(槐山)
교동(喬桐)
교동(喬洞)
교하(交河)
구례(求禮)

구산(龜山)
군위(軍威)
금계(金溪)
금구(金溝)
금마(金馬)

금산(金山)
금산(錦山)
금성(錦城)
금성(金城)
금천(衿川)

금화(金化)
기계(杞溪)
기장(機張)
길안(吉安)
길주(吉州)

김녕(金寧)
김제(金堤)
김포(金浦)
김해(金海)


나주(羅州)
낙안(樂安)
남양(南陽)
남원(南原)
남평(南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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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南海)
낭주(朗州)
노성(魯城)
농서(농西)

능성(綾城)


단성(丹城)
단양(丹陽)
단주(湍州)
달성(達城)
담양(潭陽)

당성(唐城)
당악(唐岳)
당진(唐津)
대구(大邱)
대구(大丘)

대원(大元)
대원(大原)
대흥(大興)
덕산(德山)
덕수(德水)

덕양(德陽)
덕영(德永)
덕은(德恩)
도강(道康)
도안(道安)

도주(道州)
동래(東萊)
동복(同福)
동주(洞州)
동주(東州)

두릉(杜陵)
두원(荳原)
등주(登州)


만경(萬頃)
면천(沔川)
명주(溟州)
목천(木川)
무송(茂松)

무안(務安)
무장(茂長)
무주(茂朱)
문경(聞慶)
문의(文義)

문화(文化)
밀양(密陽)


반남(潘南)
배천(白川)
벽진(碧珍)
보령(保寧)
보성(寶城)

보안(保安)
보은(報恩)
보주(甫州)
봉산(鳳山)
봉성(峰城)

봉성(鳳城)
봉화(奉化)
부계(缶溪)
부안(扶安)
부여(扶餘)

부유(富有)
부평(富平)
부흥(復興)
분성(盆城)
비안(比安)


사천(泗川)
삭녕(朔寧)
삼가(三嘉)
삼척(三陟)
삼화(三和)

상산(商山)
상원(祥原)
상주(尙州)
서림(西林)
서산(瑞山)

서원(瑞原)
서원(西原)
서천(舒川)
서촉(西蜀)
서흥(瑞興)

선산(善山)
선성(宣城)
설성(雪城)
성주(星州)
소주(蘇州)

수성(壽城)
수성(隋城)
수안(遂安)
수원(水原)
수주(樹州)

순창(淳昌)
순천(順天)
순흥(順興)
승령(僧嶺)
시흥(始興)

신안(新安)
신주(愼州)
신창(新昌)
신천(信川)
신평(新平)


아산(牙山)
아주(鵝洲)
안강(安康)
안동(安東)
안로(安老)

안변(安邊)
안산(安山)
안성(安城)
안악(安岳)
안음(安陰)

안의(安義)
안정(安定)
압해(押海)
야성(野城)
야성(冶城)

양근(楊根)
양산(梁山)
양성(陽城)
양주(楊州)
양천(陽川)

언양(彦陽)
여산(礪山)
여수(麗水)
여양(驪陽)
여주(驪州)

여흥(驪興)
연기(燕岐)
연산(連山)
연안(延安)
연일(延日)

연주(延州)
연풍(延豊)
염주(鹽州)
영강(永康)
영광(靈光)

영덕(盈德)
영동(永同)
영산(靈山)
영성(靈城)
영순(永順)

영암(靈巖)
영양(潁陽)
영양(英陽)
영양(穎陽)
영월(寧越)

영일(迎日)
영주(榮州)
영주(永州)
영주(瀛州)
영천(寧川)

영천(永川)
영평(永平)
영해(寧海)
영흥(永興)
예산(禮山)

예안(禮安)
예천(醴泉)
오성(筽城)
오천(烏川)
옥과(玉果)

옥구(沃溝)
옥산(玉山)
옥야(沃野)
옥천(沃川)
옥천(玉川)

온양(溫陽)
옹진(饔津)
완산(完山)
요동(遼東)
요양(遼陽)

용강(龍崗)
용구(龍駒)
용궁(龍宮)
용담(龍潭)
용성(龍城)

용인(龍仁)
용주(龍州)
우계(羽溪)
우록(友鹿)
우봉(牛峰)

우주(紆州)
운봉(雲峰)
울산(蔚山)
울진(蔚珍)
웅진(熊津)

웅천(熊川)
원율(原栗)
원주(原州)
월성(月城)
유주(儒州)

은율(殷栗)
은진(恩津)
은풍(殷豊)
음성(陰城)
음죽(陰竹)

의령(宜寧)
의성(義城)
의주(義州)
의창(義昌)
의흥(義興)

이천(利川)
익산(益山)
익양(益陽)
인동(仁同)
인제(麟蹄)

인주(仁州)
인천(仁川)
일직(一直)
임강(臨江)
임구(臨구)

임천(林川)





장기(長기)
장성(長城)
장수(長水)
장연(長淵)
장천(長川)

장흥(長興)
재령(載寧)
적성(積城)
전의(全義)
전주(全州)

절강(浙江)
정산(定山)
정선(旌善)
정안(定安)
정읍(井邑)

정주(貞州)
정평(定平)
제남(濟南)
제안(濟安)
제주(濟州)

조양(兆陽)
죽산(竹山)
중원(中原)
중화(中和)
지곡(池谷)

지례(知禮)
지평(砥平)
직산(稷山)
진도(珍島)
진례(進禮)

진보(眞寶)
진성(眞城)
진안(鎭安)
진원(珍原)
진위(振威)

진잠(鎭岑)
진주(晉州)
진천(鎭川)



차성(車城)
창녕(昌寧)
창원(昌原)
창평(昌平)
천녕(川寧)

천안(天安)
철산(鐵山)
철성(鐵城)
철원(鐵原)
청도(淸道)

청산(靑山)
청송(靑松)
청안(淸安)
청양(靑陽)
청주(淸州)

청주(靑州)
청풍(淸風)
청해(靑海)
초계(草溪)
초산(楚山)

추계(秋溪)
춘양(春陽)
춘천(春川)
충원(忠原)
충주(忠州)

취성(鷲城)
칠원(漆原)





탐진(耽津)
태산(泰山)
태안(泰安)
태원(太原)
태인(泰仁)

토산(兎山)
통진(通津)
통천(通川)



파릉(巴陵)
파주(坡州)
파평(坡平)
팔거(八거)
팔계(八溪)

평강(平康)
평당(平當)
평산(平山)
평양(平壤)
평일(平一)

평주(平州)
평창(平昌)
평택(平澤)
평해(平海)
포주(抱州)

풍기(豊基)
풍덕(豊德)
풍산(豊山)
풍양(豊壤)
풍천(豊川)



하남(河南)
하동(河東)
하빈(河濱)
하양(河陽)
하음(河陰)

학성(鶴城)
한남(漢南)
한산(韓山)
한양(漢陽)
함안(咸安)

함양(咸陽)
함열(咸悅)
함종(咸從)
함창(咸昌)
함평(咸平)

합천(陜川)
항양(恒陽)
항주(杭州)
해남(海南)
해미(海美)

해양(海陽)
해주(海州)
해평(海平)
해풍(海豊)
행주(幸州)

현풍(玄風)
협계(俠溪)
홍산(鴻山)
홍성(洪城)
홍주(洪州)

홍천(洪川)
화개(花開)
화산(花山)
화순(和順)
화원(花園)

화평(化平)
황간(黃澗)
황간(黃磵)
황주(黃州)
회덕(懷德)

회령(會寧)
회산(檜山)
회인(懷仁)
회진(會津)
횡성(橫城)

효령(孝令)
흥녕(興寧)
흥덕(興德)
흥양(興陽)
흥해(興海)

희천(熙川)



가나다 순으로 배열된 성씨를 찾아 클릭하면 본관을 선택하는 화면이 나옵니다.



가(賈)
간(簡)
갈(葛)
감(甘)
강(姜)
강(康)
강(强)
강(彊)

개(介)
견(堅)
견(甄)
경(慶)
경(景)
계(桂)
고(高)
곡(曲)

공(公)
공(孔)
곽(郭)
구(丘)
구(具)
구(邱)
국(國)
국(菊)

국(鞠)
군(君)
궁(弓)

권(權)
근(斤)
금(琴)
기(奇)

기(箕)
길(吉)
김(金)



나(羅)
남(南)
남궁(南宮)
낭(浪)
내(乃)
노(盧)
노(魯)
노(路)

뇌(雷)



단(段)
당(唐)
대(大)
도(道)
도(都)
도(陶)
독고(獨孤)
돈(頓)

동(董)
동방(東方)
두(杜)



마(麻)
마(馬)
만(萬)
매(梅)
맹(孟)
명(明)
모(毛)
모(牟)

목(睦)
묵(墨)
문(門)
문(文)
미(米)
민(閔)





박(朴)
반(班)
반(潘)
방(方)
방(房)
방(邦)
방(龐)
배(裵)

백(白)
범(凡)
범(范)
변(卞)
변(邊)
복(卜)
봉(奉)
봉(鳳)

부(夫)
빈(賓)
빈(彬)
빙(빙)



사(史)
사공(司空)
상(尙)
서(西)
서(徐)
서문(西門)
석(昔)
석(石)

선(宣)
선우(鮮于)
설(薛)
설(설)
섭(葉)
성(成)
소(蘇)
소(邵)

손(孫)
송(宋)
송(松)
수(水)
순(荀)
순(舜)
승(昇)
승(承)

시(柴)
시(施)
신(愼)
신(申)
신(辛)
심(沈)



아(阿)
안(安)
야(夜)
양(梁)
양(楊)
양(樑)
어(魚)
엄(嚴)

여(余)
여(呂)
연(連)
연(燕)
연(延)
염(閻)
염(廉)
영(永)

예(芮)
오(伍)
오(吳)
옥(玉)
온(溫)
옹(邕)
옹(雍)
왕(王)

요(姚)
용(龍)
우(于)
우(禹)
운(雲)
원(元)
원(袁)
위(韋)

위(魏)
유(柳)
유(劉)
유(兪)
유(庾)
육(陸)
윤(尹)
은(殷)

음(陰)
이(伊)
이(李)
이(異)
인(印)
임(林)
임(任)





자(慈)
장(莊)
장(章)
장(張)
장(蔣)
전(全)
전(田)
전(錢)

점(占)
정(丁)
정(程)
정(鄭)
제(諸)
제갈(諸葛)
조(曺)
조(趙)

종(宗)
종(鍾)
좌(左)
주(周)
주(朱)
준(俊)
지(智)
지(池)

진(晉)
진(眞)
진(陳)
진(秦)



차(車)
창(昌)
창(倉)
채(采)
채(菜)
채(蔡)
척(拓)
천(天)

천(千)
초(肖)
초(楚)
최(崔)
추(秋)



탁(卓)
탄(彈)
태(太)



판(判)
팽(彭)
편(片)
평(平)
포(包)
표(表)
풍(馮)
피(皮)

필(弼)


하(夏)
하(河)
한(漢)
한(韓)
함(咸)
해(海)
허(許)
현(玄)

형(邢)
호(扈)
호(胡)
홍(洪)
화(化)
황(黃)
황보(皇甫)

맨뒤 남원(南原) 양씨의 인물들

양관(梁灌){2}
양기성(梁箕星)
양달석(梁達錫)

양대경(梁大卿)
양대박(梁大樸)
양성지(梁誠之)

양숙(梁淑){2}
양연(梁淵)
양원(梁#원15){2}

양응락(梁應洛)
양응록(梁應祿)
양응심(梁應深)

양일동(梁一東)
양제안(梁濟安)
양주익(梁周翊)

양지(梁誌){2}
양진(梁#진27)
양진국(梁晋國)

양한규(梁漢奎)
양헌수(梁憲洙)
양황(梁榥)

양희(梁喜)

오랜만에 만난 친척, ‘호칭’ 뭐라고 할까...
촌수, 이것만 익히면 어렵지 않아요

“저기요, 물 좀 주세요…” 초등학교 4학년인 김모 양(서울 송파구)은 작년 설날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있던 일이 지금도 생생하다. 처음 본 ‘아주머니’의 촌수와 호칭을 정확하게 몰라 무심코 내뱉은 ‘말 실수’ 때문이다.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미리 촌수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 지리산 청학동에서 서당을 운영하고 있는 김봉곤 훈장(몽양당서당)은 “촌수를 알면 자신의 뿌리도 익히고 친족들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을 좁힐 수 있다.”고 들려준다.
▶촌수란 뭘까?=친척의 멀고 가까운 관계를 숫자로 표현한 것이다. 나를 기준으로, 부모와 형제 사이가 ‘대나무의 한 마디’처럼 이어져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한자로 ‘마디 촌(寸)’를 쓴다. 촌수가 많으면 먼 친척, 적으면 가까운 친척이 된다.

촌수 계산은 덧셈으로 한다. 부모와 자식 사이는 ‘1촌’, 형제간은 2촌이 된다. 부모와 자식간에 발생한 1촌을 또 한번 더하기 때문이다. 큰아버지와 나는 몇 촌이 될까. ‘나-아버지-할아버지-큰아버지’로 1촌 관계가 세 번 연결되므로, 삼촌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직계 조상의 촌수는 따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령, 할아버지를 2촌, 고조할아버지를 3촌 같은 방식으로 부르지 않는다.

법이 정한 친척의 범위는 8촌이다. 8촌이 넘어가면 법적으로는 남남이 된다. 어머니의 친정인 외가는 어머니(모계)의 혈연을 따라 같은 방법으로 계산하면 된다.

▶호칭은 세대 구분 위해 필요= 촌수만으로는 세대가 구분되지 않는 불편함이 있다. 가령, 나와 작은 아버지는 3촌이고, 작은 아버지도 나와는 3촌 관계가 된다. ‘삼촌’이라는 촌수만으로는 세대 구분이 되지 않는 단점이 생긴 것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다양한 호칭이 생겼다. 아버지의 큰형·둘째 형은 각각 큰아버지(백부)·둘째 큰아버지, 아버지의 남동생은 순서에 따라 첫째 작은아버지(숙부), 둘째 작은 아버지라고 부르면 된다. 아버지 형제의 아내는 큰 어머니·둘째 큰어머니·작은어머니라고 부른다.

아버지의 4촌 이상 형제들을 부를 때는 ‘아저씨’, 아버지의 4촌 이상 자매들이나 4촌 이상 형제들의 아내를 부를 때는 통칭해서 ‘아주머니’라는 부른다. 할아버지 형제의 아들(5촌)은 특히 ‘당숙’이라 부른다. 어머니의 형제와 그 배우자는 외숙부와 외숙모다.

▶나의 뿌리 찾아보기=설날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족보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책을 찾기 힘들다면 인터넷을 이용해도 좋다. 검색사이트에서 ‘족보’를 쳐보면 많은 사이트가 나온다. 특히 ‘뿌리를 찾아서(rootsinfo.co.kr)’는 성씨의 종류와 유래, 성씨의 역사, 촌수 따지는 법, 역대 왕 이야기까지 자세하게 나와있다.


/ 김효섭 기자 4kids@chosun.com

조선초만해도 성씨있는 양반은 10%뿐이 안되었는데 조선중기 양반계급이 족보를 가지게 되면서 부터 평민들도 각 씨족 별로 구전 해온던 자료에 의하여 족보를 만들기 시작하였고 토착민들은 지역별 연결에 따라 동일 씨족으로 족보를 가지게 되었다. 집성촌을 이루지 못하고 생활한 유랑민이거나 원래 천민은 성씨없이 돌쇠,떡쇠, 개똥이, 삼돌이 등 이름으로만 불리웠는데 조선후기에는 양반들의 도움으로 성 하나 만은 가지게 되었고. 1909년 일제가 민적법 시행시 성씨가 없던 천민들에게 다시 원하는 성씨의 호적을 일제가 주었는데, 그 때 가장 인기 있던 성씨가 흔하면서도 유명한 김이박 등이였다. 그래서 유명한 성이 더욱 흔해지게 된 것입니다.일제가 성이 없던 밑바닥 천민(노비)계층에게 이들에게 신청하는 대로 유명성씨의 호적을 준것은 조선의 양반성씨들이 씨족별로 단결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나온것이고, 노비를 양민화 시켜서 수탈의 대상을 늘이기 위한 식민통치정책의 일환이였다. 일례로 김좌진 장군댁 노비 100명도 안동김씨 호적을 만들어 가졌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양반집 법도는 엄격한 유교의 윤리로 교육되어 우리가 알고 있는 양반으로 행세하기는 행동거지가 참으로 어렵고 엄했다고 한다. 따라서 천민은 흉네 낼 수도 낼 필요성을 느끼지 못는 사회 였답니다. 현재 품성과 관계없이 성씨로 양반입네 떠드는 사람들은 양반집의 돌쇠이였거나, 그 마을 개똥이였을 확률이 높은것은 아닌지? 양반은 항상 따르는 권속들에 대한 책임감과 가문의 명예를 위해 중압감을 느끼며 생활하였으며 자신의 행동이 가문과 직결되었기 때문에 오늘같은 막된 행동이나 막 말을 할수가 없었으며 지역사회에서 한번 쌍놈의 가문으로 찍혀지면 자녀들의 출가 문제로 직결되기 때문에 성씨가 그 사람의 품행을 구속했다고 한다. 법도와 예를 생명같이 여기고 살아간 이유도 여기에 있다.이런점에서 양반사회는 순기능 역활도 했다고 판단된다. 성씨에 대한 이해를 돕기위하여 아래의 자료를 첨부해봅니다.

2000년에 조사한 우리 나라의 성씨별 인구가 통계청 홈페이지에 떴는데, 1985년 발표 당시보다 성씨의 숫자가 12 개 늘었다. 그 때는 274개였는데, 이번은 286개가 되었다. 우리 나라 10대 성씨의 순위는 변화가 없었다.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 강(姜) 조(趙) 윤(尹) 장(張) 임(林). 김(金) 씨는 우리 나라 인구의 21.6%인 992만명으로 여전히 제일 많았다. 이(李) 씨는 그보다 훨씬 적은 14.8%로 679만명으로 조사되었다. 박(朴) 씨는 또 그보다 훨씬 적은 8.5%로 389만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 뒤를 잇는 최(崔), 정(鄭)씨는 4% 대이고, 강(姜), 조(趙), 윤(尹), 장(張) 씨는 2% 대 그리고 임(林) 씨부터 21위 전(全) 씨까지 1%대를 유지하고 있는데 성씨별 인구 수가 거의 일정한 차이를 유지하며 계속 나열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중국이나 일본의 성씨는 1위부터 2, 3위의 분포가 비교적 고르게 나타나 특정 성씨로 지나치게 몰리는 경우가 없다는데~ 우리 나라의 경우만 1, 2위가 이상할 정도로 특별히 많아진 것은 1900년대 초에 처음 호적법이 시행될 때 양반이 되고 싶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이런 기형적인 분포가 나타났다고 한다. 그게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일본이 메이지 유신 때에 전 국민의 성씨 가지기 정책을 시행하여 전 국민으로 하여금 성씨를 만들어 가지도록 하였는데, 이 때 대부분의 국민들은 각자 자기 집의 위치나 동네의 특징을 살린 성씨를 만들어서 가졌다고 한다. 田中, 中村, 松下 등 다양하게 창씨된 성씨의 숫자가 순식간에 8만 개나 되었는데 일본은 이러한 특징 때문에 특정 성씨가 지나치게 많은 경우는 없다고 하며 또한 성씨만 가지고는 가문의 역사 같은 것은 이야기할 수가 없기 때문에, 민족의 역사를 논할 때 성씨가 무언가 하는 것은 별로 따지지 않는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당연히 성씨에 대한 자부심이나 애착 같은 것이 거의 없다. 중국이나 한국과는 여기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그로부터 불과 몇 년 뒤에 일본이 우리 나라 즉 대한제국에 와서도 계급을 타파한다면서 신분 표시가 없는 호적법을 시행하였고, 여기에서도 전 국민의 성씨 가지기 운동을 전개하여 전 국민으로 하여금 성씨를 만들어 가지도록 하였는데, 결과는 일본과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 국민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던 돌쇠, 밤쇠, 삼월이, 오월이들은 일본처럼 새로이 성씨를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이들 대부분이 그 동네 지주나 양반들에게 부탁하여 그 양반님들의 성씨를 얻어 와서는 관청에 신고하는 현상이 일어났는데 이 때에 김(金) 씨나 이(李) 씨가 갑자기 늘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특정 성씨가 총 인구의 20%를 넘어 가는 경우는 없는데, 양반 대우를 받고 싶은 사람이 너무 많았던 우리 나라에서만 나타난 대단히 특이한 현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하여튼 우리나라는 결과적으로 전 국민의 양반화가 자연스러이 이루어졌고, 옛날 이야기에 그 많던 방자, 향단이, 마당쇠, 구월이의 자손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우리 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슨무슨 정승, 판서의 몇 대 손이 되어 버렸고, 오로지 양반의 후손만이 존재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래서 덕분에 우리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양반이 많은 나라가 되었고, 또한 제사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되어 버렸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성씨도 없는 쌍놈들은 제사고 차례고 지낼 수가 없었는데, 요즈음은 집집마다 장손이면 모두 명절날 차례를 지낸다. 참고로 5000년 전부터 성씨를 사용해 온 중국의 경우를 보면 성씨별 인구 1, 2, 3위의 비율은 각각 7.4%, 7.2%, 6.8%로 되어 있어서, 특정 성씨로 몰리는 현상은 없다. 중국은 인구 0.1% 이상을 차지하는 성씨가 모두 129개로 나타났는데, 이 129개 성씨의 인구 합계는 중국 인구의 87%라고 한다. 이는 2006년 1월 10일 중국과학원에서 중국역사상 가장 정밀한 자료조사를 거쳐 발표했다는 100대 성씨에 근거한 것이다. 이번 발표에서 인구기준 성씨순위가 1987년의 발표자료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하는데, 이는 표본조사한 기초자료의 차이 때문이라고 한다. 1987년 조사는 겨우 57만명 정도를 표본조사하여 순위를 매긴 것이고, 이번 조사는 그 때에 비하여 500배도 넘는 약 3억명을 표본 조사하여 순위를 매긴 것이기 때문에 그 정밀도가 엄청나게 향상되었다고 한다. 이번 조사에서 중국 10대 성씨는 이(李), 왕(王), 장(張), 유(劉), 진(陳), 양(楊), 황(黃), 조(趙), 주(周), 오(吳)로 판명되었다. 이 순위는 자동적으로 전세계의 10대 성씨가 되기도 한다. 이 중 李는 중국 인구의 7.4%인 9천 600만명 정도가 될 것이라고 발표하였는데, 우리 나라의 679만여 명을 합치면 李씨는 1억 명을 넘어 가는 세계 유일의 성씨가 된다. 약 900년 전인 서기 1100년대에 북송(北宋)에서 발표한 『백가성(百家姓)』이란 책자가 최초의 성씨 조사 기록이었고, 명(明)나라의 『천가성(千家姓)』, 청(淸)나라의 『백가성(百家姓)』 등이 뒤를 이었으나 이 책들은 모두 성씨별 인구수를 기준으로 서열을 매긴 것은 아니었다. 900년 전 『백가성(百家姓)』에서의 성씨 순위는 趙錢孫李 周吳鄭王으로 되어 있으나, 이는 인구수 순위가 아니었다. 조(趙)는 북송을 건국한 황제의 성이었고, 전(錢)은 당시 가장 힘이 강했던 오월국(吳越國)의 국왕 성씨였고, 정(鄭)은 그 왕후의 성씨였으며, 이(李)는 그 다음 강국인 남당(南唐)의 국왕 성씨였던 것인데 (중국의 1100년대는 송나라가 약간 힘이 강한 정도였고, 고만고만한 나라들로 나누어져서 도토리 키재기로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루고 있을 때였다) 따라서 900년 전 『백가성(百家姓)』에서의 성씨 순위는 인구 순이 아니라 예우(?)를 받아야 할 성씨의 순위였고, 최근 중국 일부 신문에서 보도한 900년만에 조(趙)가 1위에서 8위로 밀렸다는 내용은 옛날 기록의 특징을 잘못 이해한 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하여튼 어찌 되었든 간에 우리 나라 성씨의 순위를 기준으로 하여 중국 성씨 순위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金 : 21.59%, 한국 1위 (중국 64위)
한국 발음이 현재는 김이지만 옛날에는 금으로 읽었다는 주장도 있음. 현재 중국 배우 중에도 이 성씨를 가진 배우가 있는데 금성무라고 보도되고 있음. 이 글자의 현대식 중국 표준발음은 찐임

李 : 14.78%, 한국 2위(중국 1위 7.4%)
한국, 중국 합하면 1억이 넘어 가는 전 세계 단 하나의 성씨임. 중국, 북한에서는 리라고 하는데, 남한에서만 이라고 읽고 있음. 그런데, 남한 사람들도 영어로 쓸 때에는 대부분 Lee(리)라고 하는 버릇이 있음

박 : 8.47%, 한국 3위(중국 100위 내에서는 안 보임)
한자로 朴을 쓰기도 하지만, 원래 바가지란 뜻의 순우리말 토종 성씨임. 박혁거세의 박은 박만큼이나 커다란 알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붙은 말임. 영어로 Park Pak을 대부분 사용하고 있으나 Paak이라고 쓰는 것이 가장 무난함.

이 중 최근에 새로 생긴 성씨 중에는 동사무소 직원이 잘못 기재하여 그리 된 것도 있고, 국제 결혼으로 우리 나라 국적을 취득한 동남아 또는 중국 사람들의 성씨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현대 중국의 주요 성씨를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李 : 중국 7.4%, 중국 1위(한국 2위)
당나라 황제 이세민(李世民)이 개국공신들에게 李를 하사했고, 나중에 후위(後魏)의 선비족(鮮卑族)에서도 李씨로 바꾸어 사용한 사람들이 많음. 중국인들은 영어로 표기할 때 Li를 주로 사용하며, 미국 Lee와의 관계는 불명확함

王 : 중국 7.2%, 중국 2위(한국 83위)
중국 전한(前漢)과 후한(後漢) 사이의 신(新)나라 때 황제 왕망(王莽)의 성씨. 중국 사람이라 하면 비단장사 왕서방이라 할 정도로 중국에 왕 씨가 많았음. 한국에서도 고려시대 왕족이 왕건(王建)의 왕씨였으나 고려 멸망 이후 거의 자취를 감춤.

張 : 중국 6.8%, 중국 3위(한국 9위)
장삼이사(張三李四 중국인들은 대개 張씨네 셋째 아들 아니면 李씨네 넷째 아들이라는 뜻)라는 말도 있을 정도로 중국에는 전통적으로 張씨가 많았음. 지금도 장가계(張家界)는 관광지로 유명함. 왕삼이사(王三李四)란 말이 생기지 않은 것은 왕이 셋이면으로 잘못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됨.

중국 측 발표에 의하면 현재 중국의 성씨는 56개 종족에 약 12000개의 성씨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고 한다. 13억 인구 전부를 조사 못해서 이런 추정치라는 것을 발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신판 『중국성씨대사전(中國姓氏大辭典)』에는 무려 23000개의 성씨가 소개되어 있다. 우리는 중국, 한국, 일본의 성씨에 대한 역사나 인식들에 대하여 약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중국은 예로부터 성(姓)과 씨(氏)는 엄격히 구분되어 있었다. 원래 성(姓)이라 함은 모계제 사회의 흔적으로 어머니의 출신지를 가리키는 말이었고, 씨(氏)는 출생한 뒤에 아버지와 함께 살던 곳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중국인들이 모두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믿고 있는 황제(黃帝)의 경우 성(姓)은 희(姬)이고 씨(氏)는 헌원(軒轅)이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성격이 조금 바뀌어 황제(皇帝), 즉 천자(天子)가 내려 주는 것은 성(姓)이라 했고, 제후(諸侯) 또는 국왕(國王) 정도가 내려 주는 것은 씨(氏)라 했다. 언제나 성(姓)이 한 단계 위의 개념이었는데, 보통 성(姓)은 한 글자였고 씨(氏)는 두 글자가 많았다. 그리고 한(漢) 나라 때에 족보라는 것이 만들어졌는데, 이는 천자가 각 제후나 공신들의 자제들에 대한 특별 관리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때부터 천자가 만든 족보에 이름이 있는지 없는지가 권력의 유무를 판별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성씨는 남자들만의 혈통을 표시하는 것이 되어 버렸고 생물학적으로 특정한 Y염색체의 유전 상황을 표시하는 도구가 되어 버렸다. 어쨌든 중국의 성씨는 역사가 5000년이 되었고, 성씨는 문화의 전승과 남성 혈통의 흐름을 연구하는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같은 성씨이면 무조건적으로 친근감을 느끼는 관습이 자연스러이 형성되었고, 이러한 혈연 관계는 인간생활에 활력을 넣어 주기도 하고, 또 때로는 해악을 끼치기도 한다. 원래 우리 나라의 토착민들은 성씨가 없었다고 한다. 계속적인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서 일부 고위 관리들에게서 성씨를 가진 자들이 간간이 나타났고, 삼국시대 말기 신라에서는 국력의 세계화를 기치로 내걸고 왕족을 중심으로 성씨를 스스로 만들어서 가졌다. 그래서 왕족들은 이미 수백 년 전에 죽고 없는 먼 조상님들(혁거세, 알지 등)에게도 소급해서 성씨를 만들어 붙이고 했다. 조선시대 말까지도 우리나라는 양반보다 쌍놈들이 더 많았고, 성씨를 갖고 있는 사람들 숫자도 그리 많지는 않았다. 대한제국 시절 일본의 압력 덕분에 호적에 성씨란 것을 처음으로 만들어 올린 사람들도 많았지만, 만들어 올렸다는 그 사실은 언제까지나 가문의 비밀로 숨겨두어야 했다. 성씨의 유무와 관련한 성씨의 위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우리 백성들은 양반제도가 비록 법적으로 폐지되었다고는 하지만 이 어렵게 얻은 양반의 성씨만큼은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1940년대에 일본이 이제 조선과 일본은 명실상부한 한 나라임을 강조하면서 일본식으로 창씨하는 것을 허용한다고 발표하고, 앞으로 성씨로 인한 조선인, 일본인 간의 차별대우는 영원히 없어질 것이라 하였다. 성씨 자체를 가문의 역사로 생각하는 많은 우리 백성들은 당연히 반대하였고, 성씨의 역사가 불과 50년밖에 안 되어 성씨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것도 없었던 일본 정부에서는 조선인들의 반대를 보고 거참, 이상하다. 그깟 성씨 가지고 왜들 저러지?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성씨에 별 의미를 두지 않는 일본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성씨를 만들어 신고한 사람도 있었다. 소설가 춘원 이광수는 신청 첫날 아침에 맨 먼저 신고하였는데, 이광수가 만든 성씨는 일본 천황 고향의 뒷산인 향구산(香久山)의 이름에서 따 왔다는 향산(香山)이었다. 이광수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은 성씨란 건 별 것 아니야~ 라는 자기네들의 전통적 인식을 한국식으로 바꾸지는 않았다. 어쨌든, 지금의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자가 결혼 후에도 자신의 성씨를 그대로 유지하는 나라가 되어 있다. 전 세계의 남자들이 한국인들에게 깜짝 놀라는 것이 두 가지라 하는데, 한 가지는 부인의 성씨 문제이고 또 한 가지는 부인이 남편 통장을 관리하는 것이라 한다. 자다가 벌떡 깨어 다시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그들이 보는 한국은 거의 구제불능성 선천적 여성천국이라 한다. 일본은 우리 한반도의 영향을 받아 백제와 교류할 때부터 성씨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고, 오랜 기간 동안 그럭저럭 잘 살아왔다. 가물에 콩 나듯 하는 중국과의 교류도 크게 활발한 적이 없기 때문에 성씨의 위력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19세기말 미국이 군함을 밀고 들어오고, 일본 청년들이 세계일주도 하는 과정에서 외국인들이 패밀리 네임이란 것을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을 많이 보게 되었다.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을 보니 자기네들의 직업을 가지고 만든 성씨도 있고, 자기네 마을의 특징을 살려서 만든 성씨도 있었다. 그래서 일본도 성씨란 걸 만들어서 쓰기로 하였다. 그런데, 일본의 학자들에게 물어 보니 동양 문화권에서는 성(姓)이라는 것도 있고 씨(氏)라는 것도 있는데 성(姓)이란 것은 황제가 직접 만들어서 나누어 주어야 하는 것이라 하였다. 백성이 한두 명도 아닌데 어느 세월에 만들어서 준단 말인가. 그냥 일본은 씨(氏)를 만들어서 쓰기로 하고 창씨(創氏)하는 업무는 각 사무라이들에게 그냥 맡기기로 하였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순식간에 수만 개의 씨(氏)가 만들어졌는데 지금도 일본은 어떤 장부이든지 성명(姓名)이란 칸은 없고 어디든지 모두 씨명(氏名)이란 칸만 있다. 19세기 말 갑자기 시행된 창씨(創氏)였기 때문에 각자의 씨(氏)에 대한 커다란 자부심 같은 것은 당연히 없다. 청일 전쟁 승리 이후 조선에게도 성씨 없는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고자 호적법을 만들어 창씨(創氏)의 기회를 주었으나, 조선인들은 이상하게도 창씨(創氏)는 않고 기존 양반들의 성(姓)을 빌려 와서 관청에 신고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한 글자 짜리인 성(姓)을 사용하는 사람은 중국 또는 조선인이고 두 글자 짜리 씨(氏)를 쓰는 사람은 일본인. 어찌 되었든 간에 국적 구별이 쉬워서 좋기는 했다. 조선을 삼키고 난 뒤에 조선인들로부터 같은 나라가 되었다고 해 놓고는 차별대우가 너무 심하다는 등 불만사항이 많이 접수가 되었지만, 우선 이름에서부터 출신이 확연하게 표시가 나니 일본 정부로서도 별로 뾰족한 대책이 없어서 그냥 대충 세월만 보냈다. 그러다가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고, 일본군들이 매일매일 죽어 나가고 조선인들이라도 군인으로 뽑아서 내보내야겠는데 차별대우 해소를 위한 근본대책을 세우라고 매일 투덜대는 저 조선인들을 그냥 일본군으로 들여 보냈다가는 전투도 제대로 못해 보고 질 것 같고 일본정부는 착잡해졌다. 누군가 묘안을 냈다. 일본식으로 창씨(創氏)할 기회를 한 번 더 줄 터이니 이 참에 일본식으로 제대로 창씨를 해라. 어차피 얼굴 생긴 것도 똑같고 조선 출신을 차별대우하고 싶어도 조선 출신이란 표시가 없으니 못할 것 아니냐. 그러나 그대신 조선 청년들 군대에 좀 가 줘야 되겠다. 이렇게 하여 1940년대에 창씨(創氏)할 기회를 주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곳에서 문제가 터졌다. 어떻게 그 동안 써 오던 성(姓)을 버리고 그보다 격이 낮은 씨(氏)를 쓸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일본인들로서는 얼른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었다. 이미 오래 전에 법적으로 양반이란 것도 없어졌고 문벌이란 것도 이제 큰 의미가 없어졌는데 허울만 남은 성(姓)을 가지고 왜 그리 집착을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그래도 차별대우 철폐란 것이 어차피 민간 차원에서는 불가능한 문제이고 정책 차원에서 조선출신이라는 표시가 안 나게 해 주겠다는 것인데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의 불만에 대해 잘 이해가 안 갔지만 그래도 강제 창씨를 계속 밀고 나갔다. (이 때 林, 柳, 南씨 일부는 일본에도 있는 성씨라 하여 새로 창씨를 하지 않았다고 함) 그리고 조선인들을 일본군으로 받아 들여 전쟁을 계속 수행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조선사람들만 일본군복을 입은 채로 애매하게 죽은 셈이 되어 버렸고 몇 년 후 일본은 전쟁에서 졌다. 1945년에 전쟁도 끝이 나고 살림살이도 일본 내부로 축소되었으니 일거리도 줄어들고 오히려 편해졌다. 일본인들도 이제 성씨를 사용한 지 거의 100년이 다 되어 간다. 100년 동안 의 짧은 역사가 일본인들에게 성씨에 대한 관념을 얼마나 변화시켰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아직까지는 성씨에 대한 뚜렷한 자부심 같은 것은 없는 것 같다. 어쨌든 일본인은 성씨의 종류는 8만여 가지로 무지하게 많지만 성씨별 인구 수에 대해서는 아직은 신경을 쓰는 사람이 없는 모양이다. 우리나라 양반의 자손들이 볼 때에는 분명히 일본인은 근본도 모르는 쌍놈들일 뿐이다.
글쓴이 : 문학박사 황재순(제물포고 교감)





회암사지 출토




▲ 각종 영락장식 기전문화재연구원의 양주 회암사지에 대한 제8차 조사결과 출토된 각종 영락장식. 통상 이런 영락장식은 불상에 부조로 표현되나 이것은 다른 곳에 매달아 사용했다고 추정된다. /연합

'성기능 개선위한 생활습관 7계명' 제안

하루 10분 엉덩이에 힘줘라!
최근 국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20∼40세 평범한 한국 남성의 남성호르몬 수치는 서양인의 약 79% 수준에 그친다고 발표했다.
 이는 우리나라 남성이 서양인에 비해 성기능 저하 등 남성갱년기 증상을 일찍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암시한다.
 특히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한국의 중년남성들은 명퇴, 정년퇴직 등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경제적, 사회적 스트레스가 높아 40대 이후 남성의 80% 이상이 성욕 감퇴를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성의학 전문병원 아담스 클리닉(원장 이무연)이 일상생활 속에서 성기능을 개선할 수 있는 생활습관 7계명을 제안해 눈길을 끌고 있다.
 
40대 남성 스트레스 심각…80%가 성욕감퇴 경험
하체근육 단련…조깅-헬스 등 유-무산소 운동 병행

 ▶괄약근 운동을 습관화 하라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괄약근의 수축력이 떨어져 성적 극치감이 약해지기 쉽다. 반듯이 엎드린 후 발목부분을 겹쳐놓고 엉덩이에 힘을 주어 항문의 괄약근을 10초 정도 조였다 풀어주는 것을 반복한다. 오른쪽과 왼쪽 발목을 번갈아 가며 겹쳐주면서 하루 10분 정도 운동을 해주면 항문과 꼬리뼈 주위 근육이 강화되어 성기능 향상에 도움이 된다.
 
 ▶유산소-무산소 운동을 병행하라
 발기를 유도, 유지하며 강직도를 관장하는 근육은 주로 복근, 배근, 고관절 굴곡근, 고관절 신경근 같은 하체근육이다. 이렇듯 하체근육을 단련시키는 유산소, 무산소 운동을 적절히 병행하는 것이 성기능 강화에 도움이 된다. 조깅, 사이클, 테니스, 헬스가 특히 성기능을 향상시켜 준다.
 
 ▶규칙적인 성생활을 해라
 규칙적인 성생활은 나이에 따른 음경의 퇴화를 막아 발기부전을 예방하고 남성호르몬 분비를 촉진시킨다. 또 고환의 위축을 예방해 남성갱년기에 빠질 위험을 줄여줄 뿐만 아니라, 성행위시 뇌에서 엔도르핀이 분비되고 면역력이 강화되는 효과도 있다.
 
 ▶숙면을 취해라
 성기능에 관여하는 성장호르몬은 밤 10시에서 새벽 1시 사이에 왕성하게 분비된다. 성기능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남성호르몬은 깊이 잠들었을 때 왕성하게 분비되므로 되도록 일찍 자고 숙면을 취하는 것은 피로를 회복하는 것은 물론 성기능 강화에 도움이 된다.
 
 ▶건강식단을 짜라
 포화지방과 트랜스지방, 염분, 설탕 등은 모두 혈관을 노화시켜 성기능을 떨어뜨린다. 포화지방은 육류의 지방, 유제품, 버터 등에 많으며 트랜스지방은 마가린, 인스턴트 식품, 스낵류, 패스트 푸드에 많이 들어 있다. 콩나물, 두부와 같은 콩류 식품에는 콜레스테롤을 낮춰주는 불포화지방산이 많이 들어 있어 발기부전의 원인 중 하나인 동맥경화의 위험을 낮춰 준다. 양파와 마늘은 예로부터 최음제로 알려져온 음식으로 말초혈관계의 노폐물을 제거, 발기력 증강에 도움이 된다. 포도, 사과 등 신맛 과일에는 유기산이 풍부해 피로회복과 정력 강화를 돕는다.
 이밖에 ▶감기약, 소염 진통제, 고혈압 치료제, 위궤양 치료제, 혈관 확장제, 이뇨제 등을 오랫동안 복용하면 성기능 장애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주의하는 것이 좋으며 ▶지나친 음주, 흡연도 삼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 강병원 기자 hosp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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