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 (Marc Chagall 1887∼1985)
혼(魂)의 고향(故鄕)을 찾는 색채(色彩)의 대교향곡
자료 출처 ; http://www.youth.co.kr/main.htm
19. 두 얼굴의 신부
LA MARIEE A DOUBLE FACE
1927년 캔버스 油彩 99×72Cm
개인소장
20. 레지스탕스
1937년에 샤갈이 유태인 박해의 현상을 보고, 또 독일과 이태리의 파시스트 대두, 조국 러시아에서는 스탈린에 의한 숙청이 정점에 달했을 때, 그의 젊은 피를 끓어 오르게 했던 10월 혁명을 상기시키는 대작을 계획, <혁명>이란 제목의 에스키스를 남기고 있는데, 그로부터 10년간 그것이 세 개로 쪼개어져 가필되어 완성한 것이 이 <레지스탕스>와 <부활>, <개방>의 삼부작이다. 이 작품에서는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하려는 의도는 없고, 제목과는 달리 공방하는 적대 관계도 없다. 단지 위대한 수난자의 둘레를 부유(浮遊)하는 민중의 각고가 있을 뿐이다. <레지스탕스>는 여기서 항독 (抗獨) 운동이 아니라, 운명에 항거하는, 유동하는 영혼을 의미하는 것 같다. 비테부스크의 광장에 누운 화가 자신에게 향하여 조그만 초록색 벽시계가 흘러내리고 있다.
21. 피안(彼岸) 없는 시간
예감되어 왔던 비극은 드디어 세계대전의 형태로 나타나고, 그 발발의 해에 몇 점의 대작을 그렸는데, 그 중 특히 이 작품이 대표적인 것으로서 새로운 그의 양식의 도래를 알려주는 그림이다. 그가 계속해 오던 주제 '사랑'은 마침내 불길한 것의 그늘에 부각되게 되었다. 여태껏 그가 표현하던 고향 비테부스크를 어슴푸레하게 위에서 내려보게 하는 구도로 뒤에 깔고, 강한 그리고 기묘한 물상의 앙상블을 이루어 놓았다. 커다란 추시계와 함께 날개에 피칠이 된 커다란 청어 는 바이올린을 가지고 사랑의 찬가 아닌 다른 슬픈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듯하다. 날아도 날아도 앉을 곳이 없는, 그래서 쉴 틈없이 날아야 하는 운명의 시간을 이야기하듯, 유태인으로서 당시 절박한, 올 것이 오고 만 비극을 나내고 있다.
22. 첼로 연주가
드디어 샤갈은 이 작품을 통해서 또 한 번의 변용을 가져온다. 이 시기에 나타나는 샤갈의 작품 속의 연인들이 아주 몽상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일관된 환상 속에 이제는 어떤 괴기적 요소가 섞이기 시작한 것은 누구나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비테부스크는 첼로를 켜는 인물 뒤에서 황량한 눈이 덮인 고장으로 되고, 혹은 다른 작품 <초록 눈의 집>에서는 건물이 눈을 번쩍거리기도 한다. 인간은 동물로 동물은 어떤 괴물로 각각 변모한다. 이 작품에서는 첼로가 샤갈 자신이 되고, 바이올린을 켜는 벨라는 조그만 송아지로 변하여 있다. 그들 자신이 화면에서 곡예를 하며 또한 다음 곡예를 예고하기도 한다. 특히 하늘이나 길에 전율을 느끼게 하는 마티에르, 얼룩지듯 엮어간 화면의 질감은 앞서 제작한 판화집을 통한 기법에서 온 것이다.
23. 에펠탑의 부부
LES MARES DE LA TOUR EIFFEL
1938-39년 캔버스 油彩 148×145Cm
작가 소장
24. 화촉
벨라의 죽음은 샤갈에서 있어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그 불행과 고독을 이겨내는 9개월간 그는 붓을 들지 못했고 온갖 그림들을 벽을 향해 돌려놓았다. 드디어 화가(畵架) 앞에 앉을 기력을 회복하여 처음으로 그가 손에 잡은 그림이 12년 전 그가 사랑에 잠겨 살 때 그린 <아르르 캉> 이었다. 시집가는 신부를 거의 중앙에 그리고, 주위에는 여러 형상과 인물이 여기저기 그려져 있는 작품으로, 이 오른쪽 반쪽의 테마로서는 <화촉>이라는 이 작품을, 왼쪽 반으로서 앞에 소개한 <그녀의 주변>이라는 작품을 그렸다. 앞 쪽의 투명하고 짙은 푸른색에서, 밝게 멀리 배경의 위로 놓은 신부의 모습으로, 그 주위에는 선회하는 듯 여러 형상을 둘러 싸게 한 이 구도는 혼례를 주제로 한 샤갈의 전작품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5. 초록 눈의 집
샤걀의 초기의 작품들에서부터 가지고 있었던 우울한 어두움이 그 동안의 전쟁과 고독의 부조리를 통하여 풀어지고, 세계의 그늘과 융화되어 갔다. 그에게 있어 가장 정다운 회상의 대상이며, 몇 번이나 거듭 화폭에 나타나는 비테부스크까지도 이제는 유령의 마을처럼 그리고 있다. 낮을 비추는지 밤을 비추는지 구별이 되지 않은 초승달이 화면 광경에 초월적으로 무엇인가를 강조하고, 주막의 현현한 거안은 젖어 동공이 흐려 있다. 이 무렵에 그린 그의 작품 속에 보여주는 그의 낙원의 동물들은 대부분 이빨을 드러내고, 물고기는 선혈을 벌겋게 흘리는 날개를 갖는다. 이 작품을 그린 해에 사랑하는 벨라를 잃었고, 그래서 외로움에 떨고 있는 집들, 고독하게 혼자 젖을 짜는 여인을 지켜보는 수호의 눈으로서 자기 자신의 눈을 동공이 없는 채 부드럽게 나타내고 있다.
26. 그녀의 주변
이 작품 샤갈의 애처 벨라가 세상을 떠난 다음 해에 그려졌다. 파리 해방과 더불어 파리개방의 소식을 듣고 뛸 듯이 좋아하던 벨라가 갑자기 돌아오지 않은 사람으로 그의 곁을 떠나고, 샤갈은 그 슬픔을 통하여 그녀와의 삶을 이 작품에서, 마치 스테인 글라스의 작품처럼 투명하고 심오한 색으로 표현했다. 푸른 밤의 중앙에는 초승달 빛을 받은 비테부스크의 또 다른 밤이 둥글게 따로 박혀 있고, 이 둥근 조그만 지구를 아크 로바트로 변한 딸 이다가 붙들고 있다. 전경에는 피안의 사람들을 봄으로써 그것을 상기하고 있는 듯한 벨라의 표정과, 그피안의 하늘에 시선을 지는 자기 자신의 역전한 얼굴이 그려져 있다. 중앙의 원은 초승달과 함께 해와 달을 상징하고, 이후 많은 작품에 음양(陰陽)의 의미를 가지고 나타나는 기호의 발단이라고 할 수 있다.
27. 순교자
순교자는 십자가가 아니라 커다란 일자 막대기에 매달려 있다. 순교자의 집은 불타 하늘에 시커멓게 연기로 채워지고 있다. 결혼 이후 25년간 행복하고 안락한 그 의 가정에 피어나던 사랑의 이야기를 환희와 더불어 그려오던 그의 작업은, 정세의 변화와 함께 전해 내려 오는 전설 신화에 그 자신의 현실을 일체화시키는 총합적인 작업으로 변하여 간다. 이 작품에 있어 순교자란 예수가 아니라, 나찌에 의하여 학살되어 간 이름 없는 무수한 유태인들 중의 하나이다. 죽은 자를 한 여인의 눈물, 명복을 비는 아직 살아남은 사람의 기도, 바이올린으로 진혼 음악을 연주하는 녹색 옷을 입은 악사, 그런 것에 의하여 죽음을 보상받는 순교는 유난히 화면 중앙에 강렬한 인상를 주고 있다.
28. 생 잰의 태양
1947년 6세의 샤갈은 프랑스로 돌아간다. 파리, 암스테르담, 런던등지에서 미국의 뉴욕, 시카고에 이어 회고전이 열리고, 6년 만에 새로 대하는 프랑스의 자연을 대하며 새로운 감회에 젖는다. 특히 생 잰 카프 페라에 머무르면서 남프랑스의 매력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남프랑스의 밝은 색채에서 다시 광명을 찾은 것이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후일 봔스나 생 포 르에 결정적으로 새 삶의 터전을 이루게 된다. 이 작품은 별명으로 <초록의 풍경>이라고도 제목이 붙어 있다. 또 이것과 관련된 연작으로 <브루의 풍경>있다. 이 작품의 태양은 샤갈 특유의 새빨간 색으로 바다 위에 해바라기와도 같은 가장자리를 이루고 선명히 떠 있다. 한 여신이 남자의 얼굴을 받들고, 한 손으로는 태양을 붙들고 있다. 새로운 광명을 가져다 주는 여신이리라.
29. 썰매와 마돈나
벨라가 죽고 난 이후 몇 점의 작품에서 샤갈의 색채가 얼마나 투명하며 깊이 있고, 아름답게 발색하고 있는가를 우리는 깨닫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것은 그의 내면 속에 깊이 깔린 슬픔을 그가 얼마나 알뜰하게 소화하며, 정화시키고 있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된다. 이 작품에 있어서도 화면의 부분을 메운 투명한 푸른색 속에 몇 가지 드러낸 강렬한 대비색이 너무나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샤갈이 돌연 화면에 매를 그리게 된 것은 어느 친구의 '천야일야(千夜一夜)'의 삽화를 경험에서라 한다. 어쨌든 그의 즐겨 쓰는 나선구에 의하여 두 갈래로 갈라진 모자의 하강과 썰매와 말의 상승운동을 통하여 어떤 리얼리티와 결합한 점에서, 이 작품은 깊은 의미를 지닌다. 썰매를 타고 가던 마돈나는 상승하는 썰매에서 떨어져 땅에 떨어지고 있다.
30. 다윗왕
후에 <성서에의 메시지>로서 통괄되는 작품의 중핵이 되는 3점의 회화가 바로 이 <다윗왕>과 <홍해 횡단>, 그리고 <십계판을 부수는 모세>이다. 1951년 이 작품을 그린 해에 이스라엘을 재차 방문한 것을 계기로, 샤갈은 20년만에 판화집 성서의 못다 한 부분을 완성하고, 그 여세로 조각과 스테인드 글라스에 이르는 대하(大河)와도 같은 광범위한 제작에 들어간다. 그러나, 음악을 연주하는 <다윗왕>의 작품은 예루살렘의 언덕을 앞에 하고 탄식하는 교부의 모습을 빼고는 종교적 요소는 전혀 없다. 샤갈의 종교화는 협의의 종교 성을 나타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후의 전 작품에도 공통적으로 인간의 비극성과 결합하여, 그의 독특한 조형세계를 펼치는데 성공하고 있다. 샤갈 나름의 엄격성, 샤갈 나름의 비극성을, 샤갈 나름의 포에지와 팬터지를 통해서 엮고 있다.
31. 십계판을 부수는 모세
이 작품을 앞에 소개한 <홍해 횡단>, <다윗왕>과 더불어 대작 3폭의 기념적인 작품 중의 하나이다. 산에 올라 주(主)의 손으로부터 증표가 되는 십계판을 받고 있는 사이, 아론의 선동에 의하여 황금의 송아지를 만들어 우상 숭배의 대상으로 한 민중이 화면 우측에 보인다. 이에 너무 화가 나서 십계판을 던져 깨어 버린 모세의 모습을 화면 중앙에 세워 화면을 좌우로 갈라 놓았다. 이 작품은 이중으로 어떤 뜻을 시사하고 있다. 왼편 아래쪽에서는 거룩한 분노의 공포에 떨고 있는 사람들, 오른쪽 쪽에는 모세가 주(主)로부터 십계판을 받는 장면이, 다음 왼편 위쪽에는 십계에 따라 살고 있는 행복한 사람들이 그려져 있어, 마치 헤브라이적인 의미의 천의의 달성의 시간을 펼치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32. 바바를 위하여
"이제야 제2의 청춘이 열렸다."라고 결혼식장을 나오면서 노화가(老畵家 65세)는 부르짖었다. 25세 연하의 검은 눈의 어여쁜 러시아 여성 바바를 위하여 이 그림이 그려져, 그녀에 의하여 보존되고 있다. 샤갈의 바바에 대한 헌신의 정도는 감동적인 이야기거리가 될 정도로서, 같은 제목의 작품을 남기고 있다. 이 작품은 검은 색을 배경으로 한, 유난히 정결한 얼굴과 시원하고 맑은 눈이 노란 말의 초록색 눈과 대조를 이루며, 괏슈 특유의 수수한 맛을 풍겨준다.
33. 당나귀가 있는 에펠탑
샤갈은 차츰 악몽에서 깨어나 1952년 제 2의 벨라라고 할 수 있는 발렌티나 브로스키와 재혼을 하고 광명의 세계를 얻는다. 그의 색채는 도기(陶器)와 스테인드 글라스의 제작에 발을 들려 놓으면서 그의 화면에 그런 기법을 효과적으로 적용시켜 독자적인 색채감을 개척 해 나갔다. 이 작품은 재혼을 한 다음 해 시작한 <파리 >연작 중의 하나로서, 역시 3년 전에 그렸던 <푸른 서커스>와 함께 투명한 도자기의 유약을 통해 빚어져 나오는 광택의 마티에르를 느낄 수가 있다. 에펠탑은 강철로 구성되어 하늘 위를 향하여 힘차게 뻗어 있는데도, 온갖 것을 꺾어 휘어서 그리는 만곡증 (彎曲症)의 샤갈에게 그려지는 에펠탑은 역학적(力學的)인 강철(鋼鐵)의 결구(結構)가 아니라 그 화면에 나타나는 말이나 닭과 같은 성질로 휘어진 달 모양에 대응하여 곡선으로 휘여 거꾸로 서 있게 된다.
34. 홍해 횡단
모세에 의하여 홍해(紅海)를 가르고 이집트를 탈출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이야기는 그라나파를 위시하여 몇 몇 종교 화가들의 영감을 고취하기도 했고, 또한 영화까지 만들어져 우리의 흥미를 돋군 적이 있다. 이 이야기를 샤갈은 그 나름의 대단한 구성법에 의하여 작품 화하고 있다. 하나님에 의하여 직접 모세의 힘으로 바다를 두 쪽으로 갈라, 해안과 해안 사이에 길을 이루어 피난민을 건너게 하고, 신의 사자인 모세는 다시 되돌아와 그들을 뒤따라 절박하게 추격하여 온 파라오의 군세(軍勢)위쪽에 서서 구름과 어둠을 내려 그 진격을 저지한다. 날이 밝아 모세가 그의 지팡이를 휘둘러, 주의 힘은 좌우로 갈라졌던 바닷물을 일시에 되덮게 한 광경을 그리고 있다. 강렬한색 대비의 화면이 아니라, 아주 부드러운 하모니를 이루는, 그의 원숙기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35. 大서커스
최만년(最晩年)의 샤갈 예술의 스타일은 무엇보다도 이 한 점의 작품에 집약되어 있다. 그는 많은 서커스 작품을 남겼고, 또한 그의 독특한 환상을 서커스에 결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한 서커스에서 얻은 경험의 형태나 색을 다시 그의 다른 작품에 소화시켰다고 도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흰색, 회색, 검정의 무채색 (無彩色)을 주조(主調)로 하고 그 속에 군데 군데 유채색(有彩色)의 채도(彩度) 높은 투명색(透明色)을 놓았다. 그리고, 화면의 여러 형상도 여태껏 보아오던 기호(記號) 상호(相互)의 결합이 전적으로 새로운 불가지(不可知)의 의미를 느끼게 해 준다. 새는 땅에서, 말은 하늘에서 서로 성체 배수(聖體 拜受)의 관계에 들고, 말은 천사와 결합되어 천사는 거룩한 손 위에 있다. 성속(聖俗)을 하나로 묶어 보는 이 양식은 서커스의 광경을 하 나의 종교화로서, 그리고 긴장이 가득 찬 굵은 선은 그의 에칭의 인열선(引裂線)을 응용한 것으로, 그의 온갖 서커스 작품의 총합체라 할 수 있다.
36. 부활제
"마티스 이후 샤갈만이 색이 무엇인가를 아는 유일한 화가가 될 것이다." 이것은 피카소가 한 말이다. 샤갈은 물감의 순결이 심정의 순수와 일체화하려고 했고, 작품을 성실히 제작하는 것은 최선을 다하여 성실을 가지고 자기 표백을 하는 것을 염원으로 했다. 무엇보다도 그에게 불쾌감을 주는 것은 색채의 폭력에 있다고 그는 생각하며, 그런 색을 "코에 역겹게 다가온다."고 했다. 이작품은 극히 억제된 색으로 별세계(別世界)의 깊이를 강조하고 있다. 부활제의 헤브라이어의 원의(原意)인 '통과', 초월자(超越者)의 놀라운 통과를 이 천사는 나타내고 있는 것인지? 오른손을 올려 희생된 어린 새끼 양을 부르고, 가난한 에스파냐 사람들은 이를 환송한다. 모든 것이 여기서는 희생에의 축성(祝聖)을 낮은 소리로 읊조리고 있는 것이다. 부조리의 초극(超克)은 이리하여 최고의 축성(consecration)의 의의와 합치된다.
37. 푸른 얼굴
이 작품은 화면을 세로로 이등분(二等分)하여 그늘과 양지로 표현하고 있다. 7년전에 <푸른 얼굴의 여인>을 그렸는데, 같은 모티브로서 피리 부는 사람, 꽃들, 이러한 제재(題材)들은 60년 전 그가 초기에 붓을 손에 잡던 그 시절에 마음이 끌렸던 테마들이다. 그가 좋아하는 일체의 색들은 그동안 전쟁과 혁명을 통하여, 결국 역사가 화폭에 비극적인 찰과상을 남기고 지나갔으며, 다시 이렇게 하여 그 엘리멘트를 되살리고 있다. 그 동안에 샤갈은 판화와 스테인드 글라스, 도예(陶藝) 등을 통하여 애당초부터 체질적으로 우러나던 그의 색채들을 갈고 닦았다. 그늘 속에 잠긴 푸른 얼굴은 잔잔한 호수 같고, 그 위에 삼각형의 더 깊은 심연을 이루는 순박하고 선량한 얼굴이 양지 쪽으로 꽃다발을 내어 밀고 있다. 건너편에는 아기를 안은 어머니가 황홀한 얼굴로 그것을 지켜보고 있다.
38. 곡예사
1940년, 파리의 독일군에 의한 함락과 유태인 학살 때문에 남불(南佛)로 피난을 했다가, 다음 해에 뉴욕 근대 미술관의 초청에 의하여 샤갈 부처는 미국으로 건너 간다. 그래서 그 다음 해인 42년에 수주일간 멕시코에서 차이코프스키의 발레 '아레코'의 무대장치와 의상을 담당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샤갈 자신의 현실적 내면을 무대의 극적장면을 통하여 이야기하려 하고 있는 듯하다. 이 무대의 극적 장면도 서커스와 발레의 총합적 장면이다. 새 모양을 한 인물이한 손에 시계를 걸치고 나타나, 뭔가 자기정체를, 또는 어떤 다가오는 시간을 알리려는 듯 둥글게 된 무대 중앙에 지금 막 뛰어나왔다. 오른편에는 자그만 소녀가, 말 위에서 유도하는 대로 말이 된 아가씨가 수줍음을 가지고 등장하고 있다. 불길(不吉)을 느끼게 하는 환상미의 극치에 이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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