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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가새로쓰는미국일기
11월은 모두 다 사라져버린 것은 아닌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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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10/09
 
광고 - 야후! 코리아 에서 '제니퍼'님의 블로그를 지원합니다.
미국살이 일터에서 겪는 일들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에피소드 노트.

플레이스먼트 placement 테스트를 위해 모여 앉은 교실은 퍽 낯설었다. 의자와 책상이 붙어있는 그, 대학 때 전공 과목 수업용 작은 교실에서 주로 써먹던 그 향수어린 책상 하나를 골라 앉았다. 아홉시 반에 시작한다던 시험은 하나씩 둘씩 찾아와 교실을 채우는 사람들로 열시를 훌쩍 넘기며 자꾸 늦어지고 있었다. 멀뚱히 앉아 낡은 교실 풍경을 촌사람처럼 이리저리 둘러보며 나는 생각한다.
벌써 7년이 되었다. 갓 미국 오자마자 무슨 일을 하게 될 지 뭘 해먹고 살게 될지도 아직 불투명했던 그 시절, 오직 아는 거 하나는 영어가 필요하다는 사실 뿐이었을 그 때, 이에스엘 ESL 클래스에 등록하려고 찾아왔던 저녁 무렵 커뮤니티 칼리지의 몹시도 을씨년스러웠던 어둔 풍경이 떠오른다.  

    - 그 테스트는 문법 문제라서 한국 사람들은 대개 성적이 잘 나와요. 우리가 학교에서 문법 공부는 다들 해본
      가락이 있잖아. 근데 그 레벨에 맞춰서 클래스에 들어가게 되면 회화가 안되기 때문에 이게 밸런스가 
      안 맞는다구. 그러니깐 회화가 부족하다 싶으면 너무 열심히 맞출 생각하지 말고 적당히 시험 보는 게 더 낫지.
 
이것이 엘에이 랜딩 두어달 사이 얻어들은 나름 제자리 찾아가기의 생존 요령이었다. 그도 그렇군.
근데 나는 학교 때 문법도 제대로 못했었으니깐 그나마도 정신 차리고 문제 풀어야할꺼다...싶어지니 문득 서글펐다.
내 영어의 첫 단추가 어디에서부터 잘못 끼워졌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여튼 나는 중학 시절 이후로 내내 영어가 참 힘들었다. 그런데 그 못하는 영어를 중얼대면서 먹고 살아야 하는 동네로 덜커덕 자진 슬라이딩을 해버렸으니 이건 또 무슨 인생의 장난인지.
 
테스트 결과는 열흘 후 건물 밖에 붙여질 거라고 했었다. 그렇게 레벨 확인을 받고 다음 학기 클래스에 등록할 셈이었다. 그 때가 2월이었으니 지금보면 봄 학기 시작을 한달 쯤 앞둔 시점이었다.
그런데 그리고서 나는 얼마 안있어 다운타운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일단 매일의 분주한 일에서 스타트 라인을 끊고나니 이에셀클래스에서 서너시간씩 정신을 '고양'하는 일 따윈 도저히 내 몫이 아니었다. 더듬대는 영어로 장사라는 걸 난생 처음 해보면서 모든 낯선 것들과 친해지느라 시간을 쏟으면서 아이 학교 적응 문제에 집중하면서 공부 같은 건 지금 때가 아니라는 걸 분명히 알았다.   
그리고서 결국, 앞만 보고 달려오며 수년의 세월을 지낸 셈이다.

지내오면서 내내, 여기서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의 갭이 분명하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면서도 먹고 살기 위해, 라고 하는 다급한 당면의 문제가 나를 붙잡았다고, 핑계라는 것이 너무나 뻔한 그 핑계에 합리화의 명분을 매달고 스스로의 태만을 이어온 시간을 거듭했다.
요지경 속인 미국 나라는 영어가 없으면 죽을 줄 알았더니 영어 없이도 안 죽고 안 죽을 뿐 아니라 대충 먹고 살기도 하고 그 먹고 살 수 있다라는 달큰한 타협의 빌미에 기대서 나는 그냥저냥 적당히 듣고 적당히 맞추는 대화로 그렁저렁 지내왔던 셈이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맨처음으로 맨몸이던 때로 되돌아가고 나서야 다시 이렇게 교실에 앉게 되었다. 
원래 움켜쥔 손으로는 다른 어떤 것도 새로 쥘 수 없는 법이다. 쥐고 있던 걸 내려놓고 빈손이라야 한다. 그런 거다, 뭐 세상.

모여앉은 사십명 남짓한 사람들의 면면은 참 제각각이었다.
글렌데일이라는 지역적인 특성 때문에 대부분 아르메니안 이민자들로 보였지만 간간히 멕시칸이나 흑인이나 필리핀계로 보이는 각색의 얼굴들이 모여들었다.
답안지를 나누어주고 이름과 생년월일을 기록했다.
내 옆자리, 그 날 테스트의 유일한 한국인 동지인 아가씨가 답안지에 적은 생년월일 숫자가 눈에 들어온다.
이런! 이건 내 학번이잖아! 순간 아찔한 기분이다.
오른편 앞쪽에서 테스트 방법에 대해 뭐 그리 궁금한 게 많은지 내내 인스트럭터에게 질문 공세였던 머리 하얗게 센 덩치 커다란 남자의 답안지도 슬쩍 보인다. 어엇! 이 분은 나랑 동갑일세! 내가 저만큼 나이를 먹은 거라 이거지!
갑자기 문득 그 세월의 갭이 현실감있게 등줄기를 타고 온 몸으로 느껴진다. 이거 참... 당황스럽군.

이민자라 영어는 유치원생 수준이지만 아마도 지적 수준이나 생활의 경험은 나름 어느만큼 이상 될 것이 분명한 응시자들임에도 인스트럭터는 아주 걸음마 가르치듯 그 잘난 오엠알 카드에 번호 기입하는 방법을 장황하게 늘어지도록 설명한다. 아 그정도는 다 안다구...
지루한 기분이 되니 볼펜 돌리는 습관이 뭔 깨어난 기억 상실처럼 손가락에서 살아난다. 어? 나 아직도 이거 하네... 시험 보러 와서 회상신만 줄줄이 이어진다.
문제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멀티플 초이스 형식이라 몰라도 답은 쓸 수 있다.  
7년 세월동안 테스트 방법은 변한 것이 없는데, 채점만은 기술적으로 진일보했는지, 바로 옆에 놓인 카드 리더에 넣고 금세 채점을 하더니 레벨 테스트 확인서에 적어준다. 음... 내가 이정도 레벨의 인간이군.
 
보름 후 새벽 시간, 웹 레지스터가 오픈할 때 얼른 들어가서 등록하라고 일러준다. 경쟁이 치열하다는 얘기다.
무료로 지원하는 Non- credit 클래스라 수강을 한다고 해서 대학 가기 위한 성적 기록으로 써먹을 수는 없지만 수업 내용이나 커리큘럼은 크레딧 클래스나 마찬가지라 실질적으로 영어가 필요한 이민자들에게는 굉장히 유용한 혜택인 셈이다. 그러니 한정된 클래스에 지원자 경쟁은 당연한 일이다.
약속한 날짜 새벽 5시에 웹 레지스터가 열린다고 했다. 작정하고 밤을 도모했다.
접수 창구 선점하는 경험이야 코리안의 전공 분야 아닌가. 순위에서 밀려 등록을 못한다는 건 도저히 용납이 안되는 마인드라, 일찌감치 사이트를 오픈해두고 아직 이른 새벽 4시반에 혹시나 하고 들어가본다. 아앗! 오픈되어 있네!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고즈넉한 교실 문 한쪽을 살짝 밀어제치니 문이 스르륵 열린 기분이다. 올타꾸나 하고 얼른 등록을 했다.
집에서 가까운 몬트로즈의 PDC 캠퍼스에 개설된 유일한 클래스에 등록을 했다. 하루 세시간 반 - 돈 벌 때는 엄두도 낼 수 없는 분량의 시간이다. 주머니 바닥났다는 빨간 경보가 때르릉 요란하게 울려댔지만 그 대신 시간은 좀 채워졌다는 위로의 낭보가 함께 날아들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가는데까지 가보자구, 맺힌 한이나 풀어보지 뭐. 
가슴이 두근거렸다. 속 쓰린 클로즈 아웃의 상처를 패치하는 기분으로 나는 첫 날을 기다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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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이에쎌 시대 -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2008.12.18 16:42 | 미국일기 | 제니퍼

http://kr.blog.yahoo.com/joomic/4891 주소복사


이에셀 겨울학기 등록일이 16일이었다.
온라인으로만 접수를 받는데, 16일에는 언제든 접수 창구가 오픈하는 시점부터 선착순으로 등록을 하면
자동으로 정원을 채우고
나머지는 등록은 받되 클래스당 40명씩 waited로 올라가게 된다.

새벽 4시에 등록 사이트가 오픈된다고 기존 멤버들에게 공지가 되었기 때문에
자고 일어날 것이냐, 깨어있다가 얼른 등록하고 잘 것이냐 두 갈래 길 가운데
올빼미형인 내 체질에 잘 어울리는 후자를 택하기로 결정하고 4시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헌데,
막상 4시에 열린 페이지에서는 5시까지는 사이트 점검을 할 거라는 통지가 떠있는거다.
이럴수가...

배신감에 몸서리 쳤지만 하는 수 없다.
졸린 눈을 부벼가며 5시가 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마침내 5시 정각, 클릭클릭- 했더니 약속대로 레지스터가 열리긴 했는데.

수많은 부릅뜬 눈들의 오기어린 클릭질이 어찌나 동시간대에 쇄도를 하는지가
어둠이 걷히지 않은 여기 홀로 독방에서 모니터를 마주하고 앉은 내 손에도 전율처럼 모조리 다 느껴질만치
부하가 걸려 도무지 진행이 안되는거다.
한번 클릭에 모래시계 뱅뱅 10여분씩.

학교 사이트에서 non credit esl 페이지로 진입 한 단계, 이에셀 페이지에서 학생 아이디 핀넘버 입력 페이지로 진입 두 단계
클래스 스케줄 페이지는 워낙 길다보니 반씩 잘려 나오는 탓에 여기서 또 두 단계 산넘고,
마침내 내가 원하는 클래스에 클릭질을 하고 '석세스풀리 레지스터드' 신호가 뜨기를 조마조마 기다려야 했다.

결국 5시 45분이 되어서야, 등록을 마칠 수 있었다는 얘기.
마우스질만 해도 식은 땀이 삐질삐질 날 수 있다는, 낯설지만 준엄한 진실과 마주했던 45분이었다... 헐.
이 말은 동시에 내가, 결국, 날밤을 꼬박 샜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
이거야 원 뭐 대박나는 로또도 아닌 것을.

등록 접수를 시작하고 대개 한 시간이면 이미 정원 마감이 되기 때문에
너나 할 것 없이 창구 개시 시간에 서둘러 진입을 시도하는 건 당연히 예상되는 일인데

이걸, 좀, 단계별로 날짜를 나누어서
학생들이 그 좁아터진 웹 레지스터에 동시 접속으로 아우성치는 혼잡을 좀 덜어낼 수 있지 않은 건가? 의문스럽다.
지난 학기 때도 그렇더니 이번에도 여전히 서버에 힘겨운 과부하를 주는 건 여전했던 거다.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이번엔 약속한 시간에는 창구 문 꼭 닫아 걸고
한시간이나 기다리게 했잖느냐구! 뭐 그러면 좀 원활히 소통할 수 있게 대용량으로 준비하느라 그런 건가 싶었는데
여전히 갑갑한 건 매한가지였으면서 말야.
지각도 안하고 들어오라는 시간 정각에 딱 맞춰 들어갔건만
클릭질 네번이면 끝나는 작업에 사십여분을 소모해야 했으니. 

뭐 어찌되었건 전세계 유례가 없을 난리북새통의 진수, 대입 원서 창구의 혹독 훈련을 치러낸
악착같은 한국살람 근성으로 무수한 클릭질의 끈질긴 도전 정신을 발휘, 끝내 이기리라- 했지만 말이지.
(이 기회를 빌어,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암튼, 빨간 토끼눈으로 오전 내내 몽롱해야 했던 나로선 학교 당국에게 진짜, 한마디 던지고 싶어.
아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영어로 해야하는군, 쳇.




63. 이에쎌 시대 - 작은 투표

2008.11.05 07:49 | 미국일기 | 제니퍼

http://kr.blog.yahoo.com/joomic/4830 주소복사


아침 수업 시간에 모의 투표를 했다.
귀여우신 미세스 데이비슨이 핑크색 투표 용지를 만들어오더니 우리끼리 해보잔다. 그러지 뭐.

오늘 출석 인원 15명 가운데 시민권자는 둘 뿐이었으니, 진짜로는 절대 투표할 일이 없는 우리끼리 재미 투표하는 재미!
나름 어떤 부류의 성향을 진단하는 대표성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는 나름 의미있는 액션이라고 자위하면서.

대선 외에도 많은 이슈가 있었으나 우리는 세 가지 의견만 모아보기로 했다.
특히 프로포지션 8에 대해 투표할 것을 나는 강력히 주장했음.

1. 매케인이냐 오바마냐 - M  or  O

2. 엘에이 카운티의 세일즈 택스 sales tex 를 올리는 데 찬성 반대 - Yes or  No

3. 캘리포니아 주민 발의안 프로포지션 8 proposition 8 에 찬성 반대 - 8 Yes or  8 No

두구두구두구...
성질 급한 우리는 시간 제한도 없고 그냥 바로 결과를 알 수 있으니 더 좋다. 하하.

그리하여!

1. 오바마 14 표. 매케인 1표,  - 96% 득표로 오바마 압승! 마침내 미국 역사상 흑인 대통령이 이끄는 뉴 제너레이션 도래라...!

2. 택스 찬성 5표, 반대 8표 무응답 1표 - 택스 인상안은 동결되었음! 땅땅!!! 당연하지, 지금 세금 풀어 구제해도 시원찮은데.

3. 프로포지션 8 은 찬성 11표, 반대 4표 - 캘리포니아에서는 남녀의 결합만이 결혼으로 합법화 됨을 재선포함!

참고로, 나는 이로써 무지하게 퍼블릭 오피니언 - 특별히 영어가 부족한 이민자 집단의! - 에 근접한 인간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건 몰개성 무주관이라 해야할까, 동시대 대중의 보편적인 마인드를 읽을 줄 아는 트렌디한 감각이라 해야할까? 하하...


데이비슨이 개표하는 동안, 수강생 마리아가 보드에 숫자를 기록했는데,
사실 나는 요 부분이 몹시 궁금했다.

우리는 한자로 '바를 정' 자를 표시하지만 
이 동네는 내가 알기로는 //// 하다가 반대 방향으로 긴 사선을 좌악 긋는 것으로 다섯 단위를 표기하는데
마리아는 스페인에서 온 사람이거든. 그래 어떻게 하려나...했더니

하하... 역시 예상대로 새로운 표기법을 선보였는데
사각형을 그리고는 가운데 대각선을 그어서 5개 단위를 표시하더라는 얘기다.
그렇게 참 우리는 모두 다르고, 달라서 재밌다.

자아, 어찌되었건, 한 나라 안에서 동부와 서부의 시차까지 있는 덕분으로
지금부터 두세시간 후부터는 개표 결과가 드러나기 시작할 셈이다.

어차피 열외에 서서 긴 줄 굽어보며 아무나 돼라... 지만, 최대한 애써보라구, 좀 잘 먹고 잘 살게말야,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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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이에쎌 시대 - ESL 클래스가 좋아졌어

2008.10.01 18:13 | 미국일기 | 제니퍼

http://kr.blog.yahoo.com/joomic/4796 주소복사


매주 아티클 하나씩 읽고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월요일 숙제.

이 클래스의 독특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버벅거리는 영어로 몹시 민감한 사회적 이슈를 논의한다는 점이다.

페일린의 틴에이저 딸이 임신을 했으니, 공화당 지지자들은 이것을 어찌 받아들일 것인가

이란은 왜 늘 이라크와 대립하며 미국은 왜 이란에 적대적인가

미국으로 이민 온 아랍계 틴에이저가 엽기적인 살인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사회 문화적 심리적 배경은 무엇인가

 

허허

사실, 의도한 것은 그 핵심 논의에 대한 본격적인 도전까지는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수강자들이 엘에이 타임즈를 뒤져 스크랩 해온 기사들은 결국 그같은 논점을 주고받지 않을 수 없는 사건 사고들의 리포트였다.

이 와중에 내가 들고 간 이슈는 푸드 섹션에서 끄집어낸,
제대로 된 로스티드 치킨을 고르는 10가지 팁 따위였으니, 나는 첫 날 내심 무척 당황했다.

나름 의도적으로, 우리의 버벌(버벅 말고) 영어 수준을 고려하여,
말랑하면서도 범 인종적(!)으로 유용한 생활 정보를 가볍게 전달하는게 어울린다고 판단했던 나는 뭐가 잘못되었던가를 되짚었다.

물론 잘못된 것은 나다.

그들은 내뱉을 영어의 레벨과는 상관없이 관심가는 이슈를 집어들었고 사전을 찾고 뒤져가며 그 기사들을 읽어온 거다.

그게 어쩌면 당연히 솔직한 속내다.
그 어휘와 문장과 표현법이 도무지 이 클래스의 목표점과는 동떨어져 있어서
오늘의 텍스트북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을 가르치고 있지만
읽어온 문장은 온갖 뒤섞인 시제 속에 복문에 생략문에 관용 표현들로 주어와 서술어 찾기조차 힘겨운 글들이라 해도.
그 간극이 미세스 데이비슨의 수업 목표를 헷갈리게 하고 당황스럽게 만든다 해도. 

 

이에쎌 클래스.

나는 이 장소에서 몹시 진실한 그리고 솔직한, 너무 적나라해서 가슴 아픈 아메리카의 얼굴을 만난다.


다운타운에서 일할 때도 그랬다.

주차 미터기를 쑤셔서 시 재정 밑으로 부스러지는 쿼터 몇 푼을 모아다가 약을 사는 그들.

월스트릿 정화 작업으로 밀려간 샌줄리안 골목길에 주질러 앉아 종일을 몽혼 속에 흐느적거리다가
돈주고 예약한 전용 모텔 마냥 미드나잇 미션으로 숨어드는 홈리스 검은 피플 그들은,

매일매일 삼키기만 할 뿐인 비생산 인생에도 불구하고 시민권자이며 영어 능통자인 탓에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부지런 떨며 거친 일터에 나와 분주히 생산 - 물론 3차 산업 사회이니만큼 주로 가치 생산 - 에 임하는
비영주권자이며 영어 버벅 이민자 인생에 업혀 살아간다.

영어버벅 이민자들의 일상은 결국 평범 혹은 평범 이하에서 웅성댄다.
버벅대는 영어만큼의 별표를 가슴에 달고 그만큼의 사회적 대우를 감내한다.
말이 안되니까. 하는 말 들어보면 갑갑하고, 바보스럽고, 멍청하기 짝이 없으니까. 지적 수준이 당연 의심되니까.

별다섯! 특급호텔!을 바라보며 감탄하는 사람들과 별 하나짜리 모텔을 내려다보는 사람들이 거기에 있고
탓할 수도 없이 현실이다.

하지만 지네들이 뭘 알아!

조악한 영어로 모여앉아
미국 대선 마당에 혜성과 같이 나타난 구세주 여인의 도덕적 가정적 결함이
보수적인 공화당 지지자들에게 어떻게 수용될 지에 대하여,
자부심으로 살아가던 무슬렘의 한 젊은 청년이 미국 땅에 옮겨 심어진 이후 목표를 상실하고 마침내 가족에게 총을 겨누게 된
그 사회 심리적 배경의 가슴아픈 진실에 관해서,  
심플 프레젠트와 심플 패스트 시제의 단문들을 조각조각 이어가며 힘겹게 논쟁하는 일단의 무리들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래서 나는 갑자기 이 클래스가 좋아졌다.

오늘의 아웃풋이 조악해도 과거 각자의 모국에서 인풋된 것은 너무나 많아
그 인앤아웃의 부조화를 감내하느라 인격 수양에 인생 수양을 톡톡히 치러내는 다 같은 처지의 똑똑한 이민자들이,
이런 기회가 아니라면 어디가서 저렇듯 조악한 영어로 이같이 첨예한 범 스테이츠적인 이슈를 떠들어볼 수 있단 말인가!

오늘 미세스 데이비슨은 요요마의 앨범 한 장을 꺼내며 수업을 시작했다.
 
  - 나는 요요마가 세계적인 첼리스트라서 좋아하는 것 뿐 아니라, 그가 모든 다른 문화에 오픈 마인드 된 사람이라는 점에 매료됐어요. 그는 진짜 아메리칸이에요. 실크로드- 라고 이름 붙인 이 앨범에는 그가 클래시컬 뮤직만을 고집하지 않고, 아시안과 페르시안 전통 악기 연주자들과 함께 작업한 음악들이 수록되어 있어요. 일전에 제니퍼가, 대체 미국의 문화라는 것이 뭐냐- 고 물었었죠? 이것이 바로 미국의 문화입니다. 모든 다른 것들에 열려있는 것, 다른 문화, 다른 관점, 다른 습관과 생각에 완전히 오픈되어서 그것들이 서로 교류하고 섞이고 이어지는 것을 수용하는 문화, 그걸 즐기는 문화- 가 미국의 유니크한 문화인 것이죠.

국경 사방 너머에서 끊임없이 유입되는 다양한 컬러의 인간들,
그들의 등짐 속에 담긴 사고와 습관과 문화들로 비로소 숨쉬고 유지되는 것이 미국 나라의 정체성이라는 얘기다.

그러니,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수준급의 소양을 갖춘 중하층 계급'이 끊임없이 반조리 상태로 공급되고,
그들의 질좋은 생산력으로 그나마 낮고 묵직한 바퀴를 굴리는 것이
이민자의 나라,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오브 아메리카의 정직한 그림이라고 감히 주장한다면,

누가 나한테 돌 던지려나?

좋아, 던지라고 하지 뭐 나는 기꺼이 맞아주...지 않고 살짝, 피할거니깐.

아, 맞긴 왜 맞아? 억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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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이에쎌 시대 - 노리꼬 여사

2008.09.18 14:07 | 미국일기 | 제니퍼

http://kr.blog.yahoo.com/joomic/4781 주소복사


미세스 데이빗슨의 치통 때문에 임시교사 substitute 로 일본 여성이 출강했다. 노리꼬 여사.
물론 선생님이니까 당연하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일본인이라면서 너무나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니 놀랍다.
페르지안이나 아르메니안 피플들이야 그러려니 하겠지만, 우리 한국사람들은 그 사정을 누구보다 알고 있잖은가.

커피 브레이크에 질문이 쏟아진다.

  - 여기서 태어났나요?
  - 아니요. 나는 일본에서 나고 자라고 대학교육 받고 직장 다니다가 여기 왔어요.
  - 정말요?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완벽하게 영어를...?
 
정말 놀라웠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그녀도 오늘 수업 중에 밝혔듯이 그들은 발음에 있어서만큼은 한국인들보다도 훨씬 취약한 민족 아니던가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영어는 제대로 영어다. 절대 '일본영어' 가 아니었다.

  - 남편요. 미국인 남편인데, 그 사람도 일본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내가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아항... 그런 열쇠가 있었군.
하지만,  남편이 미국인이라고 해서 다들 제대로 된 영어를 구사하는 건 아니다. 의외로, 실제로 주변을 보면 그렇다.

  - 나는, 용기를 갖고, 남편에게 끊임없이 교정해 줄 것을 정식으로 부탁했어요. 아기들이 말 배울 때 하듯이 그대로.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듣고 그대로 따라하고 모방하는 과정도 중요했지만, 그 때 그 때 교정 받는 것, 그게 중요해요. 하지만, 부부관계에서 누군가가 끊임없이 실수를 하고 상대방은 계속 그걸 지적한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죠. 목표가 있으니까, 그걸 감수하고 도전하는 자세로 그렇게 한거죠.

맞다. 정말 그렇다. 부부간에 그런 종적 커뮤니케이션 패턴이 허용되면 동등한 관계 유지에 악영향의 위험이 크고, 생활 전반에 자존심 싸움이 확대 심화될 가능성도 높다. 운전 교육의 부작용 - 그 대표적인 사례 아닌가.

  - 영어를 말하는 데 뭐가 제일 중요할까요? 역시 정확한 발음...?
  - 아니요. 발음 보다도, 억양 보다도, 정확한 동사, 동사의 시제를 구분하는 게 나는 제일 중요하다고 봐요. 우리가 영어를 아무리 오래 열심히 해도 우리 마더랭귀지의 억양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건 그냥 인정하는 게 낫죠. 하지만 시제, 결국 동사로 표현하는 시제만큼은 정확히 이해하고 구사해야만 제대로 커뮤니케이션 할 수가 있거든요. 

데이빗슨도 그랬지만 노리꼬 역시 우리에게 묻는다.
왜 영어를 배우려고 하죠? 

의외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란 걸 새삼 깨닫는거다.
아이랑 대화하고 싶어서요, 이웃들로부터 바보 취급 당하기 싫어서, 장래에 좀더 좋은 직장을 갖기 위해서...
영어에 맺힌 한을 풀고 싶어서... 같은 속이유도 있을테지만 그건 끄집어내지 않고.
여튼 여러가지 구체적인 이유들의 결론은 하나다. 우리가 여기 사니까요, 아메리카 땅에 살고 있으니까요... 그거다.
그러니 답은 나온다.
살면서, 살기 위해 말하고 대화하고 교류해야 하니까-  말하자면 커뮤니케이션 해야 하므로.
커뮤니케이션을 최우선 명제로 한다면, 내겐 뭐가 필요한가.

  - 누구보다도 나는 세컨 랭귀지로 영어를 해야 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잘 알죠. 테솔 교육을 받았고, 이렇게 오래 영어를 가르치고 있지만 아직도 나는, 어떤 단어... 예를 들면 브릴리언트! brilliant 같은 걸 발음할 때는 머릿속으로 그 단어의 스펠을 떠올려요 아직도. 그러니까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죠. 멈추지 않고. 


저절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하나도, 절대 없다.
그러니까 저절로를 기대하면 안된다, 아예 처음부터. 없는 건 없는 걸로 알고 가야한다.
저절로는 없으니까 되어지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 움직일 수 없는 명제임을 알고, 인정하고, 묵묵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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