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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가새로쓰는미국일기
11월은 모두 다 사라져버린 것은 아닌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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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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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절로 피어주는 기특한 앞마당 화단. 분홍 꽃잎 시들해지자 주황 릴리가 피어났다. 언제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매일 드나드는 대문 옆, 피어난 꽃의 존재에 눈길을 돌린 건, 향기 때문이다.

다 내려앉은 오후의 느적한 공기에 실려 마음의 문을 두드리던
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하던 꽃의 향기.
묻어날 듯 진한 색감과 유혹적인 맵시에도
마음 여유 없어 지나가며 흘낏 바라만 볼 뿐이었던 그 섭섭한 무심함을 그렇게 스스로 되돌리게 만든 건 향기였다.

그렇군.
향기가 중요해.

눈에 얼른 이쁜 꽃들조차 향기를 갖추고 피어난다.
하물며! 하물며 말이다, 하물며.

...... 갖고 있는 걸 부시럭, 뒤져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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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가 어떤 메시지를 '말한다'는 사실은 생각하면 아이러니하다.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자 인간으로서 최고의 강력한 수단을 사용한 것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외침은 침묵이다.
당연히 들은 자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가 관건이 된다.


- 목숨을 끊을만큼 자괴감을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탈출한다. 
스스로의 자존감에 대한 상처, 동시에 가족과 친지와 주변인들이 고통받는 것을 더이상 감당하기 힘들다는 호소,
그래서 마침내 버리고 탈출하는 것에는 인간적인 연민을 지니는 것이 온당한 대응이다.
연민은 경건한 위로다. 그 아픔에 마음을 더하고 조용히 영혼을 위해 눈물흘리는 것이 족하다.
떠들썩한 미화나 과장된 영웅화, 혹은 울분은 오히려 떠난자를 부끄럽게 만든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한없이 약하다. 그 어쩌지 못하는 한계를 함께 공감하는, 그저 인정하는 것으로 족하다. 


- 목숨을 스스로 끊는 것 외에는 내 심중을 표현할 기회가 없다, 이 메시지로 내 결백을 주장하련다.
결백을 주장하고 입증할 기회가 진정 없었던 것인가.
무고함을 살아서, 스스로를 강변하여 주장하고 마침내 명예를 되찾아 그 억울함을 벗어난 홀가분한 인생을 누리지 않는다면,
죽음 뒤에 밝혀지는 결백이 그의 인생에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사람들로부터 명예롭게 기억되길 원한다, 는 이유라면 살아서 밝혀낸 결백이 더 명확하고 뚜렷하다.
침묵함으로 대답하는 것은 수많은 해석과 추측을 부른다. 과장이나 오해도 가능하다.
감정적 대응을 불러일으켜 어쩌면 그 결백의 순수함을 온전히 드러내기 보다는 부풀려지도록 방임하는 결과가 가능하다.
결백을 가장하기 위한 침묵으로 인식될 가능성도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할 말이 없기에 침묵하므로. 도박과도 같다.


- 목숨을 버림으로써 내 손으로 속죄하고자 한다, 죄에 대해 인정한다.
다른 누군가의 판단과 판정도 필요없이 명백히 스스로의 잘못임을 먼저 인정하고 속죄하는 방법으로 목숨을 버렸다면
그 엄준한 자기 검열의 청정함을, 그 용기를 인정해야 한다. 
누구나 죄의 댓가는 최소한이길 원한다.
그것을 최극단의 고통으로 스스로 감당하고자 하는 결정은 함부로 흉내낼 수 없는 용기다. 고독한 용기에 고개 숙여야 한다.
그러나 그의 행위로 동시에, 잘못이 있음 또한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 된다. 
스스로 극한의 벌을 감당했으므로 남은 사람들은 죄를 더이상 거론할 이유도 자격도 없다.
그러나 남은 자들이 직면한 충격과 안타까움으로 인해 죄 자체를 부정하고 뒤집어버리는 어리석음은 반대로 그 힘겨운 죽음의 의미를 무산시키는 행위다. 죄도 없는 억울한 죽음을 스스로 선택할만큼 그가 어리석었는가. 


우리는 지금, 어떻게 그 죽음을 해석하고 있는가.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어떤 살아있는 목숨이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살아있음으로 감당할 고통 이상의 버리기 어려운 소중한 것들까지도 함께 모두 내려놓았다.
그 엄중한 선택 앞에서 남은 우리는 보다 냉철하게 그 메시지를 이해하고 명시할 의무가 있다, 최소한.
죽음은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이상 설명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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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나름 알려진 커스텀 메이드 버거집에 갔다. 햄버거 당연 먹는건데, 희찬이 여기에 더해서 칠리 치즈 프라이스를 오더한다.
어머, 얘, 밥에 담긴 콩은 알알이 다 골라내는 녀석이 무슨 칠리?. 그거랑 이거랑은 토탈리 다르단다.

두부 무지하게 좋아해도 콩은 별로라 하는 나로서는 뭐 별 할 말 없는 시추에이션이긴 했다...닮을 걸 닮지 말야.
아들 입맛은 누구보다 잘 안다고 여겼던 내 자만에 물음표가 달린다.
하긴 학교 런치밥 경력이 벌써 7년이니 집밥의 익숙한 입맛과는 별도의 취향이 당연 생겨나 있을 것에 내가 좀 무심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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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잘 먹는다. 콩이라기 보다는 큼직한 팥에 가까운데다 걸쭉한 페이스트 소스 같은 칠리가 프라이스를 덮어서 바삭함은 덜어지고 쉽게 눅눅해지는 세팅인데도 맛있다며 얌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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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는 들어갈만한 재료는 다 들어간 풍성함으로 맛있었는데.... 좀 비싸. 사이드로 뭘하겠느냐 묻는 웨이트레스에게 뭐가 좋을까 되물었더니 주키니를 만들어다준다. 미국 주키니란 무슨 짓을 해도 별 맛이 안나는 밋밋한 재료인데 빵가루 입힌 바삭한 튀김옷 덕분에 슴슴한 야채 곁들여 먹어주자 마음 먹으니 뭐 괜찮다. 버거는 반씩 나눠먹어도 충분한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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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식 펍 레스토랑의 테이블에서 아주아주 흔하게 보는 베이식 세팅이다.
빨대, 케첩과 머스터드, 잼과 프리저브, 설탕과 인공감미료와 하프앤하프. 소금 후추, 핫소스.
아주 브랜드까지도 제대로 기본 그림을 그려준다. 이건 마치 콜라는 코크, 같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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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이름이 Rocky Cola Cafe 인데, 촉촉하게 안개 젖은 카페- 라는 타이틀 앞에 그냥 매스 프로덕트의 무심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콜라- 를 척 갖다 붙여주는 이 지극히 미국 스탈인 네이밍 센스! 하하. 아니, 어쩌면 캘리포니아 스탈인가.

늦은 오후의 헐렁한 버거집 나들이. 드라이브 쓰루의 빨리버거와는 조금 또 다른, 몇걸음 늦춘 숨고르기의 맛보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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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사이트인 엠앤캐스트가 사이트 폐쇄를 하는 바람에 업로드했던 귀중한 동영상을 그냥 날려버렸다.
회사가 경영난이라는 소식 이후 한동안 잠갔다가 다시 오픈하면서 새 각오를 다지기에 기대반 우려반,
그래도 염려스러워 올린 동영상을 미리 다운로드 해두려 해도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아 갑갑했는데
어느날 문득, 동영상이 돌아가지 않기에 찾아가보니 이미 열흘 전에 사이트는 폐쇄되었고 올려진 자료 다운로드 서비스도 잠깐 제공되었다가 종료된 이후였다.
망하는 회사에 무슨 정신이 있었을까 이해해야 하는 건가. 
자기들 사이트에 한장 짜리 안내문 며칠 걸어두는 것 외에 최소한 회원들에게 메일 공지라도 한번쯤 미리 해주었더라면 (메일링을 위한 서버 돌리기도 어쩌면 버거웠을지 모르겠군)
하나밖에 없는 자료를 두 눈 멀쩡히 뜨고 날려버리는 황당 허무감은 그래도 면하지 않았을까 속이 끓었다.
  
웹 유저, 엄밀히 말해서 무료, 이 역시 엄밀히 말해 내 주머니에서 당장 현금 안 꺼내쓸 뿐인 무료 웹유저라는 종족은,
서버측 입장에서는 돈 한푼 안 내고 제공하는 서비스 야곰야곰 받아 삼키면서 어이없게 불평은 질펀히 늘어지는 적반하장 악다구리 집단일 지 모르지만
사용자들은 어쩐지 늘, 주면 고맙고 못주면 하는 수 없고, 룰이 정해지면 따르고 바뀌면 기민하게 적응해야 하는,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무기력한 안되면 말구- 의 수동적 체념 모드에서 발버둥치게 되는 불쌍한 존재다.
에이, 무슨! 공급자들이 얼마나 유저 파워에 떠는데? 라고 반문할려나? 그러나 사실이다.

스스로 생산한 컨텐츠를 웹에 올리며 그 이름도 근사한 웹 2.0 시대의 주체 세력이라는 자랑스런 유저의 훈장을 달고
그 서비스 유익의 단물을 흠뻑 받아마시는 기쁨에 취해 지내면서도 한켠에선
자기 컨텐츠가 세월과 함께 차곡차곡 쌓여갈수록, 거기에 그들 스스로의 역사와 의미가 시간의 발효 과정을 견디며 더욱 깊은 맛으로 익어갈수록 어쩐지 더욱 더 두려워지는 기분을 귀퉁이에서 떨치지 못하는 것이 힘 센 유저의 속사정이며 사실 속의 가릴 수 없는 진실인 거다.
언제까지 내가 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까.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언제까지 잘 유지하려나. 이 회사 망하지 말아야 할텐데- 5년 생존률 몇 퍼센트나 되려나...

블로그의 경우 컨텐츠 백업을 열씸 정기적으로 해두는 훌륭한 헤비 유저들도 있고
프리덤 같은 백업 서비스를 이용해 내 컨텐츠의 권리 장전을 선포하는 괴력도 가끔 발휘할 수 있긴 하지만, - 아 그마저도 요즘엔 무슨 이유인지 서비스 잠정 중단이더군 -
그저 동그마니 그 글자로 표시된 기호를 고스란히 꺼내어 담아둔다고 해서
자신에게, 또 모르는 불특정 다수의 방문자들에게 의미있었던 그 포스트 혹은 올려진 자료 그 모양새, 소통의 기류,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음으로 해서 발생되었던 그 모든 총체적인 가치가 함꼐 보존되는 것은 절대 아닌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집에서 어느날 문득,  하던 서비스를 중지하거나 새 서비스를 오픈하거나
게임 룰을 바꾸거나 약속 문서의 몇마디를 고쳐주고 익숙한 포맷을 흔들어버려도
손털고 나가든지, 아님 적응하든지-  아주 이건 갈데없는 도 아니면 모의 양자택일 심플구조다.  


요즘 블로그 댓글- 야후에서 교육받은대로 답글, 로 부르다가 다시 댓글로 부르라기에 얌전히 따르는 중이다 - 을 달면서
옆에 블로그 아이콘 - 야후에서 교육시킨대로 왼쪽에 표정 아이콘을 이리저리 적절히 사용하는 습관이 붙었다 - 을 고르려다 보니
새로 하사받은 이모티콘이 예전 그림보다는 다소 3D 일러스트 모드라 이뻐진 점도 있지만
일단 갯수가 확 줄어 해오던대로 뭔가 좀 느낌을 강조하고 싶을 때 자꾸만 손이 가다 멈추고 아쉽고,
그래서 자꾸만 그리워지는 애들이 몇개 있다.

이모티콘은 당연히 댓글 보조용이라고 생각해 온 데다가 글 쓸 때는 그냥 글로 할 말을 다 하고 싶다는 나름의 쓸데없는 원칙 때문에 포스팅할 때는 거의 얘들을 사용하지 않았었는데
오늘 새삼 편집기 메뉴에 옛날 버전 이모티콘들이 아직 남아 있는 걸 보니 낯선 새집서 살던 동네 노선 버스만 봐도 반가운, 그런 기분이 든다. 옛 사진 스크랩하듯 얘들 얼굴을 담고 싶어졌다.

          

즐겨 쓰던 다섯형제들. 얘들이 나 대신 해주던 말, 이젠 내가 구구절절 해줘야 하는거지. 뭐... 그러라면 그럴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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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되고도 이번 주엔 확실히 해가 부쩍 따가와졌다.
아까 낮엔 방심하고 맨 얼굴로 차 갖고 나섰다가 훅훅 더운 기운에 내리쬐는 햇빛에 화들짝 놀라서는
이게 다 자외선 에이와 삐들이지! 싶어지면서 당장 선블록 바닥난 거가 제일 마음이 급해졌다.
결국 드럭스토어로 달려가서 매일 발라대기엔 좀 쎈 35짜리 크림을 하나 집어들고 나선다. 

이거야 은혜의 햇빛 받아서 땅의 결실 얻으며 감사로 살아가는 분들에게는 아주 경을 칠 마인드지만
도시 생활에 찌든 나로서는 언제부터인지 한낮의 햇빛은 숨어들어 피할수록 다행인 존재가 되어있다.
그저 거기 비춰주며 있으되, 번갈아 흐려주고 개어주고 그랬으면 딱 좋겠는 아주 고약한 이기심만 채워진 심사인데,

솔직히 정신차리고 생각하면 햇빛이라는 놈, 8분이라는 시간동안 우주를 건너서 나에게 찾아온다는 퍽 고된 방문자인건데
그걸 째려보는 눈초리로 늘 홀대하는 게 사실 미안은 물론 감히 원망할 수도 없어야 당연하지.

- 안녕? 눈 깜짝할 빛의 속도로 찾아와줘서 반갑다!
손 흔들어 인사라도 해줘야 할 판국에 피해다니고 도망만 다닌다, 나.

여튼 그렇게 나섰던 길 도로 접고 도망치듯 집으로 피해 들어왔다가 서늘하니 기분이 좋아져 밤길에 다시 나섰다.
하늘엔 별들이 가득하다. 이쁘다.

아니 그런데 말야... 생각하면 밤 하늘에 빛나는 저 무수한 아름다운 별들이, 그 별들이란 결국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그야말로 '스타'들인거고 게다가 그 반짝임은 수백 수천 광년 전 태양의 닮은 꼴 친구들이 쏘아준 빛인 걸 생각해보자구.
나는 상대적으로 너무 가깝고 뜨거워서 고마운 줄도 모르고 도망다니는 그 햇빛을, 우주 어딘가에서 나처럼 철없는 누군가가 지금 밤 하늘의 아름다운 별... 운운하며 낭만적으로 바라볼 지도 모른다는 얘기잖아.

아 나는 진짜 멍청한 모순 덩어리다. 별이나 해나 간사한 근시안, 아니 근시안도 넘치고 이건 완전 '마이크로'시안(?)을 버리고 좀 우주적으로 바라볼 줄 알라고 제발!

그런 의미에서 내일 해가 새로 뜨면 좀 반갑게 인사하는 마음으로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봐줄까보다.

음... 그런데 그대신 인사는 좀 이른 아침에 짧게 끝내버릴까봐 아무래도.
일단 낮시간엔 애정어린 시선이 불가능해, 찡그리지 않을 수가 없다고.
그리고 뭣보다 역시... 더워....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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