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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10/09
 
광고 - 야후! 코리아 에서 '제니퍼'님의 블로그를 지원합니다.



하늘 바뀌는 시간의 하늘, 블루.










갓 태어난 인쇄물의 잉크 냄새는 언제고 변함없는 설레임의 냄새다.
웹으로 읽히는, 모니터 프레임으로 전달되는 정보의 당연성에 이젠 지나칠만큼 익숙해져 감각도 무뎌진 몸이지만
손에 쥘 수 있는 읽을거리의 그 피,지,컬,한 생동감이란
그건 무엇으로도 대체하거나 범접하여 존재를 다치게 할 수 없는 고유의 아우라이며 아마도 마력, 
따뜻한 마력이라고, 거부할 수 없는 인(引)력이라고 오늘, 또다시 중얼거리고 있다.

종이위의 글자, 알알이 찍혀 서로 한 몸이 된 인쇄되어진 출판물이란 참!
손으로 가만히 쓰다듬으며 생각한다. 아마도 유전자에 찍혀나온 거 같아, 너 그냥 그걸 보면 좋으리라- 하고.

느지막히 팀에 합류해 끄적끄적 잔손 거들며 마무리했지만, 그래도 만들어진 날씬한 책 한권- 흐뭇하다.
다음 것을 기다린다, 이미.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모처럼 달 사진이 그리워져서 마당에 나섰는데 달이 안 보인다. 어두운 하늘 뿐이다. 밤 여덟시 반.
왜 달이 없지... 하다가 낮동안 흐렸던 날씨를 생각하니 내가 바보같다. 

괜히 머쓱해져서 그냥 렌즈를 하늘에 대본다.
빛이 없어 초점도 맞추기 어려운데 느린 셔터를 눌렀다.
어엇! 스크린을 보니 흔들려 뿌연 그림이지만 담겨진 건 파란 하늘이다. 깜짝 놀랐다.

다시 고개 들어 올려봐도 눈에 들어오는 건 그저 컴컴해서 색깔 따윈 구분도 안되는 어둔 하늘일 뿐인데.

카메라는 그 속살같은 어둠 뒤의 풍경을 볼 줄 아는 거다.
거기엔 파란 하늘이 있고 흰구름이 있다. 어둠 그 너머의 이쁜 얼굴들이 고스란히 있다.

뭘 본다, 는 건 대체 뭘까. 보는 것이 보여진 것이 진실과 늘 일치하는 걸까.
내 눈에 보이는 것이 가장 또렷하고 확실한 현상이며 증거인 양 믿고 살지만
그러나 이렇게,
그저 지금 앞엣것이 어둡게 보인다 해서 실제 어두운 것은 아닐 지도 모른다.

다른 눈에는 어둡지 않고 파랗다. 하얗고 초록인 그 어둠 뒤의 실체가 보인다. 내 눈이 전부가 아니다.  



  

온라인 자선, 프리라이스 닷컴

2009.04.26 09:41 | 미국보기 | 제니퍼

http://kr.blog.yahoo.com/joomic/5004 주소복사

번 돈을 나눈다, 가진 것을 좀 덜어낸다 - 는 마인드의 기부 혹은 자선이라는 개념이 한국에 있을 때보다 내 의식 안에 꽤 부담 없이 들어앉은 이유를 나는 그나마 여기 물을 마시고 사는 탓이라고 느낀다. 메리 크리스마스의 인삿말조차 해피 할러데이로 바꾸어 주고 받을 만큼 이제 미국 안에서의 기독교 전통은 공식적으로는 사라졌지만 사회 문화적으로 그래도 기부와 나눔의 의식에 대해서는 열려있는 베이식이 단단하다고 느낀다.
그렇다고 내가 뭐 미국인들에게 직접 그 필요나 가치에 대해 배운 것은 아니다.
살기는 미국에 살되 여전히 아웃사이더의 바운더리에 걸쳐진 생활이 그냥 내 몫의 미국살이려니 하고 사는 생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히 돌아다니는 메일이나 광고나 그냥 어디에서 접했는지 출처가 분명치 않도록 다양하게 들리고 보이는 자선의 씬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당연한 것, 혹은 기회를 찾아 참여할 것, 같은 하나의 부분으로 한자리 꿰차고 있는 건 분명하다. 
슬픈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갑을 활짝 여는 과단성 있는 용기는 여젼히 조막만하다는 사실이긴 해도.

더구나 직접 지갑을 열지 않고도 스폰서를 통해 기부가 되는 온라인 자선의 기회는 사실 내게 낯설지 않다.
한국에 있을 때 몸담았던 회사에서 1004link.com이라는 자선 웹사이트를 운영했던 경험을 통해 
그냥 그저 보이지 않는 무형의 관심만으로도 유형의 도움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참 재미난 사실을 알게 된 때문이다.
요즘처럼 주머니가 헐렁할 때 그나마 시간의 제공만으로 한조각 마음의 위로를 주고 받을 수 있는 툴이 있다는 것이 나는 쓸데없이, 고맙다.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FreeRice.com은 꽤 알려진 온라인 자선 사이트지만 나는 최근에 우연히 알게 되었다. 
말 그대로 프리 라이스, 쌀을 무상 제공, 기부할 수 있는 사이트다.
물론 내가 직접 쌀을 기부하는 것은 아니다. 사이트에 준비된 몇가지 분야의 문제를 풀면서 답을 맞출 때마다 10개의 쌀알을 유엔식량기구를 통해 기아 지역에 기부할 수 있도록 해주는 색다른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영어 단어나 문법, 불어나 독어 스페인어 단어 맞추기, 화학기호나 세계 각국의 수도 맞추기, 수학 문제들이 다양한 레벨의 난이도에 맞춰 등장한다. 방문자는 회원 가입도 할 필요없이 자기가 관심있는 주제의 문제를 풀어가고 정답을 맞출 때마다 옆에 놓여진 그릇에 쌀알을 담아 모아서 자동으로 기부하게 된다. 

대체 그냥 내가 문제 풀이하면서 노는 동안 쌀알이 차곡차곡 담겨져 자선하게 된다는 이 시스템은 어떻게 가능한걸까?
물론 당연히 스폰서가 제공하는 광고의 힘이다.
나는 말하자면 그들 브랜드 혹은 상품에 대한 '주목' 이라는 인식을 쌀알과 가치 교환해서 기아에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식량을 기부하는 셈이다. 즐겁고 흥미롭고 떳떳하다.
게다가 무슨 페이지뷰니 히트수 체크니 하는 원시적인 주목률 통계 과정을 문제 풀이와 쌀알 모음이라는,
명확히 눈에 보이는 도구로 치환한 이 영리함이 무릎 치는 감탄과 유쾌함을 선사해서, 희찬이와 낄낄거리며 문제 푸는 동안 내내 기분이 좋았다.
한참 놀다보니 1000그레인을 적립했다. 저녁 때 밥 먹으면서 밥그릇 속의 쌀알을 헤아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하하.

스폰서로 참여한 기업들은 적어도 자선에 대해 쌀알만큼쯤은 관심이 있는,
말하자면 그닥 불량하지는 않은 소비자군으로부터 주목을 받게 되고 또한 그저 스쳐지나는 주목 아니라 호감어린 주목,
더구나 들인 시간만큼 반복된 주목을 통해 뚜렷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효과를 당연히 보너스로 얻게된다.
'그들의 유익'은 거기에 있다.

자선의 손쉬운 접근, 즐거운 참여의 과정, 기꺼운 재방문의 이유들이 절묘하게 가능하도록 장치되어 있는 모습을 보며
기부와 나눔의 다양한 통로가 잘 발달된 참 미국 스타일답다고 고개 끄덕였다.

여하튼 해보면 재밌다, 뭣보다 참~ 쉽다.

41.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 Slumdog Millionaire

2009.04.21 16:20 | 보고읽기 | 제니퍼

http://kr.blog.yahoo.com/joomic/4997 주소복사




6억원의 상금이 걸린 퀴즈쇼에 참가한 인도 뭄베이의 18세 고아 청년 자말.
제대로 된 교육 한번 받아본 적 없는 전화 회사의 차심부름꾼이, 출제된 문제를 모조리 맞추고 최종단계에까지 진입한다.
속임수나 부정행위를 의심받고 만 하루동안 고문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문제의 정답을 알수밖에 없도록 해준 과거의 경험 하나하나들을 털어놓는다.

아주 흥미로운 설정이다.

하필이면 퀴즈쇼에 등장한 문제들이 자신이 살아온 짧지만 험난한 세월의 경험 안에 숨은 해답을 담고 있는 질문들로만 우연히 이어진다면?
신이 개입했다고 밖에는 상상할 수 없는, 그러나 인생이 역전되는 그 짜릿한 기적을 꿈꾸는 대다수 우리들에게
있을 수 있는 일이라 믿고 싶게 하는 그 기적의 유혹, 운명의 옷을 입은 판타지.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그 기적의 판타지인 셈이다.

부모를 잃고 형과 함께 거리를 뒹굴며 부랑자로 성장해온 소년 자말의 불우함이
가장 인텔리전트한 계층의 교양이랄만 한 (교양을 빙자한 일확천금의 판타지쇼가 그 본질의 정직한 얼굴이겠지만) 퀴즈쇼의 해답을 은연중 체득하도록 도왔다는 역설. 
그러니 우리는 어디에서건 어떤 환경에서건 결국 삶을 통해 배우며
운명의 수레바퀴는 어떤 길 위에서도 제 속도에 맞춰 구른다,라고 하는
지극히 단순하지만 명료한 진리를 두 시간여의 성장 스토리를 통해 다시금 일깨우는 이야기다.

누구나 꿈꿀 법한 한 방의 인생 역전,
이에 대한 우리 모든 범부 필모들의 갈망을 엉뚱하게도 인도라는 사회 씬에서 의외로 확인시켜주는 이야기이며
어린 아이의 성장 과정을 통해 낯선 이국 사회의, 그러나 참 우리의 것과 어김없이 닮아있는 가난과 부조리와 폭력과 밑바닥 삶의 처절함을 더불어 투영하는 아픈 고발극이다.

그러나 그 어떤 모습에 앞서 이 영화는 순수한 어린 청년의 사랑 이야기로 이름지워진다.
어릴 적 한 소녀를 향해 품었던 사랑을 이루고자 견디어 살고, 우연찮은 삶의 '금전적' 행운을 맞이하며, 
결국 놓칠 뻔했던 사랑까지도 찾게 된다는 동화같은 이야기다. 
순결한 사랑을 지닌 자가 가난과 고통에서 벗어날 거액의 상금을 거머쥐게 되고 아름다운 사랑까지 얻는 해피한 마감을 통해
바라보는 관객들에게 안도와 흡족을 교과서처럼 선사하는 홀가분한, 이야기다.

3세계의 무대 배경과 전통 멜로디를 베이스로 한 음악이 일단 호기심을 끌고
뻔해도 확실히 보증받는 신데렐라의 신분 상승 스토리 구조가 흥미의 유지에 작용한다.
퍼즐의 조각을 맞추듯 해답을 알게된 과정을 풀어가는 흐름이 
퀴즈쇼의 생래적 박진감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스토리를 따르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한마디로 재미있다. 

2008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등 8개 부문 상을 휩쓸었다고 한다.
최근 보았던 <벤자민 버튼>이나 <더 리더> 같은 작품들과 견주어 월등히 높은 성과를 거둔 셈이라 더욱 관심이 갔다.
이색적인 풍경과 배경 음악의 독특함은 비교할 수 없어 우열을 가르기도 어려운 유니크함을 지닌다. 
하지만 재미보다는 철학과 의미를 고답적이리만치 따졌던 아카데미 수상작이라기엔 의아할 정도로 깊이감은 없다.
그것은 온 출연진들이 인도의 댄스곡에 맞춰 다함께 춤을 추는 엔딩 장면의 이미지가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나는 실은, 비극적 죽음으로 퇴장했던 주인공들이 막이 내린 뒤 무대에 다시 올라
웃고 박수치며 관객을 향하여 인사할 때 아주 찰나적인 당혹함 같은 것을 늘 좀 느껴온다, 촌스럽게도.
더구나 영화 속에서, 인물들이 캐릭터를 다 벗어던지고 한데 모여서,
말하자면 훈련된 '배우'로 얼굴 바꿔 등장해서 이미 충분히 연습된 군무를 보여주는 그 '보너스'가 나는 좀 불편했다. 
맘마미아의 유머러스한 엔딩과는 달랐다.

슬럼가의 개로 살아온 어린 청년 자말이 능란한 댄스 실력을 보여주는 다소 황당한 엔딩은
참을 수 없...다기 보다는 그러잖아도 좀 아쉬운 영화의 가벼움을 가중시킨 기분이다.
더구나 그들이 그렇게 '다같이' 행복할 상황을 맞았던가...
주인공 남녀가 앞으로 재미있게 살아갈 경제적 부를 한순간 거머쥐었다는 것 뿐 아닌가.
나머지 괴로운 인생들은 한치의 유익도 해당없다, 여전히.

어쩌면 탁월한 재미만큼 안으로 파고드는 공감이나 감동이 상대적으로 부족한데 대한 허전함의 푸념일 지 모르겠다.
선한 판타지는 이뤄졌지만 그 행운의 열쇠를 얻은 것으로 궁극의 선이 이뤄진 양 추앙하며 기뻐하는 얄팍함,
거기에 고개 끄덕이기가 좀 자존심 상했던 것이라고, 나는 그저 생각해본다.

모처럼 인도인들의 독특한 영어 억양을 듣노라니
다운타운에서 숱하게 만났던 인도 이민자들과 일치 혹은 오버랩되는 많은 장면들로 인해 내겐 한묶음 별도의 감상이 생겨났다. 그것은 호불호의 느낌과는 많이 다른 좀, 특별한 것이다.

쇼호스트가 미끼로 던진 오답을 통해 인간 심리의 복잡 미묘함을 엿보는 장면은 흥미로왔다.
1백달러 지폐에 그려진 인물이 누구인지를 내가 분명히 알고 있다는 사실도 스스로를 잠시 돌아볼 몇가지 의미가 되어줬다. 
마지막 씬에서 그녀 입술에 앞서 얼굴의 상처에 먼저 키스해주는 자말의 섬세한 사랑은 좀 마음에 들었다.

인도 영화의 거죽을 입고 있지만 실은 영국 영화이기에 아카데미에서의 인도영화 약진 운운은 어울리지 않는 평가다.
<트레인스포팅>으로 알려진 감독 대니 보일도 주인공 배우도 일단 영국인들이다.
오히려 엄청난 상금의 다양한 퀴즈쇼가 소개되는 미국 티비의 대중 정서와 문화적으로 공감 할 베이스를 깔고 있는 점이
그 호평의 바탕이었을 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뭐 그렇다. 
복권이건 퀴즈쇼건 엘리베이터에 대한 인간의 수직상승 욕망은 이미 공용어다.
공감과 기대를 대리 만족으로 체험하게 하는 두 시간- 불평할 일이 없다. 불평할 것까진, 그렇다,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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