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이 지나간 이후부터 연말까지의 그 어정쩡한 시간이 왠지 편치 않다고 작년에 아마 나는 블로그에 대고 뭔가 궁시렁댔던 기억이다. 올해도 이름없는 이 무명의 시간들을 오늘이 내일인지 자주 헷갈려하며 그렇게 슬렁슬렁 보내고 있다.
다만 올해는 불평 소린 집어넣었다. 종소리 울려퍼지는 연말의 비장함이나 두주먹 불끈 쥔 희망찬 새해의 벅찬 감격같은 것 하나 없이 먹먹하고 헐렁한 시간을 지내고 있지만 뭐... 실은 그게 더 스리슬쩍 넘어가주는 맘 편한 해넘기기라는 걸 내심 알기 때문이지.
슬라이스한 파인애플로 온 몸통에 팩을(^^:) 해입혀 달콤하게 구운 Honey Baked Ham을 메인으로, 야채 캐서롤 같은 거 할 줄도 모르거니와 식구 누구도 별 달가와 안하는 메뉴 빼고 괜히 나 먹고 싶은 잡채 볶아내며 '우린 우리식으로 야채를 먹는게야' 해가며 얼토당토 않은 식전 세뇌를 강요하며 만들어 붙이고, 그대신 생감자로 열심 크리미하게 만들어낸 메쉬드 포테이토로 아들내미 기호에 적극 부응하는 액션을 취해주며 밥과 디너롤과 그 와중에 배추김치까지 올라온, 구성 국적 참으로 불분명한 요상한 크리스마스 디너를 겸양과 겸손 없이 액면 그대로 '조촐'하게 해먹은 이브로 크리스마스를 조용히 보냈다. 그래도 큰 접시에 슬라이스 햄 두어조각과 구운 파인애플, 메쉬드 포테이토와 야채 듬뿍 들어간 잡채, 잡곡밥 혹은 디너롤, 그리고 오렌지 주스나 와인 한잔쯤 옆에 늘어놓아두고 보면 뭐 나름 모양은 좀 되더라마는. 썰렁했던 트리 밑을 한가득 채워준 희찬이의 이모 즉 나의 언니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담은 뒤늦은 성탄전야의 씬 한 컷.
비가 연일 내리더니 쨍하고 화창하게 맑은 투명한 하늘인데 문밖에만 나서면 맵게 쌀쌀한 겨울이다. 무릎 담요를 어깨까지 뒤집어쓰고 오전 내내 커피와 노래와 나직한 이야기들과, 그렇게 함께 놀았다. 그리곤 올해도 어김없이 나만의 겨울 맞이 의식으로 두툼한 실내용 겨울 양말을 꺼내어 신었다. 발이 커졌다. 기분이 좋아진다.
카메라 메모리 카드가 꽉 차버렸다. 이미 블로그에 포스트한 사진들을 지워내려가다가 보니 12월 2일 아침 일곱시의 하늘을 촬영한 몇 장의 사진이 있다.
아마도 나는 무슨 이유에선가 그 날 아침 문 밖에 나섰을 것이고 바라다보인 하늘, 아침이 찾아오는 풍경이 좋아 다시 카메라를 집어들고 그걸 담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진을 보면서 생각한다. 왜 나는, 아름다운 것을 보면 '갖고 싶어' 하게 되는걸까.
나는 가슴 벅차도록 아름다웠던 그 이십여일 전 아침 하늘의 감동을 분명히 기억한다. 그런데 나는 그 순간 거의 본능적으로 그걸 내 사진으로 '담아야겠다' 고 생각했고 뛰어들어가 카메라를 집어들고 나왔고 철컥철컥 셔터를 눌러 서둘러'내 것'으로 만들어대느라 바빴던 거다.
결과는 어리석음의 확인일 뿐이다. 내가 기억하는 그 아름다운 아침의 풍경은 내가 담아서 가져와 카메라 속에 버려지듯 담겨있는 이 사진의 풍경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황홀했다. 그건 내가 이 작은 프레임에 담아서 움켜쥐듯 소유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는 거다.
왜 갖고 싶어할까. 왜 길가에 피어난 여린 풀꽃을 따서 손에 쥐고 싶어할까. 왜 대상을 그대로 놓아두지 못하고 내 것이 되게 하고파 서두르는걸까. 어쩌면 그것은 거기에 있기에 아름다울 수도 있는 것인데.
문득 모든 기록과 보관의 작업이란 어쩌면 무의미한 욕심에 지나지 않을 지 모르겠다는 허무주의의 도랑으로 펄썩- 한발 헛딛는 찰나를 감지한다. 소유와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걸까. 무소유건 내려놓음이건 어떤 경로를 통해서건 말이지.
근데, 그건 또 그리 좋기만 한 발걸음은 아니다. 그럼 이런 끄적질도 블로깅도 이유없는 찰칵질도 모두, 모두 다 '공' 의 무한 개념이 펼치는 거대한 장막 속으로 밀어넣어 헛되고 헛되도다...하며 보리수 밑에 가부좌를 틀어야 한다는 말이냐는 거지. 정말 그런거냐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