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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도 다양하고 평가도 여러가지였던 영화다. 나는 영화 체인질링의 감상 이후 비로소 호기심이 생겼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배우로서, 감독으로서 드러내고 있는 문제의식, 20세기 초반에서 21세기를 넘어오며 미국이 경험한 변화들을 그러나 거칠거나 복잡하지 않게 다만 한 개인의 시선을 통해 조용히 나직히 웅변하는 그의 담담함이 다시 궁금했다. 한번 뒤집어 생각해보자. 어릴적부터 오래 살아왔던 내 고향 동네에 어느날부터인가 동남아 이주 노동자들이 하나씩 둘씩 옆집에 앞집으로 이사를 온다. 한국말은 서툴고 늘 뭔가 겁에 질린 표정들이어서 눈 마주치기도 즐겁지가 않다. 시간이 흘러 이방인들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동네 골목길이며 상가며 작은 병원이며 어디에서건 흔히 그 얼굴들을 만나게 된다. 더구나 그들은 도무지 한국 사회의 습성을 배우려들지도 않고 어울리려들지도 않으며 이젠 아주 자기네 동네인양 활개를 치고 다닌다. 정들고 익숙한 이웃들은 하나 둘씩 이사를 떠나버려 동네는 거의 이방인의 마을이 되어버렸다... 아, 이게 우리 동네에서 벌어질 풍경이라니, 기분 참 별로다.

미국와 살다보니 나야 당연히 틈입자로서 조금의 백안시에도 심정 상하는 스탠스지만 솔직히 뒤집어 생각하면 그런거다. 주인공인 백인 남자 월트 코왈스키(코왈스키라는 이름 역시 그 또한 먼 옛날 러시아나 동유럽 어디쯤에서 이주한 조상의 후예임을 드러내는 상징일지도)가 오래 살아온 그 자신의 집 주변에서 수년간 겪어온 경험의 과정이 그거다. 다른 주변인들은 그냥 그런 변화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명성을 날리던 포드의 그랜 토리노 대신에 도요타의 랜드 크루저를 선뜻 고른다. 이방인들로 채워지는 고향 동네를 아쉬워하기 전에 그냥 일찌감치 벗어나 새동네에서 그들만의 풍요를 다시 일구며 살아간다. 싸울 필요 뭐 있나, 영리하게 현재에서 가장 유익한 것을 찾는 것이다.
허나 코왈스키는 제자리에 머물러있다. 자신의 젊은 날 조국의 명예와 숭고한 자유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신념으로 참전했던 한국 전쟁의 고통스런 기억을 평생 지니고 살아간다. 미국을 상징하는 대표 기업인 포드 자동차에서 평생을 일하며 긍지와 자부심의 결정체인 72년형 그랜토리노를 늘 반짝반짝 쓸고 닦으며, 그러나 흘러가는 현실의 변화에는 뒤쳐지는 외로운 인생을 살아간다. 그리고는 그 인생의 말미에 한국전 당시 자신이 쏜 총에 죽음을 당한 어린 소년의 환생과도 같은 어떤 아시안 소년과 그 가족들과의 교류를 통해 고해하듯, 자신의 아픈 과거를 참회하듯 죽음을 선택한다.

영화를 보고난 뒤 나는 어쩐지 백인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그들은 친구가 되어버린 이웃 베트남 몽족의 철부지 틴에이저 가족을 위해 장렬히 '순교' 하는 코왈스키에게서 자부심을 볼까. 그들 '아버지 세대'의 미국식 가치관과 오늘에 이르른 쓸쓸함에 아쉬워 공감할까. 내 눈에는 그것은 인종주의나 구원이나 정의감 혹은 숭고함과는 구별되어야 할, 다만 외로움의 표출이었다. 그 외로움을 어떤 각도에서 바라볼 것인가가 결국 이 영화의 색깔을 각자 결정짓는 기준이 될 것이었다. 영화를 관람한 그 어느 이민자도, 어떤 아시안도 백인이 그들 삶의 고난을 보호해 줄 존재라고 생각할 리 없다. 오히려 이 '아시안'의 눈에는 아무 염려도 걱정도 없을 것 같은 미국의 백인 시민이 시대를 관통해 살아오며 감내해야 했던 인간적 고뇌가 잡혀 안쓰러운 기분이다. 그들은 이민자의 나라, 그들의 조국에서 내내 새로이 적응하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이다. 몇몇 리뷰 속에서 미국인들은 이제 우리가 영화 속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인종주의적 농담을 들으며 소리내어 웃을 수 있어야 한다, 가려운 주제를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제대로 긁어줬다, 식의 의견들을 보였다. 다양한 시선과 바라볼 포인트가 공존한다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아마도 그 점이 또 이 영화의 특별한 매력일 수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그랜토리노는 미국 포드 자동사회사의 72년 모델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다는 이 옛날 모델이 우리 동네 어딘가에서도 돌아다니지 않을까 싶은 유치한 기대로 동네 몇바퀴를 돌아봤지만 찾지 못했다. 70년대 유명한 티비 형사물 시리즈인 스타스키와 허치에도 그랜 토리노가 출연했단다. 이른바 콜라병 차체 Coke Bottle Bodytle Body 라고 하는, 앞뒤가 길고 중간 부분이 상대적으로 좁은, 전형적인 미국차 스타일인 이 모델은 그저 과거 흔했던 대중차다. 영화 속에서는 어린 친구들의 도둑질 타겟이 되고 손녀가 상속받고 싶어하는 자동차로 등장하길래 중고차 가격을 뒤져보니 그저 뭐 5천불 내외였다. 대중차 맞다. 여하튼 그러나 그랜토리노는 당연히 하나의 상징이다. 그것은 어쩌면 코왈스키 자신이며 어떤 정의와 신념이 그래도 살아있다고 자부했던 미국의 얼굴인 셈이며 또한 내 보기엔 그냥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 자신처럼도 보인다. 그 아이콘 하나만으로도 웅변하는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나무랄데 없이 원숙한 이스트우드의 연기에 상대적으로 서툰 동양의 어린 배우들은 다소 안쓰러웠다. 미필적고의쯤 되는 의도된 캐스팅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장면에서 갱단을 구속하던 경찰이 '총을 지니지 않았던 그를 쏘았기 때문에 갱단들은 오래 감옥에서 썩어야 할 꺼다' 라고 던진 한마디 대사는 좀 사족스러웠다. 함축된 시어에 문득 설명문 한줄이 붙은 감이었다.
멋부리지 않은 배경에 일상이 편안히 담긴 화면은 헐리웃 스타일보다는 어쩌면 독일 영화스럽게 보인다. M1 소총, 미국식 이발소, 지포 라이터, 엔딩화면 위에 흐르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노래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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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153 2009.06.02 13:43 [12.146.19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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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 토리노란 영화, 읽고 나니 한 번 보고 싶어지네요. 혹 같은 차가 있는가 싶어 동네를 몇 바퀴 돌고 중고차 가격을 알아 보고, 정말 열혈 블로거시네요. 잘 보시고, 잘 느끼시고, 잘 쓰신 흔적 역력합니다. 누가 보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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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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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진짜 열혈로 정성껏 포스팅하는 블로거들이 무수한데 무슨 말씀을요!
마실 겸 동네 두어바퀴 돌고 포스팅하다가 검색 한번 한 거 뿐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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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153 2009.06.03 12:46 [69.235.167.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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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 정성에 감격한 1人. ^^ 실은 무엇보다 영화에 대한 깊은 통찰력에 더 놀랐어요. 슬럼독, 체인질링, 책읽남 등 4개 포스팅만 읽었지만.(달동네개와 뒤바뀜, 두 영화만 보았어요, 저는 무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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