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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 반 브레이크 타임에 스낵숍에 내려가니 다른 클래스의 한국 사람들까지 둘러모여 야구 얘기가 한창이었다. 다들 어제 일본과의 결승전을 보고 아쉽다, 아깝다, 잘했다는 의견들을 주고 받으며 이치로와 정면 승부만 피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꺼다, 역전이 충분히 가능했었다, 일본 투수력이 확실히 좋더라, 근데 그 혼혈이라는 다아비시는 잘 생기긴 했더라 하며 다양한 얘기들이 나오고 했는데 (참고로 이에셀 클래스 한국인의 93%쯤은 여성들임)
헌데 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전반적으로 우리 선수들 참 잘했다- 는 의견에 일치되는 분위기였지만 좀더 들어가보면 대체로 한국에서 온지 얼마 안되는 사람들은 어제 경기가 너무 억울하고 아쉽다, 꼭 이겼어야 했는데- 하며 더 깊이 감정이입된 반응들이었고 나처럼 최소 오년 이상 묵은 사람들은 그래도 잘한거다, 그 정도면 됐다, 경기 재밌었다, 는 촌평에서 합의되더라는 거다. 1년 예정으로 다니러 왔다는 우리 클래스의 젊은 아가씨 한사람은 역전 시키지 못하고 진것에 몹시 안타까워하면서 새삼 울상을 지었다.
나는 순간 어제 ESPN 방송 화면에 중간중간 소개되던 잠실 구장 화면이 떠올랐다. 구장을 꽉 메운 응원 인파들. 볼 하나에 웃고 환호하고 박수치며 열광하는 모습들, 아마도 그 한가운데 운동장은 텅 비었을, 화면 속 우리 선수들의 활약을 마치 지금 비어있는 구장 위에 펼쳐지는 모습인 양 함께 호흡하듯 몰입한 관중들의 모습들. 물론 결승전이라는 최고의 가치가 주된 이유였음은 분명하다. 우승이라는 마지막 고지를 바라보며 열광하는 마음 또 더욱 당연하다.
그리고 그런데 하나 더, 대 일본전이라는 증폭기가 그 뒤에 큼직하게 달려있었음 또한 분명한 것을 우리 모두 안다.
이곳 다저스 구장의 열기는 잠실 구장은 물론 과거 월드컵의 응원 파워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아니 구장은 일부일뿐 교민 사회의 관심과 열기는 경기 침체로 다들 움츠러든 타운에 모처럼 단비같은 생기를 불어넣었다. 매 게임일마다 동네 이장집 티비 앞에 모여들듯 삼삼오오 모여앉은 티비 응원팀은 수천가구는 될 거였다. 주일날 오후 다락방 모임에 참석한 남자들 절반 이상이 목소리가 안나와서 걱걱대고 있었다. 전날 베네수엘라와의 준결승에 기력을 다 소진해 노곤한 모습들이었다.동네 사람들 구장 가서 다 만났다며 너스레 떠는 사람들의 표정엔 모처럼 생기가 넘쳤었다. 엘에이 한인타운의 티비 중계 관전용 식당 명단이 신문에 주르륵 소개될 지경이었다. 그렇게 나라 안팎에서 그냥 우리는 다 피끓는 한국인이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눈에 들어온 오늘 그 브레이크 타임의 어쩌면 별 것 아닐 우리끼리의 관전 후기, 그 분명해보이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나와서 보면 안에서는 좀체 보이지 않던 것이 아주 조금은, 더 보이기도 한다.
세상에서 다시 볼 수 없는 대진표로 요상망측한 경기 일정을 만들어두고 우리와 일본을 꼭 붙여 떨어지지 않도록 한통에 몰아넣어서 이건 무슨 한일 리그전도 아닌 것이 다섯번이나 승부를 겨루게 만들 정도로 한국과 일본 경기가 벌어들이는 짭짤한 중계료와 수익에 주최측이 군침 흘리며 은근히 부추기는 '과다 열기' 는 내 보기에 왠지 좀 억울하고 영 개운치 않은 입맛을 다시게 했다.
-우리나라가 일본하고 게임한대. 어 그래? 그럼 이겨야지. 무슨 게임인지 알아? 몰라. 근데 이기래? 어, 일본이랑 한다며? 그러니까 이겨야지.
이게 내 심중이고 다저스 구장을 찾은 교포들의 심중이고 티비 앞에 삼삼오오 모여앉은 미국 동포들의 심중이고 또 온나라 전국민의 하나된 심중인 건 다 안다, 다 맞다.
그런데 왠지 나는 ESPN 화면으로 비춰지던 잠실 구장의 그림이 자꾸 억울하고 아깝다는 기분이 들었다는 거다. 분루를 삼키며 패퇴했다는 미국팀의 어이없는 성적도 왠지 미심쩍은 실눈으로 바라보게 되더라는 거다. 분명히 국적기를 가슴에 달고 싸움의 상대로 만났는데도 안타를 치고 나온 주자의 엉덩이를 두드리며 반갑게 인사하는 1루수의 표정- 미국과 남미 어떤 나라의 게임에서 선수들이 보여주던 그 루즈한 태도, 그냥 메이저리거 친구들끼리의 친선 게임쯤으로나 여기는 듯 보여서 어이없던 그 그림들이 열심을 다하지 않는다 비난할 꺼리로 보다는 자꾸 그냥 이 대회의 기본 컨셉인 것처럼 보여져서, 목숨 걸고 싸우는 우리 선수들 이쁜 모습이 외려 좀 열받더라는 거다.
펼쳐놓은 놀이판에서 초대된 손님들이 열정적으로 승부를 겨루는 사이에 정작 주인은 여기 재밌는 게임 있으니 와서들 보라... 고 동네 사람들 불러모으는 그림이 자꾸 연상된 건 이건 좀 나만의 삐딱한 컴플렉스일까. 볼만한 빅 게임을 연출해낸 것으로 만족하는 주인과, 게임 자체를 즐기기에 한발 더 나아가 민족적 대결의 마당으로 가치를 증폭시켜 몰입하는 우리 국민들의 귀한 에너지가 나는 왜 좀 아까운 기분이 드는 걸까. 마당 펼친 쪽에서야 물론 손님들이 와서 분위기를 팍팍 띄워주니 어이쿠 고마울테지만. 괜히 좀 그랬다, 나는. 이제 겨우 두번째 치를 뿐인, 아직도 보기에 시행 착오 중인 설익은 대회에 우리나라 사람들을 이토록 몰입시켜버린 미국애들이 자꾸 얄미웠다.
우리 한국 야구팀은 세계 정상이다, 이미. 올림픽이 증명했고, 3년전 첫 WBC 대회 때도 충분히 증명했고 이번 2회 대회때는 굳히기 마무리 수준으로 세계 만방에 널리 확고히 자리매김하며 드높이 알렸다. 자격이 있다. 자격이 있으니 당당히 느긋해도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일본과 싸워서 이기지 못했다고 해서 그들이 상심한 얼굴로 처진 어깨로 퇴장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 앞으로도 일본과 싸운다고 해서 한풀이하듯 독기 품고 달려들기 보다는 여유있게 상대하는 나름 거만한 자세였으면 좋겠다. 일본? 잘했다, 실력 있는 팀과 겨뤄서 승부를 냈고, 부끄럽지 않은 성적으로 마무리 했다 - 그렇게 담대하고 싶은거다. 그게 일본이건 미국이건, 그들을 진짜 이기는 방법이라고 여기서 홀로나마 외치고 싶은거다.
나와서 오래 살다보니 희미해진 옛사랑의 그림자로 퇴색한 애국심 때문일까. 어쩌면 더 진하고 애잔하게 깊어진 내 나라 사랑 때문일 지도 모른다고 감히, 나는 생각한다. 무작정 이기기만 희구하며 에너지를 쏟기 보다는 좀더 단단한 우승의 필연을 구축하기에 힘 쏟는게 영리한 짓이라고 입은 좀 쓰지만 되뇌인다는, 거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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