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광고 - 야후! 코리아 에서 '제니퍼'님의 블로그를 지원합니다.

Changeling : a baby that is believed to have been secretly exchanged for another baby by fairies
문제는 어디에도 신비로운 요정의 개입 따윈 없었다는 거다. 어느날 갑자기 집에서 실종되어 버린 싱글맘의 일곱살 아들. 몇개월의 고통스런 수색 끝에 마침내 되찾은 아들이라고 경찰이 데려온 낯선 아이. 그 혼란과 분노가 어이없는 체인질링의 시작이다.
1928년의 미국 로스앤젤레스는 1928년 일본제국주의에 짓눌린 동시대 대한제국의 인권에 비해서는 훨씬 세련되고 열린 마인드로 보여지긴 한다. 전화 교환원인 그녀는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다니며 교환수를 관리한다. 그래도 여자 혼자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며 살아갈 수 있고, 시민들의 힘으로 공권력의 치부가 드러내어지기도 하며 그나마 구축된 민주주의 시스템의 골격에 에 힘입어 불공정한 관례들이 개선되는 결과도 이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에 '경찰' 로 샘플링 된 권력의 폭력성은 숨막히는 분노를 일으킨다. 수십차례의 어린이 실종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는 경찰의 무능력을 조작극으로 화장시켜 무마하려는 치졸한 발상은 봉건주의 구시대의 비상식을 능가한다. 정말이지 이럴 땐, 권력의 근처에서 혀끝으로도 맛을 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권력이라는 몰약을 마신 이들이 하나같이 보이는 똑같은 행태들, 오로지 권력의 유지에만 급급하게 되는 그 사이드 이펙트가 때로 아주 흥미롭게 보인다. 한번 정말 어떻게 되는지 그 물에 발 담가보고 싶다는 유혹도 생긴다.
영화는 아들을 향한 지극한 모성과, 모성이 발휘하는 무한한 힘과 능력에 기대어서 국가와 정치와 권력과 개인의 권리, 또한 여성의 인권, 정신적 상해자들의 인권과 심지어는 사형수의 인권에 대한 물음까지도 나직한 목소리로 웅변한다. 아주 현명한 방법이다. 그 웅변이 권력자의 큰 목청 아니라 그 단단한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소시민의 지난한 투쟁을 통해 역설되는 모습이 안타까움과 공감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탓이다. 하지만 통쾌함이나 후련함보다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모성이 치러내야 하는 지독스런 인내가 거기 보여졌다. 그녀의 아들에 대한 희망은 영화의 뒤편 너머로 끝없이 이어진다. 스스로는 '희망' 이라고 이름 붙였음에도 그것은 가없이 고통스런 인내일 것이었으므로. 가슴 아팠다. 또한 여전히 엄존하는 권력의 폭거. 거의 일세기가 지난 지금, 그저 안보이는 곳으로 숨어들어갔을 뿐, 어딘가에서 수없이 반복되고 있을 것이 뻔한 권력의 무제한급 횡포에 대한 허탈과 무력감이 전이되는 기분이었다.
중요한 점은 이 스토리가 실화라는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가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빚어내는 픽션들은 오히려 상식선에서 머무르는 지도 모른다. 사실과 현실이 때로는 상상 이상의 놀라움으로 충격을 안겨주는 일이 허다하다. 실제 그렇다.
클린트이스트우드의 캐릭터, 혹은 관심사나 신념이 배어나는 플롯, 찬찬한 카메라의 시선을 역시- 하며 확인할 수 있다. 팔십이 다 되어간다는 이 노감독이 직접 카메라 앞에 나섰다는 영화 '그랜토리노'가 덩달아 궁금해졌다. 당대의 섹시 스타이며 뉴스 메이커인 안젤리나 졸리가 평범한 1세기 전의 모성 콜린스를 연기한다. 다 좋았는데 그녀의 도드라진 입술에 진한 립스틱 화장이 자꾸 눈에 띈다. 당시 스타일의 재현일 수도 있고, 주변인들로부터 뭔가 두드려져 보이게 하는 나름의 장치일 수도 있지만 이상하게 거슬렸다. 안 그래도 충분히 넘치도록 아름다운데. 묘하게도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의 영화를 연이어 보게 됐다. 그 때문인지 졸리가 피트의 러브신에 질투했다는 가십 기사가 떠올랐다. 안타깝게도 체인질링에는 단한번의 키스 장면조차도 보여지지 않는다. 그 때문에 더 억울했을까.
배우이자 감독인 존 말코비치가 여성이며 소수인 콜린스를 지원하는 목사역을 맡았다. 배우 출신 감독과 감독 출신 배우의 어울림이라는 건 참 솔직히 부러움을 일으키는 모습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가는 거다. 거기에 또한 주목과 갈채까지 선물로 받아가면서! 쳇! 부럽다. 직접 메가폰을 잡은 스타 배우의 능력이라는 것에 대해 새삼 경외심이 생겨난다. 전체를 아우른다는 것과 안쪽에 몰입한다는 것은 좀 다른 능력 아닌가. 감독은 조직과 구성자이며 배우는 그 하나는 엘레망이고 그 두가지의 능력은 사실 각자 다른 영역임에 분명한데 그들에게는 그 모두가 전부 가능하다니! '흐르는 강물처럼' 의 로버트 레드포드가 연상되면서 한 울타리에 그들이 어깨동무하는 그림으로 이어졌다. 아마도 배우적 감성과 경험의 축적이 빚어내는 독특한 세계가 거기에 있을 것이었다. 아, 그건 참... 멋지다, 멋진 일이다.
|
http://kr.blog.yahoo.com/joomic/trackback/3429481/4958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