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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말랑한 합리주의

2009.02.14 16:01 | 미국보기 | 제니퍼

http://kr.blog.yahoo.com/joomic/4932 주소복사


오늘이 파이널 테스트일인데 하필 새벽까지 깨어있어야 했다.
이에셀 봄학기 등록은 온라인 접수만 받는데 새벽 시간에 사이트를 오픈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꺼번에 접수 트래픽이 몰리는 탓에 그 틈을 비집고 간신히 접속 등록하는데는 한시간 이상이 걸린다.
그나마 어리버리 하다보면 금세 정원 마감이라 미국살이 치고는 드물게 발빠른 눈치작전이 필요한 참 희한한 기회.

파이널 테스트라고 해야 그 성적표 들고 어디 갈일 아니라 시험에 목숨 걸 건 없지만
그래도 시험이라고 이름 붙은 건 어쩐지 무시하게 되질 않고 누가 안봐도 성적은 잘 나오고 싶은 법이라.
그럼에도 시험 날 접수창구에서 삐질대느라 새벽잠을 설쳐야 하는 거 각오하는 일인데,

헌데 어제 선생님이 한가지 제안을 한다.

수업이 진행되어온 그 세시간 사이 아무때나 와서 시험을 보고 가라는 거다.
평소 8시 30분 수업 시작 시간과 상관없이 늦건 이르건 와서 끝나는 시간 전에만 시험을 치르고 가면 된다는 얘기다.

학기 등록하느라 날 밤 새거나 아침 시간까지 분주할 것을 배려해서
각자 편리한 시간에 와서 시험볼 수 있도록 배려하는 거다.

그 덕을 진짜 봤다.
새벽 부족한 잠을 아침에 조금 보충하고 느지막히 시험 치르러 다녀왔다.

나는 이 유연한 합리주의가 퍽 마음에 든다.
물론 클래스의 성격상 치열하게 점수 내는 것이 크게 중요치 않은 점도 작용을 했겠지만 꼭 어덜트 클래스의 루즈함으로 인한 예외만은 아니다.
아이 학교에서도 비슷하다.
여름이나 겨울 방학 마치고 개학할 때, 내 경험으로 한국에서라면 당연히 월요일 시작! 이렇게 뭔가 좀 시작한다고 할 수 있는 날 시작하고 그만큼 일부러라도 긴장하자! 는 다소의 압박을 은연중에 의도하는 경향이라면 
여기는 오히려 월요일을 피해서 수요일이나 목요일쯤 개학을 한다.

그렇게 되면 그 주는 금요일까지 해서 2-3일만 수업받고 다시 주말을 맞게 되는데
오래 쉬고 놀다가 모처럼 학교 나오면 누구나 컨디션 안나오고 부담되고 매일 놀다가 일주일 꼬박 수업 받으려면 힘들다는
그 아주 현실적이고 솔직한 이유를 수긍하고 접수해서 그 점을 배려하는 거다.
길지 않은 연휴의 경우에는 학교 나오는 날 등교시간을 한시간 늦추기도 한다.

물론 각오하고 긴장하고 준비하고 적절한 스트레스를 유지하는 것이 추진력 혹은 빠릿한 자세 갖추기에는
도움이 된다는 걸 잘 안다.
그렇게 훈련받은 우리 국민들이라 세상 어디 던져져도 제 밥그릇은 안 놓치는 기초 체력을 지니게 되는 거 있다.
실컷 놀았으니 이제 좀 추스리고 긴장해야지! 힘들겠지만 당연히 감당해야 하는 일이야! 같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나 나약함을 경계하는 마인드. 유교적 수신의 철학이거나 어쩌면 일제 군국주의 교육의 한겨울 반바지 입히기식 극기 훈련의 잔재가 어딘가에 잠재해 있는 것이거나, 그도 분명 의미는 있다.
더구나 경쟁이 치열하고 자기 몫을 제대로 건사하기 위해선 한발 앞서는 액션이 필수적인 사회에서라면 더욱.

그런데 여기는 그보다는,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그야말로 인지상정- 에 시선을 두는 경향이 많은 거다.
상식적으로 무리가 되지 않는 것, 이해되는 것, 경험적으로 당연한 것 따위의 가치를 인정하고
억지로 죄거나 좁은 틀에 끼어맞추기를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이 사회 전반의 마인드다.

공휴일이나 기념일 역시도 날짜를 못박는 것이 아니라 몇월 몇째 월요일 - 로 정하는 것 역시 일맥이 통하는 현상이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생일은 2월 22일 이지만 실제로는 이와 관계없이 2월의 세번째 월요일을 프레지던츠 데이로 지정하므로 내일모레 16일이 공휴일이 된다.
지난 달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생일도 셋째 월요일이었고 5월의 마지막 월요일은 메모리얼 데이, 9월의 첫째 월요일은 레이버데이 10월 둘째 월요일은 콜럼버스 데이 하는 식으로 주말 연휴와 이어진 월요일을 공휴일로 정하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이 연휴를 겨냥하여 장기적으로 휴가 계획을 세우거나 여행을 준비하곤 한다. 매해 같다.

올해 한국에서는 특히 주요 공휴일이 토요일이나 일요일과 겹쳐서 거의 평일 공휴일의 혜택이 없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나도 직장 생활할 때 매 새해 달력이 나오면 언제가 공휴일인지 먼저 찾아보며
마치 복권 당첨되듯 조마조마 아슬아슬하게 주말과 겹쳐지는 날이 되길 은근 기대했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되면 정말 연휴를 가능하게 하는 공휴일이란 건 로또 수준이다. 걸리면 다행이고 아니면 김새는, 매해가 다르고 예측 불허인.
예상할 수 없고 계획하지 못한다는 것은 불안이다. 차분한 준비와 기대는 불가하고 한방, 재수 따위의 불안정성에 도박하듯  내걸기를 암암리에 요구받는 거다. 불편한 거다. 

상식이 통한다는 것,
원칙은 엄격하지만 거기에 인지상정의 유연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참 사람 사는 데 귀중한 숨쉴 틈이 된다.
그리고, 내가 사람으로 하나의 인간으로 좀더 대우받고 배려를 누리고 있다는 확인이 또한, 된다.

살아갈수록 억지스러운 것에는 갑갑증을 더 느낀다.
부자연스럽고 만들어진 것은 반드시 어느 한쪽에서 어긋남과 왜곡이 빚어지더라는 경험들이 더욱 그걸 거부하게 만든다.
안 그렇게 해주는 시스템, 안 그렇게 해도 되는 사람, 거기에 점점 더 마음이 기운다.
유연함, 그 말랑한 합리주의는 단단한 원칙의 불륨만큼 동일하게, 나란히 존재해야 할 중요한 미덕이다.
그 여유가 삶을 구석구석 부드럽고 안락하게 만드는 쿠션이 된다.

그 말랑 폭신함에 살짝 기대어봤다.
아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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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nday@Y 2009.02.16  16:17

전 가끔씩 그 말랑말랑한 실용주의를 내세우는 바람에 아줌마들 사이에서 왕딴가봐요. 동네에서 혼자놀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저랍니다. 언제쯤이나 동네친구를 한명 만들 수 있을까요??? 하긴 이사를 안가야 되는디...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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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 2009.02.17  15:55

여랜데이님이 왕따라니! 동네 아줌마들 눈이 한참들 삐딱 사시군요...이사 가세요, 참 나...
근데요, 그 심정 사정에 나는 왜 이렇게 깊숙히 동감이 되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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