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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책을 놓지 않고 읽어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마는 나는 그러질 못했다. 대개가 다 그렇듯이 문학전집- 류의 학창 시절 필독서로 시작되는 독서 교육 덕분에 사춘기 때는 소설류에 탐닉했고 대학 시절 사회과학서에 몰입하면서 말랑한 소설류는 백안시하는 갈아타기의 경험이 있었다. 사회 나와서는 잡학에 박(薄 ! 절대 博이 아님)학을 요구하는 일의 성격상 훓어읽기나마 소설이건 수필이건 자서전에 성공학에 심리학 문화 예술서에 생활정보 관련 실용서까지 최소한 스치고 지나가기라도 해야하는, 변명의 여지없이 시류에 영합하는 간사한 독서 취향을 이어온 입장이라 언젠가부터는 한 분야에 깊이있는 줄기를 타는 독서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져버렸다.
이런 습관은 결국 연이어 책읽기를 고수할 이유를 잃게 만들어서 어, 이 작가가 작품을 냈네, 응? 지난번 소개한 책의 후속편이군? 같은 꾸준한 관심사의 유지를 방해한다.
그러니 어쩌다가 야, 사는 게 왜 이러냐, 책 좀 사 읽자- 하며 드물게 정신 차리고 책방 혹은 온라인 서점을 방문해볼 때면 도무지 이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 지 마치 시간의 흐름 위에 올라앉은 책의 컨베이어 벨트가 이미 저기 멀리 돌아가 있어서 놓친 것들은 너무 많고 나는 어디서부터 다시 잡아타고 올라야 할 지 막막한, 그런 기분이 들곤 했다. 늘어선 장르의 문 앞에 망연히 서서 대체 내가 관심있는 분야가 뭐였더라... 할 때의 그 아득하고 새하얀 막막함이란!
한국 살 때도 그랬으니 미국 와서는 한 술 더뜨게 되는 거다. 한국책을 출간 때마다 속속 구경할 수 있는 건 물론 아니라 서점에는 오래된 책과 안팔리는 책과 새책들이 순전히 서점 주인의 기준에 맞춰 앞으로 뒤로 진열되어 있기 일쑤고
더구나 뒤에 뻔히 적힌 정가와 내가 지불해야 하는 달러화를 비교하게 되면 억울해서 지갑이 열리지 않았다. 한국 책값이 많이 비싸지기도 했거니와 이건 말하자면 '수입품' 인 셈이라 최소한 50% 이상 얹어진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엥겔지수 낮추는 우아한 문화 섭취의 외식에 선뜻 나서기는 솔직히 쉽지 않더라는 얘기다.
때문에 이민 초창기 알라딘 유에스를 통해 웹검색을 하고 주문해서 며칠 기다려 본사에 방문해 책을 받아오는 이 번거로운 짓거리는 생활의 분주함에 밀려 쉽게 시들해져버리고 그나마 간간히 한국 서점에 들르는 것은 순전히 한글 기본 실력만은 유지시켜주겠다는 막중한 미션으로 희찬이 책에 포커스를 맞추기에 급급한 일종의 쳐내기 작업인 셈이됐다. (그나마 요즘엔 좀 자랐다고 이젠 비로소 같이 읽을 만 한 책들을 골라볼 수 있다는 사실에 다소의 보람을 느낀다고나 할까...!)
미국 사니 미국책을 읽어야 하는 건 당연한 의무에 권리라야 한다. 더구나 시설 잘 갖춰진 도서관들,언제나 웰컴 모드로 손벌리고 있는 저 아까운 유익을 하나도 누리지 못하는 억울함에 머리를 주억거리며, 영어책을 한국책처럼 몰입해서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날이 언제쯤이나 오려는지 막막한 지금을 한탄만 하다보니 도무지 책 제대로 읽어본 지가 언제인지 아득했다.
더구나 책이란 건 당연히 사서 보고 소장하는 거 - 라고 하는 참, 언제가 기원인지도 기억 안나는 고비용 악습관 탓에 도서관에 방문해서 책을 빌려보고 다시 반납( 아, 난 이 반납이라는 짓이 너무 아파!) 하기는 싫은 어리석은 고집을 내내 버리지 못하다가, 이제 비로소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것- 이라는 이 동네 일반 인식과 룰에 간신히 익숙해지는 중이니 책 읽을 이유보다 안읽을 이유만 내내 줄줄인 거였다, 쯥.

새해들어 동네 도서관엘 모처럼 찾아갔다. 글렌데일 도서관의 라크레센타 브랜치라 규모가 크진 않았지만 한쪽에 마련된 foriegn language 코너를 찾아가니 지난번 본점에서 구경 못한 한국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 순간의 가슴 두근거림은 뭐라고 표현을 해야 할까. 고르고 뭐할 것도 없이 누가 쫓아올새라 주섬주섬 보이는대로 집어들었다.
있는 것만 감지덕지라 중구난방 아무 기준없이 이빠진 서가로 도무지 방향도 색깔도 짐작 못할 리스트업이지만 데스크에 올려놓고 대출을 기다리며 가만 쌓여있는 놈들을 바라보니 이건 딱 내 찔러보기 책 선택이랑은 아주 닮은 꼴이라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난다. 어차피 서점 가서 책을 고른다 해도 그대로 이 모냥이었을꺼야...
남의 나라 공공 도서관에서 내 나라말로 적힌 책을 빌려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소장의 즐거움, 반납의 고통 따윈 이제 호사스러운 투정으로 다 치유되어버렸다. 갓 출판된 신작을 맛보며 시류에 뒤치지 말아야 한다는 허세도 코웃음거리로 구겨 내버려진지 오래다. 그도 내겐 성숙의 수확이다.
모처럼 두툼한 책의 겉장을 넘기며, 가슴 설렌다. 지금, 며칠 전에 보내버린 그 해 아니라, 분명 처음 태어난 새해, 그 새해가 맞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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