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학교 1학년 때의 나는 짧은 커트머리- 이른바 상고 머리였다. 그건 오롯이 이발소 작품이다. 아빠와 함께 이발소에 들어서면 아저씨는 널판지를 꺼내어 팔걸이에 걸쳐 놓는다. 그리고는 나를 번쩍 안아서 급조된 어린이용 의자, 즉 널판지 위에 앉히고 목을 꼭 조이는 하얀 가운을 재빨리 둘러준다.
거울 속에 비치는 나는 동그만 얼굴 하나에 몸통은 유령처럼 하얀 덩어리다. 어둔 형광등의 차가운 불빛 아래, 겁먹은 내 얼굴이 어린 맘에도 몹시 추워보였다. 목을 조이는 갑갑한 가운의 압박에 반항도 못하고 고개 한번 돌릴 엄두를 못내는 마음 약한 어린 계집애로서는 거울 속으로 반사되는 이발소의 풍경에 시선을 두는 것만이 유쾌하지 않은 그 시간을 견뎌낼 유일한 유희였다. 왼편에서는 로봇처럼 자유롭게 움직이는 신기한 의자에 반쯤 누운, 낯선 아저씨의 얼굴이 거품으로 온통 뒤덮여 있고 의사 선생님처럼 하얀 가운을 입은 아저씨- 가끔은 언니였던 - 가 서걱서걱 소리를 내며 칼질을 한다. 마치 자동차 유리에 올라앉은 아침 서리를 거둬내는 새로 갈아 끼운 와이퍼처럼 사아악- 거품 안쪽으로 말갛게 드러나는 얼굴을 만족스럽게 점검하며 입맛을 다시듯 연신 수건에 칼날을 닦아댄다. 나는 호기심과 두려움이 한데 엉킨 묘한 긴장감으로 그 장면을 눈도 떼지 않고 바라보고 있다. 말끔히 거품을 치워낸 얼굴 위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수건이 문득 철퍼덕 덮인다. 아저씨는 순간 작은 신음을 뽑아낸다. 나도 움찔한다. 그러는 사이 내 머리는 어느새 짧게 잘리워지고 뒷목덜미에선 면도날이 스윽스윽 잔머리 긁어내는 소리로 피날레를 부른다.

그것이 내게 남아있는 이발소의 기억이다. 아마도 봄이나 여름쯤까지 나는 그렇게 아빠 손에 이끌려 이발소엘 드나들었을 것이다.
1학년 가을 학예회 때 검둥이 삼보 이야기를 다룬 연극에서 타이틀롤(!)을 해야 했다. 그런 비중있는 역할이 주어지게 된 것은 순전히 같은 1학년 선생님으로 근무하셨던 엄마의 탓이다. 짧은 시간에 가장 효과적으로 훈련시켜서 무대에 올릴 인간으로는 담당 선생님 딸래미만큼 만만한 대상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이유도 모른채 매일 저녁 노래를 외웠고 무용을 따라했다.
그리고 그 때 나는 비로소 이발소 아닌 미용실이라는 곳에 처음 발을 디뎠다. 흑인 어린이였던 '검둥이 삼보'의 캐릭터로 분장시키기 위해 엄마는 나를 생애 처음 미용실이라는 곳에 데려가서 뜨거운 고데기 인두로 지글지글 지져서 뽀글뽀글 말린 요상한 머리를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아주 공포스러운 미용실의 첫 경험이었다. 그 첫 경험 이후로 엄마는 나를 더이상 이발소 보내기를 멈췄다. 남아있는 사진을 보면 그 이후로 나는 머리를 길렀던 것 같고, 다시는 이발소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수십년, 이발소라는 곳에 나는 가본 일이 없다. 성장기 때는 늘 아빠와 오빠와 남동생끼리 공중 목욕탕 다음 코스로 들러오는 '남자들만의 장소' 로 그냥 각인이 되어 그건 그냥 남자 목욕탕과 동일시 되는 장소 쯤으로 여겨왔다.
멋진 추억을 선사한 곳은 아니었으니 당연 가보고 싶은 생각도, 갈 일도 없는 곳이지만 동네 어귀 약국 옆, 저녁 어스름에 하염없이 돌아가던 그 파랑 빨강 무늬 형광등 사인의 묘한 유혹은 금지된 지역임을 신호하는 경고등처럼 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나를 경계했다. 그 불빛을 바라보며 나는 서걱대던 면도날과 묘하게 쾌감을 주던 거품 거두어진 맨 얼굴의 뽀송함과 사정없이 얼굴 위로 던져지던 뜨거운 수건을 기억했다. 그곳엔 뭔가 다른 것이 있었다고 되뇌었다.
바버샵에 앉은 두 백인 남자의 풍경은 편안하고 넉넉한, 자기들끼리만의 즐거움을 누리는 한가로움으로 비춰진다. 그들은 거기에 그들 '끼리' 앉아있다. 웃고 있다. 미용실에서 여자들 속에 섞여 여전히 다소 어색해하는 남자들의 그 조심스런 표정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그들은 그들이 '장악' 하고 있는 공간에 안전하게 있어 보인다. 그곳은 내가 들어갈 수 없다. 그들도 그것을 안다. 나도 안다.
하지만 오래 전 추억을 새로이 부르는 이발소의 회전등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나는 그 모습을 담고 싶었다. 바깥 멀찍이서 뷰파인더로 그 윈도우를 바라보며 무척 조심스런 기분이 들었다.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 부족한 망원 렌즈로 잡아야 했다. 그냥 그랬다. 은밀한 어떤 불순함도 없이 다 바라보이는 공간이었지만, 나는 침입하지 않고 경건히 존중해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함께 어울려서 최대한 서로가 '평등' 하게 살아가고자 하며 기실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점점 젠더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이 '발전하는 현대적인' 사회 속에서 우리 여자들이 남자들이 독점해온 수많은 영역에 보다 넒은 공간을 확보하려 '투쟁' 하고 있음에도 한편으론 여전히 우리끼리의 공간을 갈망하고 요구하듯, 그들 역시 바버샵의 경광등을 밝히고 남성들만의 단단한 영역을, 과시함 없이 그저 '구분짓고' 싶어할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이제 서로 적절히 섞이고 엉켜져서 물론 당연히 미용실을 여성들만의 공간이라고 터부시하는 남성들은 표면적으로는 사라졌다. 다행스런 일이다. 여성들이 그들을 그렇게 열린 마인드로 이끌었다. 장한 일이다. 하지만 바버숍. 그 여전한 쉐이빙 크림 냄새나는 대상이 거기 분명히 실존함을 확인하며, 나는 그 존재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사실 우리들과는 분명히 구획지어진 공간이, 그런 대상이 좀더 당당히 있기를 원하는 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기꺼이 인정해주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동지적 우애로써. 페어 플레이에 대한 믿음으로써. 그들에게는 언제나 그들만의 동굴이 필요하다는 걸, 소홀히 않고 기억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되살아났다. 자발적으로 그랬다.
다른 것은 다른 것이다. 예전에는 다르다는 것을 차별과 구별할 줄 몰라 발끈했더랬다. 지금은, 다른 것이 좋다. 아니, 달라야 한다. 틀림없이. 나는 그렇기에 동성끼리 이성애적 사랑을 나누는 것에 대해 동감하지 못하고 철저히 남자와 여자로서 당당히 자기 존재'답게' 살기를 바란다.
사실, 그렇잖은가. 우리는 다르기에 서로에게 끌린다. 다르기에 존재한다. 그것이 진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