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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가새로쓰는미국일기
11월은 모두 다 사라져버린 것은 아닌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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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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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비에서주인공이 비틀거리며 육교를 건너고 있다. 어... 저러다 떨어질라.. 싶은 불안감.
그러잖아도 불과 몇 시간 전, 내가 제일 싫어하는 134번에서 2번 노쓰로 갈아탈 때 지나가야 하는
초고가로 회전 구간을 엉금엉금 운전하면서 아... 여하간 공중에 놓인 길은 다 맘에 안들어.. 투덜대며 들어왔던 터라, 
문득, 내 안에 잠자고 있던 허방다리 육교의 기억이 부스스, 오래된 다락방 먼지처럼 일어난다.

   - 희찬아... 너 우리 집 앞에 육교 건너던 기억 나니?
   - 엄마 나는 아주 높은 데 진짜 싫어. 아마 나 저거 못 건널껄...?

그렇군. 육교.
이 아이는 나의 아들이 맞군...

여기선 육교 볼 일이 없다.
옮겨 산 지 육년 반이 넘도록 글쎄... 한국같은, 특별히 횡단보도 대용으로 도로 위에 열린 문처럼 세워진 육교는 보지 못했다.
그걸 다행이라고 여긴다.

왜냐하면 내 생각에 육교라는 물건은 본질적으로 부자연의 오브제다.
이걸 이용한다라는 것은, 대세, 즉 자동차의 무리가 지어내는 속도의 메인스트림과는 정반대로
그들이 빠른 속도로 가로지를 때 애써 그걸 무시하고 그 박자와 그 멜로디를 다 귀막고
홀로 천천히 세로로 거스르며 옆에서 나를 잡아당기는 것들을 온전히 뿌리쳐야 하는 숙명에! 나를 내던지는 행위를 뜻한다.
이 얼마나 잔인한 일상의 역모란 말인가!

뭣보다 한순간씩 일어나는 현기증.
대체 왜 단순히 길 이쪽편에서 저쪽으로 옮겨가는 단순한 행위가 이토록이나 복잡한
신체적 심리적 갈등의 극복을 내게 턱없이 요구하느냐 이 말이다.

나는 때문에 육교의 편의주의를 규탄하며 겁많은 내 본성을 최대한 합리화 하기에 주력하는 인간인데,
...... 음, 심하게 발끈하는 이 컴플렉스의 노출이란 .....
 
그럼에도 그걸 감수하며 살아야 했던 고난의 시간들이 보상처럼 내게 선물한 추억들이 몇가지 남아있음을 깨닫는다.   

아마도 네 개의 육교.
대략 그 정도가 자연스럽게 기억 밖으로 배어 나오는군.

우선은 흑석동 명수대국민학교 앞 육교다.
이건 아주아주... 어릴 적에
오빠따라 괜히 학교 쫓아가면서, 목숨을 건 어드벤처의 공포 체험을 안겨 주었던 내 생애 첫 육교다.
학교가는 오빠 따라 일하는 언니 손에 이끌려 육교의 수십 계단을 매일,
두 발로는 영 모자라 네 발로 엉금엉금 간신히 올라야 했던 그 너댓살 무렵,
나는 진실로 그를 통하여 아아... 삶은 참으로 녹녹치 않은 것이로구나,
인생은 진정 험난한 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고해의 연속이구나, 하는
거의 뭐 싯달타의 대오각성에 근접한 삶의 철학을 온몸으로, 그 보리수 나무 아닌 보리수 육교에서 배웠다...헉.
 
두번째는 노량진 수산 시장 앞의 육교.
이 육교는 특히 계단이 노량진 역사와 인도 양쪽으로 갈라져 있어서 유난히 길고 복잡하다는 인상을 갖고 있는데,
사실 여기를 자주 이용할 일은 내겐 많지 않았고
다만 대학시절, 어느 초봄 늦은 밤의 짤막한 해프닝 덕분에 하나의 풍경으로 기억되어 있는 곳이다.
밤 10시 무렵 수산시장의 불빛이 휘황하던, 기차역을 오가는 사람들로 분주하던 그 길 위에 놓인 육교에 올라서며  
아, 높은 곳에서 보니까 불빛이 참 이쁘네...하던 나를 불러세우던 목소리 하나. 
 
"같이가자! "
 
등 뒤에서 급히 쫓아오는 아는 목소리에 뒤돌아서던 순간
내 눈에 화악 들어온 육교 위에서 본 세상의 온통 반짝이던 불빛의 군무, 그 씬이
그 날의 엇갈림에 관한 잠깐의 소회와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정지된 화면처럼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었음을
오늘 새삼, 발견했다.

특별히 그 육교는, 올라서 걸어갈 때도 흔들리거나 휘청이는 느낌 없이 아주 단단하고 견고하다고 느껴졌던 기억이 있는데
트래픽이 많은 지역이라 좀더 단단한 구조를 유지했던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여하튼, 높은 곳에 올라서면 가로등의 불빛도 가까이 보이고 세상이 조금은 더 아름답게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유일하게 더하기 효과를 선물한 장소다.

또 하나는 서초동 뱅뱅사거리 근처 두루넷 빌딩 (지금도...?) 앞의 육교.
그나마 미국 오기 가장 최근 과거의 기억에 남은 장소인 셈인데,
매일 아침 버스에서 내려 계단 입구의 포장마차에서 계란 샌드위치 하나를 서둘러 사들고 부지런히 건너던 그 육교.
그곳에는 두 개의 포장마차가 있었는데 하필이면 회사 방향과 다소 먼 쪽 계단 앞의 포장마차 샌드위치가 맛있어서
늘 계단을 오르기 직전 잠시 갈등하며 아침 샌드위치를 선택할 것인가,
단 1분이라도 빨리 출근하는 일에 전력질주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던(!)
아이를 돌보며 일하느라 늘 종종걸음이었던 시절의 줄곧 바빴던 아침과 함께 각인된 육교다. 

당시에는 핸드폰을 목에 거는 것이 새로운 유행이었는데
얘가 정상적으로 걸어다닐 때는 문제 없는데 좀 바삐 걷거나 뛸 때면 가슴 앞에서 통통 튀며 덜렁거리기 때문에
육교를 건널 때마다 나는 이걸 손에 잡고 부지런히 그 관문을 통과해야 했었다.
왠지 모르지만 육교 위에서 이걸 떨어뜨릴 것 같은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던 듯한데...
...쓰다 보니 나 참 무지하게 유약한 인간이군...

마지막 하나는 평촌 안양남초등학교 버스 정류장 앞 육교.
특별히 8월의 땡볕 따가운 여름날,
서울행 버스를 타기 위해 아파트 단지에서부터 달궈진 콘크리트길을 구둣발 소리 또각거리며 걸어나오면 
다시 거대한 육교가 앞에 장애물처럼 턱 놓여있다.

땡볕에 육교에 올라선 사람들이라면 혹 다들 느껴보지 않았을까?
지상에서도 이미 머리 위로 쏟아지는 태양열이 그리도 강렬하여 어떻게든 '태양을 피하는 방법'을 찾기 원하건만
이걸 부러 계단을 올라 높은 곳에, 더욱 가까이 찾아올라 더 뜨겁게 온몸으로 샤워하는 그 몹쓸 부조리에 관하여 말이다! 

여튼 그 뜨겁고 습한 8월의 육교 횡단은
묘하게도 어린 시절 명수대 육교의 기억과 교묘히 오버랩되어 더욱 나를 힘겹게 했던 기억이다.
이윽고 잡아타는 좌석버스의 에어컨에 대한 기대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나는 수십번은 더 육교 밑 도로를 무단 횡단하고 싶은 열망에 몸을 맡겼을테다, 분명히.
 

문득 오늘 육교들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짐작컨대 명수대나 평촌 육교는 학교 앞이니까
(이게 참 아이러니컬 한 거다. 횡단보도보다 육교가 안전하다는 건데, 아이들이 육교를 얼마나 무서워하는데! 쩝) 
그래도 아직 살아있지 않을까 싶고,
서초동 육교는 그간 도로 정비가 크게 이뤄졌고 특별히 강남쪽은 변화가 많았다고 하니 혹 없어졌을지도 모르겠군.

노량진 역사 앞의 육교는 그대로겠지 설마?
여전히 분주한 밤 시간과 이른 새벽의 빠른 풍경, 그 불빛 한 가운데 뼈대처럼 버티고 있을까?
그렇게 시시콜콜 연예인 등속의 떨어뜨린 실밥 하나도 뉴스로 읊어대는 웹뉴스에서조차
육교의 안부 따위는 찾아볼 수 없으므로. (이건 또 무슨 한 술 더뜨는 미친 소린가!)
 
4개의 육교.
직접 몸으로 체험한 그 움직임의 기억으로 각인된 세 개의 육교와 
밤의 불빛 세례와 더불어 하나의 정지된 씬으로, 이미지로 자리잡은 노량진역 앞의 육교-. 
시멘트 콘크리트 구조물도 그렇게 시간과 함께 얘기가 담긴 의미일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아...나 진짜 늙었나보다.

근데, 옛날 일기는 컨셉에서 이미 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림을 달기가 어렵다.
글만 나열해 붙이려면 요즘엔 자꾸 민망해지는 기분이 드는데,
비주얼은 앞에 놓인 인생의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탓에, 아무래도.

그나마 열독의 지루함을 덜고자 최선을 다한 것이 저 정도.
짧게 쓰기에 관한 웹질의 숙명적인 요구로 점점 얄팍해지는 글들을 다 갈아치우고 싶은 충동에 괴로와하다가
다시, 나의 정체성이 더 중요해! 하며 긴 글 눈 질끈 감고 써내려가기 시작한 최근의 내 결심이
이렇게 한가득 화면을 글자로만 채우고 확인 버튼을 누르게 될 땐 조금은 흔들린다...흔들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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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마커스 2008.09.18  00:41

어려서부터 높은 곳을 좋아해서 육교위에서 많이 놀았어요.
그래도 사람다니는 길 차에 주고 피해다니는 건 맞지 않죠.
그래두 가끔 예쁘게 만든 육교보면, 걸어보면,
위에서 차 다니는 걸 내려다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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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마커스 2008.09.18  00:42

나중에 시간되면 제니퍼님의 공포의 육교의 현재 모습과 예쁜 육교를 찍어올리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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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 2008.09.18  12:18

어머, 육교 위에서 많이 노는 어린이도 있었군요!! 몰랐어요, 저는...;;
게다가 요즘엔 예쁜 육교 세우나보죠? 그건 바람직.
여하간, 제 공포의 보리수 육교가 잘 지내는지 구경할 수 있다면 재밌을 것 같아요, 마커스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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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 2008.09.18  15:06

그들 모두 건강합니다. 걱정마시라는! ㅋㅋㅋ

솔직히 육교는 전부 없애야 해요. 후진국적 교통지상주의의 결과아닙니까?
사람이 차를 피해 지하도나 육교로 다녀야 하다니 우스운 노릇이지요.
휠체어 타신분들에게 참으로 면구스럽고 민망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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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 2008.09.19  06:16

아, 그들 모두! 건강하신가요. 버트씨가 육교 안부에 정통하신 줄 제가 미처 몰랐었네요, 하하.
근데, 그걸 다행이라 해야 할른지 원... ^^;; 아! 다행 맞아요. 무너져 내릴 수도 있는 거 아닌 거 다행. 허문 거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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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마커스 2008.09.19  08:07

육교에서하는 술래잡기나 차 구경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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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 2008.09.19  14:21

아 모예요 마커스님! 육교에서 술래잡기라뉘?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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