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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가새로쓰는미국일기
11월은 모두 다 사라져버린 것은 아닌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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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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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국민학교 시절 글짓기를 무척 싫어했다.

국민학교 때 쓰는 '글' 이란 구조적으로 이미 자발적인 경우는 거의 있을 수 없고
그림 일기부터 시작해서 각종 행사용 기념 글짓기 - 대략 육이오나 현충일이나 어버이날 등등의 기념일 행사용으로 
교훈과 반성의 염원을 담아 끄적거려야 하는-  글들이란 전부 '써 내야 하는 글'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이 모든 숙제적! 글들은 반드시 모조지에 빨간 잉크로 금 그어진 원고지에 담아내야 하는 것인데,
나는 정말이지 그 원고지 쓰기란 것에 상당한 압박감을 받았더랬다.

규칙은 반드시 지켜야 하고 선생님이 하라는 건 빠짐없이 정확히 해야한다는 정직 순진한 여린 마음의 계집아이라
원고지에 쓰는 글은 늘 우선적으로 지켜야 하는 룰에 대한 다소의 부담으로 시작되곤 했다.

거기엔 분명한 원칙이 존재했고 나는 그것을 먼저 '외워서 숙지' 해야 했다.

제목은 맨 위에서 두 줄 내려와 기록하되 그 줄의 정 가운데 제목이 들어가야 하므로 제목의 글자 수를 헤아려 스무 칸 중 어디에서부터 첫 글자를 기록해야할 지를 계산해야 한다.
이럴 때 긴 제목은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 일이 되므로 자꾸 말을 줄여 붙이게 된다.

다음 줄에는 이름을 써야 하는데, 이건 또 맨 끝에서 두 칸 앞 자리에 이름의 마지막 글자가 끝나야 하니
늘 뒤에서부터 이름을 거꾸로 써 올라가야 했다.
물론 성과 이름은 모두 한 칸씩 떼어 써야 한다.
만약 전교생에게 주어진 과제물이라 이름 앞에 학교 이름과 학년 반 까지 써야할 입장이 되면 진짜 골치 아파진다.
늘 칸이 모자랄까 전전긍긍.

그리고는 다시 한 줄을 비우고 다음 줄, 글의 맨 첫 시작은 두 칸을 비우고 시작한다.
그 다음부터 새로 단락을 시작할 때는 한칸만 띄우도록 되어 있다.

여하간 지금 생각하니 새삼 가슴 갑갑한 이 규칙을 준수하는데 골몰하느라
정작 글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와야 할 생각의 흐름 혹은 발전 같은 과정은 늘 태클이 걸리기 일쑤였고,
한번 돌부리에 걸린 생각은 올가미처럼 '의식의 흐름'을 정지시키고
결국 글짓기란 그저 사고의 경직을 체감하는 고역의 시간이 되어버리곤 했다.

국민학교 시절의 글짓기는 그래서, 그야말로 '숙제'였다.

규칙에 맞추고 깨끗이 정서하고 다섯 장 써오라면 다섯장, 일곱장 써오라면 일곱장에 맞춰서 '써 내야 하는' 숙제, 그 뿐이었다.
때문에 그 어린 시절 나는 가끔, 동시를 써가야 하는 숙제가 있는 날은
마해송 전집 같은 곳에서 대충 간단한 동시를 베껴서 슬쩍 들이미는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고
기념일용 글짓기는 일단은 반성하는 자세로 엎드려 출발했다가 앞으로 우리는 잘해야 한다! 는 식의
두주먹 불끈 뻔한 결론이면 대충 무난하게 넘어간다는 잔꾀를 터득해서는
천편일률적인 틀에 맞추는 글짓기로 그야말로 숙제를 치러냈다는 기억을 한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 때, 하필이면 담임선생님이 국어과목 담당이라,
특별히 자기 반 아이들의 글짓기 독후감 노트만은 철저히 챙겨서 실력을 키우리라- 는 다짐의 미션으로
우리에게 거의 일주일에 한번씩 필독 도서를 읽고 독후감 노트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셨다.

사실 말하면 나는 중고등학교 때는 클래식을 새로 읽은 기억이 거의 없다.

나는 국민학교 6학년의 겨울방학, 12월에 시작해서 2월을 다 채우도록 그저 졸업식에 하루 얼굴 내미는 외에는
숙제도 없고 할 일도 없어 지루하도록 길고 길었던 그 겨울 방학 때 마치 전쟁을 치르듯이 집 서고를 탐닉했다.

한쪽 벽을 다 채우도록 진열된 삼중당의 한국 문학전집, 그 두툼한 백과사전 사이즈의 양장본 12권을
이광수 박종화에서 이상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떼었고,
토지 1부 첫 전집 10권을 3일간 식음을 전폐하고 책상 밑에 기어들어가 꼼짝도 하지 않고 탐독했으며
7권짜리 셰익스피어 전집, 10권짜리 세계 문학 전집,
(그러고 보니 부모님은 무슨 생각으로 그 두툼한 전집들을 그렇게 진열해 두었던 것일까... 싶다. 읽으라고 한번 요구하는 일도 없이 말이다)
집에 더이상은 읽을 책이 없어서 읽을 거리를 찾다찾다 나중엔
아마도 전집류를 비축할 때 사은품으로 곁들여 왔었을 백과사전과 인명사전들을 마치 빈 접시 핥아먹듯 샅샅이 훑어내려갔을만큼,
마치 책귀신에 씌인 아이처럼 그 겨울을 책 속에 파묻혀 보냈었다.
그리곤 중고교 시절, 독후감을 쓰거나 교과용으로 레퍼런스가 필요할 때면 한번씩 떠들어보며
비축해둔 곶감 야금야금 빼먹듯 되새김질로 6년을 버텼던 것이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양장본으로 되어있던 괴테의 작품 모음집 - 파우스트를 필두로 대략 3-4편이 묶여져 있었을 것이다 - 가운데, 제일 분량도 많지 않고 만만했다. 
그래 이전에 읽었던 기억을 더듬으며 한번 더 훑고 독후감 노트에 줄거리를 쓰고
책 말미에 역자가 붙여둔 비하인드 스토리를 체크하여 덧붙이면서 심드렁하게 그 '숙제'를 제출했던 것인데.

다만, 더이상 원고지에 정서해가며 쓸 필요 없이 대학 노트에 빠르게 써내려 가는
- 이건 참 중요하다! 원고지에 쓸 때는 절대로 '빠르게' 써 내려갈 수가 없었으므로 -
독후감 쓰기가 의외로 가볍고 만만한 기분을 주었었다는 기억이다.
 
하지만 늘 그래왔듯 내겐 그저 또 하나의 숙제에 지나지 않았던 그 독후감을 읽고
그런데 선생님은 내겐 너무나도 뜻밖의, 전혀 예상치 못해 차라리 충격에 가까웠던, 칭찬의 코멘트를 노트에 적어 주셨던 것이다.
그리곤 노트를 걷으러 온 내게 따로이, 독후감 잘 썼더라- 면서 앞으로도 열심히 써봐라, 고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는데,

나는 그 때 뒷통수가 뜨끈해지며 뭔가가 한대 땅 때리고 지나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냥 쓴 건데? 별 감동없이 그냥? 해설 부분은 번역자가 쓴 것을 따다가 인용한 거고? 룰대로 짜맞추듯이 그냥...?

왠지 모르는 죄책감과 면구스러움이 내 속을 서늘하게 훑고 지나갔지만 어쩐지 그와 동시에 나는 문득,
글짓기에 대한 내 꽉 막힌 무관심의 문이 신비롭게도 스르르 삐걱- 열리는 그 나직한 소리를 얼핏, 들었다.
어어? 그런가? 그렇게 쓰면 되는건가? 아니 나도 잘 쓸 수 있나? 내가 쓴 게 괜찮은 거란 말이지? 저렇게 써도 된다 이말이지?
 
갸웃거리며 자문하며 노트에 적힌 선생님의 코멘트를 몇번이고 반복해서 읽고 내가 쓴 독후감을 다시 읽어보며
나는 아마도 그 때 비로소 글을 쓰는 것이 어쩌면 내게 그닥 괴로움이 아닐 수도 있다,
아니 혹시라도 새로운 유희의 자극이 될 수도 있을 지 모른다는 막연한 예감을 시작했던 것 같다.
 
그 후로도 독후감 쓰기는 매주 거듭되었고 나는 여전히 짤막하게 한 페이짜리 독후감을 제출해갔지만
그 무렵부터 나는 왠일인지 자진해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사춘기 여중생의 치기어린 감상이 흘러 넘치는 유치한 일기를 단짝 친구와 쓰고 교환하고, 그것도 모라자 쪽지를 써서 주고받고,
그 일기에는 당연히 책을 읽고 난 감상이나 그 날 겪은 새로운 일의 기록, 떠오르는 생각의 움직임, 사유 등을 기록하면서
비로소 '자발적인 글 쓰기'의 맛을 터득해나갔고
이후로부터 글짓기는 더 이상 어떤 목적을 위한 '짓기'의 틀에서 벗어나
스스로 원해서 하는 '쓰기'의 유희로 내 안에 자리잡았다.
 
스스로의 글쓰기가 익숙해지고 난 이후로는
요구되는 글짓기, 필요한 글짓기의 작업 또한 더이상 지루한 '숙제' 가 아니었고
신기하게도 그 모든 글 작업은 다 자발적인 즐거움으로 내겐 전부 비슷비슷한 얼굴의 한 식구가 되어 버렸다.
 
직장에 들어가면서 다시 나는 원고지와 씨름해야 할 숙명에 처했지만,
이제 규칙의 강박에서는 다소 자유로워진 '성인'이 된 내게 원고지의 네모칸은 더이상 나의 생각의 흐름을 가두는 도랑이 되지 못했다.
작은 칸에 빠르게 글자를 채워나가는 방법을 터득했고,
띄어쓰기나 칸 비우기 같은 모양 갖추기의 스트레스는 퇴고를 하면서 다소 거칠게 손보아도 된다는 특권을 남용하며 급격히 사그라들었다.
오히려 이제는 원고지의 기억은 잡냄새를 전부 휘발시키고 오롯이 추억이라는 선물로 포장되어 서랍 한 켠에 자리잡고 있다.
 
최근 몇십년 만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을 새로 읽으며
나는 참 오래 잊고 있었던 선생님의 존재와 그 분의 한마디가 내게 종을 울렸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지금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며 숙제는 커녕 그 어느 누구도 내게 요구하지 않는 글 쓰기의 작업을
단지 나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시간을 들이고 마음을 쏟으며 거듭하고 있는 현재의 나,
지금으로 와있는 길의 그 희미했던 출발점을 모처럼 되새기며 기분이, 좋았다. 

모든 것에는 미약하지만 분명 빛이었던 출발의 순간이 간직되어 있다.
채 눈에 띄지 않았고 얼핏 스쳐 지나갔을 수도 있지만,
분명 그 존재가 있었기에 시간의 양분으로 뒷날 놀랍도록 반짝이는 그런 빛.

그 숨결처럼 가녀린 출발이, 중요하다. 
그것은 대부분 가능성의 나이인 어린 시절에 시작되어 세월의 양육을 세례받아 오래 키워지지만
하지만 뒤늦게 수줍어 떠오르는 빛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어린 생각도 고개를 든다.
이즈음의 나는 실은  그 희미한 가능성에 손을 들어주고 싶어 한다.
그렇지 않다면 삶은 언제나 내리막길이 될테니, 그건 그래야 한다고, 아니 틀림없이 꼭 그럴 것이라고

최면을 걸듯, 믿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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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샘 2008.09.12  05:56  [206.111.237.150]

원고지 4-5장 분량으로 써오시오..

첫째장: 어떻게든 두줄짜리 제목
넷째장: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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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2008.09.12  10:29  [119.149.129.141]

위의 글을 10자 이내의 독후감으로 표현하고프다. ' 그녀는 여전히 잘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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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 2008.09.12  11:15

두줄 짜리 제목 달고 학교 학년 반번 이름 해서 다시 두 줄 잡아먹고, 또 한 줄 띄우면 뭐 대략 40자 쓰면 한 장 넘어가는 전술 전략은 기본에 속합니다마는, 넷째 장 "~다." 는 좀 서툰 전략이죠. 여기서도 서술어를 좀 길게 늘여서 최소한 두 줄 이상은 가줘야... 안 그럼 자연스럽게 넘어갔던 첫째장까지도 의심받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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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 2008.09.12  11:16

케이트는 "앞으로도 잘 쓸 것이다" 자나요... 술술 읽히면서도 향기나던 자네 글 보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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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ㅀㄹ 2008.09.17  19:52  [220.91.176.164]

열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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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 2008.09.18  12:15

태극기 휘날리네요...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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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정 2009.09.20  16:31  [124.146.45.119]

완전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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