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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10/09
 
광고 - 야후! 코리아 에서 '제니퍼'님의 블로그를 지원합니다.

블랙피플 두 남자.
박스 범벅이라 어수선한 가게 분위기도 아랑곳 없이 성큼 들어서더니 베티 붑 Betty Boop 캐릭터가 담긴 핸드백을 관심있게 살핀다.

     - 션, 이거 어때? 될 거 같지 않아?
     - 글쎄... 이거 소재가 뭐지? ... 헤이, 이거 가죽이니?

내게 묻는다.

     - 아니... 가죽은 아니고, PVC 지.
     - 음... 이 가방도 괜찮은데...?
     - 아냐. 이건 멕시칸 같아서 안돼.

요즘 유행인 기린 가죽무늬 패턴에 베티붑 캐릭터가 3D 스타일로 프린트된 가방을 들고, 이 베티붑은 멕시칸 얼굴 같단다. 얘덜이 지금 뭐하는거지...?

     - 이거 얼마니?
     - 어. 한피스에는 25불. 네가 만약 다즌을 산다면 16불에 주지.
     - 헉... 차이가 많이 나는구만..

그러더니 얘가 명함 한 장을 꺼내어준다.
본인 말로는 아트 프린트라 하는데, 옷이며 가방이며 그런 데다가 그림을 그려서 나름 재구성해서, 파는 일을 하는 애덜이다.

     - 오호... 그래, 나 이거 뭔지 알아. 예전에도 그런 친구 있었지...
     - 그래? 하하... 내가 말이지 이 베티붑에 우리처럼 색을 입혀볼 생각이거든? 근데 이게 워킹을 잘 할지 모르겠어서 말야...
        한번 트라이해보고 싶은데... 해봐서 괜찮으면 내가 왕창 살꺼다. 진짜루.

허허...그런 소리 하는 사람 나 한두명 만나본 거 아니거덩? 속아줄까 말까.

     - 그래, 알았어. 그러니깐 네 말은, 이걸 샘플용으로 한개만 사고 싶은데 홀세일가로 해달라... 이거 아니니?
        근데, '니들처럼 만든다'는 게 무슨 소리야?
     - 얼굴에다가 색칠하겠다구.
     - 응...? 글쎄... 지금도 머리 곱슬한 거랑 뭐, 니들하고 별반 안달라보이는뎀...?
     - 아냐, 달라. 이것봐라 색깔.

자기 손을 갖다 대면서 피부색이 확 다르다고 주장하신다.

     - 근데 말이지...사실은, 니가 다음에 와서 박스로 산다 그래도 나한테는 별로 구미가 안당긴단다.
        나 지금 가게 클로즈 아웃하는 중이걸랑... ㅎㅎ
     - 엉? 그래애 ...? 하여간에 담주 화요일에 다시 올께. 내가 그렇다고 홀세일 가격에 달라는 건 아니고, 쫌만 내려달라고...

에잇- 넘어가주자.

     - 20불에 주지. 됐니?

거래성사. 나름 다음 주에 꼭 오겠다고 명함까지 달라는 마무리 액션까지 보여주고 한마디 덧붙인다.

     - 내가 말이지, 색칠한 거 갖고와서 너 보여줄께.
     - 어, 그래, 궁금하다, 꼭 보여줘.

홀세일 값에 한두개 사는 사람들 가장 단골스러운 구실은 늘 '샘플이 필요해' 인 거는
이젠 그냥 애교스럽게 봐주고 넘어가는 스토리라 특별할 것도 없지만

오늘 재밌게 느낀 건 인종 다양한 미국, 특별히 엘에이스러운 발상 엿보기 부분.

베티붑- 이라는 만화 캐릭터가 워낙 인종적 특징이 다소 모호한 혼혈 캐릭터이긴 하지만
블랙 사람들은 스패니시 인종으로 보고 있구만...
그런데도 자기들 손님들 구미에 맞추려고 얼굴에 색칠까지 해서
굳이 흑인 베티붑- 이라는, 오리지널리티까지 훼손된 변종을 만들겠다고 대드는구나...

사실 우리 같으면 찰리 브라운에다가 볼터치 넣어서 몽골리안 만든다거나
세일러문한테 치마 저고리 입혀서 즐길 생각은 안하잖는가.
변종이 되면 이미 캐릭터가 아닌건데, 캐릭터를 즐긴다는 건 그냥 있는 그대로의 그 캐릭터의 개성 모두를 즐긴다는 건데-.

이 사람들은 확실히 좀 다르다.
일전에는 검정색 가방에 베티붑 얼굴이 아웃라인만 스티치 되어 나오는 바람에 졸지에 얼굴 검은 베티붑이 탄생해서
이거 어떻게 팔지... 걱정했던 물건 있었는데
뜻밖에 흑인들이 이거 흑인 베티붑이라고, 좋아라하면서 반응을 보여 어려움 없이 다 팔았던 몇년 전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여튼 여기는 뭐든 이거 아니면 안돼- 라는 게 없어,
시장이 넓기도 하지만 인종도 다양하고 마인드도 다양한 거지,
절대 안돼! 하는 딴딴한 고집 별로 없고
안돼? 그럼 돌아가지, 없어? 그럼 딴 거 찾고... 로 열어두게 하는 사회적 마인드가 확실히 있어 여기. 그걸 활용하는 게 중요해... 라고 깨달았었다.

흑인들이 그들의 피부색을 얼마나 자부심 갖고 귀하게 여기는지 까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 동질감을 '변종'을 조작하는 무공까지 구사하며 찾고자 할 때는 그만한 필요가 있는 걸테다.
그런 수요와, 기대가 있는 시장이 있다.
또 그만큼 백인들만의 컬처가 니즈가 당연 있고 급팽창중인 스패니시 피플들의 또다른 수요가 무한대로 확장하고 있는건데.
물론 그 사이사이 동남아 동북아 서남아시안들과 동유럽쪽 민족들의
두발짝 세발짝쯤 앞서거니 옆서거니 하는 차이나는 시장 또한 섞여있고.

덕분에 때문에 이런 환경에서 참 중요한 덕목이 되는 건 플렉서블한 마인드다.

오롯이 나있는 길 하나, 그 한 줄 길게 이어서서 차근차근 따라가지 못하면, 한발짝만 뒷걸음치거나 옆으로 밀리면
영영 그 줄 위에 다시 올라타긴 어려워지는 우리나라 긴박 초조한 삶에 훈련된 내 시각으로는
처음엔 이해 안되고 다음엔 부럽던 이 동네 사람들의 오케이 마인드와 그 느긋함이 신기했는데 

급기야 이제는 나 역시도 이를테면
아, 대학 당장 못가면 어때? 오히려 세상 경험 좀 하고 사람 사는 거 좀 익히고 나서 공부하면 아마 더 열심히 제대로 하게 될껄- 쯤의 생각에 이르러 있으니
조금은 엘에이 다운타운스러운 마인드에 근접했다고 자위해도 되는 건가.

아 물론, 그렇게 쉬었다가 놀다가도 들어갈 수 있는 시스템이고
그렇게 하고 나와서 취직해도 몇년생이니, 무슨 띠니- 로 서열 좌악 매겨지는 일 없는 사회니까 그런 여유도 부리는 거지, 당연.
이거 아니면 저거일 수도 있고 나랑 많이 다른 다양한 존재가 널려있다고 알게 하는,
멜팅팟에서 나고 자라고 지내오는 사람들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가치관인거지만.

허허...알기만 알면 뭐하나? 결국 다 해먹고 문닫는 주제에.

하지만, 여전히 궁금하다.
색칠해서 흑인 베티붑 만들어 갖고 다니면... 기분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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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마커스 2008.07.03  16:48

그 흑인 두명의 주장도 재미있는 것 같아요.
전에 카톨릭에서 성모상을 한국식으로 그린 것도 나름 잘 이해가구, 더 보기 좋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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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uit 2008.07.05  11:29

'결국 다 해먹고 문닫는..' 이 부분에서 관조의 해학이 느껴집니다. ^^
폐점은 미국 경기 탓도 클테니, 인생의 노하우는 정당함을 인정하셔야 할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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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 2008.07.05  16:12

그들만의 즐거운 이유가 있으리라고 보고, 충분히 존중하죠.
지극히 개인적으로는, 자부심보다는 열등감으로 느껴지는 부분 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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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 2008.07.05  16:21

관조의 해학... Inuit님의 시선이 너무 너그러우신 탓이죠. 실체는 허무와 냉소- 라는 거 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마음에, 위로가 되는 건 또 어쩔 수 없고- 그래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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