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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반쯤 지나서, 나는 인터넷 웹사이트를 기획하는 회사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컨텐츠 기획이라는, 모두가 새로 태어난 새로운 직종과 업무의 이름표 만들어달기에 정신 없었던 그 도도한 뉴 웨이브의 시절에, 산설고 물설은 인터넷과 IT 벤처의 바람에 올라 앉았던 셈이다.
7평짜리 오피스텔에서 시작했던 회사가 몇 달 후, 통신망 사업을 하는 대기업에 자회사로 인수가 되면서 직원 규모를 늘리게 되었을 때, 누구 인재 좀 찾아봐라- 는 사장님 호소에 나는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그녀를 떠올렸다.
그녀라면 틀림없이 이 바닥 일을 잘 할 수 있을거야, 나랑 호흡 맞춰서 일하기 좋을 거야-
생각하면 이런 막연한 인사가 또 있을 리 없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그녀가 광고대행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했다는 경력, 그 뿐이었다. 그녀가 기획을 잘 할 수 있는 스타일인지도 알 수 없었고 취재가 가능한 사람인지도 전혀 자신할 수 없었다.
웹이라는 매체의 특징을 빨리 수용하고 기술적인 부분까지도 습득하기에 열려있는 마인드인지, 아니, 최소한 기계치는 아닌지 조차도 아무 것도 몰랐다.
어차피 모든 것이 다 새로 태어나던 시절이라 그 바닥 인력 구성은 온통 외인부대 조합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개발되는 뉴 테크놀러지가 컨텐츠와 결합하는 시점이었던 탓에 소프트웨어가 필요했던 기술자들과 다양한 분야의 컨텐츠 생산에 종사하던 각양각색의 인간들이 그야말로 '제휴'라는 이름의 손잡기에 분주했었고
그 바람을 타고 매체에 몸담았거나, 어떤 형태의 컨텐츠건 간에 기획하고 만들어내는 작업의 경험이 있던 사람들이 갈증나도록 필요했던 시기다.
모두가 다같이 그 바닥의 경력의 히스토리 첫 줄을 쓰기 시작하는 시점이었다.
그렇게,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들은 잡지 편집자에게나 카피라이터에게나 다 새롭고 낯선 것들이지만 틀립없이 그녀라면 충분히 해 낼 수 있을거라는 근본없는 믿음이 있었다. 단 이틀의 만남을 재료 삼고, 그 뿐만으로. 옛날 전화번호를 뒤졌다. 뉴질랜드에서 돌아왔다면 아마도 연락이 되겠지...하면서.
"여보세요. 김**씨 댁이죠?" "네, 맞는데요-"
틀림없다고 느껴지는 그녀의 목소리가 전화 저쪽에서 대답을 하고 있었다. 그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었던 순간 너무나 기뻤다.
"저, 혹시 기억하겠어요? 1년 반 전에 취재했던 마**** 잡지에…" "아, 네- 그럼요. 안녕하셨어요?"
다시 만난 그녀에게 나는 대뜸, 거절당할 걱정 같은 것은 티끌만큼도 안 하고 어디서 오는 자신감인지도 모르도록 당당하게, 함께 일할 것을 제안했는데,
그녀는 마치 준비라도 하고 있었던 사람처럼, 그렇게 취재에 선선히 응했던 그 얼굴로, 그러잖아도 한국 돌아와보니 대세가 웹쪽으로 흐르고 있길래 나도 그 방향으로 가야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며 웃었다.
게다가 나름 유저의 입장에서 웹사이트 구성요소나 사용자 편의 부분에 대한 구상들이 머리 속에 잡혀 있어서 오히려 어리버리한 나보다 훨씬 더 그 바닥 일꾼으로 잘 준비되어있는 모습이었다.
딱 하루를 고민하고 그녀는 결정을 했다.
나 못지않게 직관으로 사람을 알아보는 사장님은 내 직관을 믿으며, 그저 오직 ' 아마 잘 할겁니다. 틀림없어요-' 라고 밖에는 아무런 더이상의 소스도 주지 못하는 나의 그 허황한 기대에 함께 기대어 기뻐하며 그녀를 새 식구로 맞았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두 해 가까이 참으로 즐겁게 일했다.
글쟁이들에게 흔히 결여되는 몇가지 덕목- 싹싹한 사회성과 책상 테두리를 선뜻 벗어날 줄 아는 거시적인 안목, 아이디어를 이윤으로 현실화시키는 조율 감각과 적당한 비즈니스 마인드까지 갖추고도 아주 담백하고 간결한 글솜씨까지 지녔던,
일터에서 겪으며 비로소 제대로 알게 된 그녀는 우리가 기대했고 필요로 했던 모든 다양한 역할을 감탄스럽게 잘 치러냈다. 내 자신 내 직관에 으쓱해 하는 어이없는 오만을 지니게 할 만큼. 사람에게 인연이라는 것이 어떻게 찾아오고 이어지고, 단박에 서로를 알아보고 의지하게 되는 것인지 그 감히 짐작할 수 없는 신비로운 경로에 대해서 나는 아무 판단의 말을 내뱉기 어렵다.
하지만 흔치 않게 찾아오는 삶 속에서의 이런 특별한 경험들이 삶의 가치있는 포인트가 된다는 진실만은 분명하다.
나와 뭔가 ‘통’하는 존재를 만난다는 것, 알아본다는 것, 그 안에 들어있는 가능성에 대해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이력서에 적힌 하드웨어적인 기록들과는 참 무관한 것이다.
본질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 상대가 과거가 어땠고 현재가 어떤지는 참 무의미한 거다. 본질을 통해서 그의 진짜가, 아직 보여지지 않은 가능성이 모두 드러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같이 어떤 대상의 본질을 알아볼 수 있다면 허깨비처럼 너절하고 구차스러운 이력서 같은 건 다 쓸모 없을텐데.
지금도 얼마나 많은 진정한 인재들이 ‘알아보지 못하는’ 맹인들을 위해 그들에게 통하는 언어로 자신들을 드러내기 위해 헛된 시간을 쓰고 있는가 말이다. 학위를 따고 연수를 다녀오고 자격증들을 따서 덕지덕지 치장을 한다. 나는 어떤 존재들의 본질을 한순간 알아볼 줄 안다고 자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되도록 본질을 보고 싶다.
외모나 하는 말이나 지르는 행동에 시선 빼앗기지 않고 상대를 파악하고 싶다.
그런데 신비롭게도 그걸 분명히 볼 수 있는 어떤 사람들이 가끔 앞에 나타난다. 짧은 순간에 이해할 수 없는 믿음이 생기고 두고두고 그걸 확인하며 기뻐한다.
그래서 잘 믿고 있던 그 사람이 어느 날 나 못된 놈이에요, 나는 좀 별나요, 생각하는 것처럼 그런 사람이 못돼, 난 그런 촌스러운 것들은 다 무시해- 하며 아무리 허세를 부리고 아닌 척 해도 하나도 흔들리지 않고 그냥 미소지을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왠일인지 요즘 부쩍, 그런 사람, 그런 시간이 고프다. 그 신비한 기쁨을 누리며 살고 싶다는 갈망이 나를 조른다 요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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