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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인뢰류'에 대해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은, 아니 알고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바로 은,밀,한, 즐,거,움,이다. 다중들이 한꺼번에 열광하는 즉물적인 매력이 아닌, 틀림없이 나만 보았을 것 같은 작은 메시지, 그 절묘하고 짜릿한 커뮤니케이션에 우리는 탄복한다. 티비를 보고 있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소리치는 매체지만 그의 영상을 대할 때는 곱게 접어 풀로 붙인 편지를 받는 즐거움이 온다.
1997년, 그의 첫 영화 '꽃을 든 남자' 개봉을 앞두고 가졌던 인터뷰 기사에서 나는 그렇게 썼었다. 황인뢰-. 드라마 '궁'이 요즘 화제가 되는 모양이다. 만화 원작에 틴에이저 주인공의 좌충우돌 스토리인데 황인뢰가 만든다기에 몹시 의아했었다. 아주 몹시- 의아했다. 내가 알고 있는 '로이'는 아직도 1997년 수준에서 머물고 있었던 탓이다. 벌써 10년이 지났다.
하긴 그를 처음 만났던 시점으로부터는 십수년이 더 지났다. 쉽게 말해 세월이 흘렀다는 말이다...
이전에 주욱 늘어놓았던 황인뢰의 필모그래피는 아무리 길게 늘어져도 참 한가지 컬러였다.
...... 20대가 서둘러 기억할 수 있다면 30대에겐 가슴의 추억일 그의 작품들은 보호색처럼 일관된 톤을 따른다. 서있는 여자, 대설부, 매혹, 마의 사랑, 피아노 살인,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제3의 사나이, 연인들, 미망인, 서울 특파원, 샴푸의 요정, 말괄량이 길들이기, 한여름밤의 꿈, 누군가를 사랑하려는 이유 같은 70분 90분짜리 단막극, 그리고 미니시리즈 천사의 선택,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창밖에는 태양이 빛났다, 로 비갠 오후의 명징한 화면, 촉촉한 캐릭터의 가슴 저린 일상을 고백하듯 그려냈고 지난 94년 얼마간의 공백을 깨고 내놓은 작품 '연애의 기초'는 구성과 시점과 접근 방법의 독특함이 그대로, 돌아온 황인뢰를 외치면서 화제를 모았다. 그리고 두 해를 브라운관에 바이라인 내밀지 않고 조용히 잠적한 듯 살았던 그가 8월 개봉을 앞둔 새영화 '꽃을 든 남자'로 나타난다. 마침내 로이는 그렇게도 꿈꾸던 영화감독이 되었다.
나는 정말 그의 작품을 탐닉했었다. 물론 주찬옥이라는, 이후로 누구도 흉내내지 못하는 그 특별한 작가와의 조합이 그의 색깔을 더욱 진하게 드러내준 중요한 요소였음을 간과할 수 없다. 그의 드라마는 그냥 '황인뢰 연출'이라는 브랜드 네임을 달았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아무 의심 없이, 아니 의심은 커녕 무조건적인 지지로 시간 맞추어 시작 시간을 기다리게 하는 절대적인 가치를 갖고 있었다.
...... 그가 언제나 마음으로 '연연해 하는' 부분은 거리와 시간, 작위적인 이미지를 뺀 자연미 같은, 황인뢰 작품에서 우리가 만나는 중요한 개성과 연결되어 있다. 그의 영상은 언제나 관조, 혹은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점에서 뚫어져라 주인공의 내면을 탐색한다. 주인공들은 늘 가슴에 한모금의 멍을 삼키고 살아가는 인간이며 감춰진 재능을 인정해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린 심장들이다. 그의 드라마는 완벽하게 그런 인간형에 대한 공감을 필연으로 만든다. 거친 삶도 우수가 포장해주고 나약한 삶도 고뇌가 무게를 얹어준다. 그의 기법과 그의 주인공은 절묘한 짝을 이룬다. 황인뢰의 자화상일 듯한 메시지를 느낀다.
'궁'은 재미있고 쉽게 즐기게 해주는 작품이다. 신선한 얼굴들을 메인으로 내세웠고 실상과는 전혀 색다른 상황 설정이 재미를 준다. 화면에 잡히는 장면의 완성도는 황인뢰 특유의 철저한 자기 검증을 충분히 주장한다. 중견들은 심혜진이나 강남길이나- 그의 여타 작품에서 낯익었던 인물들로 배치되어 익숙한 그만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그라는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던 86년부터의 10년 기간, 그의 스타일로 자리매김 했던 바로 그 '황인뢰 작품' 풍과는 참 다르다. 내가 너무 옛날 얘기를 하고 있나...?
시대가 달라져서일거다. 그도 다른 컬러를 갖고 싶었을 지 모른다.
...... 그의 지휘 아래서 중요한 것은 그 인물의 외적 설정이나 스토리가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내면의 움직임이 된다. 그 섬세하고 작은 실핏줄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틀림없는 나와, 친구와, 사랑하는 그 사람-을 만난다. '연출자의 개인적인 캐릭터가 작품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예' 라고 평가받는 황인뢰의 넘보지 못할 개성이다. 결국 그의 작품은 인간 황인뢰의 변화에 따라 색을 바꾸기도 하고 시선을 돌리기도 할 셈이다.
그도 좀 달라졌나보다. 뻔뻔함이 대세이며 의무인 방송 판에서 어울리지 않게 유난히 수줍음 많던 그의 여린 캐릭터가 좀 단단해진 것일까? 그의 작품이 달라졌다면 인간 황인뢰가 좀 달라졌다고 봐야할 거다- 라고 믿었던 예전의 내 생각이 과장된 것일 수 있지만 세월을 꼽아보니...그럴 수 있다, 충분히.
하지만, 드라마가 인기가 있다니, 여하간 그건 좋은 일이다. 오래 엎드렸던 그에게라면 더없이 중요한 부분이다.
헌데, 요즘처럼 개성의 가치가 인정받고 대중 코드에서 좀 벗어나도 매니아층이 자생적으로 만들어지는 확실히 달라진 지금의 대중문화 환경에서 만약 과거의 황인뢰류의 드라마가 등장한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 ............
늦은 저녁, 지나치는 사람 하나 없는 시청 지하철역의 환승용 긴 통로 저 끝에서 휘적휘적 걸어오는 그와 마주친 일이 있다. 꽃을 든 남자- 의 개봉 이후의 기억이다. 멀리서부터 걸어오는 그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우습게도 그 순간 아주 특별한 인연의 냄새를 맡았다. 이유없이. 통로 한 가운데 문득 멈추어 서서 인사를 나누었다.
"어쩐 일이세요...황감독님-." "그냥, 어디 좀 ..." "네에...저도 어디 다녀오느라고...영화는...괜찮으시죠?" "그거... 뭐..."
여전히 머리를 긁적이며 여전히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끝을 흐리는 그를 말가니 바라보며 나도 겸연쩍게 웃고 서있었다. 영화는, 그냥 그 관심 끄는 타이틀만 여기저기에 다른 용도로 사용되면서 별달리 주목을 끌지 못하고 조용히 내려졌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랐다.
그저 2,3분, 그 짧은 마주침에서, 그냥, 마침표를 찍었다는 느낌만 강하게 남았다. 무엇에 대한 마침표였느냐고?
그 때는 알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황인뢰의 하나의 era가 지나가고 있다는 예감의 뒷문 혹은 영화 이후 한동안은 아마도 그를 인터뷰할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아쉬움의 입막음이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후로 그의 바이라인을 선명히 만난 작품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최근 작품' 궁'으로 관심을 모으기 전까지는.
아주 가끔은 '연애의 기초'나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같은 작품이 그립다. 김수현 드라마는 리바이벌도 많이 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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