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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as our body needs daily food, so does our spirit. 육신에 매일 양식이 필요한 것 같이 영혼에도 매일 양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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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漢字)속의 창세기 - 서민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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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6/25
 


끝 맺 음

  요한계시록 21장 6,7절 22장 1절을 보시면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흘러 내려오는 생명수의 강물을 누구든지 값없이 마시게끔 했던 이것이 중국인과 멀리 떨어진 메소포타미아에 남아있던 유대인에게 내리신 계시였는데, 앞 장ㅇ서 보신 영원할 영(永)자와 목숨 수(壽)자 속에 그 계시가 그대로 들어있는 것입니다.

  또 계시록 7장 10절, 22장 3,5절을 보시면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리로다." 이 말씀은 우리 기독교인들이 어렵고 힘들고 한 많은 세상에 믿음을 잘 지키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실 기쁨의 선물로 생각하고 살고 있죠. 그런데 중국사람들이 그대로 그 생각을 알고 있었습니다. 구원할 광(匡)자의 갑골문자는 강력한 옹벽이 둘러싸서 보호를 하고 있고 한 중간에 양(羊)이 앉아 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양, 그 바깥의 단단한 성벽(城壁) 안에, 믿는 우리들을 모아서 세세토록 왕노릇 하며 살리로다, 이와 같이 중국사람들과 히브리 사람들의 생각이 똑같았습니다.

    오늘날 중국의 모습입니다. 수십 억의 인구가 살고 있는 중국은 최초의 조상 요(堯), 순(舜)임금 때부터 산(山)의 하나님, 샹따이(上帝) 하나님을 잘 섬겼으며, 그들의 조상은 그들의 글자 속에 자기들이 지었던 죄악과, 흘러갔던 역사와, 앞으로 다가올 구원의 약속까지도 글자에 새겨서 수천 년을 살아왔던 것입니다. 중국에 선교하러 들어갔던 서양의 선교사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전하면 좋을까 하고 두루두루 알아본 결과, 옛날부터 상제(上帝)하나님이란 개념으로 하나님을 잘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두말하지 않고 주저하지 않고, 하나님이란 이름을 상제(上帝)라는 이름을 써서 중국어(中國語) 성경(聖經)에 그대로 인쇄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중국어(中國語) 성경(聖經) 창세기(創世記) 1장1절-2절을 그대로 써놓은 것입니다. 太初上帝創造天地 地是空虛混沌深面黑暗上帝的靈運行在水面上 이것을 한문 읽는 방식으로 운률을 얹어서 읽으면 제사문(祭祀文)처럼 되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선교사들이 하나님을 이름을 상제(上帝), 즉 '샹따이'로 기록하는데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썼습니다. 중국인의 정서에 그대로 와 닿았기 때문이죠. 한자와 창세기를 비교 분석해 볼 때 고대(古代) 중국의 조상들은 중동(中東)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바벨탑사건 이후 동쪽으로 동쪽으로 대장정을 행하여 중원(中原) 대륙(大陸)에 도착한 사람들이 분명하며, 이들은 창조주(創造主) 하나님을 잘 섬기던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만리장성에 싸여 있는 수많은 중국인들을 기억하시고, 그 영혼들을 위해 중보기도해 주시고, 중국선교를 위해서 다같이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자에 나타난 창세기' 이것으로 중국선교에 큰 도움을 얻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주변사람들에게도 드라마틱한 한자(漢字) 몇 가지로 하나님을 전도하시는데 사용하시면 유익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중국의 상고사

  중국의 역사를 다시 보면, 고대 전설(傳說)시대의 다섯 왕 황제, 전욱, 제곡, 요(堯), 순(舜) 임금인데, 실제적으로 중원대륙에서 왕으로 군림한 사람은 순(舜)임금이었습니다. 순(舜)임금은 중국역사에서 B.C. 2230년으로 기록되어 있고, 공자(孔子)의 서경(書經)에 보면 순(舜)임금 시대 때 이미 샹따이(上帝) 하나님께 제사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벨탑 사건이 B.C. 2250년경에 있었던 것으로 보는데, 순임금이 통치하던 시기는 바벨탑 사건이후 불과 20년 밖에 지나지 않은 때였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생생하게 바벨탑 사건을 기록했겠습니까? 그러다 어느 정도 왕권이 갖추어진 것이 하(夏)나라이고, 더욱더 문명(文明)이 발달된 것이 은(殷)나라, 즉 상(商)나라 때 입니다. 이 시대에 갑골에 새긴 글씨가 바로 갑골문자(甲骨文字)인데,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한자(漢字)입니다. 이 때는 순(舜)임금 시대에 비해 500여년이 지난 시대입니다. 한자(漢字)를 최초로 만든 사람은 창힐이라는 사람인데, 어느 날 비가 오고 난 뒤에 까마귀가 축축한 땅위를 걸어다니면서 발자국을 남기는 것을 보고 힌트를 얻어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창힐은 동방족, 즉 동이족(東夷族)이었다고 합니다. 동이족(東夷族)은 중국사람들이 한국(韓國)사람을 부를 때 쓰는 말입니다. 한자(漢字)의 최초 저작자는 사실은 한국(韓國)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국문학자들은 한자(漢字)를 한자(韓字)라고 씁니다. 한의학(漢醫學)을 한의학(韓醫學)이라고 하듯이요.

  그래서 순(舜)임금 때부터 중국사람들은 아라랏 산(山)에서부터 섬기던 '엘 샤따이', 즉 '산(山)의 하나님'을 창조주(創造主) 하나님으로 믿고 수천 년 동안 상제(上帝)를 섬기며 살아 왔던 것입니다. 상제(上帝) 숭배 사상의 또 다른 제사문(祭祀文)을 읽어보겠습니다. "주 상제(上帝)께서 말씀하시니 하늘과 땅과 사람이 생겨났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들과 만물들을 두시고, 궁창을 펼치셨습니다. 상제(上帝)께서 높은 하늘을 펼치시고 땅을 만드셨나이다. 그 통치가 영원하시기를..." 다시는 니므롯과 같은 인간이 나타나지 않고 평화롭게 살기를 갈망(渴望)하면서, 특히 동방의 주도권을 쥐어 왔던 동이족(東夷族), 즉, 고조선(古朝鮮)과 부여(夫餘)와 여러 나라들은 임금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사무엘까지 임금을 세우지 않고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셨죠. 그러나 죄악에 빠지면서 사울을 왕(王)으로 세우면서 나라가 망하기 시작했습니다만, 우리민족은 수천 년 동안 임금 없이 그저 제사와 통치를 겸한 제사장(祭司長)들이 통치하던 시대를 산 것이 우리 민족의 역사입니다. 정통파 셈의 역사를 이끌어온 것이 우리나라의 고대(古代)역사(歷史)입니다.

  그래서 비록 그들이 장자권(長子權)을 지키지 못해 메소포타미아에서 영원히 떠나버리게 되었고, 하나님은 끝까지 중동(中東)지역에 남아있던 '아브라함'을 통하여 약속의 민족을 다시 일으키셨지만, 동방으로 떠나온 동이족(東夷族)과 그 옆에 따라왔던 동생 야벳의 집안, 즉 중국사람들은, 성령(聖靈)의 감동(感動)으로 언젠가는 영생(永生)과 구원(救援)을 얻으리라는 소망이 있었던가 봅니다. 그것이 한자(漢字)에 남아 있습니다. 길 영(永)자를 보시면 갑골문자에 강물이 흘러가는 속에 인간이 물에 엎드려 물을 마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 내려오는 생명의 강에 엎드리고 그 물을 마실 때 그 인간은 영원한 것을 얻는다'는 것이 중국사람들의 생각이었습니다. 목숨(장수) 수(壽)자는 '하나님의 보좌에서 강물이 흘려 내려와서 그 강가에 수많은 입들이 와서 마시면 영원히 장수(長壽)할 것이로다' 입니다.


노아의 홍수와 바벨탑

  그렇게 내려오다가 노아의 홍수사건이 터지는데, 한자(漢字)에는 노아의 홍수에 관한 글자가 많이 있습니다.

  "곧 그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처와 세 자부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창세기 6장 13절)" 성경(聖經)에는 노아의 홍수때 여덟 명이 거대한 배에 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중국 사람들이 작은 배를 뜻할 때는 배 주(舟)자를 쓰는데, 보트에 쭉 그인 것은 '노'이고, 양쪽으로 사람이 앉아서, 노를 젖는 모습입니다. 보트(舟)에 여덟(八) 명의 입(口)이 탄 큰 배를 뜻할 때, 배 선(船)자를 그리고 노아와 그의 가족 여덟 명이 탔다는 것이 한자(漢字)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7장 18절에 보시면 "물이 더 많아져 땅에 창일하매 방주가 물위에 떠 다녔으며" 방주는 노도 없이 떠다니던 거대한 배였습니다. 그래서 중국사람들이 떠내려 갈 연(沿)자를 만들 때, 이 '파도치는 물( )에 여덟(八) 명의 입(口)이 탄 방주가 떠내려 다녔다' 라고, 노아의 여덟 명의 가족이 정처 없이 떠내려가는 모습을 그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방주는 정처 없이 떠내려 가다가 하나님의 뜻으로 터키의 아라랏 산(山)에 도착하였습니다. 5200미터 정도 되는 굉장히 높은 산입니다.

  그 아라랏 산에 얽힌 한자도 많습니다. 창세기 8장 3절-4절에 보시면,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일백 오십일 후에 감하고 칠월 곧 그 달 십칠일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이 사실을 중국사람들이 한자(漢字)로 만들면서 여덟 명이 탔던 배가 거대한 바위반석 위에 앉았다 라고 해서 반석 반(磐)자입니다. 그 반석이 바로 아라랏 산입니다. 그 아라랏 산(山)에서부터 사람(人)들이 내려 왔는데, 인류의 조상이며, 신선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선 선(仙)자입니다. 그리고 방주(舟)에 여덟(八) 명이 탔다는 노아 홍수 얘기를, 사람들이 모여 앉기만 하면 이 이야기를 하고, 또(又) 했기 때문에, 이것이 곧 상식적인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반 반(般)자가 되었습니다. 영어로 'generally speaking'입니다.

  아라랏 산에서 내려와서 장자권자(長子權者)인 셈의 자손들은 산(山) 근처에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려고 머물렀을 겁니다. 히브리어로 '엘 샤다이', 즉 '산(山)의 하나님'이라는 말만 봐도 초기의 노아 후손들이 아라랏 산 근처에 머물면서 하나님을 섬긴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바벨탑 사건 이후 중국으로 이주해간 사람들에 의해 '샹따이(上帝)' 하나님으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막내로 내려 갈수록 점점 자유분방하게 메소포타미아의 시날 평지로 내려와서 농사지어서 장자권자(長子權者)에게 바치며 살았을 겁니다. 가을 추(秋)자를 보시면 벼이삭 익은 모습(禾) 그대로 인데, 그것을 불(火)에 밥해먹는 때가 가을(秋)입니다. 장자권자(長子權者)는 하나님께 좋은 말하고 하나님께 아우들의 복(福)을 빌고, 아우(弟)들은 활 매고 다니면서 여러 짐승들을 잡아오고, 농사지은 것의 일부를 형(兄)에게 바치고, 형은 그것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며 살아오다가,

  장자권자(長子權者)이고, 하나님을 직접 만난다는 교만에 빠져 기세 등등하여진 형들이 동생들을 점점 압제(壓制)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동생들이 가을(秋)만 되면 근심부터 하게되었습니다. 근심 수(愁)자를 보시면 가을 추(秋)자와 마음 심(心)자가 합쳐져 있습니다. '마음이 가을에 가 있다.' 가을만 생각하면 '못된 형들이 산에서 내려와 농사도 잘 되지 않았는데 모두 빼앗아 가겠구나!' 근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생(弟)의 얼굴에 물( )이 흘렀으니 이것이 눈물 체(涕)자입니다. 동생들이 눈물을 흘리며 걱정하기 시작하자, 많은 동생들의 부인들이 서너 명씩 모여서 "형님들만 남자고 당신은 남자가 아니냐? 언제까지 당하기만 할거냐?"하면서 형에게 덤벼들자고 모의를 해서 간사할 간(姦)자를 보면 여자(女)가 수두룩하게 모여있는(女 女 女) 것입니다. 그리고 말은 형(兄)만 해야 되는데, 형이 알아서 복을 빌어야 하는데, 형(兄) 앞에 나타난 입(口)은 형(兄)에게 대들고자, 저주하고자 나타난 입입니다. 이것이 저주할 주(呪)입니다. 한자의 기원에는 이와 같은 인류역사의 흐름이 다 쓰여 있는데, 성경(聖經)을 모르던 한문학자들은 이 사실을 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동생들은 어느 날 대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노아의 막내아들인 '함'의 아들이 '구스'이고, '구스'의 넷째 아들 '니므롯'이라는 그 시대 최고의 영걸(英傑)이 태어나서 모든 동생들의 집안을 규합해서 형들의 집안을 쳐부수고, 니므롯 제국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형들은 전쟁에서 져서 죽거나 장자권(長子權)을 빼앗긴 것을 너무나 부끄럽게 여기다가, 바벨탑 사건 이후 하나님의 땅인 메소포타미아를 떠나서, 해 돋는 나라 동방으로 동방으로 머나먼 대장정을 거쳐, 만주(滿洲)의 하얼빈 부근에 도착해서 송화강, 즉 아리라 유역에 신시(神市), 즉 하나님의 나라를 베풀고 "널리 인간을 유익하게 잘 살아가자."라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뜻, 즉 '아가페 정신'으로 세운 나라가 고조선(古朝鮮)을 중심으로한 대(大) 동이족(東夷族)의 국가들이었습니다. 그렇게 떠나는 기점이 되는 사건이 바로 바벨탑 사건입니다. 바벨탑을 쌓아 올리다가 수많은 말로 갈라지고 흩어지게 되었는데 그것이 한자(漢字)에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창세기 11장 1, 3, 4절에 보시면 '온 땅의 구음(口音)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서로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이 광경이 한자(漢字)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합할 합(合)자는 인간(人)의 입(말, 口)이 하나(一)여서 모든 인간이 힘을 합(合)하여 하나님께 반역하는 일을 하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탑 탑(塔)자를 보시면, 인간의 입이 하나로 뜻을 합(合)해 흙(土)에 풀( ), 짚을 넣고 말려서 벽돌을 만들어 쌓았더니 바벨탑이 되었더라, 이렇게 탑 탑(塔)자에 바벨탑 사건이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의 저주가 임했습니다. 창세기 11장 9절에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난리를 뜻할 때 '입을 천(千) 개의 입(口)으로 굽혀 버렸더니 난리가 저절로 나더라.' 이것이 어지러울 란( )자입니다. "벽돌 한 장 올려줘."하니까. "What did you say?" "!(도모 와까리마셍: 도무지 모르겠다는 일본어)" 이러니 난리가 났겠죠. 그래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뿔뿔이 흩어져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자 동방으로 이동할 때 셈족만이 아니라 약간의 함족과 야벳 족속들이 함께 이동을 해왔습니다. 중국사람들은 야벳족이고 우리 한국사람은 셈족인데, 그 이동하던 모습을 그대로 한자에 그려놓았습니다. 창세기 11장 9절에 "여호와께서 거기(바벨)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중국 사람들은 동방으로 왔기 때문에 옮길 천(遷)자를 만들 때 서(西)쪽에 거대(大)한 분산( )이 일어나서 걸어서 걸어서( ) 왔노라. 중국에서 볼 때 메소포타미아는 서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가족(家族) 안에서는 말이 바뀌지 않도록 혈연관계를 고려해서 말을 갈라놓으셨습니다. 흩을 산(散)자를 보시면 모두 함께(共) 가족 단위( )로 따라서( ) 왔노라, 흩었다는 것의 기본단위는 가족(家族)이었습니다. 서쪽에서부터 대장정의 길을 걸어서 중원(中原)대륙까지 왔다는 것이 한자(漢字)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제사와 카인의 살인

  제사 의식에 관계해서는 성경(聖經) 레위기, 신명기, 히브리서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히브리서 9장 22절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피를 흘려야 죄 사함을 받는다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이었는데, 제사(祭祀)에 관한 한자(漢字)를 한번 볼까요? 아침 9시부터 11시까지를 사시(巳時)라고 하는데, 아침 9시에 고인돌 제단에 가서 하나님께 제사드리면,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고 대화해 주셨다는 것이, 제사 사(祀)자입니다. 제사 제(祭)자는, 고기(肉)를 제단(示)에 또(又), 정기적으로 갖다 바친다는 것입니다. 고기는 사람이 먹는 것이 아니고, 피를 흘리고, 하나님께 바치던 제물이었습니다. 노아 홍수 이후에 악화(惡化)된 지구환경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할 수 없이 하나님이 처음으로 고기를 먹어도 된다고 허락하셨고, 노아 홍수 이전까지만 해도 고기는 사람들이 먹지 않고, 제사의 물건이었을 따름입니다.
또 제사 제(祭)자는 높으신 삼위일체(三位一體) 존재께 인간이 손을 내밀고, 염원하고 빌고 하던 것이 제사입니다. 고기를 갖다 바치고 빌기도 했을 것입니다.
피 혈(血)자는 밑에 있는 것은 그릇 맹(皿)자이고, 점(,)찍은 것은 피입니다. 그래서 짐승의 피를 따로 담아서, 하나님께 갖다 바쳤습니다. 제사 지낼 때 쓰던 것이 피였죠. 유대인이나 중국인들이 똑같이 생각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레위기와 히브리서에 똑같이 나오는 말씀인데, 히브리서 9장 19절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책과 온 백성에게 뿌려......" 정결케 하고 제사 지냈습니다. 제사 지낼 때 주로 염소, 송아지, 양을 썼읍니다.

  중국 사람들과 유대인의 생각이 똑같았습니다. 양 양(羊)자를 보시면, 양을 위에서 밑으로 내려다보는 모습을 그대로 그려놓았고, 자기 자신을 나타낼 때 쓰는 나 아(我)자를 보시면, 손(手)에 창(戈)을 들고 있는 모습(我)이 나 자신이라고 썼습니다. 옳을 의(義)자를 보시면, "내 앞에 내(我) 대신에 양(羊)이 가 있을 때 나는 옳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내 대신 갖다 바친 양을 보고, 나를 옳게(義) 여겨 주셨다."가 옳을 의(義)자입니다. 상서로울 상(祥)자는 하나님에게 갖다 바치는 양(羊), 양을 갖다 바칠 때 거룩해 지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 양(羊)을 갖다 바칠 때 상세하게 이야기(言)를 다 했는가 봅니다. 그래서 자세할 상(詳)자입니다. 아름다울 미(美)자는 양 양(羊)자 밑에 사람이 있습니다. 큰 대(大)자가 아니고 사람입니다. 사람대신 양을 갖다 바칠 때 하나님께서, 추한 인간이지만 아름답게 보신 것이 아름다울 미(美)자입니다. 희생 희(犧)자를 보시면, 옛날에 양(羊)만 갖다 바친 것이 아니라 뿔이 난 소(牛)도 갖다 바쳤고, 양이나 소 중에 가장 흠 없고 완전한, 빼어난 것(秀)을 창(戈)으로 찔러 바친 것이, 희생 희(犧)자입니다. 흠 없는 양과 소를 창으로 찔러 바친다는 것, 이것도 중국인과 유대인의 생각이 똑같았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다가 최초의 장자권자(長子權者)인 카인이 불신앙(不信仰)으로, 신앙에 바로 섰던 동생 아벨을 시기해서 죽임으로써 비극이 시작됩니다. 카인과 아벨에 관계된 漢字를 살펴보겠습니다. 형이란 뜻의 한자는 맏 형(兄)입니다. 인간(人) 중에 입(口)달린 인간이 형(兄)입니다. 모든 사람이 입이 달려 있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 "너희 집안에서 장자권자(長子權者)만이 나한테 와서 이야기해라." 즉 장자의 입만이 하나님께 말하는 입입니다. 사람 중에 하나님께 말하는 입달린 사람이 맏 형(兄)입니다. 빌 축(祝)자는 입 달린 사람 형(兄)이 고인돌(示)앞에 가서 하나님께 집안 일을 말하고 빌 때, 복(福) 비는 말을 했습니다. 복 비는 것이 정상적인 형의 기능이었습니다. 아우 제(弟)자는 인간은 인간인데, 머리 땋고 활 매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아우(弟)였습니다.

  비극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창세기 4장 5절-8절) 중국 글자 죽일 살(殺)자를 보시면, 열 십(十)자, 불똥 주( ), 나무 목(木), 칠 수( )자 입니다(오른 쪽 그림). 손에 나무를 쥐고, 열번 불똥이 튀도록 때렸더니, 죽었다는 것입니다. 카인이 들에 있을 때 아벨을 쳐 죽이니라, 중국사람들의 머리에는 통탄할 살인 사건으로 후손에게 전해졌겠죠. 그 다음글자에도 또 그 모습이 나옵니다.






  아벨을 죽이고 숲에 던져 놓았던 것 같습니다. 세월이 한참 지나서 시체가 앙상한 뼈로 남아 있어서, 앙상할뼈 알( )자가 고대 글자에 해골 그대로 그려놓은 것입니다(오른 쪽 그림). 그것이 눈과 코 이마로 남다가 점점 간단해져서 알( )자가 된 것입니다. 죽을 사(死)자는 해골하고 몸이 꼬부라져 말라 비틀어져 있는 모습입니다. 아벨의 얼굴이 해골처럼 썩었고, 몸이 말라 꼬부라져 있는 모습을 숲에서 발견한 것으로 보입니다. 해골과 삐뚤어진 모습의 몸을 밑에 받침을 받쳐서 위에 풀을 덮어서 장사지낸 모습이 장사할 장(葬)자입니다.



  흉악할 흉(兇)자를 보시면, 맏 형(兄)자인데 위에 입이 툭 터졌습니다. 말해야 할 입은 고장나서 터지고, 엉뚱한 흉악한 표가 얼굴에 하나 붙어 있는 그 모습입니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창세기 4장 15절) 카인에게 표를 주셨다는 그 표가 한자(漢字)에 찍혀 있습니다. 원래 형(兄)이 해야할 입의 기능, 즉 축복하는 기능은 파괴되고, 엉뚱한 표(凶)가 찍혀 있는 악한 모습의 형, 그것이 카인을 뜻하는 형입니다. 흉악할 흉(兇) 자의 갑골문자를 보시면 더 적나라하게 되어있습니다. 입은 터지고 이마에 흉 붙은 사람(兇)이 손을 내밀어 동생 아벨을 붙들고, 때리고 치고 있는 모습입니다.


선 악 과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잘 살고 있던 아담과 이브가 엄청난 비극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선악과(善惡果) 사건인데, 하나님이 인간을 판단력을 가진 이성적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모든 자유(自由)를 주시고 또한 책임(責任)도 주셨습니다. 창세기 2장 16-17절을 보시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 (아담)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하시니라.' 이것이 한자(漢字)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금할 금(禁)자는 두 나무 사이에 하나님을 그려놓고, 금할 금 자라고 썼습니다. 최초의 한문학자인 허신(許愼)도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이 뜻을 밝히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이야기를 적용하면, 선악과 나무(木)와 영생과 나무(木) 사이에 하나님(示)이 나타나셔서 금지명령을 내리신 그 광경 그대로 그려놓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한할 속(束)자를 보시면 나무(木)에 입(口)이 달려 있습니다. 나무(木)에 입(口)이 붙어있는게 왜 제한할 속(束)인지, 허신(許愼)이 알 수가 없었습니다. 선악과나무를 두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입, 즉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제한해 놓으신 것입니다. 법 법(法)자의 갑골문자를 보시면 입 구(口)자, 나무 목(木)자, 하나님 시(示)자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하나님께서 나무를 두고 하신 말씀, 즉 "이것을 따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이것이 법이다."라는 뜻입니다. 한문학자들이 풀지 못했던 것을 창세기(創世記) 기록을 적용하면 그 신비에 싸여있던 한자(漢字)들의 뜻이 분명하고 오해 없이 이해(理解)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법(法)을 선언하셨는데 엉뚱한 존재가 나타납니다. 창세기 3장 1절-4절에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뱀(마귀)의 유혹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만 말씀하셨거든요. "집안의 모든 법칙은 남편이 말해야 된다. 이브에게는 네가 분명히 말해라."라고 하셨는데, 이것을 대충 이야기해서인지 뱀(마귀)이 이것을 알고 여자에게 물었습니다. "참으로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라고 하니까. 여자가 뱀에게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시더라."며 빈정거렸습니다. 못마땅해하는 이브의 빈 마음을 정확하게 뱀(마귀)이 파고 들어갔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가로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라고 말했습니다. 그 광경이 한자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닐 불(弗)자의 갑골문자를 보시면, 두 나무 사이에 뱀이 딱 감고 서있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왜 '아니다'와 관계가 있을까? '설문해자'에서는 도무지 해석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善惡果) 나무와 생명나무 사이에서 뱀이 이브에게 하는 소리입니다. "아니다,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최초의 거짓말을 선언하는 모습입니다. 그것이 아닐 불(弗)자입니다.





  귀신이라는 글자 속에도 중국인들이 창세기 사건을 그려 놓았습니다. 밭 전(田)자의 어원은 밭에 칸이 나누어져 있다는 것이 아니고, 중간에 샘이 솟아나서 네 가닥의 강이 흐르고 경계를 지어서 살던 아름다운 동산 에덴동산을 뜻합니다. 그 에덴 동산에 흉측한 모습의, 인간도 아닌 듯한 인간이 에덴 동산에 은밀하게 침입한 존재가 귀신 귀(鬼)자입니다. 마귀 마(魔)자는 더 생생합니다. 귀신이 두 나무사이에 덮개를 덮어쓰고 귀신이 아닌 것처럼 변장해서 두 나무사이에 엎드려 있는 모습이 마귀 마(魔)자입니다. 창세기 사건을 그대로 그려 넣었습니다.

  거기에 여자가 넘어가 버렸습니다. 창세기 3장 6절을 보시면,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이 광경을 중국인들이 갑골문자에 그대로 정확하게 그려놓았습니다. 아름다울 와( )자의 갑골문자(아래 그림)를 보시면, 여자가 나무 앞에 꿇어 앉아있는데, 나무에 아름다운 과일들이 열려있습니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한 그 과일을 여자가 쳐다보면서 아름답구나, 먹을까 말까 하는 모습을 그려 놓았습니다. 탐할 탐( )자(오른 쪽 그림)를 보시면, 두 나무 사이에 여자가 한쪽 나무를 쳐다보고, 선악과(善惡果)나무를 보고 여자가 탐내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그려놓았습니다.

 
















그래서 여자가 실과를 따먹고 이 세상에는 불행이 시작되게 되었습니다.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창세기 3장 6절)" 찾을 색(索)자의 갑골문자는 나무(木)에 입(口) 달린 것, 즉 하나님이 나무를 두고 하신 말씀, 제한해 놓은 금단의 나무(束)에, 밑에서 위로 올라간 손, 인간의 손, 즉 이브의 손이 이것을 따먹을까 저것을 따먹을까 찾는 손입니다. 슬플 초(楚)자는 두 나무(木 木) 사이에 앉은 여자가 한쪽 나무에 손을 내밀어, 과일을 따려는 그 순간을 그려놓고 슬플 초(楚)자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금단의 열매에 손대는 순간에 인간의 비극이, 슬픔이, 사망이 오게된 거죠. 얼마나 슬픈 사건입니까? 그 후손들이 그 소리를 얼마나 들었겠습니까? 아담과 이브가 끝없이 이야기했겠지요. 비로소 시(始)자는 더 생생합니다. 과일이 여자의 목구멍에 넘어가는 그 순간 비로소 이 세상에 비극과, 슬픔과, 죄악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망령될 망(妄)자는 "여자 때문에 망했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3장 6-7절에 보면,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이것에 관계된 한자인 벌거숭이 라(裸)자를 보면, 옷 의(衣)자와 과실 과(果)자가 합쳐져 있습니다. 성경을 떠나서 생각한다면 과일하고 옷하고 아무 상관이 없지 않습니까? 허신과 공자는 도저히 그 의미를 풀 수 없었지요. 그러나 창세기 기록을 보면 그 뜻을 즉시 알 수 있습니다. 성인 남녀의 아담과 이브가 벌거벗고 살아도 부끄러운 줄을 몰랐는데, 선악과 과일을 따먹고 죄악이 들어감으로써, 부끄러운 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글자로 만든 것입니다. "과일을 쳐다보니 옷 생각이 나네!" 라고 그려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사 창세기 3장 21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처음 초(初)자를 보면, 옷의(衣)와 칼도(刀)입니다. 짐승을 하나님의 번개 칼로 재단하셔서 가죽옷을 최초로 지어 입히신 모습을 그대로 그려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선악과(善惡果)를 따먹은 아담에게 벌을 내리시고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셨습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창세기 3장 17, 19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낙원을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실락원(失樂園)에 관계된 한자(漢字)를 보겠습니다. 사내 남(男)자는 밭 전(田)자와 힘 력(力)자가 합쳐진 것으로서, 밭에 가서 힘을 써서 수고를 해야만 먹고 살수 있는 존재가 남자입니다. 그리고 수고할 곤(困)자를 보시면 제한된 동산, 에덴동산 안에 있는 나무, 즉 선악과를 생각할 때마다, 아담이 고생하는 것은 그 선악과 때문이구나 라고, 곤할 곤(困)자를 썼습니다. 슬플 조(弔)자의 갑골문자를 보시면 인간의 몸에 뱀이 감고 있습니다. 실제로 뱀이 감지는 않았지만, 뱀의 위력으로 이브가 감긴 것이나 마찬가지죠. 그것 때문에 모든 비극과 슬픔이 오게 된 것입니다. 생각할 사(思)자는 고생하면서, 항상 에덴 동산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마음(心)이 항상 에덴동산(田)에 가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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