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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as our body needs daily food, so does our spirit. 육신에 매일 양식이 필요한 것 같이 영혼에도 매일 양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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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6/25
 

이름값은 하고 세상을 사는 것인가?

2005.01.14 00:26 | 내 가족 이야기 | jinkpai

http://kr.blog.yahoo.com/jinkpai/945039 주소복사

단기 3031년(서기698), 고구려는 평양성 함락이후 삼십여년에 걸친 치열한 국권회복투쟁 끝에
드디어 다시 옛 고구려와 맞먹는 대국을 건설하는 데 성공하였다.
대조영장군은 새로운 국가 발해라고도 불리운 '대진국(大震國)'의 황제로 추대되어 년호를
천통(天統)으로 정했다. 고구려인들이 동족인 말갈인들과 함께 수천년래의 단국강토에 다시 그들의
국가를 굳건하게 건설하였다는 사실만이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세상의 수많은 부모들이 그들의 바람을 담아 아이들의 이름을 짓는다.
나의 아버님이 자녀들의 이름을 지으신 것을 보면 그는 애국자이셨다.
1939년 일제하에서 첫 딸이 태어나자 돌림자를 제체고 大震國을 염두에 두시고 震璇이라고 지으셨다.
잃어버린 고구려를 다시 건설한 것처럼 잃어버린 나라를 다시 재건하고자 하는 마음을 딸의 이름에
담으셨다. 계속해서 구슬(玉)이 들어가는 딸들의 이름이었다.
사촌 누이까지 해방 전에 우리 땅에는 네 명의 震X들이 존재했다. 나라의 보배같은 구슬들이었다.
아들이 드디어 태어나자 진(震)을 세우는(建) 큰 일을 위해 震建이란 이름을 주셨는데
할아버님은 나라의 열쇠(鍵)로 바꾸어 주셨다.
나는 이름값은 하고 세상을 사는 것인가?
지어준 이름의 의미대로만 살아도 나는 괜찮은 놈일 것이다.

-= IMAGE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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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편네, 아내를 낮추어 부르는 말이다.
남자들이 나이가 들어가며 아내가 옆에 없으면 불편해서인지 불안해서인지 모르지만
‘여편네가 어디 갔어?’라고 자주 중얼거린다.
나의 작은 아버님은 마침 내가 서울에 머무를 때 회혼(回婚)을 기념하여
‘난치병 치료 이야기’라는 제목의 책을 내시고 출판기념회를 가지셨다.
니시(西)의학의 원로 의당(醫堂) 배은성(裵恩成) 장로는 미수를 바라보는 증손을 둔 할아버지인데도
아직도 건강하셔서 현역으로 활동하시는 한의사이시다.
난치병 만성병을 자연요법으로 지난 40년간 치유한 경험을 적으신 책이다.
그 출판기념회는 한국건강연대와 자연건강회 주최이기에 내빈들의 축사가 많았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사형선고를 받았던 이문영 교수는 거물답게 상당히 긴 축사를 하셨다.
하기야 작은 아버님의 주일학교 제자이자 또 70년 친구이시기에 하고픈 이야기가 많으셨다.
소개와 축사와 축가에 이어 드디어 저자의 시간이 되었다.
마침 그날 근처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폐지집회 때문에 길이 막혀 늦게 모임이 시작하였고 또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갔으니 작은 아버님은 가장 중요한 가족들만 소개하겠다고 말씀하셨다.
먼저 ‘여편네’를 소개하겠다고 하셨다. “여기 옆에 있는 사람이 제 여편네입니다.
여편네는 단지 비칭이 아니라 ‘옆에 있네’를 줄인 말입니다.”
지난 60년 동안 본인의 옆에 있어온 작은 어머님을 먼저 소개하셨다.
손님들은 박장대소를 하며 나이가 많이 드신 분 답지 않게 항상 유모가 있으신 분이라 다르다고 하였다.
그리고 아들, 딸들과 사위들을 소개하고 90이지만 아직도 꼿꼿하신 누님과 미국에서 온 조카도 소개하셨다.

요한복음은 진리의 성령을 ‘보혜사(保惠使)’로 번역된 특별한 이름으로 소개한다.
희랍어 파라클레토스(parakletos)의 의미가 바로 ‘옆에 있네’이다.
법정에서 죄인을 도우며 옆에 있는 변호사를 지칭하는 말이다.
성령은 우리의 옆에 있는 바로 ‘여편네’이다.
그 성령이 신자들 바로 옆에 계시기에 불안하지 않고 불편하지 않다.
성령은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 인도하는 분이며 우리에게 평안을 주신다.
우리의 신앙연륜이 더해 갈수록 우리는 나이가 든 남자들처럼 성령이 내 옆에 있는 분인가를 확인하는
‘여편네가 어디 갔어?’를 항상 중얼거리며 살아야 하겠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요한복음 14장 16-17초)

41006

집으로 오는 길이 굉장히 먼 길이었다

2004.09.04 03:07 | 내 가족 이야기 | jinkpai

http://kr.blog.yahoo.com/jinkpai/666942 주소복사

-= IMAGE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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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한 후 작은 아들 티모가 집으로 오는 길이 굉장히 먼 길이었다.
5월 16일 졸업식 후 곧 선교훈련으로 이어졌고 간신히 6월 20일 아버지 날 3시간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돌아가서는 바로 페루로 떠났다. 페루에서 7월 6일 쓴 엽서가 집에는 3주 후인 26일에 들어왔다.
몇일 후 토요일 31일이면 필라에 도착하는데…..
전화도 안되고 인터넷도 안되어 무소식이 희소식인 지난 6주였다.
하늘에 떠있는 도시라는 마추피추(Machu Picchu)의 아름다운 사진의 반가운 엽서를 받고 읽으려니 읽을 수가 없다.
엽서에 깨알처럼 조그맣게 꽉 채운 글씨를 도저히 알아볼 수 없었다. 그냥 접어 놓았다.
금요일 30일에나 돋보기 안경을 쓰고 한 줄 한 줄 간신히 읽으며 타이핑을 하였다.
나보다 더 안 보이는 엄마를 위하여……. 완전히 해독을 한 후 쭉 읽으니 갑자기 아들이 보고 싶어졌다.
다정 다감한 아버지가 아니었는데도 너무 보고 싶었다.
대학 4년 떨어져 있을 때도 학교가 있는 필라는 가까운데도 자주 가보지도 않았다.
처음 2년 한 학기 한번 아카펠라 그룹의 연주회를 빼놓고는 학기가 시작하면 데려다 주고 끝나면 데리고 오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 아버지가 내일 토요일 아침 11시에 필라 공항에 가서 아들을 잠간보고 셀폰을 주어 연결이 되게 하고 싶어졌다.
물론 집사람은 대찬성이었다.

어느 토요일 아침과 마찬가지로 새벽기도를 마치고 반가운 얼굴들과 커피를 마시고 약속의 집에 들러
일주간의 건축 현장의 변화를 관찰하였다.
시공업체의 홍 과장과의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비행기가 11시 도착이라 9시에 떠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토요일 아침에도 I-95는 막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11시에야 억지로 공항에 도착하였다.
처음 온 필라공항은 새로 지은 곳이라 그런지 좀 특이 하였다. 짐 찾는 곳이 공항건물의 바깥쪽에 있었다.
그걸 모르고 돌아다니다 또 늦었다. 물론 비행기는 이미 도착하였고 대부분의 짐도 찾아간 것 같았다. 큰일 났구나…..
이곳에 오는 것을 이곳 교회에 미리 알리지 않았으니 이미 짐을 찾아 필라로 떠난 것은 아닌가……
다행히도 한 젊은 한국청년도 늦게 도착하여 사람을 찾는 것 같았다.
페루에서 오는 사람들 찾으세요 하고 물어 보았다. 예상은 맞았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가 문제이었다.
아무리 여기저기서 흩어져서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티모와 같이 갔던 유진의 형은 그들은 일찍 도착해 아마 필라에서 지금 점심을 먹고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 하였다.
자기도 학교 근처에 가서 전화오기를 기다릴 것이라고 하기에 서로 셀폰번호를 교환하고 각자 시내로 떠났다.

우리 부부는 유펜 근처의 한국식당에서 밥을 먹고 기다렸지만 전화는 오지 않았다.
결국 오후 1시 반이 되었다. 더 이상 지체 할 수가 없었다.
3시 반 까지는 집에 가서 오후 5시에 맨하탄에 거행되는 용선이의 결혼식에 참석 하여야 하기에…..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집에 오는데 유진의 형에게 전화가 왔다.
페루 리마에서 비행기가 늦게 떠나 마이애미에서 연결 비행기를 못 탔고 다음 비행기로 오면 오후 6시 40분에 필라에 도착한단다.
이제야 행방이 확인이 되었기에 그 시간에 결혼식 때문에 못 간다고 말하고 계속 집으로 돌아왔다.
결국 보고 싶은 아들은 못 만나고 점심 먹으로 필라에 다녀온 꼴이었다.
결혼식 리셉션 중에 잘 도착하였다고 전화가 왔다.
결국 아들을 만난 것은 그 다음날 8월 1일 오후 8시 에디슨에서였다.
집에 온 아들의 모습은 돌아온 탕자의 모습이었다.
빡빡 깎은 머리에 검은 얼굴, 몸무게는 10 파운드 이상 훌쩍 빠져있었다.
반바지로 갈아입고 보니 다리에는 온통 모기가 물은 자국이었다. 안쓰러운 모습이었다.
같이 저녁을 나누며 목메인 소리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아들이 대학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이 굉장히 먼 길이었다.

붙임: 페루에서 엽서를 보낸 마추피추는 갈 시간이 없었냐고 물었다.
안데스 산맥의 쿠스코에서 8일을 머물렀지만 그곳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위해 미화로 한 사람 앞에
$150정도가 드는 비싼 관광지이기에 선교를 간 사람들이라 사진으로만 보고 갈 생각도 안 했다고 한다.

-= IMAGE 1 =-

샌드위치는 빵 두 장 사이에 무엇이 들었는가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
햄, 닭 가슴살, 로스트비프, 참치, 베이컨 등의 샌드위치 이름이 되는 것에
양상추, 토마토를 집어넣고 마이오네스 바른 빵을 양쪽으로 쌓아 간단하게 먹는 것이다.
18세기 영국의 샌드위치 백작처럼 카드에 24시간 쉬지않고 열중하면서도 끼니를 때울 수 있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샌드위치 인생이 되는 시기가 있다.
결혼을 하고 자녀를 키우다 보면 자녀 뿐만 아니라 부모도 돌봐야 하는 시기가 온다.
그 책임을 맡은 우리가 햄이나 고기라면 한 빵은 자녀이고 다른 빵은 부모이다.
나의 샌드위치 인생은 부모님이 매사츄세츠에서 외아들 곁 뉴저지로 이사오신 1989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학교와 과외 활동으로 바쁜 아이들을 쫓아 다닐 뿐만 아니라
부모님들도 교회를 모시고 가며 돌보아 드리는 그런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그 다음 해부터 한국에 사시는 장인 어른이 10년 동안 한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여름이면 우리집에 들어 오셔서 한 두 달간을 머무르고 가셨다.
사업을 아들에게 물리신 이후로 아무래도 공기 좋고 골프 치는데 돈이 적게 드는 미국이 좋으셨다.
일주일에 4번 정도는 꼭 필드에 나가시며 건강을 다지셨다.
그러다가 제일 젊으신 장모님이 96년에 나의 아버님이 97년에 돌아가셨다.

8월 9일 아침 컴퓨터를 켜고 습관대로 22Seoul 사이트를 열어보고 가슴이 내려 않았다.
XXX 모친상, XXX 부친상, XXX 빙부상 연이어 있는 부고가 남의 일로 느껴지지 안았다.
그 전 주간 워싱톤에서 열리는 신약개발에 관한 미팅에 참석하고 있는데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한국 병원에 입원하고 계신 아버님이 언제 돌아 가실 줄 모르니 전화만 하면 곧 올라 오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전화여 오지 말아라’를 외치며 사흘을 바쁘게 보낸 후 목요일 늦게 집에 와서 다음날 금요일 점심 시간에
어머니를 모시고 신장 전문의에게 갔다. 신장기능이 10% 정도 뿐 이시라 걸러내는 dialysis를 위하여
동맥과 정맥을 연결하는 수술을 해야 하기에 빨리 의사를 만나라고 적어 주었다.
2 주일 후에 신장의 크기를 알기 위해 소노그램을 찍기 위한 약속을 하고 병원을 나오는데 머리가 복잡하였다.
결국 빙부 어른도 일주일에 세 번씩 신장을 걸러내는 그것 때문에 혈관과 연결된 호스를 통하여
해마다 한 두 번씩 감염되어 병원 신세를 자주 지시다가 이번에는 허파에 까지 번져
되돌아오지 못할 지경까지 이르셨는데 어머니도 그 똑 같은 길을 걸으셔야 한다니…..

의사가 가족들을 병원으로 불렀기에 서울에서 빨리 오라는 처남의 전화를 받고
무거운 발걸음의 여행을 준비하면서 샌드위치 인생의 의미를 다시 되씹어본다.
그러나 아무리 맛 있는 햄이나 로스트비프 샌드위치라도 빵이 없이 먹는다면 샌드위치의 고유한 맛이
나지 않는다. 아들들이 대학을 졸업하여 직장을 갖고 큰 아이가 올 봄에 결혼을 하고 나니
아이쪽의 빵이 다 없어진 것 같다. 이제 빙부 어른도 매우 위독하시기에 잃고 나면
부모쪽의 빵도 1/4만 남게 된다. 빵이 없이 고기만 먹는 것은 매우 맛 없는 것 같다.
샌드위치 인생 그것이 양쪽을 다 보살피기에 힘들어도 달콤한 인생이다.

40812

Thank you for all your prayers and support this summer !!!

2004.08.14 00:47 | 내 가족 이야기 | jinkpai

http://kr.blog.yahoo.com/jinkpai/558640 주소복사

Hello!

I hope your summers have been going well. I just wanted to thank you for all your prayers and support this summer and share with you some of the amazing things God has shown me during my six weeks in Peru.

"Who am I, that the Lord of all the earth
Would care to know my name
Would care to feel my hurt
Not because of who I am
But because of what You've done
Not because of what I've done
But because of who You are"

During intensive training we kept hearing the lines to this song while we were driving in the car. While we were in the mountains when we made the drive from Cusco to Urubamba driving through clouds (attached picture) and seeing the view of the stars and the moon the words of this song came to life. I was reminded of Psalm 8:3-4 where David says, “When I consider your heavens, the work of your fingers, the moon and the stars, which you have set in place, what is man that you are mindful of him.” God is so much bigger than we can comprehend, yet he still chooses to love us for who we are. I was reminded of this love in seeing how much God loved the people in Peru and desired to know each of their names and hurts. During each of our presentations whether it was in the main plaza, marketplace, or local university people were hungry for the gospel and you could see in their eyes that they were hurting and looking for something greater to fill them. Our team leader shared how about 5 years ago there was no response to the gospel in this area. After seeing an overwhelming response to the gospel during each of our outreaches, we knew that it was not by the effectiveness of our body worship, skits, testimonies, or anything we were doing, but it was only by the power of God and the work He has been doing in the hearts of His people already.
Even in our first outreach in Cusco it was dark, cold, and wet and there was a drunk man trying to distract the crowd and a drum band playing nearby. Despite all these distractions, the people stayed to hear the gospel message and it was clear that God was pursuing these people. At each outreach God knew who would be walking by the market buying groceries, or going to class, and He knew the exact number of people that would respond. There was one small village we visited, Chinchero, where it was pretty late in the day and we had just finished VBS at the local schools, but we decided to do an outreach in the plaza even though the market was closed. We went out on the streets to invite people and about 15 people had gathered for our presentation. There was only one person that came up to accept Christ that day in comparison to other outreaches where there were greater responses. I was reminded that God does not care about the number of people, but He cares about the hearts of His people and He knows each person by name. If it is just for that one lost sheep, He will go out of His way to find that lost sheep. God is faithful and loves His people too much not to do anything.
In looking back at these past six weeks in Peru, I can truly say that God’s grace is amazing. The words of the song continue to ring in my head as I think about the things that God has shown me. Who am I that the Lord of all the earth would care to know my name and would care to feel my hurt? Who am I that I would have the privilege to see God’s heart of compassion for people and His power at work? I realize that I cannot just let this trip be an experience and have nothing change, but I need to respond to what God has shown me. This trip should not end now that I am back home, but I should continue to have that same urgency for people and that heart of compassion for the people around me really sharing the love of Christ with them. I'm excited to start work in about a month and really start living out the convictions God has placed on my heart. Honestly, adjusting back to life here in the states has been difficult so far, but please pray that I would never forget the things God has shown me this summer. I hope that our partnership would not end here, but whatever missionfield God has placed us in whether it be work, school, family friends we can continue to share the love of Christ with them. I just wanted to leave you with a couple of quotes that I pray we could all live out.

"Let me come to the end whether soon or late- and be able to say to a family, a church, a city and the unreached peoples of the earth, "For your tomorrow, I gave my today. Not just your tomorrow on earth, but your countless tomorrows of your ever increasing gladness in God." -John Piper-

"We loved you so much that we were delighted to share with you not only the gospel of God but our lives as well, because you had become so dear to us." -I Thessalonians 2:8-

Your Partner in Christ,
Ti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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