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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19일자 중앙일보 인터넷판에 의하면 네티즌 사이에 추석(秋夕)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시키기 위한 1,000만인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중국이 중추절(中秋節)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키려 한다는 소식이 최근 알려졌기 때문이다.
중국의 인터넷 포털사이트인 신나(新浪.sina.com.cn)는 중국 문화부가 추석을 전후해 전문가회의를 열고 중추절을 세계 문화유산으로 신청하는 문제를 확정할 방침이라고 지난 9일 보도했다.
이와 관련 중국 반 관영 통신인 중국신문사와 화교의 여러 인터넷 망, 또 민간단체들은 이미
인터넷을 통해 80만 명의 네티즌으로부터 중추절의 세계 무형 문화유산 신청 지지
서명을 받았다고 한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대한민국 명절을 국제문화유산에 등록하려는
모임'(http://allsearch.cafe24.com/special/chusuck/)에서는 "만약 중국이 문화유산 등재에 성공하게
되면 대다수 세계인들이 한국을 중국의 속국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라며 "중국이 등재하기 전에 우리가
추석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1,000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신라시대부터 지금까지 우리 민족이 둥근 달을 보며 소원을 기도했던 추석입니다.
우리의 고유명절을 중국에 빼앗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등 지지 서명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지만
"추석도 원래 중국에서 전래된 거 아닌가요? 사이 좋게 중국과 공동으로 문화유산 신청합시다" 등
다른 의견도 올라오고 있다고 한다.
‘추석이 누구 것이냐?’ 하는 질문에 더 복잡한 것은 유대인들의 명절 ‘레갈림’이다.
사람들은 레갈림[초막절(草幕節)]이 바로 추석과 같은 날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
올해는 초막절이 추석보다 한달 뒤에 오지만 3년에 두 번이 유대인들의 초막절과 우리의 한가위가
같은 날이다. 유대력도 음력이기에 같은 보름날이고 윤달을 끼어 넣는 방법이 다르기에 해마다
똑같지는 않다. 토라(모세5경)에 “절기를 지키라!”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유대인들은 지금도 3대 절기, 즉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을 그대로 지킨다.
유대인이 절기를 지킨 것이 아니라, 절기가 유대인을 지켰다는 말을 듣도록 절기를 준수한다.
복음서를 자세히 읽어 보면 예수님은 항상 유월절을 예루살렘에 와서 지키셨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신 때는 유월절 직전 양 잡는 시각이고 그 안식일 다음 날에
부활하셨다. 예수님은 오순절 열흘 전에 승천하셨고, 오순절에 예수의 영인 성령이 강림하셨으며
이 날 교회가 시작되었다.
그러기에 유월절과 오순절은 그 의미가 성취되었지만 초막절은 아직 미완으로 남아 있다.
교회가 12월 25일을 예수님의 생일 크리스마스로 잘못 지키며 초막절은 교회에 매우 생소하다.
토라의 절기를 ‘유대인의 명절’로 치부해 버리고 서양의 전통을 따른 교회력을 마치 진리인 양
고수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절기 명령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지금도 유효하다.
“절기를 지키라!”라고 명령하면 그대로 지키는 것이 더 좋다.
추석과 초막절이 같은 날인데(우연히 같다고 생각지 않는다) 한국교회가 우리 국민들의 정서에 맞는
추석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신앙과 삶에 도움을 줄 것이다.
미국에서 살아가도 추석은 어김없이 해마다 찾아 오지만 추석이 한국과는 달리
그리 실제로 와 닿지 않는데 교회라도 추석맞이 행사가 있었으면 좋겠다.
추석을 다른 민족에게 빼앗기지 않고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회가 새롭게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5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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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五旬節)이란 한자 그대로 ‘5x10 = 50’의 절기이다. 구약에는 칠칠절(7x7: 출34:22) 또는 맥추절(麥秋節: 출23:16)이라 불린다. 유월절 중의 안식일 다음날인 부활절로부터 7주후가 오순절이다.
교회력을 보면 올해는 5월 15일이 ‘성령강림주일’ 바로 교회의 생일날인 ‘오순절’이다.
아이들은 365일이 그날이었으면 하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른은 별로 탐탁하지 않게 느끼는 날이 생일날이지만 교회도 생일날이 있는데 교인들은 그 생일날이 언제인지 모른다.
삶의 목적과 의미를 되돌아볼 수 있는 날이 생일날이기에 무심한 교회도 생일을 다시 집어보아야 한다.
성령이 강림한 교회의 생일 오순절은 첫 번째가 아닌 두 번째 오순절이다.
첫 번째 오순절은 바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신 날이다. 여러 민족에게 복음(계명)을 전하고 또 추수해야 하는 교회의 ‘선교’사명의 의미에서 두개가 포개진 오순절은 매우 의미 있는 축제의 날이다.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신명기 16:16)” 하나님은 이날들을 너무 중요하게 여기셔서 인간을 사랑하신 구원사역의 중요한 모든 날들을 이날들에 맞추어 놓으셨다. 하나님의 구원의 도구인 교회 생일날도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무교절(유월절)이 지난 7주 후인 오순절에 마련해 놓으셨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그리 좋아하시는 ‘세 절기’를 오랫동안 무시하였다.
요시야왕 18년에 유월절을 지킨 일을 사관들이 “사사가 다스리던 시대부터 이스라엘 열왕의 시대에든지 유다 열왕의 시대에든지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더니…. (왕하 23:22)” 라고 기록했다.
유다왕국 막바지에야 히스기야왕과 그의 증손 요시야왕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예표(豫標)하는
유월절 행사만을 겨우 부활시켰다.
그러면 누가 과연 칠칠절을 밀을 추수하는 날에 더하여 이를 율법 받은 날과 연관지어 의미있게 지켰을까? 책을 읽다가 칠칠절이 “포로 이후에는 시내산에서 율법 받은 것을 기념하는 시기로 지켜졌다.”는 문장을 발견하였다.
‘포로 이후…..’ 머리가 빨리 회전하며 소름이 꽉 나의 몸에 퍼졌다. 비밀을 찾은 기쁨이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맺은 약속을 옛언약[舊約]이라 하고 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새로운 언약을
새언약[新約]이라 부른다. 그러나 ‘새언약’이란 말은 이미 주전 6세기에 예레미야가 먼저 사용하였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의 집에 새언약을 세우리라(렘31:31).” 하나님은 왜 그의 언약 백성인 유다를 바벨론에게 망하게 하셨을까?
그발 강가에서 신음하는 백성을 위하여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 에스겔의 최대 관심사이었다.
포로 이전 에스겔이 어렸을 때 예루살렘 거리를 쏘다니며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가자’고 소리치던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의 글을 읽던 에스겔이 이 ‘새언약’이란 말에 딱 부딪쳤을 것이다.
그리고 ‘새언약’의 의미를 찾기 위해 에스겔은 ‘옛언약’을 다시 정리하였다.
받은 시기를 먼저 곰곰이 따져 보았을 것이다. 출애굽한 그 달을 정월로 정하여 14일이 유월절이고 그날 애굽을 떠나서 3월1일에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렀다. 그리고 언제인지 분명치 않지만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께서 제 삼일을 기다리라고 명령하신다(출19). 그러면 처음 유월절에서부터 족히 47일 정도는 지났다. 우뢰와 번개, 빽빽한 구름 사이와 불 가운데로 여호와께서 유월절 후 언제 시내산에 강림하시어 율법을 모세에게 주셨을까?
출애굽기 19장의 말씀만으로는 산수의 계산이 50일이 되지 아니하였을 때 에스겔은 계속해서 출애굽기를 읽어가다 24장 14절을 만나게 된다.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찌니라.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라. 너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찌니라”
여기까지 읽은 에스겔은 하나님이 왜 ‘세 절기’를 이렇게 중요시 하시는가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을 것이다. 칠칠절은 맥추절의 의미 – 밀 추수의 첫 소산을 바치고 봉헌하기 위한 외적인 단순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너희들과 내가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을 중요시 하라는 하나님의 말없는 명령이 담겨있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산수의 계산이 아닌 믿음으로 이날이 애굽을 떠난 처음 유월절부터 50일이 지난 칠칠절의 새로운 의미를 깨달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하나님은 그발 강가에서 포로로 신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언하라고 입에 담아 주신다. 예레미야에게는 ‘새언약’을 통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31:33) 말씀 하셨지만 에스겔에는 “새 영(靈)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36:26) 라고 말씀하신다.
에스겔은 얼마나 정확하게 ‘새 시대’에 성령이 우리 안에서 역사 하실 것을 예언하고 있는가!
아무리 뒤져도 ‘오순절’이란 말이 구약에는 나오지 않는다. 사도행전 2:1, 20:16 그리고 고전 16:8절
신약에만 나온다. 오순절이란 단어 그 자체가 칠칠절(맥추절)과 구별하여 시내산에서
율법 받은 날(6th of Sivan)을 기념하여 부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새언약의 의미를 묵상하다가 유월절 그 밤으로부터 시작하여 오순(50일)이 지난 바로 그날 하나님이 모세에게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것을 깨달은 에스겔에게 하나님은 새로운 오순절 즉 ‘성령’이 강림하는 교회의 생일인 오순절을 예언하게 하여 ‘하나님 구원사의 비밀’이 두개의 오순절에 있는 것을 알게 하신다.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누가’의 오순절날을 쉽게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는 유대인들이 오순절의 축일을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날(6th of Sivan)에 연결 지었다는 사실이다.
랍비들의 전승에 의하면 율법이 모세에게 수여될 때 울린 하나님의 한 목소리가 일곱 목소리로 나뉘어졌고 다시 70개의 언어로 구사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람’과 ‘불’과 ‘이상한 소리’가 시내산 사건 때에 나타난 것과 같이 누가가 오순절을 설명하며 ‘강한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과 ‘여러 나라의 말’로 예수의 제자들인 갈릴리 사람들이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한 것이 이렇게 서로 연결된다. 유대 랍비들이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는 것과 오순절을 묶어서 보았고 오늘날도 유대인들이 그렇게 지키고 있다. 밀을 추수하는 맥추절(칠칠절)이 교회의 생일날인 오순절 - 바로 이날 3,000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교회의 처음 추수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유월절을 완성시킨 것과 같이 오순절날 교회가 시작된 것이 칠칠절을 완성시킨 것이다.
흥미롭게도 유대인들은 칠칠절에 룻기를 읽는 전통이 있다. 룻기에 13회나 나타나는 ‘고엘’ –
‘기업 무를 자’가 얼마나 구원사에 중요한 개념이며 더구나 룻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 곧 교회를 예표한다. 더 큰 비밀은 이 오순절이 안식일(Sabbath) 날이 아니라 안식 후 첫날인 주일(主日)날에 일어난 것이다.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부어진 것처럼 주일날 예배하는 자에게 축복과 은혜가 넘치게 내려짐을 오순절 성령강림이 주일날 일어나게 하시어 그의 구원사안에 있는 교회의 비밀을 우리에게 말하고 계신다. 교회가 지키는 주일이 하나님이 모세에게 율법을 주신 ‘옛언약’의 날일 뿐 아니라 동시에 예수님이 이 세상에 남기고 가신 120 문도에게 성령을 퍼부어 주셨던 ‘새언약’의 오순절날인 것이다. 주(主)의 날에 드리는 예배의 중요성이 이보다 어디에 더 있을까?
더 이상 ‘성수주일’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을까?
하나님의 구원의 감추어졌던 비밀인 두개의 오순절이 하나로 포개진 것이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교회가 그렇게도 멋진 생일날을 잘 챙기지 않는 것이다.
교회의 생일인 오순절을 축하하며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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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나님은 여러 날 중에서 유월절(逾越節)을 택하셔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셨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일 중요하게 지킨 명절은 바로 하나님이 그들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건져주신 구원을 기념하는 유월절이다.
출애굽기에 의하면 처음 유월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羊)을 가정에서 잡아 그 피는 문설주에
바른 후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유월절 식사를 하고
이집트를 떠날 여행준비를 하였다.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의 집은 죽음의 신이 지나갔고(그래서 절기의 이름이 ‘逾越 – (Passover)’ 이다), 그렇지 않은 이집트의 모든 집은 그날 모두 큰
아들이 죽었다. 국왕 파라오를 비롯한 이집트의 모든 집에 곡(哭)이 그치지 않았다.
그 유월절 양이 바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한복음 1:29)으로 오신 예수님을
상징한다.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사시고 우리를 위해 유월절에 십자가에서 돌아 가셨다.
처음 유월절에 어린 양의 피가 문설주에 발라져 있으면 이집트에서 구원된 것과 같이,
예수님의 보혈안에 있으면 구원받는 그것이 바로 기쁜 소식, 복음(福音)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유월절에 십자가에 못박게 하신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하나님은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년 삼차 곧 무교절(유월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신16:16) 하고 그의 백성들에게 명하신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날은 이민 가서 멀리 살든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살든지 거리에 관계없이
꼭 자기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돌아와 하나님께 예배하기를 명령하신 것이다.
바로 이 절기들을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므로 그의 구원사역도 이날을 통하여 나타내셨다.
성전이 무너지기 전, 수많은 디아스포라(이민으로 전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삼대 절기 때에
‘주의 성산에 올라가는’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해외 여러 곳에서 밀려들었다.
평소에 8만 명이 살던 예루살렘이 삼대절기에는 100만 명(요세푸스에 의하면 AD 65년 유월절에
300만 명)이 움직이는 범세계적인 도시가 되었다. 수많은 각 나라 사람들이 동서남북에서 밀려들었다.
사도행전 2장에는 오순절(칠칠절)날 순례객이 그 넓은 로마제국의 경계를 넘어 팔디아, 메대, 엘람,
메소포타미아까지 미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명절 중 제일 큰 명절인 유월절을 택하셔서 예수를 십자가에 돌아가게 하신 또 하나의 ‘비밀’은
바로 유월절 기간에 예루살렘을 방문한 이 ‘디아스포라’에 있다.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으면서 이 며칠 동안에 일어난 일을 혼자서만 모른단 말입니까?”(누가복음
24:18)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일부터 시작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일까지 유월절 기간에 일어난 모든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예루살렘에 아무도 없었다.
구원사역이 만인에게 빨리 전파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열심’ 은 수많은 사람이 예루살렘에 모이는
유월절에 십자가 사건을 일어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드러내어 ‘온 세상’에 빨리 전파하여 한 영혼이라도 먼저 얻어내시고자 하는
‘선교의 하나님’ 이시기에 예루살렘에 많은 사람들이 득실대는 유월절에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일어나게 하신 것이다. 그런 하나님의 초조함을, 영혼 구원을 간절하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우리는 어느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지…
구원사역의 근본인 유월절 십자가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빨랑빨랑’ 을 닮아가서
찬양교회가 전도 열정에 불타는 예배 공동체가 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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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 쓴 글인데 월간 “낮은 울타리” 2004년 12월 호에 다시 정리되어 실린 글입니다.
크리스마스의 유래를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그 역사는 4,000년 전 메소포타미아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시작의 말이다.
2,000년 전에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생일이 아니 4,000년 전 메소포타미아로부터라니?
메소포타미아라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바로 4,000년 전 타락한 그곳 우르에서 이끌어내신
하나님이 굉장히 싫어하시는 곳이 아닌가.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정신이 바짝 들었다.
이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강력한 세력의 장난으로부터 우리가 지키는 크리스마스가 생겼다는 직감이
왔다. 고대 유럽에는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우상들에게 비는 축제가 성행하였다고 한다.
교회가 이를 막았으나 너무 성행하기에 고육지책으로 예수님의 생일날로 대신하여 137년 경부터 이를
축하하는 행사로 치루기 시작하였다.
25라는 숫자가 로마 사람들에게는 매우 신성한 숫자로 여겨졌기에 바로 겨울인 12월의 이날을
택하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지금 세계적으로 지키는 12일25일의 크리스마스는 교회가 세상의 풍습을
대신하여 만들었다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이 하나님의 백성을 속이며 예수님의 생일을 세속화하여
축하의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리게 하였다. 왜 우리 예수님의 생일을 아무도 모를까?
진짜 크리스마스는 과연 언제일까? 잃어버린 크리스마스를 찾고 싶다.
아니 꼭 찾아야 한다. 왜 초대교회에서 예수님의 생일을 강조하지 않았을까?
어머니 마리아와 형제들이 엄연히 존재했는데….. 의문이 그치지 않았다.
예수님이 언제 태어났는지 단언할 만한 자료가 없다.
단지 베들레헴이라는 장소만 확실하다. 누가만이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번 한 것이라(눅2:1-2).” 라고 기록했지만
이 시기에 대해서도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으로 부임한 것은 역사책에는 AD 6-7년으로 기록되었기에
누가가 연대를 착오했다는 견해도 있다. 예수님의 생일을 찾는 방법의 하나는 동방박사가 발견한
‘그 별’이 언제 나타났느냐는 것을 천문학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과학적으로 찾아 증명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이것도 시도하였지만 정답은 나타나지 않았다.
왜 갈릴리 나사렛 사람이 베들레헴에 호적하러 갔을까?
왜 베들레헴 여관이 모자라기까지 사람이 많았을까?
요셉과 마리아가 호적하러 간 시기는 예루살렘에 가까운(5마일 떨어진) 베들레헴까지 인파가 많은
삼대 명절일 것이 분명하다. 삼대 명절에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가는 것과 본적인 베들레헴에
호적하러 가는 두 토끼를 요셉은 한번에 잡기 위하여 임신한 마리아까지 나사렛에서 동반한 것이 아닐까.
레위기 23장, 민수기 29장, 신명기 16장에 세 번씩이나 나오는 이 절기들-무교절, 칠칠절, 초막절-에 대해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실 때 그 절기를 지키라고(강제적으로)
말씀하셨다. 평상시 8만 명이나 되는 예루살렘 인구가 이 3대 절기에는 백만이 훨씬 넘는 인파가 몰려
예루살렘이 넘치게 되어 아마 베들레헴까지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되었을 것이다.
구원의 주체이신 예수님은 유월절(과거)의 고난과 성령의 시대인 칠칠절(현재)을 통과하여
영광의 메시아로 초막절(미래)에 다시 오셔서 세상을 다스리신다.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대한 모든 계획(Master Plan)이 이 세 개의 절기와 구원의 본체이신 예수님과
하나하나씩 맞물려 있다. 이 절기가 그리도 중요한 것은 구원사에 대한 과거의 표상일 뿐 아니라 장래
일의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 3개의 절기 중 언제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있었나를
뽑아보면 현재나 미래의 절기보다는 과거의 절기인 바로 유월절에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것이 분명하리라는 확신이 든다. 이러면 여러 가지 의문들이 풀어진다.
초대교회에서 예수님의 생일을 증언할 마리아와 예수님의 형제들이 엄연히 존재했지만,
예수님의 돌아가신 날과 예수님의 태어나신 두 날이 한 날이기에 한쪽을 강조하다 보니 다른 한쪽이 자연히
퇴색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생일이 부활절이라면, 없어진 이유가 초대교회가 강조하고 지킨
십자가와 부활 때문이라면 생일이 소멸된 이유도 맞아 떨어졌다.
더구나 그렇다면 육적으로 다시 태어나신 날과 육으로 처음 태어나신 날이 같은 게 아닌가.
사탄은 우리가 의미 깊은 예수님의 생일을 하나님의 구원사에 맞물린 유월절기에 축하하는 것을
싫어하기에 교묘한 거짓말로 새로운 크리스마스를 만들어 준 것이 아닐까.
“12월25일이 예수님 오신 날이다. 이날 마음껏 축하해라. 마음껏 소비하라. 마음껏 놀아라.
마음껏 마셔라.” 사탄은 ‘성육신(成肉身)의 신비’를 가리는 세속화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크리스마스의
의미 없는 전통을 일상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혹 이의를 제기해도 일상으로 만들어버려 “의미가 중요하지 어떤 날이 그리 중요하냐”고 자위한다.
12월 25일날 우리들 식의 생일 잔치를 받으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하실까?
우리가 진정 축하해야 하는 ‘날’을 구원사에 맞추어 바꾸는 루터와 같은 개혁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Jesus is the reason of the season.
*추신
과학자다운 호기심에서 시작된 의문의 대답을 찾아보고 싶었으나 막막했다. 어떻게 실마리를 풀어가나?
생각, 또 생각하고 계속 물어보며 뒤져보았다. 그러다 예수님의 생일날은 하나님이 그리도 좋아하시는
세 개의 절기 중에 하나일 것이란 확신이 들었고, 결론은 앞에서 이미 얘기한 것처럼 부활절이 가장
유력했다. 더구나 구원사의 관점에서도 과거의 절기인 부활절은 우리가 지금 예배를 드리는 주일날이며 현재의 절기인 초막절과 모세가 율법을 받은 날도 주일날이기에 유월절 기간의 마지막날인
초실절(부활절)이 생일인 것이 가장 의미가 있었다.
게다가 예수님이 새로운 하나님의 자녀들의 초실(첫 열매)이므로 의미가 더 있었다.
깜짝 놀란 것은 역사가 요세푸스의 책에 예수님의 생일이, 기원전 4년(BC 4) 헤롯이 죽기 전 일식이 일어난
3월 13일이라고 적혀있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유월절과 가까운 날이다는 것, 더 오싹한 것은
종교개혁 이후 개혁자들은 12월 25일에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것을 금지했다는 사실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것이 오래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이 잃어버린 크리스마스를 찾아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교회가 크리스마스를 다시 축하하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사탄은 크리스마스의 의미 없는 전통을 일상으로 만들어 버렸고 슬며시 다시 크리스마스가 자리를 잡아 점점 더 세속화돼
버린 것이다. 결론자체가 매우 도전적이지만 크리스마스의 공룡이 너무 거대하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래도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흔들려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의미가 중요하지 어떤 날이 중요하냐’고 우리는 자위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의미 뿐만 아니라 잃어버린 크리스마스를 꼭 다시 찾기를 바라는
것이 소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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