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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리아의 가장 큰 성읍 니느웨가 BC 612년에, 두 번째 성읍 하란은 3년 후 바빌론에 망하고 아시리아인 통치자가 AD 4 세기에 벌써 물러났으나 니느웨 사람들은 고유의 언어, 문화, 족보를 계속 유지하였다. 그들은 나라를 다시 세우기를 희망하여 1차 대전과 2차 대전에도 종군하였지만 목숨만 빼앗기고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두 번이나 약속 받은, 나라를 독립할 옛 땅을 얻을 수 없었다. 더구나 다메섹 사람들이 시리아(Syria)라는 이름으로 1945년에 독립국가를 건설하여 아시리아(Assyrians)를 ‘province of Syria’로 로마인들이 표명하였기에 흔히 불리는 ‘Syrians’ 라는 이름까지 빼앗기고 말았다. 그 이후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은 현재 시리아에 살고 있는 모슬렘 아랍 사람들이 아시리아의 후손인 줄 혼동하게 되었다.
두 번째 질문인 “예수님의 승천 후에 누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는가?”의 해답은 12 제자 중의 하나인 도마이다. 예수의 손에 있는 못 자국과 그분의 옆구리 창 자국을 보지 않으면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고 말했던(요한복음 20:24-29) 그 도마이다. 아람어로 ‘도마’의 뜻은 쌍둥이며 디두모는 쌍둥이의 희랍어이다. 외경인 도마행전에 의하면 사도들이 모여 각자 어디에 가서 복음을 전할지 제비를 뽑는데 도마는 인도로 가도록 제비 뽑혔지만 전혀 가기를 원치 않았다. 때마침 인도왕 군다포루스(Gundaphorus)의 고용인인 합반(Habban)이라는 상인이 건축공을 물색하고 있는데, 그리스도가 나타나서 목수였던 도마를 노예로 팔겠다고 제안했다. 그렇게 해서 합반은 은 36냥에 도마를 사서 인도로 데려왔다고 한다. 도마는 예수님의 승천 직후 요나의 길을 따라 니느웨에서 가서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우고 니느웨 사람들과 함께 계속해서 동쪽으로 향해 갔다. 주후 52년 인도의 남부 말라바르에 도착하고 이곳을 선교의 거점으로 삼고 복음을 전했으며 마드라스 근처의 성 도마 산에서 72년에 순교하였다고 한다. 아시리아의 다른 이름인 시리아를 붙인 ‘시리아 교회(The Syrian Orthodox Church)’가 지금도 인도에 존재한다.
도마와 아시리아 교회는 역사상 ‘처음의 선교 세력’으로 그들은 64년에 동쪽의 끝인 당(唐)나라의 수도 시안을 거쳐 한반도를 통해 AD 70년에 일본까지 갔다. 시안에 있는 아람어가 쓰여진 ‘The Nestorian Monument’ 탑은 벌써 638년에 세워졌으며 중국과 일본에 유적이 남은 ‘경교(景敎)’가 그 흔적이다(http://keikyo.com). 325년에 니케아종교회의 신조에 사인했던 주교들 중에 페르시아의 대주교 요한이 있었는데 인도와 페르시아에 있는 교회 전체를 대표해서 사인했다. 이 서명은 인도 교회와 페르시아 교회는 매우 밀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며 연결고리가 사도 도마였음을 암시한다. 또 다른 전승은 한 상인이 도마의 뼈들을 인도에서 가져다가 페르시아의 에뎃사(Edessa)에 묻었다. 도마가 인도로 오는 도중에 아시리아에서 교회들을 설립했기 때문에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랬다고 한다. 에뎃사(지금 터키 남단의 Urfa)는 2세기에 이미 성경을 아람어로 번역한 아시리아 교회의 중심지였다.
이미 다니엘을 통하여 ‘유대인의 왕’을 기다리다가 동방박사들을 보내어 예수탄생을 축하한 아시리아는 아브가르왕[Abgar the Toparch (Top = local, arch = ruler)]이 그의 백성과 함께 복음을 받아 들이고 1세기 최초의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 3세기 유대인 역사가 유세비우스(Eusebius)는 아브가르왕이 전달자를 통해 예수님에게 보낸 편지와 예수님이 그에게 답신한 것을 기록하고 있다(http://wesley.nnu.edu/noncanon/writing/jnabgar.htm From “The Apocryphal New Testament” M.R. James- Translation and Notes, Oxford: Clarendon Press, 1924). 아람어(Syriac)로 쓰여진 이 사본에는 편지 외에도 사도 도마가 성령의 인도로 70인 중의 하나인 다대오(Thaddaeus)를 에뎃사에 보내 병을 고치고 복음을 전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이런 행적을 초기 교부들이 아무 근거 없이 꾸며 썼다고는 보지 않는다.
이런 모든 기록들을 살펴볼 때 니느웨 사람들은 도마를 통해 복음을 접한 이후 아직까지도 그리스도인으로 남아 있어 예수님이 사용하던 아람어를 사용하는 유일한 족속이다. 시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요나를 통해 니느웨를 구원 하셨고, 다니엘을 통해 메시아를 기다리게 하셨으며, 도마를 통해 예수님을 알게 하시고 아직까지도 끈질기게 이들을 붙잡고 계신다. 요나의 전도로 회개한 니느웨 사람들을 만난 감격, 그것이 나를 또다시 새롭게 하였다. 전쟁과 정치적인 불안한 요인 가운데 살고있는 이 니느웨 사람들은 지금 우리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들을 도와 그들과 같이 살고 있는 아랍 사람들의 세계를 밝히는 빛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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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기다림의 메시아 신앙을 심어 주었나?’ 하는 첫번째 질문의 해답을 찾으려면
좀 엉뚱한 것 같지만 먼저 동방박사가 누구인가를 캐내야 한다.
“2000년 전 별을 연구하던 동방박사 세 사람이 12월 25일 밤 예수님의 생일날 이상한 별을 따라 그의
탄생을 알고 낙타를 타고 와서 베들레헴 말구유에 계신 예수님께 경배하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리니라.” 이것이 우리 머리 속에 새겨진 예수님 탄생기사다.
문제는 이 기사의 대부분이 사실과 다르다는 데 있다.
예수님의 탄생기사를 적어 놓은 성경을 근본으로 한 것이 아닌 크리스마스 연극이나 카드에서 얻어진
‘이미지’가 사실과 어울려 우리 머릿속에 잘못 주입되어 있다.
어느 것이 사실인지 분명히 구분할 수 있는가?
‘유대인의 왕’이 태어나심을 기다리고 있던 동방박사[wise man; magi]는 당연히 예루살렘왕궁에
와서 헤롯에게 ‘유대인의 왕’이 어디 계신가 물었다. 헤롯왕은 예언서에 적힌 메시아의 탄생 장소인
베들레헴을 가르쳐 주었고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위에 머물러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마태복음 2:1-11). 그들이 예루살렘에 왔던 날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이 아니라 ‘결례의 날’ 까지는 오지 않았다. 적어도 40일부터 2년 사이의 기간에(마2:16 그 때를
표준 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예루살렘에 왔다. ‘결례의 날’, 즉 여자가 아기를 낳고
모세의 법대로 40일이 지난 후에(레위기 12:2-8) 요셉은 마리아와 함께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대로 첫
태에 처음 난 남자아기 예수를 주께 드리려고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갔다(누가복음 2:21-24).
동방박사의 magi(wise man)는 메대의 제사장들을 부르는 이름이었다.
영어의 ‘magician’ 이라는 말이 그 줄기에서 나왔고 다니엘의 직책이 ‘박수장(chief of the magicians)’ 이었다. ‘…명철과 총명과 지혜가 있어 신들의 지혜와 같은 자라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왕이 그를 세워
박수의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장이의 어른을 삼으셨으니’(단 5:11)
첫번째 질문 “누가 기다림의 메시아 신앙을 심어 주었나” 의 실마리를 푸는 것은 니느웨 사람들의
말이자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용하셨던 ‘아람어’ 이다(영화 ‘The Passion of the Christ’ 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아람어가 아랍어와 혼동하지 않고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신약성경의 부분 부분들이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지만 구약에서는 다니엘서의 2장 4절 – 7장 28절이
유일하게 ‘아람어’ 로 적혀있다. 바로 그것이 연결 고리이다.
다니엘은 아람어가 근동(近東)의 공영어로 쓰이던 BC 6세기 초에 이스라엘이 망하면서 어린 나이에
바벨론으로 끌려가 살았다. 하나님은 총명한 다니엘에게 꿈과 환상을 해석하는 특별한 은사를 주셨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한 그의 구속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 열강의 군주들과 열국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며 약속대로 언제 어떻게 메시아를 보내셔서 다스리시는지를 환상과 꿈을 통해 보여주신 것이다.
특별히 아람어로 쓰여진 ‘인자 같은 이’(단 7:13), ‘영원한 나라’(단 7:18),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단 7”27)와 연결되어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표현이며 예수님 자신이 자기를 즐겨 부르신
‘인자(人子)’라는 표현이다. 더구나 다니엘서는 구약에서 찾기 힘든 부활을 뚜렷하게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 때에 무서운 환난이 있을 것인데, 그 마지막 날에 잠자던 자들 중에서 영광의 부활에 이를 자도
있을 것이고 부끄러움을 당하는 악인이 부활에 이를 자고 있을 것이다”(단 12:1-3 의역).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서 하나님이 보여주신 환상을 깨달아 분명하게 알고 있었던 다니엘은
페르시아 왕 고레스 원년(BC 538)까지 최고위 관리생활을 하였다. 그때 유대인 해방령이 내렸으나
스룹바벨과 함께 첫 번째 귀환한 다른 이들처럼 ‘에스라’ 에 이름이 적히지 않았다.
어려운 이민생활 중에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루에 세 번씩 무릎 꿇고 기도했던 그가 80이 넘은
노년에도 환향(還鄕)을 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새로운 뜻이 그에게 아직 남아 있음을
알았기 때문은 아닐는지…… 어디로 갔는지 분명히 알 수 없지만 소년 시절부터 나라가 없는 설움을
경험한 그는 내 생각으로는 같은 아람어를 쓰는 ‘니느웨’ 에서 말년을 보냈을 것이다.
니느웨 사람들과 ‘유대인의 왕’이 오시면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는 비전을 나누었고 그들은 그 비전을
붙잡고 530년 동안 기다렸다. 나라가 없는 그들에게는 더군다나 소망이 또 위로가 필요했다.
예수님이 직접 이름을 들어 말씀하신 ‘선지자 OOO’는 단지 세 명이다. 이사야(마 13:14), 요나(마 12:39)와 다니엘(마 24:3)이며 그 중 요나와 다니엘이 니느웨 사람들과 관련된 것도 참 흥미 있는 일이다.
예수님을 만나러 온 동방박사들이 니느웨 사람들이자 다니엘의 제자들이며 후계자들이다.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래와
육십이 이래가 지날 것이요…”(단 9:25) 동방박사들은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시는 날에 관하여 잘 알고
있었기에 때가 차매 베들레헴의 별을 따라 니느웨로부터 황금, 유황, 몰약의 메시아 선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경배하러 온 것이다.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과 아람어로 서로 말할 수 있었기에
그들에게는 통역이 필요 없었다. 박사들이 가지고 온 세 가지 예물이 그리스도의 세 가지 역할 즉
황금이 대표하는 ‘왕’, 유황이 대표하는 ‘제사장’ 그리고 몰약이 대표하는 ‘선지자’의 3중 사역을 의미하였다.
그들은 다니엘에게 배워서 예수님을 구약성경에 예언된 ‘유대인의 왕’ 으로 이해하고 있었기에
메시아의 초림(初臨)에 걸 맞은 선물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이다. 메시아가 다시 오시는 재림의
그날에는 구세주 사역은 이미 십자가에서 단번에 끝났기에 황금과 유황의 선물이면 된다(이사야 60:6).
2세기 교부 타티안(AD 110-172)은 그가 Assyrian인 것을 항상 자랑으로 삼았기에 그의 이름은
‘Tatian the Assyrian’ 으로 알려졌다. 근세에 발견된 초대교회 문서들 중에 타티안의
디아테사론(The Diatessaron of Titian)이 있으며 그의 신학이 처음으로 3위 일체의 기초를 세웠음을
알 수 있다. 그 타티안이 동박박사가 바로 니느웨 사람들인 것을 증언한다. 예수님은 기적을 요구하는
세대에 보일 표적은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마태복음 12:41). 그 니느웨 사람들이 아직도 표적으로 남아 핍박을 받으며
예수님을 또 기다리고 있다. 오랫동안 간절히 메시아를 기다린 니느웨 사람들과 이 땅에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이 같은 ‘아람어’를 사용하신 것이 우연일까? 아마도 그것은 니느웨 사람들의 기다림에
대한 필연으로 하나님의 선물일 것이다.
동방박사의 선생님인 다니엘은 계시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소년 시절부터 나라가 없는 설움을 경험한 다니엘은 같은 아람어를 쓰는 ‘니느웨’에서
말년을 보내며 나라가 없는 니느웨 사람들에게는 메시아의 소망과 위로를 가르쳤다.
다니엘의 도움으로 니느웨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530년 동안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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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나는 이스라엘의 여로보함 2세 때에[BC793-753] 활동한 선지자이다.
구약 요나서의 마지막 절에 하나님께 회개한 12만 명의 ‘니느웨 사람들’은 그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아시리아 왕(Ashurdan III)을 포함하여 하나님께 돌아왔던 백성들이 그 후에도 하나님을 계속 잘 섬겼을까? 나는 그것이 무척 궁금했다. 요나의 하루 전도로 회개하고 금식하며, 그들 뿐만 아니라 가축까지 물도
먹이지 않았던 현명한 왕과 백성들이,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던 명백한 표적을 눈으로
보았고 하나님의 자비를 맛보았던 그 백성들이 계속해서 잘 섬겼을 것 같기는 하다.
나는 무엇보다 니느웨가 지금의 어느 곳인가를 찾아 보았다.
NIV Study Bible의 지도(p1366)는 니느웨가 이라크의 티그리스강가에 위치한 도시로 되어있다.
그래서 구글(Google 검색사이트)로 갔다. 내가 찾기 위해 입력해 놓은 단어들이 절묘하였다.
아니 하나님의 인도였다. map +Iraq +Nineveh을 입력했는데 바로 “니느웨 사람들: 우리는 누구인가”
의 웹페이지가 바로 여러 사이트 중 제일 위에 떴다(http://www.nineveh.com/whoarewe.htm).
니느웨는 바로 이락 북부 지금의 모술(Mosul)이었다. 이라크 전쟁을 통하여 얻은 모술에 대한
지식은 모술이 북부에 위치한 중요한 유전 도시이기 때문에 미군들이 북부 이라크의 처음 공략 장소로
삼는다는 것이었다. 모술을 후세인에게 핍박 받던 쿠르드(Kurdish) 사람들의 고장으로 알았던 나는
‘니느웨 사람들’은 커디쉬 사람들이라고 단정짓고 컴퓨터 창을 닫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한 곳으로 나의 눈이 쏠렸다.
“우리 아시리아(Assyrians) 사람들은 아람 방언을(Aramaic) 쓰는 옛 아시리아 제국의 후손들이다.
아시리아 사람들은 아라비아인이 아니며 커디쉬도 아니며 우리의 종교는 이슬람이 아니다……..
아시리아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이다(The Assyrians are Christians).” 라고 특별히 빨간색으로 적어
놓았다. 그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아주 달랐다.
더구나 예수님이 이 땅에서 쓰셨던 바로 그 언어, 아람어를 쓰며 “기독교”인이라니……
눈이 똥그래지고 가슴이 뛰었다. 그들은 “나라는 이미 B.C. 612에 바빌론에 의해 망하였지만
6,750년간의 고유의 언어, 문화, 족보가 있다.” 라고 자신들을 소개하였다.
그들은 오랫동안 나라를 다시 건설하기를 희망하여 1차 대전과 2차 대전에 종군하고 유엔의 전신인
‘국제연맹’ 에 의해 독립국가를 두 번이나 약속 받았지만 목숨만 빼앗기고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나라를 세울 옛 ‘땅’을 얻을 수 없었다. 지금도 그들은 전쟁 중에 있는 이라크의 아시리아
고향 땅에서 아무 후견인도 없이 한편에는 아랍인, 다른 쪽에는 쿠르드인 사이에 끼여 어려움 가운데
살고 있다. 아직도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용하던 언어인 아람어를 사용하는 유일한 족속인 그들은
핍박 받는 백성이며, 그들의 나라는 인터넷에만 존재하는 슬픔이기에 ‘nineveh.com’은 그들의
유일한 ‘땅’이었다. 나는 그 땅을 우연히 방문하여 소외된 민족 아시리아인(니느웨 사람들)을
감격적으로 만난 것이다.
요나서에 나와 있는 그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충분히 맛본 니느웨 사람들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이해가 가는데 어떻게 750년 후에 예수님을 만나 기독교인이 될 수 있었을까?
니느웨 사람들은 그들의 기독교 신앙 때문에 오스만제국 이후 거주지의 대부분인 이슬람 지역에서
극심한 박해를 받으며 살아왔는데 어떻게 그 신앙을 지켰을까? 어떻게 아랍화하려고 하는 정부의
시책 속에서 굳건히 자신들의 말과 신앙을 지켰을까? 어떤 큰 비밀이 숨겨 있는 것 같다.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 이후 오랫동안 유대인들보다 ‘메시아’를 더욱 사모하며 기다리며 지낸 것 같다.
그들이 이미 경험한 하나님이 예수님으로 이 땅에 오시는 것을 누군가가 분명히 알려 주었다.
과연 그들에게 누가 메시아 신앙을 심어 주었을까? 또 하나는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후에
누가 그곳에 복음을 전했는가 하는 것이다.
붙이는 글: 2004년에 니느웨 사람들을 만난 후 나는 공부에 들어갔다. 석 달이 지났다.
그러나 더 이상 붙잡고 있을 수 없었다. 역시 한국사람은 못 말리는 사람들이다.
4월 들어 이라크 사태가 나빠지며 미군과 저항세력의 충돌이 확산되고 외국 민간인 피납 사태가 이어졌다.
일본인 3명이 납치된 후에 곧 한국인 목사 7명이 이라크 사람들에게 납치되었다가 풀려 나왔다.
이들은 모술에 세운 신학교 개원식에 참석하다 변을 당했다. 니느웨에 누가 있는가?
이라크 전역에 120만의 아시리아 기독교인들이 사는데 20만 명이 아랍계와 크루드족(Kurdish)
사이에서 모술에 살고 있다. 이들 ‘니느웨 사람들’은 유대인들과 같이 디아스포라로 2백만 명이 이라크를
벗어나 이란, 시리아, 요르단과 같은 중동 지역과 캐나다, 미국 등 북미와 유럽에 흩어져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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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X 2005.08.25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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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자료네요 잘읽었습니다 그런데 궁금해지네요 이라크나 쿠르드 근방은 옛적 바벨로니아(또는 칼데아 지방이라고도 하는)의 판도가 아닌가요? 제가 알기로 앗시리아는 바벨론보다 서쪽에 위치한 지중해의 남쪽 정도에 있었던 나라라고 알고 있는데요... 갑자기 궁금해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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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요나의 이야기가 적힌 ‘요나서’는 아주 흥미진진하다. 특별히 어린이에게 더 그러하다.
내가 어렸을 때 동대문에 있는 한 큰 교회에서 인형극으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보여 주었는데,
주일학교 선생님의 인도로 다른 친구들과 구경간 기억이 또렷하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곳과 반대 방향으로 달아나다가 큰 풍랑을 만나 배 밑창에서 잠을 자는 요나를
깨우는 이방 선원들의 당황한 모습, 제비가 결국 요나에게 맞아 떨어져 바다에 던져진 후 큰 물고기
뱃속에 갇히는 장면은 극적이기까지 하다.
하나님의 사랑은 ‘죽음에서 살아난’, 말 안 듣던 선지자 요나에게 다시 기회를 주시는 것이었다.
요나는 니느웨(지금의 북부 이락 트그리스강가의 모술)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요나서 3:1-4)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된다(누가복음 11:30).
까무잡잡한 중동지방 사람인 요나의 피부는 흰 토끼처럼 되어 버렸다.
사흘동안 소화작용을 하는 뱃속의 산(酸)에 의해 피부가 벗겨져 백인보다 더 희어져 버린 것이다.
그런 표적을 지닌 요나는 자기의 경험을 간증하였을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여 니느웨의
정반대쪽인 다시스로 배를 타고 가다가 큰 풍랑을 만나서 어떻게 바다에 던져졌으며 어떻게 살아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지…... 요나는 하루동안 성읍을 열심히 돌아다니며 간단한 메시지를
외쳤다. ‘사십일이 지나면 느니웨가 무너진다!’(욘 3:4) 그러나 그 간단한 메시지는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복음선포였으며 요나 같은 대부흥사는 다시 없을 정도의 결실을 맺었다.
단 하루동안의 복음 선포로 무려 십이만 명이 회개하고 금식하는 역사가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저마다 자기가 가던 나쁜 길에서 돌아오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켜
그들에게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욘 3:10). 이야기의 구성으로 보면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시지 않기로 결정하셨기에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4장의 이야기는
계속 된다. 사람의 책이라면 3장에서 끝나야 하는데 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요나서 4장을
기록하였나?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대했을 때 나는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요나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보며 울고 계시는 하나님, 절규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니느웨가 회개하자 요나의 마음은 몹시 상했다. 급기야 하나님께 분노를 터뜨렸다.
이스라엘의 적 아시리아의 수도인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을, 선택된 백성의 선지자인 요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자기는 망한다고 외쳤는데 하나님은 돌이키시니 자기의
체면 손상에 대한 분노도 생겼을 것이다. 다시스로 달아났던 것도 바로 하나님은 은혜롭고
자비로우시며 재앙마저 거두실 것임을 알기에 그랬으면서도 말이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하고 앉아있는 요나를 하나님은 빨리 부르셨다. 그리고 요나에게 니느웨 성읍을 돌아다니며
‘하나님이 재앙을 내리시지 아니 하시리라’ 고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하는 일을 맡기셨다.
요나 아닌 다른 사람이 이 말씀을 전할 수가 없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말하면 신빙성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재앙을 내리신다고 이야기 했던 요나가 이 말씀을 선포해야 백성들이 믿고 금식에서 빨리
일어날 수 있다.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그늘 아래 앉아서 성읍이 어떻게 되는 것을 보려
하니라”(욘 4:5). 죽겠다던 요나는 로마를 불태우며 즐기던 네로 황제처럼 불구경 하기에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이 화염(火焰)을 내리셔서 니느웨 성이 완전히 타 버리는
사상 최대의 불꽃놀이를 보려고 기다렸던 것이다.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금식을 시작한 니느웨 백성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가축까지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한 시간이 아니 일 분이 하나님께는 아주 안타까운 시간이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때 20대의 건장한 청년 남녀가 물 없이 버틸 수 있는 최대의 시간이 십일 정도인
것을 알았다. 그러나 니느웨 성의 어린아이들과 늙은 사람들이 픽픽 쓰러지는데 하나님은 가만히
계실 수가 없었다. 하나님은 울먹이시며 뛰고 계셨다. 이미 큰 물고기를 준비하셨던 하나님은
지금 벌레를 준비하시고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시며 강한 태양으로 요나의 대머리를 뜨겁게 달구시며
일어나라고 명하신다. 하나님은 명령대로 움직이자 않고 앉아 있는 요나에게도 관대하셨기에
박 넝쿨을 통하여 그를 가르치셨다. 자기의 ‘대머리’ 를 시원하게 하는 박 넝쿨 하나를 그처럼
아끼면서 수천 수만의 생명을 아끼지 않는 것이 얼마나 모순인가를 말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요나의 매정함의 대비였다. 우리는 요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배워야 한다. “가서, 외쳐라!”(욘 1:2), “가서, 선포하라!”(욘 3:2).
하나님의 마음은 그리도 급하신데 하나님의 선교명령을 빨리빨리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악(惡)인가를 깨달아야 한다. 불구경하려는 요나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내안에,
교회 안에 제한하지 말고, 세상에 나가서 하나님의 사랑을 크게 외쳐야 한다.
지금도 하나님은 절규하신다. 눈물을 흘리시며 우리에게 외치신다.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 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별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욘 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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