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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as our body needs daily food, so does our spirit. 육신에 매일 양식이 필요한 것 같이 영혼에도 매일 양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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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6/25
 

-= IMAGE 1 =-

광풍제월(光風霽月) 비가 갠 뒤의 바람과 달처럼, 마음결이 명쾌하고 집착이 없으며 시원하고 깨끗한 인품을 형용한 말.

예수님은 어두운 세상에 빛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
Jesus came to give light to a dark world.

사랑 없이 줄 수는 있지만 베푸는 것 없이 사랑할 수는 없다.
You can give without loving, but you can’t love without giving.

목적이 없는 것이 지갑이 빈 것보다 더 나쁘다.
Poverty of purpose is worse than poverty of purse.

감사하는 마음으로 실망의 고통을 이길 수 있다.
The pain of disappointment is soothed by a heart of gratitude.

갈보리 십자가는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이다.
At Calvary’s cross, we stand at the crossroads to heaven or hell.

Faith in Christ can make extraordinary heroes out of ordinary people.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보통 사람을 비범한 영웅으로 만든다.

God pours His love into our hearts to flow out to others.
하나님은 그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으셔서 그 사랑이 다른 이들에게 넘쳐흐르게 하신다.

삶에는 내가 들 수 있는 만큼의 무게가 있다. 지나친 의욕만으로 자기가 들 수 없는 무게를 들 수 있다고 과장해서도 안되고, 자기가 들어야 하는 무게를 비겁하게 자꾸 줄여 가기만 해서도 안 되고, 자신이 들어야 하는 무게를 남에게 모두 떠맡긴 채 무관심하게 돌아서 있어서도 안된다.
- 도종환 '사람 사이에 삶의 길이 있고' -

1987년 2월 1일의 Experience X 이후 회사의 일도 변화가 생겼다.
4월에 열리는 실험생물학회(FASEB) 미팅의 한 초록(Abstract)을 그대로 재현하라는 프로젝트를
새로 받았다. 나도 3주후에 그 초록과 똑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의 결론이 내 마음에 안 들었다. 내 생각에는 모든 결과가 Phospholipase C (PLC)로
설명을 할 수도 있지만 PLD가 더 올바른 결론이었다.
이 간단한 생각 하나가 나의 모든 것을 바꾸었다. 이 생각이 떠오른 것도 바로 X 이후 나의 마음에
있던 평화가 인도한 것이다. 회사(Schering-Plough)에 온 후 일년동안 잊고 있었던 위스콘신에서
했던 일을 재현하면 내 결론이 맞는다는 것을 분명히 증명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기대가 되고 흥분이 되었다. 이미 3년의 경험이 있었으므로 2주만에 쉽게 보여줄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세포(cell)의 활성에 아주 중요한 PLC라는 고정관념에 고착되어 있었기에
그 당시에는 그저 식물에만 존재한다고 알려진 PLD라는 내 주장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회사 안의 보스들에게 눈에 보이는 더 확실한 증명을 해주어야 했다.
그것을 위해 다시 석 달을 보낸 후 이제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더 흥분하기 시작하였다.
사람을 포함한 동물세포의 신호전달에 PLD가 아주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 새로운 사실을 분명하게
눈에 보이게 증명하였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이것이 새로운 기전작용의 알레르기 약이나 항암제를
개발할 수 있는 새 목표가 되었기 때문이다.

과학자는 논문발표를 많이 하여야 이름이 알려지고 그의 실력이 인정된다.
그러기에 ‘발표를 못하면 학계에서 없어진다(Publish or Perish)’ 는 말이 있다.
그러나 새로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으므로 내가 하는 실험의 거의 모든 결과가 발표할 수 있는 그런
것이 되었다. 나의 보스는 처음 논문을 같이 쓴 후 학계에 발표하기 전에 회사의
‘사장상(Presidential Award)’을 먼저 신청하자고 제의하였다.
일년에 한 번씩 회사 안에서 가장 좋은 연구를 한 그룹이 만 달러($10,000)의 상금과 함께 상장을
사장에게 받는 것이었다. 그 때의 규칙에 의하면 아직 포스트 닥터(Post Doc)인 나는 받을 자격이 없었다.
그러나 회사는 먼저 규칙을 바꾸고 나와 내 보스에게 1988년 상을 주었고 아내와 함께 회장을 비롯한
높은 사람들과 멋있는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3개월 후 선임 과학자(Senior Scientist)로 발령을
내었다. 그 해 실험생물학회(FASEP) 회의에서 처음으로 발표를 하였다.
그 발표로 인하여 동창 유영제 교수를 포함한 다른 연사들이 이미 다 결정된 그 해 여름 서울에서
열리는 재외과학기술자 대회에 급히 연사로 추가되어 국내에도 PLD라는 것을 처음으로 소개하였다.
모든 것이 사람의 생각을 뛰어넘은 것이었다. 그 후 논문 수로 보나 질로 보나 한국은 PLD 강국이
되어 15년이 지난 아직도 그 분야에 관한 좋은 논문들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보면 마음이 뿌듯하다.

X 바로 이전의 나의 마음 상태는 벌써 회사에 온 지 일년이 지났고 앞으로 일년 계약만이 남았는데
일년동안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별로 자신이 없었다.
내 스스로 한번도 과학자로 내가 적격하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지원한 의과대학이 아니고
2차 지망으로 생화학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대학에 입학하였다. 미국에 이민을 와 아버님이 원하시는
것이라 어쩌다가 박사학위를 하였지만 나의 지도교수 말대로 나는 별로 과학적이 아니었고 좋은
과학자처럼 과학에 모든 것을 기울이지는 못했다.
교회가 더 중요하여 박사학위가 끝난 후 다른 새로운 곳에서 포스트 닥터를 해야 하는데 내가 떠나면
학생들이 중심인 작은 교회가 안 될것 같은 착각 때문에 그냥 매디슨에 머물렀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3년 반 동안의 포스트 닥터 생활도 과학에 모든 것을 바치지는 못하고 그저
직업으로 여겼으나 8년 8개월의 추운 위스콘신 생활이 너무 지겹다는 아내의 간청에 못 이겨 장래를
가름하는 아무 생각도 없이 손에 돈 한푼 없이 뉴저지로 우연히 이사오게 되었다.

뉴저지에 온 나는 왜 하나님이 이곳으로 보내셨는가를 생각하였다.
처음 일년 동안 얻은 자신감은 과학을 당장 그만두고 무엇을 해도 뉴저지에서 먹고 사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직장에 꼭 들어가서 일을 안 해도 세탁소나 옷 가게를 차린다면 도와 줄 사람들도
있었고 수입도 더 나아 보였다.
그러나 아직 분명한 직장도 없지만 박사와 장로라는 외관상의 타이틀만으로도 이곳에서 자란
2세들에게 역할 모델(Role Model)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장로가 됐다는
것 때문에 교회에서 이상한 눈으로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마침 럿거스 대학의 한인기독학생회 (KCF)와
연관이 되어 매주 한 두 번씩 젊은 그들과 같이 어울려 성경을 공부하고 찬양을 같이 하는
새로운 사역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미 럿거스 KCF 학생들은 캠퍼스에서 리벤젤 수양관으로 향하였기에 1987년 1월30일 밤
나는 혼자 리벤절을 처음으로 찾아갔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도하신 ‘나의 이야기(My X Story)’ 이다.

손때가 낀 나의 NIV Study Bible을 보면 그래도 꽤나 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성경을 10년 이상 열심히 영어권의 대학생들과 함께 보았다.
개역성경을 보다가도 모르면 Study Bible을 찾아 읽고 밑의 설명과 Reference를 이해할 때까지
쫓아갔다. 나의 “Experience X”를 기억하기 위해 내가 나에게 50 달러의 거금을 투자해 선물한
성경이기에 더 애착이 간다. 우습게도 2-1-1987 날짜를 적어놓고 받은 사람과 준 사람 난에 내 이름을
적어 놓았다. 지금도 그 성경을 보면 럿거스 한인기독학생회(KCF)에서 부지런히 학생들과 함께 지낸
나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들이 기억된다.

이미 Rutgers KCF 학생들은 캠퍼스에서 리벤젤(Liebenzell) 수양관으로 향하였기에
1987년 1월30일 밤 나는 혼자 리벤젤을 처음으로 찾아갔다.
아무리 길박사라도 캄캄한 추운 겨울 밤에 경사가 있는 산길을 처음으로 찾아가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그 해 KCF에서 처음으로 시작한 겨울수양회 강사는 오대원(David Ross) 목사님이셨다.
그는 한국에서 ‘예수전도단’을 만드시고 대학생들을 위하여 25년간 선교사로 봉사하셨기에
영어로 설교하시는 것은 물론 유창한 한국말로도 설교하실 수 있었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자 위험인물로 추방을 당하여(도저히 이해가 안 가지만) 미국에
돌아와서 하나님이 어떤 사역으로 인도하시나 기다리시던 중 KCF와의 처음 만남의 시간을 갖게 된 것이었다.

학생들과 눈(雪)싸움을 하며 또 찬양을 마음껏 부르는 재미 있는 시간을 보낸 후 토요일 밤,오대원 목사님은 설교시간에 자기의 경험을 들려 주셨다. 오대원 목사님이 장로교 목사가 된 후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고 있을 때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한 대학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하셨는데 집회 도중 30명 앞에서
창피한지도 모르고 엉엉 우는 경험을 하였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을 누가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기에 그는 “Experience X”라고 이름 지었다.
그 경험 후 오 목사님이 변화하여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받기까지 하였다는 간증이었다.
토요일 밤은 수양회의 가장 중요한 결단의 시간이었다.
말씀을 마친 후 같이 기도하는 시간에 목사님께서는 나를 부르시고 학생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라고 하셨다. 막상 나가서 학생들과 같이 기도를 하였지만 내 마음 속에는 자신이 없었다.
하나님이 아직 어리고(당시 나는 35살 뿐이 안 되었다) 믿음이 보잘 것 없는 나의 손도 사용하실까?
그러나 나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학생들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열심히 축복기도를 하였다.

좋은 시간들이 빨리 지나가고 주일 아침예배 때에 30여 명이 손에 손을 잡고 산을 내려가
우리가 할 일을 다짐하고 수양회를 마쳤다. 잠을 거의 못 자 피곤한 몸이었지만 집으로 오자마자
오후 1시의 성가대 연습을 위해 교회로 향했다. 그러나 교회가 끝나도 집으로 바로 올 수가 없었다.
마침 그날 훌러싱의 한 교회에서 연합제직수련회가 있어서 안수집사님과 장로님들이 가시는데 밴을
운전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 교회에 도착하자 나는 맨 끝 모퉁이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은혜는 이미 수양회에서 흠뻑 받았으니 뒤에서 잠이나 자자는 심보였다.
예배 시작 전 먼저 찬송으로 마음을 여는 시간이었다. 그저 무감각하게 조용히 있던 나에게
‘…. 성령이여 임하사 내 영혼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소서.’ 찬송이 불러지자 조용히 눈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다. 그러다가 이내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했다.
도저히 흐르는 눈물을 추스르지 못하고 통곡을 하고 울게 되었다.
예배가 시작할 때까지 그런 상황이 벌어지니 나는 예배당 안에서 쫓겨나갔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담임 목사님이 오셔서 기도를 해주시고 같이 가신 다른 분들이 나를 붙잡아 주었다.
시간이 지나고 마음이 안정된 후 어제 밤 오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Experience X’가 생각났다.
‘큰일이로구나 나는 목사님보다 10배나 많은 300명 앞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예배 장소로 돌아온 후 조용히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첫 번째 말씀이 무엇인지를 기다렸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눅10:43-45).”
당시 필라델피아의 임마누엘교회를 담임하시던 고인호 목사님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마가복음의 열쇠가 되는 말씀을 통하여 섬기는 종의 모습을 원하시는 것이었다.
말씀이 무겁다는 생각만 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기다리자고 다짐하였다.

지금과는 달리 뉴저지에 한국 음식점이 거의 없던 때라 밤이 늦었지만 뉴욕까지 간 사람들이 그냥
돌아올 수 없었다. 맨하탄의 뉴욕곰탕에서 요기를 하기 위해 운전수인 내가 마지막으로 내려 차의
문을 잠글 때 어느 집사님이 조용하게 말씀하셨다. “축하해요!”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늦게 집에 돌아와 아내를 보자 다시 눈물이 끝없이 나왔다.
아내를 안고 한참 울며 기도하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3시간밖에 못 잔 월요일 아침 출근길이지만 기분이 상쾌하였다.
차가 많은 파크웨이(GSP)를 달리다 여느날과 같이 다른 차가 내 차 앞에 얌체처럼 파고 들어도
입에서 욕이 나오지 않고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그렇다. 세상은 하나도 바뀐 것이 없다.
내가 바뀌면 된다. 세상은 금요일이나 월요일이나 변함이 없지만 내가 바뀌자 모든 것이 바뀐 것이다.
이것이 Experience X 이후의 처음 느낌이었다.

모르는 것을 그냥 X 라고 하여 수식을 만들어 보면 문제가 꼭 풀린다. X는 비밀스러운 것이다.
Experience X는 1987년 2월 1일 내가 많은 사람 앞에서 엉엉 울었던 경험을 어떻게 표현하는가가
중요하지 않기에 붙인 이름이다. Experience X는 나의 이야기이다.
한 평범한 과학자가 세상, 교회, 가정에서 또 성경과 과학에서 그리스도(X)를 만난 경험을 적은 이 글은,
영어라는 부담을 가지며 책의 제목을 ‘Experience X (그리스도를 경험함)’로 정했다. 내가 쓴 글로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경험’한다면 나의 꿈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의 인생 여정의 시작은 내가 태어난 1951년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을 구주로 섬긴
나의 할아버지로부터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왜 성경에서
그리도 반복될까? 이제는 거의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할아버지 배선표 목사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배은수 장로의 하나님’이 바로 나 배진건의
하나님으로 올바로 재인식된 것이 ‘Experience X’이다.
태어나기를 엄청난 부자의 자녀로 태어나 만 스물 한 살 생일날이 되면 트러스트[信託]에 묶인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물질적인 부자와 같이 나도 영적으로 엄청난 부자로 태어났다.
부자인 것을 잘 모르다가 영적인 유산을 내 마음대로 사용하기 시작한 ‘Experience X’,
그날이 영적으로 나의 만 스물 한 살 생일날이다.
나의 아이들 상훈(Thomas)과 상준(Timothy) 그리고 그 이후로 계속되어 나의 자녀들이
엄청난 영적인 유산을 자기의 것으로 챙기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나는 그저 내 조상들의 발자취를 따라 그들처럼 나의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내가 받은 바통을 움켜지고 계주에서 내가 맡은 구간을 열심히 뛰고 나의 아이들에게 넘기는 것이다.
이런 나를 여러 사람이 응원하고 있다. 우선 나의 아내 김수정과 상훈, 상준,
나의 조상을 포함한 어머니, 작은 아버님, 고모님과 일가친척 가족들이…. 또 존경하는 허봉기 목사님과
나를 사랑하시는 목사님들, 나의 동역자인 찬양교회 장로님들과 집사님들, 그리고 22서울의 친구들,
또 나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고 외치는 소리를 갈대처럼 들어주며 화답하신 분들,
그 여러분들에게 내가 ‘빚진 자’ 이다. 그 분들의 응원이 없었다면…….

나는 아이들을 좋아한다. 아니 아이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이민 일세와 이민 2세들이 갭(Gab)을 메우라고 하나님이 나를 뉴져지에 보내신 것을 ‘그날’ 깨달았다.
2세들의 영혼 문제에 관심을 두다 보니 나의 아이들이, 누나의 조카들이, 친구의 아이들이, 채윤이를
포함한 나와 연결된 모든 아이들이 다 좋았고 사랑스러웠다. 그들을 그대로 받아 들이려고 노력했다.
그들이 마음대로 예배 드리며 친교하고 선교하는 2세 교회가 지난 18년간의 나의 관심이었다.
찬양교회의 건축위원장도 이럭저럭 맡게 되었다. 짐이 매우 무겁지만 그래도 기쁘게 기도로 버티고
있다. 2004년 9월이 어서 오기를! 어려운 이 일을 잘 감당하여 우리 1세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우리의
후세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건물의 한 부분을 내가 담당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이 책을 내는 것도 찬양교회 건축의 한 부분을 위해서 이다.
나에게 한가지 야무진 꿈이 있다면 나와 나의 며느리가 이 책을 영어로 번역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그들이 쉽게 이해하는 언어, 영어로 읽어서 그들의 하나님을 꼭 만나게 하고 싶은 바람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 감사 합니다!

'지저스 코리아(JesusKorea)' 사랑하는 분들께

2005.01.05 12:51 | Experience X | jinkpai

http://kr.blog.yahoo.com/jinkpai/945025 주소복사

-= IMAGE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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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사람이 이번 조국 방문을 통하여 'Experience X' 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글들이 한데 모아져 책이 되니 유기체로 변한 느낌이 저에게는 들어 저에게는
매우 감격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글을 조금 씩 쓰다가 2001년 '지저스 코리아(JesusKorea)'의 '함께 가는 길' 이란 인터넷매체가 생긴 후
더욱 열심히 쓰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함께 가는 길'을 사랑하시는 직접적으로는 만나지 뵙지 못한
여러 분들에게 '빚진 자' 이기에 이왕에 여러분이 도와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열심히 읽어주시고 다른 분들에게 '빚진 자'가 지은 책을 소개해주시면 더 고맙겠습니다.
이 책을 구입하기를 원하시는 분은 jinkpai@yahoo.com (미국) "코람데오" 출판사 soho3@chollian.net (한국) 연락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새해 하나님이 주시는 복 많이 받으세요.

배진건 드림

2004-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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