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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와 그의 학문
[원본 : http://kr.blog.yahoo.com/hhl917/1463658 ]
2009/02/15 10:28

 

 


   민족의 나아갈 길을 밝혀준 한국인의 스승 
우리나라에서 성리학의 발달은 퇴계 이황(李滉 1501∼1570)을 통해 최고봉에 이르렀으며, 퇴계의 학문과 덕행 또는 문장은 실로 위대한 경지에 도달했다. 
퇴계의 학문, 덕행 및 유풍은 그 크기와 규모 영향력에 있어서 한국 역사상 으뜸이며 유림계의 태산이요, 북두성 같은 존재로서 수많은 유림의 사표이며 그 가운데서 크게 빛나고 있다.
주자학 사상에서 보면 동양에서 주자 이후로 제1인자인 것이다. 
퇴계 이황은 조선 유림들이 태산북두와 같이 존경하고 사모하여 마지않는 명현(名賢)으로 길이길이 이 민족이 지켜 나갈 길을 밝혀 주는 스승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직 문화의 불모지였던 이웃 일본에도 그 높은 학풍을 전해주었던 것이다.
이황은 참으로 조선 이후 우리나라 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학문의 창조자가 아닐 수 없다.

 「자성록」
「자성록」은 퇴계가 자신의 사상적 원숙기라고 할 수 있는 55∼60세 때까지의 시기에 문인들에게 보낸 서간 가운데서 수양과 성찰에 도움이 되는 편지 22통을 모아 직접 편집한 책이다. 
퇴계는 성학을 배우는 초학자들의 공통적인 심기(心氣)의 병을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초학자들의 병은 아직 이(理)를 통찰함이 투철하지 못해서 천착하여 억지로 탐구하고, 마음 가지는 방법에 어두워 조급히 서두르는 데 있다.
정유일과 권호문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성학을 배우는 기본자세를 전반적으로 설명한다.
뜻을 세우고 학문하는 근본과 말단을 알며, 서로 도와 참을성 있게 공부하여 인(仁)과 지(智)를 추구하라는 것이다.
또한 ‘독서’, ‘마음을 붙잡아두고 기르며 공경하는 마음속에 머무름’, ‘잘잘못을 살피고 이치를 탐구함’ 등을 다루며, 얕은 지식을 쌓아 헛된 꿈에 사로잡혀 명성에 집착해서는 안 됨을 강조한다.
「자성록」 한 권만 연구해도 그 속에서 참으로 많은 철학적 사상과 학문적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거기에는 성학을 배우는 초학자들의 공통된 병을 고치는 처방, 학문하는 기본자세, 거경궁리의 방법, 세상을 속이고 명예를 훔치는 데 대한 준엄한 경계 등이 있으며, 이러한 내용들은 학자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가장 친절하고 신뢰할 만한 안내자가 된다.
또한 엄격하고도 부단한, 퇴계의 학문하는 정신과 고매한 인품, 깊은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 
퇴계의 「언행록」을 후인들은 공자의 「논어」에 비유한 바 있거니와, 이러한 비유를 확대한다면 「자성록」이 「가어(家語)」와 유사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간주해도 좋을 것이다.

 「퇴계 언행록」 
퇴계는 그 언어와 행실에서 지극히 겸손하고 발라서 무릇 세인의 모범이 되었다.
그의 매화향처럼 깨끗하고 고결한 품격을 책으로 썼으니 그것이 바로 「퇴계 언행록」이다.
「퇴계 언행록」은 6권 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숙종 때 권두경(權斗經:1654∼1726)이 편찬·간행했는데, 나중에 중간된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간행연대는 알 수 없다.
저자는 본관이 안동(安東)으로 영남학파의 거두인 이현일(李玄逸)의 문인이다.
책머리에는 목록에 이어 차기제자목록(箚記諸子目錄)이 있다.
목록에 수록된 인물은 김성일·권호문·김부륜·정구·조목 등 거의 퇴계의 제자들이며, 이이·유희춘도 있다. 
권1은 학문·공경·덕성을 말한다.
권2는 자질과 절도, 몸가짐을 말한다.
권3은 벼슬살이와 향리 생활을 말한다.
권4는 이(理)와 기(氣), 예(禮)를 말한다.
권5는 바른 학문 바른 인생을 말한다.
권6은 경(敬)·의(義)·지(知)·행(行)이 하나로 관통했던 일생에 대해 말한다.

 「성학십도」 
‘성학’이란 곧 ‘유학’을 의미하고, 그 유학 중에도 특히 ‘성리학’을 일컫는다.
유학 또는 성리학을 굳이 성학이라 일컫는 까닭은 이 학문이 곧 ‘성인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갖춘 학문’임을 자부하는 데 있다.
그리고 특히 임금에 대하여는 ‘성왕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갖춘 학문’임을 강조하려는 데 있다.
「성학십도」는 퇴계 유학 사상의 진수를 빠짐없이 드러낸 가장 중요한 저작이다.
퇴계는 68세 때, 일생동안 쌓아올린 학문적 지식을 쏟아 마지막 봉공(奉公)의 정성을 다하여 임금께 「진성학십도차」를 올린다.
그런 만큼 「성학십도」는 퇴계의 가장 원숙한 말년의 사상의 전모가 일목요연하게 압축 요약되어 있는 것이요, 그의 심혈을 경주한 대표적인 명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은퇴한 퇴계가 국가에 바친 만년 충절의 일단이기도 하다. 
제1도는 도와 도설 모두 주돈이의 저작이며,
제2도에서 서명은 장재의 글이고, 도는 정임은의 작품이다.
제4도에서 본문은 주자의 「대학경」 일장(章)이고, 도는 권근의 작품이다.
제5도에서 규약은 주자의 글이고 도는 이황의 작품이며,
제6도에서 상도(上圖) 및 도설은 정임은의 저작이고 도는 이황의 작품이다.
제7도는 도 및 도설이 모두 정임은의 저작,
제9도에서 잠은 주자의 말이고 도는 왕노재의 작품이며,
제10도에서 잠은 진남당의 말이고 도는 이황의 작품이다.
이들 유학사상의 정수들의 집약은 퇴계가 독창적으로 배치하여 서로 유기적으로 관련됨으로써 생명 있는 전체적 체계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논사단칠정서」
「논사단칠정서」는 퇴계 철학의 진수가 담긴 서한집으로, 고봉 기대승과 ‘사단칠정’의 발현 문제를 둘러싸고 벌인 논쟁을 담은 퇴계의 대표적 걸작이다.
퇴계와 기대승의 14년에 걸친 철학적 논란은 성리학사상 한국 지성의 찬란한 금자탑이다. 
사단은 측은지심(惻隱之心)·수오지심(羞惡之心)·사양지심(辭讓之心)·시비지심(是非之心)으로, 각각 인(仁)·의(義)·예(禮)·지(智)·심(心)의 착한 본성에서 발로되어 나오는 정감이다.
측은지심은 타인의 불행을 아파하는 마음, 수오지심은 악한 일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마음, 사양지심은 윗사람에게 양보하는 마음, 시비지심은 선악시비를 판별하는 마음이다.
칠정은 희(喜)·노(怒)·애(哀)·구(懼)·애(愛)·오(惡)·욕(欲)의 일곱 가지 감정으로서, 인간 심리의 숨김없는 현 실태를 총칭한 것이다. 
퇴계는 사단은 이의 발이요, 칠정은 기의 발이다(四端理之發 七情氣之發)며 둘을 따로 떼어 생각하였는데, 그 주장에 기대승이 반론을 펼치며 논쟁이 시작된다.
이에 따라 퇴계는 자신의 이론을 몇 차례에 걸쳐 수정하여, 사단은 이가 발해서 기가 따르고, 칠정은 기가 발해서 이가 탄다(四端理發而氣隨之 七情氣發而理乘之)고 주장한다.
이렇게 시작된 사단칠정에 관한 논쟁은 성혼과 이이를 거쳐 한말에 이르기까지 한국 성리학 이론 논쟁의 중요 쟁점이 되었다.
또한 이러한 논구로 사단칠정론 중심의 한국 성리학의 심성론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향상되어 중국 성리학을 능가하게 되었다.

   퇴계의 격조 높은 시의 세계 
퇴계의 도학에 대한 열성은 시작(詩作)으로 이어졌다.
그의 시들은 실천궁행하는 도학자로서의 삶이 생활 속에 얼마나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의 시에는 드높은 인품이 배어 있어 선비로서의 고고한 분위기가 그대로 드러난다. 
퇴계는 자연을 음송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자연에 의지하여 우주의 심원한 이치를 드높은 운치로 읊고자 한다.
그러면서도 생활의 소회(所懷)를 느끼고 생각나는 대로 그리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래서 퇴계의 시는 그 자신의 도학으로 수양함으로써 우러나온 격조 높은 시정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는 때로는 도산(陶山)에서, 동암(東巖)의 바위 위에서, 아니면 병상에서 느끼는 갖가지 생각들을 담담하게 적어 내려가고 있다. 
퇴계는 자연과 더불어 자연의 이치에 따라 살고자 했다.
그래서 유난히도 산수시를 많이 남겼다.
초야에 묻혀 살면서 세속의 찌든 때를 씻고자 했고, 그리하여 도학자로서의 기풍을 잃지 않고자 했던 것이다.퇴계는 선비이자 대학자요 순수하고 깨끗한 기품을 지닌 시인이었다. 
 

 「무진육조소」의 퇴계 정치사상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는 총 7400자로 된 긴 소문이다.
이는 퇴계 이후 물러나는 대신이나 물러간 재야 유신들이 국왕에게 정책이나 의견을 개진하는 길을 가르쳐 준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왕통 승계의 법통을 중히 여겨서 어질게 효도를 다하여 모실 것.
둘째, 간사한 무리의 참언을 막고, 왕실의 자전과 본생 친가 부모 양궁(兩宮:생가와 양가인 왕가)을 친근하게 해서 사이를 좋게 유지할 것.
셋째, 제왕학(帝王學:임금이 갖추고 있어야 할 학문)을 공부하여 치국의 근본을 확립할 것.
넷째, 도덕과 학문을 밝히고 인심을 바르게 이끌 것.
다섯째, 임금의 속마음을 잘 알아차리는 인물을 골라서 귀와 눈이 바르게 보고 들을 수 있게 할 것.
여섯째, 지성스럽게 자신을 반성하고 수양을 거듭하며, 하늘의 사랑(하늘이 백성을 사랑하는 자애)을 받들 것. 
무진육조소는 선조에게 사람으로서 누구나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자질과 전통적으로 가르쳐 온 성학(聖學:제왕학)을 정밀하고 쉽게 설명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은 후에 남을 다스리는 법도를 가르친 것이다.
퇴계는 어디까지나 본연의 자세와 심성의 근본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정치를 해야 하는 요체와 방도를 설명했다.
이렇듯 퇴계는 학자든 임금이든 성학에 근본을 두어 그 전통을 지키며, 성현을 스승으로 삼고 인효와 인륜 도리를 다해야 한다고 아뢴 것이다. 
퇴계의 소(疏)를 본 선조는 감격해서 다음과 같이 치하했다. 
“경의 도덕은 옛 성현의 자질에서 우러나온 것이며, 그 윤리 또한 어질고 깨끗하오. 무릇 이 육조는 진실로 천고의 격언이오니 당장 지금이라도 시급히 힘쓸 것이오. 내 어찌 감히 가슴에 새겨서 지키지 않으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