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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일 : 2004/06/25
 

제 친구 허OO박사가 2009-06-08 쓴 글입니다.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서.....


경제학의 한 분야에 게임이론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게임이론에서는 인간이 영위하는 모든 경제행위를 하나의 게임으로 보고 경제행위의 주체는 모두 게임 참가자가 된다.
치킨게임(chicken game)이란 1950년대에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유행하던 객기어린 놀이의 이름인데 이 게임에서는 두 대의 자동차가 서로 마주 보고 달려간다.
한 쪽이 핸들을 돌리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충돌하여 박살이 나게 되어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먼저 핸들을 돌리는 쪽이 모욕적인 '치킨'(겁쟁이라는 뜻이 있음)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고, 끝까지 핸들을 돌리지 않는 쪽을 승리하는 것으로 하는 것이 이 게임의 룰이다.

게임이란 이기기 위하여 참여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핸들을 돌리지 않으려고 하지만 상대방도 핸들을 돌리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마음이 약한 쪽이 지고 담대한 쪽이 이기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상대방에게 나는 끝까지 핸들을 돌리지 않거나, 못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하는 것이 이 게임의 요체이다.
상대방의 시야에 가장 확실하게 보이는 곳에서 핸들을 뽑아서 버리는 것이(경기용 자동차는 핸들을 뽑을 수도 있는 모양이다) 이 게임에서 이기는 비결이라고 한다.
치킨 게임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최선의 결과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이쪽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게 하여 게임을 포기하게 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므로, 결코 뒤를 보여서는 안 되는 허장성세(虛張聲勢)가 필수적이다.
물론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하여서는 나의 모든 것을 잃는 재기불능의 치명적인 손해를 감수하면서 만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치킨게임은 잘 되면 모든 것을 얻지만 안 되면 모든 것을 잃는(All or Nothing), 고위험도의 게임이므로 이런 상황을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것이 제일 좋으나 우리가 숨쉬고 사는 세상에는 이 게임을 나와 내가 소속되어 있는 집단에게 걸어오는 자가 항상 있게 마련이므로 결국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겁먹게 하여 투지를 꺾어 버리게 만들고 포기하게 만드는 기싸움의 요령을 체득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옛날 전투 장면 중에서 배수진은 고전적인 치킨게임이 될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충주의 달래강을 뒤로 하고 배수진을 친 신립(申砬)장군은 이중으로 치킨게임을 한 것이 되는데 왜적에게는 우리는 퇴로라는 핸들을 버렸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되니, 죽을 준비를 한 아군을 이기기 위하여서는 죽을 각오를 하고 덤비거나 그게 싫으면 물러가라는 초강력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되고, 부하 장병에게는 밀리면 강물에 뛰어드는 방법 밖에는 없다는 것을 보여 주므로 도망 갈 수 있다는 핸들을 제거한 것이 된다.
이순신 장군의 ‘죽기를 기하는 자는 필시 살고 살기를 꾀하는 자는 반드시 죽는다(必死則生 幸生則死)'라는 유명한 말 역시 자기자신과 그를 따르는 부하들, 그리고 왜적에게 치킨게임을 걸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인간의 생존을 위한 투쟁의 기록인 역사책은 각종의 치킨게임으로 가득 차 있다.

2007년 7월에 분당샘물교회 신도 23명이 아프가니스탄에 봉사하러 갔다가 탈레반에 의하여 납치된 사건이 있었다.
이 교회의 목사를 포함하여 2명이 살해되고 21명은 거액의 몸값을 내고 생환한 사건으로, 탈레반의 잔인함과 샘물교회 신도들의 무모함으로 전 국민의 여론이 비등하던 사건이었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국정원장을 현지에 파견하여 탈레반의 요구조건인 아프가니스탄 철군과 몸값 지불 등, 그들의 요구조건을 일방적으로 들어주는 선에서 사태를 마무리 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한국정부와 탈레반과의 대치 상황을 치킨게임으로 풀이할 수 있는데, 탈레반은 철군과 몸값 지불을 이행하지 않으면 인질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하였다.
한국에게 최선의 상황은 대가 없이 인질들이 무사귀환 되는 것이었으나 군사적 행동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고, 이렇게 했을 때 있을 수 있는 군사적 행동의 실패는 인질로 잡힌 자국민의 인명에 손상을 초래하는 것이었으며 이것은 치킨게임에서 최악의 상황을 의미했다.
탈레반에게 최선의 상황은 그들이 인질을 잡은 목적이기도 한 한국의 아프간 철군과 몸값을 받는 것을 관철되는 것이었고, 최악의 상황은 한국을 비롯한 연합국의 토벌작전에 의하여 그들이 궤멸되고 인질도 살해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치킨게임에서 탈레반은 인질을 한 명씩 차례대로 참수(斬首)하는 등, 자기 갈 길을 변경할 것을 시사하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음으로써 게임의 고수답게 기싸움에서 고지를 선점하였으며, 파병을 해 놓고도 현지 사정에 어두운 한국정부는 60만 대군의 군사대국이면서도 군사적 행동의 시도조차도 하지 못하고, 지방 민병대 수준의 테러리스트 집단 탈레반을 상대로 하여 그들에게는 제일 좋은 해결책이고, 한국에게는 차선책인 방법을 선택함으로써 치킨게임의 패배자가 되고 말았다.
이 사건은 한국은 국제적인 분쟁상황에서 국가적인 전략이 부족하다는 것을 노정시켰으며 국제적인 테러리스트집단에게 한국은 좋은 먹잇감이 될 수도 있다는 약점을 노출시켰다.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정부 등과의 공조를 통해서 군사적인 행동을 포함하여 좀 더 치밀하고도 대담한 대응책이 아쉬웠던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09년 6월의 상황은 어떠한가?
5월 23일 전직 대통령 노무현씨가 검찰조사를 받던 중 자살하였고, 북조선은 2차 핵실험에 성공하였으며 장단거리 미사일 여러 발을 불꽃놀이라도 하듯이 쏘아대고 성능이 월등히 개선된 것으로 보이는 ICBM의 시험발사를 또한 앞두고 있다.
노무현씨의 유서에는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라는 귀절이 나오지만 그의 지지자들과 그의 자살을 정치적인 도약의 계기로 만들고 싶어하는 기회주의자들은 시청 앞 광장과 인터넷 공간에 대규모 군중이 모인 것을 놓질세라, ‘정치적인 타살’, ‘간접적인 타살’을 주장하며 망자의 허물을 묻지 않는 전통적인 한국인의 풍속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여, 그가 600만불 수뢰사건의 장본인이라는 점은 완전무시 내지 망각하여 버리고, 2008년도의 촛불시위의 인파를 그리워하며 ‘이 분위기에서 1cm도 옮기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의 정권은, 북한의 핵보유를 북조선이 주장하는 그대로 국제적인 압박 때문에 자위를 위하여 불가피한 것이라고 변호해 주는 등 그들의 대변인 노릇을 자청해 마지 않았다.
그들의 변호에 따르면 북한의 핵무기는 북한 자신이 핵공격을 받지 않기 위한 ‘자위용’ 핵무기일 뿐이었다.
그들의 인식이 그러했으므로 보내주는 돈들이 핵개발에 전용되는 것을 구애치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ICBM에 핵탄두를 장착하면 그 핵무기는 어디까지 가는가?
북한이 남한에 대하여 대규모 군사적인 영향력을 행사할만한 상황이 생겼을 때, 미국이나 일본의 군사적개입이 우려되면 일본과 미국본토를 향하여 사용하는 것 말고는 그 용도를 생각하기가 어렵다.
핵무기가 기능적으로 자위용과 공격용이 별도로 있다는 소리는 아직 들은 일이 없다.

두 개의 국가적인 규모의 치킨게임이 진행되고 있다.
북조선의 김정일 세력과 대한민국의 이명박 정권.
노무현씨를 중심으로하는 운동권세력(전통야당도 그들에게 흡수통합된 것으로 봐야 한다)과 이명박 정권이 바로 그것이다.

북조선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벼랑 끝 전술'이란 치킨게임의 북조선버젼이 아닌가.
상대방이 목숨을 걸고 덤비면 나도 목숨을 거는 척이라도 해야만 치킨게임의 균형이 이루워진다.
이명박 정권은 미국과의 공조체제를 공고히 하는 등 과거정권처럼 퍼주기를 지양하고 상호주의를 택함으로서 그 방향은 옳게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과거 정권에서의 햇볕정책이란, 치킨게임으로 나오는 북조선에 대하여 작전이랄 것도 없는 것이, 노무현 정권이 탈레반에 했듯이 그들이 하자는 대로 해 주고 돈으로 평화를 사는 것 뿐이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차선이지 최선은 아니라는 것이다.
햇볕정책의 지지자들은 ‘그러면 전쟁하자는 말이냐’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나 치킨게임에 있어서는 전술한 바대로 상대방으로 하여금 기가 죽게 만드는 허장성세가 필수적이며 이것은 실제상황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한다.
또한 치킨게임의 한 쪽 당사자인 북조선은 최선의 결과인 적화통일를 얻기 위하여서는 최악의 상황, 즉 '공화국'이 궤멸적 타격을 받는 것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이 전쟁을 벌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노무현씨의 출신향(出身鄕)인 운동권, 그들은 이명박씨에게 530만표 차이라는 사상 최대의 표차로 패배한 순간 일시적으로 절망했었으나 광우병쇠고기 파동을 정치적으로 적절히 이용함으로써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개발독재자를 계승한 군인정치가에 대한 저항으로 1980년대에 정치적 인생을 시작한 그들은 ‘잃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치킨게임의 고수였다.
2000년대 들어서 양극화(兩極化)가 진행되고 1997년도의 IMF사태와 2007년도의 경제위기는 도시빈민층이 확대되고 중산층에까지 영향을 주었으므로 이들의 투쟁방법인 치킨게임은 확대재생산이 이루워져 전사회적으로 만연하기에 이르렀다.

치킨게임에서는 뒤를 보이는 쪽이 패배하게 되어있다.
깨질 때 깨지더라도 상황을 장악하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두 개의 치킨게임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는 이명박씨의 실패는, 자연인 이명박의 실패로 끝나지 않고 그에게 투표한 1000만 유권자와 대한민국의 실패로 이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재앙에 가까울 정도로 치명적이다.
게임의 반대쪽 일방(一方)은 목숨을 걸고 덤비고 있고 그 핵심인 노무현씨는 목숨을 이미 버렸다.
또 다른 게임의 반대쪽 일방인 김정일은 북조선 전체의 명운을 걸고서 덤벼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정부는 좌고우면, 일희일비를 하지말고 게임의 법칙에 따라 의연하고 대담하게 대처하는 것 만이 생왕방(生旺方)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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