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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저녁 8시 기다리고 기다린 시간이었습니다. 천상의 소리, 맑은 영혼으로 희망을 노래하는 “월드비전 선명회 어린이 합창단”이 미주 지역 21번의 마지막 공연으로 바로 제가 섬기는 찬양교회에서 공연하는 날이었습니다. ‘힘겨워 하는 아이들을 위한 희망의 합창(A Voice for The Voiceless)’의 그들의 주제였습니다. 월드비전 코리아데스크 동부지부 위화조 사무총장도 “순복음뉴욕교회 공연 130명과 마지막 콘서트로 열린 뉴저지 찬양교회에서 무려 232명이 그래서 뉴욕과 뉴저지 공연에서만 총 362명이 결연에 동참하는 등 한인들의 ‘힘겨워 하는 아이들’과의 결연이 봇물을 이뤘다”며 “공연장소와 식사, 민박을 제공해주신 각 교회와 성공적인 공연을 위해 후원을 아끼지 않으신 각 지역 운영위원들에게 감사 드린다”고 덧붙였습니다.
저는 지난 18일 찬양교회 공연을 보며 선명회에 대한 옛 생각이 겹쳐졌습니다. 월드비전 선명회에 대한 저의 처음 기억은 제가 초등학교 학생이었을 때 입니다. 아버님과 사촌 형님의 손을 잡고 밥 피얼스 목사님의 집회에 간 기억이었습니다. 군사혁명이 난 직후인 1961년경으로 생각되는데 시민회관의 건너편 미국영사관이 있는 자리 공터였습니다. 한국전쟁고아를 위해 월드비전을 창설하신 밥 피얼스 목사님이 직접 악기를 불고 설교하셨던 기억입니다.
65년 중학교 2학년 때 강서구 등촌동으로 이사 갔습니다. 선명회 어린이 합창단도 이즈음 같은 등촌동 김포공항 쪽으로 두 정거장 더 가는 곳으로 이사 왔습니다. 이곳에는 합창단원의 기숙사뿐 아니라 어린이 병원도 세워졌습니다. 물론 나중에 이 좋은 땅을 전경환씨에게 빼앗겨 새마을 운동본부가 들어왔지만. 김포공항에서 출발하는 좌석버스를 타고 종점인 시청 앞에서 걸어서 중-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대부분의 합창단원들도 같은 버스를 타고 숭의여중고나 숭실중고교를 다녔고 또 영락교회에 출석하지 못 하는 날에는 제가 다니던 등촌동 나사렛교회에 와서 예배 드렸기에 합창단 친구가 많았습니다. 그들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연주를 하던 문화사절단이었기에 보통인 우리에게는 더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중-고등부 시절에 특별히 한강 모래사장에 움막을 짓고 살던 한센병 환자들을 찾아가서 같이 찬양하며 흐느껴 울던 기억이 났습니다.
이번에도 연주 중간에 초대 단원들의 옛 사진을 보았는데 항상 가운데 있던 남학생 마스코트 ‘이용복’, 지금 남가주에 사시는 김영애, 영숙 자매와 오빠, 그리고 저의 찬양교회를 개척하신 박조군 사모, 저의 집에 자주 놀아왔던 이부선 누나, 고등학교 때에 미국으로 와 버린 OOO 등 여러 초창기 멤버들이 제 눈에 보였습니다. 특별히 김영애씨는 지난 2006년 9월 28일 Home Sweet Home에서 마련해주신 저의 책 ‘샌드위치 인생’ LA 사인회에서 33년 만에 반갑게 만나 뵈었습니다. 그 분의 딸 Yeri는 명문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월드비전의 ‘북한데스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와 삼촌, 이모가 받은 혜택을 딸이 적은 봉급을 받으며 갚고 있습니다.
지난달 23일 하와이 공연을 시작으로 LA와 댈라스, 휴스턴, 애틀랜타, 내쉬빌, 세인트루이스, 시카고, 버지니아, 필라델피아, 뉴욕을 거쳐 18일 뉴저지 공연을 마친 선명회 월드비전 어린이 합창단은 3년 후 다시 올 것을 약속하고 19일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번 미주 순회 콘서트를 통해 지구촌 ‘힘겨워 하는 아이들(Voiceless)’ 결식 아동들에게 삶의 새 희망을 전한 것은 물론 미주지역 한인들에게 큰 감동을 전했습니다. 월드비전 코리아데스크 박준서 부회장은 “미주 한인들의 적극적인 관심으로 목표했던 2,500명 결연을 달성했다”며 “성공적인 순회 콘서트를 위해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은 각 지역 교회와 한인사회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은 월드비전의 첫 번째 수혜국에서 이제는 후원국으로 큰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월드비전 ‘사랑나눔 친선대사’ 역할을 담당하시는 노형건 선생님도 이 큰 일에 앞장 서시기에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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