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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3일 월요일 김용남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제 교회에서 김명수 선생님을 우연히 만났다고 흥분한다. 아들이 뉴저지에 사는데 방문 오셨다고 한다. 이번 토요일 영범이네 집 모임에 모시고 가면 어떤 가고 묻는다. 당연히 그래야 되지 않는가 고 대답을 주었다. 물론 결정은 집주인이 할 노릇이지만. 수학경시 대회에서 일등을 한 영범이가 김 선생님께서 오시는 것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 오랜만에 ‘김명수’ 라는 이름과 연결 지어 눈썹이 새까맣고 눈이 부리부리하고 키가 큰 선생님의 모습이 그려졌다. 28일 토요일 영범의 집에 도착하였을 때 김 선생님은 오늘 안 오시고 다음 주말에 산에서 내려 와서 기영이네 집에서 다시 모인다고 한다. 선생님과의 만남이 한 주일 미루어졌다.
7월 5일 오후 통신이 두절되었던 산에서 영범이와 함께 하루 먼저 내려 왔다. 6일 오전 교회를 다녀 온 후 아들 부부와 아버님 산소에 다녀 왔다. 7월 4일이 11주기 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 이동준 부회장과의 파티는 계속 되었다. 오후 6시에 뉴저지 알파인 이기영 동기 집에서 수학을 가르치셨던 김명수 선생님을 모시고 저녁 먹는 시간이 연이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6시에 아내를 동반하고 용길과 함께 기영이네 집에 도착하였다. 바로 전에 산에서 온 사람들이 도착하였다. 다행히도 길이 안 막혔다고 한다. 집 주인 부부는 그 좋아하는 친구들과의 골프도 생략하고 새벽 6시 반에 산에서 내려 와서 음식을 준비하였다고 한다. 미동부 동기들은 이 정도 예의를 갖추고 있다.
우리가 기영의 집에 도착한 후 곧 김희건 목사 부부가 왔다. 항상 마음은 친구들과 있으나 교회를 인도하는 목사님이기에 산에 같이 못 갔지만 이곳으로 온 것이다. 조금 있다가 김명수 선생님께서 오셨다. 정말 금새 그 분을 알아볼 수 있었다. 눈썹과 눈의 특징은 그대로지만 키는 (우리가 학생일 때 너무 작아서 그랬는지) 생각보다 오그라지신 것 같았다. 반갑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38년 전에 35살이었기에 그 때는 학생들을 서울대학교에 많이 보내는 것이 선생의 중요한 임무라 생각해서 너무 학생들을 못살게 굴었었던 것 같다고 돌려서 그 때의 일을 사과(?)하셨다. 우리가 경시대회에서 참패한 후 선생님의 제안으로 23회부터 100등까지 학생들은 매일 1시간 먼저 나와 선생님이 내신 문제를 자습으로 풀고 10분 정도 본인이 문제를 방송으로 설명해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영범 선수가 참여한 23회가 경시대회 1등을 하였다고 한다. 기영과 용길이 구운 미국산 소고기가 주 메뉴였다. 이X준 부회장도 맛있게 먹었다. 이런 좋은 고기를 왜 안 먹겠다는 지. 김명수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한 가지 섭섭한 것은 선생님의 오른 손이 조금 떨리는 것을 보았다. 파킨슨씨 병의 초기 증상이었다. 15년 후 우리의 모습을 선생님께로부터 보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안타까웠다.
뉴저지 이기영 동기 집에서 김명수 선생님과의 성대한 만찬이 열렸습니다. 참석자 명단: 주최자 이기영 부부, 한국에서 오신 김명수 선생님, 김정일, 이동준 회장단 부부, 뉴욕에서 추광현 회장 부부, 김희건 목사 부부, 김용남 부부, 김지혁 부부, 배진건 부부, 홍창훈 부부, 천병수 부부, 이용길, 그리고 김준수 군 (총 23명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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